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듯한 고통에 은미는 병원이 떠나갈듯 으아아악하고 괴성을 지르며 야수처럼 울부짖었고 그 누구도 구원할수 없는 절망적이고 숨막히는 고통끝에 새생명은 고고성을 울리며 탄생하였다. 가슴속의 심장은 튀여나올듯 벌렁벌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럽고 추운것도 아닌데 온몸은 부들부들 떨리며 은미는 혼미해지는 정신줄을 겨우 잡고 있었다. 남편 경철이가 눈시울을 젖히며 “고생했소!” 하며 은미한테 다가오며 위로를 한다. 은미의 어머니는 아기를 감싸안은 포대기를 헤쳐보더니 “정서방, 미안하네. 딸일세!” 이러며 사위 눈치를 보신다.

“ 미안하다니…” 

     은미는 서글픔이 북받치며 숨구멍이 꾹 막혀버리는것을 느꼈다. 눈은 여전히 뜨고 있는것 같은데 남편과 어머니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딸애의 울음소리인지 자신의 비명소리인지 여러가지 소리가 함께 귓가에 울리며 핑하고 돌아가더니 모든것은 무한한 고요함에 빠져버린다. 

고요하다. 너무 고요하다. 이 고요함은 절대적인 고요함이다. 아니 성스러운 고요함이라고 표현해야 할것이다! 이 철저한 고요함속의 그의 몸은 그렇게 가볍고 편안할수가 없다. 태여나서 느껴본적이 없는 이 완벽하게 편안하고 홀가분한 느낌, 고요함중의 세상은 신성한 빛을 근엄하게 뿌리며 평안에 잠겨 있고 세상은 아름다움 이상으로 표현할수 있었다. 

나는 아마 이 고요함에 속하나 보다…  세상에 오지 말았어야 했어! 그렇게 환영 받지 못한 생명임에도 왜 이렇게 세상에서 살겠다고 몸부림친것일가! 하지만 이 여자의 몸으로 낳은 또 하나의  여자의 몸… 저 여린 몸으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려고? 

    아아…살아야 돼! 

    갑자기 가슴이 부풀어 오르며 자신이 숨을 쉬고 있음이 느껴진다. 가볍던 몸은 감각을 회복하며 전신이 무거운 느낌, 다리가 뻣뻣한 느낌, 등은 약간 딱딱한 침대를 느끼며 불편해하고, 피부는 약간 추움을 느낀다. 심장이 가슴안에서 요동치며 짜릿짜릿 아픈 느낌을 주고 뭔가가 막힐듯 열릴듯 호흡이 고르롭지 않는 자신을 지각하며 은미는 자신의 육체적 생명을 느끼게 되였다.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누군가가 나직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고 고도로 긴장된 두눈이 날카롭게 은미의 두눈을 응시하며 들여다 보더니 서서히 부드러워지며 물어본다. 

    “이름이 뭐라고 그랬죠?”

“최…은…미…”

그 부드러운 눈길에 은미는 자신의 생명이 그 누군가에게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에 커다란 위안을 느끼며 눈물이 흘렀다. 

“환영받는 생명…”

은미는 나직히 중얼거렸다. 

    수술실 곳곳에서 안도의 숨을 쉬는 소리가 들리고 간간한 웃음소리와 함께 속삭이는 말소리가 들린다.

   “과다출혈로 하마트면 큰일 날뻔했지만 위험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런데 마취제 때문일가 허한 몸때문일가 “미안하다”고 하던 엄마의 말씀때문일가, 은미는 이 모든 고통을 천근만근으로 짓누르는 눈까풀뒤로 멀리하고 싶었고  기꺼이 깊고 깊은 잠속에서 헤매고 싶었다. 

    꿈길에서 은미는 후줄근한 긴 치마를 입고 먼지가 자욱한 낡은 고향집에서 아버지를 찾아 만났다. 아버지는 오래 된 나무상자를 은미한테 주며 열어보라고 한다. 은미는 그걸 열어보는게 너무나 싫었다. 하지만 열지 않기엔 아버지 표정이 너무 비장했고 아버지의 평생소원이 바로 은미가 그것을 열어보는 것라는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간절하고 또 은미의 존재 자체를 원망스러워하는 그 눈길을 바라보며 은미는 하는수 없이 그 나무상자를 열어보았다. 남색의 바지, 남색 상의에 검은줄이 간 넥타이, 모자와 구두, 갈색의 혁띠…

    “흑흑, 아버지, 아버지 왜 또 저한테 남자옷을 주십니까?”

