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달도 막가는 날인 27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는 맑고 몸도 아픈 데 없었으나 벌써 일곱시가 지나 있었다. 밥도 먹을 생각 없이 운행증을 적어 가지고 정류소에 갔다 왔다. 회사 구내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냇가로 차를 몰았고 냇물 가운 데에 주차시켰다. 차에 흙물이 튕겨 있었는데 식사 전에 세차하려는 거였다. 

영철이는 춘화한테 세차를 곧잘 시켰는데 늄창조의 여자들 손을 빌려 쓰는 때도 더러 있었고 용철이는 닛산의 세차를 허은희에게 시켰었지만 나는 언제나 혼자 세차에 달라 붙었다. 나진항 쪽에 가거나 인민위원회에 가서 정화를 기다리는 동안 마른 걸레로 먼지를 털어 내는 정도의 세차를 늘 했었고 어느 차든지 상관 없이 시간이 나는 대로 냇가에 들어가 혼자서 세차했다. 

경순이가 눈치 채고 주방에서 세수 대야를 들고 나왔고 이내 둘이 함께 작업에 달라 붙었다. 내가 식사전인 걸 알고 쫓았지만 시장기가 느껴지질 않아 조선 음악을 틀어 놓은 채 기분좋게 작업하고 있었다. 높은 볼륨의 음악때문에 위홍이가 부르는 소리를 겨우 가려 들었다. 

위홍이가 냇가에서 약 30미터 떨어진 주유소쪽에서 

“어이! 영도-! 영도-!” 

하고 정신 없이 불러대고 있었다. 

볼륨을 낮추고 나서 들을려니까 주유기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품이 고장이 났다는 것을 알리는 모양이었다. 주유기가 고장난 적이 있었는데 기계식이었기에 내가 작동 원리를 거의 모르는 상황에서 대담하게 뜯어본 후 고쳐 놓았었다. 아직까지 나 외에 주유기를 고칠만한 사람이 없었다. 

위홍이의 웨침소리는 나더러 수리해 놓으라는 명령과도 같은 것이었다. 위홍이와 영철이는 종래로 의논식이거나 성근한 어조로 자기 일을 해달라고 청해 온 적이 없었고 언제나 명령식이었다. 임씨네 형제들에게도 그랬고 나에게도 그랬었는데 그 둘보다 나이가 많은 나에게 있어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지만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내가 많이 따라 주었기에 어느 정도 습관화 되었다. 

그러나 외삼촌에게 명령식의 언사가 떨어질 때면 기분이 상했고 그들의 태도에 대해 언제나 아니꼽게 생각해 오던 터였다. 한참 그쪽을 보는체 하다가 대답하지 않은 채 다시 볼륨을 높이 해놓고 곡에 맞추어 높은 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고 주유소 쪽을 더는 보지 않았다. 

(오늘 네가 어찌나 한 번 두고 보겠다.) 

골려 주고싶은 충동이 생겼다. 약 10분 후에 세차가 끝나고 막 시동을 걸려는데 위홍이가 다시 주유소 쪽에 나타났다. 

“어-이! 영도! 로따가 저(연변에서는 나이가 비슷한 상대를 저 혹은 제라고 부른다.)를 오라오! 지금 빨리 오라오!” 

“간다-!” 

귀찮게 대답해 주고 차를 회사 구내로 몰고 들어갔다. 이제야 시장기가 몰려 왔고 위홍이의 《명령》을 아예 잊어버린 채 주방에 달려 들어 갔다. 

상도 갖추지 않고 혼자 찬장을 들추어서 요리를 꺼낸 후 선 자세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던 7년 사이에 서서 밥 먹는 습관이 생겼었는데 학교 식당에 앉을만한 의자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 때는 밥상에 내 엉덩이 한쪽도 올려놓기 바쁜 작은 쪽 걸상이 붙어있긴 했지만 밥그릇을 들고 다니면서 먹는 희한한 습관이 하나 더 붙었고 지금도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해 오늘처럼 혼자 늦은 식사를 할 때면 밥그릇을 들고 부기실에도 다니군 해서 로따 부부에게 욕을 처먹었었다. 

