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신정부터 3월 중순까지 신정과 구정, 정월 대보름, 《3. 8》국제 여성절을 연속 쇠면서 일을 크게 보지 않는 것이 고질병으로 되어있다. 우리는 나진의 주문자들의 재촉에 안달이 났지만 중국측의 주문이 풀리지 않는데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매일 마작놀이다.나도 어쩌다가 한가한 때를 만났다. 사람이 일에 지쳐죽는 법이 없다고 했다. 일이 많을 때는 앓을 새도 없더니 한가해지게 되니 감기에 덜컥 걸리고 말았다.  

식구들이 윤번으로 앓았는데 내가 세번째로 앓았다. 로따는 온몸에 병 투성이었는데 제일 첫 사람으로 감기를 앓았고 감기하지 않아도 거의 달마다 한두번씩 링게르 신세를 져야하는 몸이다. 그 감기를 퍼뜨렸는데 그처럼 독한 감기는 내 평생에 처음 앓아보았다.  

혼미한 상태로 닷새 동안 로따가 남겨 놓은 링게르를 맞았고 장마당 옆의 직매점에 가서 조선산 안궁환을 사다 먹기도 했다. 감기가 어지간한 약으로 말을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너무 고급이 아닌 안궁환으로 빨리 낫게 하는것이 중국  민간에서 많이 전해지고 있다.

차영감과 그 말을 했더니 펄쩍 뛰었다. 약 먹지 않고 뜨뜻한 온돌에 누워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사흘간 땀을 내면 감기가 저절로 물러간다고 하면서 감기 치료에 한 곽에 천원하는 안궁환을 먹는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고 했다.  

윗집 침실의 안방에서 마작을 놀았고 이쪽 방은 차부품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붐비었다. 설화는 방에서 돈을 받고 영수증을 끊어준 뒤 다시 매점에 나가 물건을 주는식으로 일을 보고 있었다. 추운 겨울이니 어쩔수없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마작을 놀지 않는 날에 사달이 생겼다. 내가 북경에서 가이드할 때 샀고 이미 4년 이상을 쓰면서 아끼던 충전 면도기를 잃어버렸다. 틀림없이 방에 들어왔던 방문객들 중에서 한사람이 훔쳐 갔을거였다. 그것은 제일 비싼거였고 싼 것들로는 주산, 장갑, 볼펜 그리고 손거울도 훔쳐갔다. 정말 더럽고 치사한 나진 도둑이다. 그중에는 아는 얼굴도 적지 않으련만 좀도둑 질에 이골이 난 그들의 버릇을 말려내기는 정말로 힘든 일 같았다. 구내에 세워 두었던 승용차의 오디오를 도난당했고 방학 동안에 버스의 부품도 무던히 많이 도둑맞혔다.  

눈이 내리니 꿩고기를 많이 먹을수 있었다. 한 대야 가득한 꿩 뼈를 들고 경비실에 가니 일 없이 나와 있던 몇몇 종업원들은 눈이 데꾼해지는 거였다. 많은 돈을 팔아 잘먹는 것이 부럽다는 표정이고 나도 한번 기껏 먹어봤으면 하는 기대감이 넘실대는 얼굴들이다.  

설화가 신정전에 개 한마리를 샀었다. 금방 젖을 뗀 쬐꼼한 황둥개였는데 경비실 구석에 누구의 작업복인지 오일과 그리스가 가득 묻어 새까맣게 된 것을 펴 주었고 거기에 엎드려서 부들부들 떨면서 눈도 바로 뜨지 못한 채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는 사람마다 오늘 아니면 내일 하면서 죽는다고 했지만 우리가 먹다 남은 밥과 누룽지를 잘 먹었고 기름기 많은 국물을 먹여서 그런지 설사를 해대면서도 용케도 10여일간을 뻗쳐왔다. 그러던 그 놈이 꿩 뼈를 하루종일 먹어대더니 이틀 후부터는 뜀질도 하고 사람들과 장난을 치기도 했다. 다들 그 놈을 보면서 신세 고쳤다고 했고 설화는 《비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매장에 나갔다가 꼭꼭 경비실에 들려서  

“비비야!”  

하고 불러주었고 어루쓸어 주는것이 설화의 버릇이 되어버렸다. 지난 여름에 다 키워놓은 개를 잃어버린 뒤 다시 사놓은 개여서 또 언제 잃어버릴지 불안했는데 경비와 수리공들한테서 잘 지켜주겠다는 다짐을 받고나서 설화는 시름을 놓았고 개도 아무 탈없이 잘 커줬다.  