    은미는 오열한다. 아버지도 괴로운듯 심하게 표정이 일그러지며 우는듯 말씀하신다.

    “왜 넌 아들이 아니였니?” 

    은미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울면서 깨여났다. 깨여난 은미는 꿈속에서보다 더 크게 통곡하고 있었다. 정신이 들면서 엄마의 그 말씀이 또 귓가에 맴돌아친다.

    “미안하다니…”

    은미가 딸이라는 리유로 한평생 아버지앞에 기를 못펴고 사신 어머니, 아버지가 맏이여서 그 “죄값”은 더했다. 정말 어머니의 탓이 였을가? 그 생각조차 제대로 할 겨를이 없이 어머니는 아버지의 업수임과 횡포를 기꺼이 받아주셨다. 아버지는 은미가 태여나서 포대기를 헤쳐 딸인것을 확인하더니 침대에 은미를 내버려둔채 사흘째 집에 돌아오지 않으셨고 이름도 지어주지 않으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은미의 남편도 그럴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러셨을가?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신것일가? 

    하지만 남편 경철이는 정말 달랐다. 부모를 비롯한 그 누구앞에서 치마를 입는것이 그렇게 부끄러웠던 은미는 유독 남편 경철이 앞에서만 치마를 입고 한껏 아름다움을 뽐낼수 있었고 경철이를 만나고 더 이상 남자와 같은 짧은 머리를 하지 않고 긴긴 생머리를 키우며 마음껏 녀인으로서의 자신을 사랑하게 되였던 것이다. 

   “치마를 입은 네 모습, 내 눈에 너무나 아름다워 ! ” 경철이의 그 말 한마디에 어릴적 부모가 준 상처가 모두 치유된 줄 알았는데… 

    “미안하다니…” 

    “미안하다니…”

    은미는 그 말때문에 속이 내려가지 않아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경철이는 딸애를 안고 온갖 호들갑을 떨며 은미의 기분을 맞추어준다.

  “장모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은미 약간 산후 우울증증세를 보이는것 같습니다. 뭐 미안할것 있습니까? 우리는 딸이 더 좋습니다!” 남편의 진정 어린 말에 은미는 안정을 되찾는듯 했다.

  드디어 아버지가 고향에서 뒤늦게 올라오셨다. 아버지는 꿈에서 본 아버지보다 많이 늙으셨다.  아버지 은미와 손녀를 번갈아보더니 이윽고 말씀하신다. 

“손녀는 우리가 봐줄테니 너는 몸을 잘 회복하여 출근할 준비를 하거라!” 

은미는 애원하듯 아버지한테 말했다.   

    “아버지, 전  출근보다 먼저 전 엄마로 살고 싶어요” 

    “이 못난것아!” 

    아버지는 화를 내며 문밖을 나가신다. 

    사실 출근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다. 은미는 엄마의 신분을 축하해주지도 않고 존중해주지도 않는 아버지한테 화가 난것이였다. 엄마가 된것이 꼭 뭔가 잘못된 일이라도 한듯 아버지 앞에서 주눅이라도 들어야 될것 같은 은미, 용기내여 문밖을 나가시는 아버지께 물어본다.

    “아버지, 왜 그토록 아들을 바라신거예요” 

    아버지는 그대로 문밖을 나가신다. 아버지는 못들으셨을가 못들은척 하셨을가? 이런 얼어붙은 상황에 아버지가 뭐라고 대답하실수 있을가? 사실 은미도 꼭 답을 바란것이 아니였다. 그 답이 얼마나 합리하다면 아버지를 이해할수 있을가? 남편이 아버지 뒤를 따라 나가고  문이 닫히는 소리에 딸애가 잠에서 깨어 또 젖을 찾으며 운다. 빈 병실에서 은미는 딸애를 가슴에 안고 함께 울었다. 그런데 딸애가 울다가 말고 주먹만한 작은 얼굴로 은미의 가슴을 파며 젖을 찾아 먹고 있었다. 은미도 울다가 말고  젖을 빠는 딸애를 신기하게 내려다 보았다. 여리디 여리고 미약하기 그지 없는 그녀의 몸속에서 떨어져 나온 이 신기한 생명체, 살기 위한 본능으로 엄마의 가슴을 파고 드는 이 연약하면서 완강한 생명체가 소유하고 있는 그 생명에 대한 갈구의 이 강력한 힘은 어디서 오는것일가…그리고 그녀와 같은 여자라니, 은미는 갑자기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딸애한테 짙은 애착이 갔다.

