글속의 좋은 글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마음에 와닿는 글을 클릭하고 원문을 읽어보세요. 괜찮지 않은 것에도 괜찮아야했던 당신의 모든 새벽을 토닥인다. "괜찮지 않은 것" 엄마와 너는 보이지 않는 태줄로 이어져 엄마는 그 태줄을 통해 너를 어루쓸고 걱정하고 사랑한다. "서커스는 아파서" 필요하진 않겠지만 나도 응원을 보낸다. 그 집에 밥 짓는 냄새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그녀의 노래소리가 서로 깍지 낀 손가락들처럼 어울려 서서히 그녀만의 온도를 만들어낼거라 생각한다. "어느 저녁의 산책과 쓸데 없는 연예인 걱정" 사람들은 어딘가에 속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또 자꾸 누군가를 우리라는 말 속에서 제외시켜버렸다. "나는 너의 밖에서" 농망기엔 농사를 짓고 농한기엔 출근하시는 아버지. 밤 12시면 아버지는 그 자전거를 끌고 대문을 나선다. 추운 밤 12시, 바람 불고 눈이 오는 캄캄한 겨울의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가시는 아버지의 가슴은 얼마나 시렸을가. "아버지의 자전거" "도투"가 표준어고 "돼지"는 작은말, 이쁜말일 뿐이다? 사투리가 국어가 보고이듯, 연변말은 용비어천가에도 등장하는 중세국어적 요소가 많이 남아있다. "연변말GoGo學" 그 울바자 사이에는 그렇게, 우리의 꿈이, 나의 동년이, 그리고 언니의 순정이 봄을 따라 가을을 따라 다녀갔었다. "울바자가 있는 풍경" 봄을 타는지 요즘은 자꾸 과거의 나를 만나고싶다.그때 미흡했던 것들이 세월이 흐르니 지금은 너무나 투명해서 어떤게 해야 할 일이고 어떤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인지 너무나 직관적으로 보이는데 "과거를 만나다" 이걸 신으면 높은 곳의 공기가 느껴질 것이고 자신감이 급상승 할 것 같고 눈부신 비상이라도 할 것 같은 환각마저 든다. 아아. 이 뿌리칠수 없는 유혹을 어찌할가. "십센치는 위험해" 집과 자신을 멋지게 꾸밀줄 아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꼭 더 좋은 날들이 있을거라 나는 생각한다. "어느 저녁의 산책과 쓸데없는 연예인 걱정" 살기 싫다가 살고 싶다가 살아야 하다가 지나온 세월속의 아픔과 상처들, 그것들로 하여 나는 울컥하고 눈물을 흘린다. 아파서, 대견해서, 아련해서. 감격해서 난 눈물이 난다. "백사장이 되기전에" 산다는 것은 하나의 예술이자 하나의 수행이다. 살면서 매일매일의 체험으로 주어진 선물들을 통하여 나의 영혼도 점차 성숙되어 간다. "동경에 살어리 랏다" 기관차 머리의 자리를 물려주고 뒷바곤에서 묵묵히 시대를 따라주고 있다. "어머니가 시대에 뒤떨어진게 아니라 나의 젖내가 덜떨어진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것이 아니라 이별이 슬픈것이다. 죽음보다 못견디게 슬픈 이별! "죽음보다 슬픈 이별"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어느 특정된 나이나 시간에 해야만 그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일들이 있다. "버킷리스트(遗愿清单)를 당장 만들어야 하는 이유" 아버지의 어깨우에 놓여졌던 그 고단한 삶의 무게를 생각해 보는것만으로 다리가 휘청해난다. "아버지의 하늘" 너무 높은데서 내려보면서 글을 쓰면 글속에 사람 사는 맛이 않나고, 너무 자세를 낮추어서 함께 부대끼면 위선과 우월감이 가시처럼 박힌 이 몸이 몸둘바를 모르겠고. "내 파란만장 삼십대 청춘에 부치어" 전에 커피 한잔 사들고 컴 앞에 앉아 기획안 내던 그녀는, 이제 육아장비로 전신무장된 특전사의 몸으로, 머리로는 아이와 엄마의 삶을 고민한다. "독박육아 울이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가난은 ‘슬픔’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랑만’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명랑소녀 상경기"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모든 첫 경험은 새롭고 기억에 오래오래 남는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떠나서. "하와이에서 파도 타기란 쉽지 않았다." 지키기에는 너무 힘 부치고 잊고 살기에는 가슴 아픈 동네를 우리는 연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요, 맞습니다. 당신네들이 연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