경비실에서의 야담같이 재미나는 일은 없다. 항통검의 트럭 기사 용철이는 가끔 올적마다 경비실에서 언제나 전화통과 싱갱이질한다.  

“여보시오, 보지 동무요? 나 조지 동문데 말로 심심풀이하지 그래?”  

“쌍 개 간나들이 버릇없이 개소리 줴 친다!”  

“야, 야! 너 같은 간나들이 열이 달려들어도 문제없다!”  

“너희들 일하기 싫으문 내 곁으로 오라! 내가 잘해 줄게, 심심하지 않을 게다! 이 쌍 개 간나들아!”  

대개 그러루한 말들로 교환원 여자들과 입씨름했고, 보위부사택 아낙들과 종업원 여자들이 모이면  

“저 남자들이 술 처먹고 다니는 꼴이 보기 싫어 어떻게 사니? 그래 가지고 어떻게 사회주의 건설을 하겠니?”  

“너네는 생활비 많이 나와 좋겠다. 위생대(생리대)도 헝겊을 쓰지 않아 되겠다?”  

“돈 많아 졌으믄 빨리 시집을 가야지, 넌 바지를 찾았니?”  

“남자가 귀한 것도 아닌데 급해할 것 머 있소?”  

“요새는 바지보다 처녀가 더 귀하다더라.”

“이 안깐 새끼 삔 빠진 소리만 하네?”  

여자들만 들으라는 뜻의 말 같지 않은 말들을 해댔고, 길 지나던 여자가 경비실에 와서  

“여보시오. 한가지 좀 물어봅시다.”  

하면 그냥 모른다고만 하다가 사람이 간 후면  

“왜 나를 물어보겠다는 건지, 머로 어디를 물겠다는 거야? 나를 물면 머가 생기는 모양이지?”  

하면서 차영감이 사람들을 웃겨 놓는다. 또  

“저 간나 판용수가 또 끊어졌다.!”  

“무시게(누가) 기름을 싹 빼갔다!”  

“이 간나 전기가 왜 안 오나?”  

“주패치기(카드놀이) 하자!”  

기사들의 아우성으로 요란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제일 재밌는것이 마작이었다. 정신을 집중하여 놀게 되면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오랫동안 앉아있으면 허리 아래 부위 중 안 아픈 데가 없고 뽀얀 담배 연기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지만 그 아슬아슬하고 긴장한 순간 순간을 체험하는 일이 너무 유혹적이어서 누구나 다 즐겨 논다. 어떤 날에는 안방과 아래 방에 각각 한상씩  집 식구가 마작놀이로 열을 낸다. 돈을 적게 내든 많이 내든 어차피 도박은 도박이다. 이모는 최초에 일인당 5천씩 주어서 마작을 놀수 있게 해주었고 장부책도 만들어냈다. 얼마 꿔갔으며 얼마 되돌려왔는가는 장부를 보면 되었다.  

마작은 꼭 네 사람이 놀아야만 하는 집단 도박이다. 어느 외국인이 20세기초에 중국에 왔을 때 잠만 깨면 마작판으로 달려가는 중국 사람들을 보고 중국은 놀음에 탐한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나라이고 이런 나라의 민족은 전도없는 민족이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

어느 누구인가는 마작 노는 일을 두고 남의 집 마누라 데리고 놀기보다 더 재미있다고 했다. 도대체 마작은 어떻게 그토록 사람을 유혹하는 것일까?  마작은 인이 박히면 떼기 힘든 마약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쉽게 이해되는 물건짝이다.  

마작을 노는 몇 시간 사이에 희로애락의 감정을 수십번 겪으면서 가슴이 터질 듯한 기쁨과 뼈에 사무칠 정도의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많이 남기는 놀음으로서 사람을 정신적으로 지치게 하면서도 짜릿한 자극을 주는 물건이다.

고정된 인원으로 오랫동안 놀아보면 잃는 사람은 계속 잃기만 하고 따는 사람은 계속 따기만 한다. 누가 더 잘 놀고 누가 못 노는 가에 조금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네 사람이 노는 방식이 일정한 패도(牌道-마작을 노는데서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중에 존재하는 것인데 진행되는 기본 줄거리와 관건적인 고리 같은 것을 의미함)를 형성하고 그 패도가 따는 지 잃는 지를 기본상 결정하게 된다.

처음 만난 사람끼리 놀면 운수 좋은 사람과 머리 잘쓰는 사람이 이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 지 몰라도 나는 마작을 놀면서 인생을 해석할 수 있다고 늘 믿어왔다.

마작으로 보는 인생은 다음과 같은 말로 풀이할 수 있다.