“고마워! 같은 여자라서…” 

은미는 눈물을 머금고 지극한 고마움을 느끼며 살며시 웃었다. 

은미는 아버지가 나간 자리를 보며 긴 한숨을 쉬였다. 은미를 딸로 받아주지 않으시고 항상 아들이 아니라고 원망하면서 키우신것, 은미 인생의 커다란 아쉬움이였다. 

아버지의 아들 타령이  단지 그와 같은 성별인 남자이길 바랬던 그 간단하고 단순한 남자의 외로움이라면 그것을 이해할가? 아버지가 자식과 가까워지고 싶었던 또 다른 표현이였다고 위로를 할가?  하지만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 온 그 남존녀비 사상이 뼈속까지 전해져 내려온것이라면… 은미는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남자가 왜 더 중요할가? 

    은미는 젖을 배부르게 먹고 깊은 단잠에 빠진 딸애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생명… 내가 탄생시킨 생명인데… 은미는 그 죽을 고통을 이겨내고 생명을 탄생시킨 자신이 황홀하게 자랑스러우며 힘이 넘쳐나는것 같았다. 

생명이 귀하다는것은 바로 이런 뜻일가? 그는 품속에 잠들고 있는 딸애한테 살며시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나처럼 생명을 잉태할수 있는 딸! 넌 참 소중한 존재야! ”  

   황홀한 긍지감과 딸애를 향한 그 깊은 애착과 함께 은미는 드디어 아버지한테서 받은 원망을 떨쳐 낼 힘이 생기는것 같았다. 그는 이제 엄마로서 안해로서 새로운 가정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며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가야 하지 않는가? 

    

후기: 남편 따라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중, 유학생 모임에 참가했다가 한 중동에서 온 학생을 만났다.  여성에 대한 화제가 오가던 중인데  중동에서 온 이 남학생의 발언은 그야말로 우리 모두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저는 이 세상의 모든 여성은 우리 인류의 한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킥킥 거리며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남학생은 정말로 심각하게 이 말을 하고 있어서 그 진지한 표정에 나는 마음속으로 또 한번 놀랐다.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이 남학생에게, 그가 소속된 문화권에서는 여성을 그냥 인간으로 취급하는 자체가 이미 앞선 사상으로 될수도 있는것이다.

    그러고 보니 세상은 참으로 다양하고 재미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문화권의 여성에 대한 인식은 어디까지 와있을가?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솔직히 그 무엇보다도 엄마로서 살아가고 싶은데… 웬지 내 주변은 그렇지 않는듯 했다. 아이한테 마음껏 젖을 먹이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키는것이 바른 교육인지 고민하고, 즉 키우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양육하는 시간 내내 주위의 사람들은 집에 들어박혀 허송세월을 한다고 걱정을 했고 특히 나의 부모님은 항상 내가 빨리 출근 하기를 재촉하셨다. 마치 어머니의 역할은 나한테 아무 쓸모가 없는것처럼…아니 그 역할은 마치 유치원이나 탁아소에서 혹은 조부모가 아주 수월하게 대신할수 있는 일인것처럼… 

    정말로 그럴가? 나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였고 모든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아이의 엄마자리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버릴수 없었다.

남녀가 평등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있는 요즘이다. 부부싸움에도 종종 남녀평등의 주제가 등장하는 우리 생활… 우리 문화속의 남녀평등은 어디까지 왔는가? 나는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역시 아버지가 산아제한정책을 어기며 벌금을 하면서 아들을 바라시고 낳은 둘째 딸이다. 불과 30년전의 일, 나는 내가 아들이 아니라는 원망을 고스란히 마음 깊은곳에서 느끼고 살아가고 있었다. 정말 남녀평등이 우리한테 왔다고 당당하게 말할수 있을가?  

  진정한 남녀평등은 어떤것인지 수없이 고민하다가 궁극적으로 매 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이 소설은 마치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물처럼 제곬으로 가고 있었다.

2016년12기 “연변녀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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