《인생은 패를 치는 것과 같다.  당신에게는 박을 설 권리가 없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자기에게 주어진 패로만 놀아야 하며  또한 열심히 참답게 놀아야만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  그밖에 당신에게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이 말은 미국 제34대 대통령인 아이젠하워가 어렸을 적에 어머니한테서 들은 말이며 평생 좌우명으로 삼은 말이다.  

패(牌)는 모든 놀이에 쓰이는 공구들로 해석할수 있다. 이를테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드나 화토, 마작같은 것이다. 이런 패들로 노는 놀이가 패 치기이다.

아이젠하워의 어머니는 카드로 노는 패치기를 두고 인생을 해석한 것이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화토놀이, 나한테는 마작놀이로 해석한다면 역시 명언으로 될 수 있는 말이라 해야겠다. 인생을 풀이한 다른 명언들이 많고도 많지만 하나도 내 맘에 들지 않았고 내가 이 말로 인생을 풀이하는 데는 상당히 긴 시간이 흘렀다.

나진을 떠나서 반년 만에야 이 명언을 책에서 보았고 마작놀이로 인생을 보는 가장 적절한 해석이라고 믿어마지 않았다. 마작놀이하던 그때 당시에는 이 명언을 몰랐고 진미를 터득하지 못했지만 놀면서 어렴풋이 인생살이와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했으며 따거나 잃는 것을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성공과 좌절같은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밖에 노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과 몸이 불편하면서도 잡념을 잠시나마 쫓아버리는 점이 제일 큰 유혹을 주는 일이어서 따거나 잃는 돈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구정후에는 마작놀이가 너무 힘들어서 다섯 명이 노는 카드놀이로 대체했다. 역시 도박이었고 위의 명언으로 해석할 수 있는 놀음이었는데 로따는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 전제하에서 언제나 허락하고 또 동참했는데 마작놀이보다 더 재밌고도 늘 노는 일로 되었다. 저녁 시간이 되면 TV도, 비디오도 다 재미없어 유일한 즐거움이라 할 수 있었다.  

우리 식구들은 다른 회사들 식구들처럼 나진의 저녁 거리를 방황하지 않았고 (술집이 더러 있었다.) 더우기 비파도의 카지노장으로 가지 않았었다. 술놀이는 가끔 있긴 했지만 비파도의 진짜도박은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기에 가지 못했다고 함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로따처럼 나진에서 일정하게 성공한 투자자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중에서 일부 사람은 힘들게 번 돈을 그 도박장에 밀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더러는 여자들을 찾아다녔다. 나진의 술집은 그저 술파는 정도에서만 그쳤고 매춘은 금지되어 있었는 데도 불구하고 오입쟁이들은 무슨 방법을 대서든지 여자를 찾아내고야 만다.

비파도와 여자가 없는 우리 밤생활에 패 치기가 없으면 너무나도 무미건조하고 공허하기만 하다. 하여튼 패치기는 우리한테 낮시간뿐만아니라 저녁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좋은 이유가 되었다. 전기가 없으면 초불로 놀았고 휴식일엔 하루종일 놀면서 공허하고도 외로운 마음을 달랬으며 일에서의 긴장을 놀음에서의 긴장으로 대체하면서 짜릿한 흥분과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식구들이 나진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에 내가  

“자리 페구 자지므-”  

하고 말하면 다들 마작놀이, 혹은 카드놀이를 하자는 것으로 알고 금방 자리를 편다. 즉 밥상을 놓고 마작을 준비하거나 혹은 담요를 한장 접어서 펴놓고 카드를 내놓는다. 그 다음은 서로 다투어 자려고 한다. 즉 놀려고 한다.  

사람이 많을 때에는 안방에서 카드 놀이, 아래 방에서 마작 놀이를 했는데 6∼7명일 때는 아래방의 마작놀이는 취소되고 안방의 카드놀이만 가능한 데 자리를 파는 사람도 있다. 즉 옆에서 한두명이 구경하는 수밖에 없었고 구경하다가 손이 근질거리면 놀던 사람의 자리를 빼앗고 그 대가로 천원을 내 놓는다.  

-자리 페구 자자-  

이 말은 벌써 지난해에 만들어낸 말이었고 후일 우리 식구들이 늘 쓰는 말로 되었으며 무슨 일을 하든지 반대말을 쓰는 데 습관되었다. 이모는 금방 나갔으므로 우리들의 반의어에 습관하는 데 무척 많은 시간과 품을 들여야 했었다. 우리식구들 중에 마작놀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많을 때 나는 여자 세 명과 같이 마작을 놀았다.

마작 노는데 제일 열성을 내는 사람은 위홍이었고 그 다음은 이모였는데 잘 노는 사람은 위홍과 외숙모였고 이 두명이 항상 많이 땄었다. 다른 식구들은 따다가도 잃고 잃다가도 따고 했는데 총적으로 잃는 추세였고 로따 부부가 제일 많이 잃는다.  

로따는 마작놀기를 유난히 좋아했으나 다리가 아파서 한시간 정도밖에는 놀지 못하고 패치기를 하면서도 머리 속에 늘 회사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골몰했으므로 정신을 집중하지 못했고 그래서 잠깐새에 5천원을 잃고 나앉는다. 이모가 그 자리에 봉창을 한다면서 들어앉지만 이모의 수준은 로따에게 미치지 못했기에 잃는 때가 더 많았다.  

카드놀이는 로얼과, 장걸 두명이 잘 놀았고 이 두명이 가장 많이 땄다. 위홍이도 그 다음으로 많이 땄다. 여자들은 카드놀이를 놀 줄 못해서 참여하지 않았고 사람이 적을 때 마작 놀면 설화가 놀려해도 위홍이가 기어코 그 자리를 빼앗아 들어앉았으므로 설화는 항상 불만이었다. 패치기에는 위홍이를 따를 사람이 없었고 계속 그 사람들만 놀다 보니까 위홍이와 로얼, 장걸이와 외숙모 이 네명이 항상 따고 나머지는 다 잃는 꼴이다.

내화로 한판에 적을 때 몇백원 지어는 2천원까지 나드는걸 보고 조선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다. 구경도 잠깐뿐이었지만 그네들한테는 엄청난 충격일수밖에 없다. 부품사러 오는 사람들 중에는 한판에 자기 생활비만큼한 돈이 왔다 갔다하는 걸 보고 몹시 경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생활이 어려운 것도 있겠지만 조선에서는 도박을 노는 것 같지 않았고 그 한가지만은 단속하지 않아도 되는 일 같았다. 도둑질과 오입질 그리고 술주정은 막을수 없는 사회현상이었으나 어디서 도박 논다는 소문을 전혀 들어보지 못했었다.  

홀아비 아닌 홀아비 생활, 과부 아닌 과부 생활은 패치기의 자극으로 그런 대로 지탱되어갔고 한달에 한두 번의 귀국은 로따가 알심들여 안배해 준다. 회사의 모든 일을 지휘하는 사령으로서 계획적으로 조절해주고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준다. 심신이 억수로 지쳐있었고 걸핏하면 성냈는데 요즘은 한가하기 짝없다.

노루와 꿩을 사들여 식구들이 잘 먹게 해주었고 중국의 전통 음식인 물만두도 빚어먹었다. 뭐나 다 고기를 즐겨 먹는 로따의 식성대로 메뉴가 되어있었고 그 덕에 우리는 눈덮인 나진에서 한달 동안 얼마나 잘 놀고 잘 먹었는 지 모른다.  

종업원들은 일부분만 출근했고 혹간 점심이나 저녁 식사 때 초대될 때도 있었다. 중국에서 다시 조선에 나간 차영감은 물만두를 유난히 좋아했다. 어느날 물만두를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평소 우리 침실에 크게 발을 들여놓지 않던 차영감이 반가운듯이 달려왔다.  

큼직한 그릇으로 두 그릇을 먹었고 반그릇 정도 더 먹었다. 한 그릇에 물만두가 30개 정도였는데 우리 식구들은 그 한그릇으로 배가 엄청 불러 더 먹지 못하는 데 말이다.

-수십년만에 먹어본다, 젊었을 때 중국에서 최고 백개까지 먹었는데 오늘은 그때보다는 적다, 70여개면 여자식구 3인분인데 내가 그걸 다 먹었으니 여자들은 굶어야겠다, 후에 또 만들면 그때는 백개를 먹을수 있게 좀 작게 빚어 달라-

농담하는 모습을 보고 밀가루 음식을 구경할 수 없는 나진의 식당들을 떠 올렸다. 지난해 조선의 양식 산량은 420만 톤이었고 나진은 자체로 쌀 생산을 하면서도 불구하고 중국 백미를 엄청 많이 수입했고 밀가루도 조금씩 수입해 들이고 있었으나 아바이처럼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 먹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으며 식당에서는 거의 팔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여름철에 여러 번 냉면 먹으러 식당들을 돌아보았고 요리도 수산물로 된 것을 많이 먹어 보았지만 조선 사람들의 식 습관때문인지 냉면 외의 밀가루 음식을 구경해 보지 못해서 잘 팔지 않는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우리 훈춘 식구들은 그나마 잘 해먹는 편이고, 나는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나진 사람들을 무던히 걱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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