밥그릇에 여러가지 요리를 먹을 만큼 조금씩 덜어담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젓가락으로 먹는 중국식의 식사 습성은 어디 가든지 버리지 못했다. 오늘도 들고 다니면서 밥을 먹을 충동이 생겨났지만 꾹 참고 얌전히 서서 오랜 만에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로따가 푸르딩딩해서 들어오더니 내 쪽에 대고 한 마디 하는 것이었다. 

“오늘 점심 시간에 회의 하겠다!” 

그리고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기 방 쪽으로 갔다. 막고무신을 끌면서 가는 소리가 요란히 들렸다. 

그 막고무신은 로따가 러시아와 우즈베크에 다닐 때 늘 신던 거라고 한다. 질이 좋아 몇 년 신었는 데도 해지지 않았고 지난해와  올해 여름에도 그리고 지금도 신고 다닌다. 원정 종합검사장의 젊은 친구들은 《김 아바이》라고 불러 주었는데 나이가 좀 많은 동지들은 로따를 《막고무신》이라고 불러 주는 터였다. 내가 인수원을 할 때 늘 

“요 막고무신네 패들이 또 왔구나.” 

하고 악의 없는 농담을 던지 군 했었다. 평소에 늘 신고 다녀도 뒷소리가 없었는데 오늘 그 막고무신이 요란한 뒷소리를 남긴 자체가 바로 로따가 성이 났다, 혹은 화가 났다는 의미였다. 

도대체 웬 일로 화가 났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위홍이가 들어 왔다. 

“로따가 주유기를 수리하랍데. 마지막 차에 기름 줄 때부터 올라 오지 않습데. 기름은 가득한데.” 

언제나 그랬듯이 항상 나랑 반말을 한다. 

“니 절로 고쳐라. 그렇 잖으면 밑에 들어가 뽑아 주든지.” 

입에서 밥알이 튕겨 나왔다. 위홍이는 안경 속에서 눈알을 뒤룩거리더니 어쩡쩡한 표정을 짓고 한참 서 있다가 돌아 나갔다. 외숙모가 옆에서 그 모습을 다 보고나서 쿡쿡 웃고 있었다. 나는 한그릇 다 먹고 난후 며칠 동안 먹지 못한 보충이라도 할 기세로 한 그릇을 더 비웠다. 서서 먹는 밥은 어쨌든 더 맛있었다. 

위홍이는 담배 피우지 않는다. 패치기를 잘한다. 그 외에 술을 즐겨 마신다. 주유기는 숫자 판을 맞출 줄밖에 모르고 주유기 수리정도는 말할 것도 없고 수리 작업에 필요한 공구로 스파나(렌치)가 뭔지도 모르고 있다. 그런 사람에게 절로 수리하라 했으니 그 심사가 어떠했을까? 탱크의 용적을 계산하라고 했을 때도 지하에 들어가지 않았고 지금은 내가 가스 중독으로 사고를 저지른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중독 사건의 당사자인 나의 입에서 지하에 들어가라는 《명령》이 나왔으니 그가 들어 주겠는가? 

나는 욕에는 면역이 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휘발유 냄새를 조금만 맡아도 현훈증에다가 구토까지 심하게 느끼는 체질로 되었다. 자그마한 주유소 작업실에 가스가 몰켜져 있겠는데 그 방에서 수리 작업을 한시간 이상 하라는 것은 나를 절반 죽으라는 거나 다름 없는 말이었다. 처음 고장났을 때 차영감과 창주가 옆에 있었고 주유기 장치때 용철이도 현장에서 조금은 작업을 했었는데 자동차 엔진을 알고 있는 그 세사람이 달라 붙으면 원리상에서 비슷한 주유기를 얼마든지 수리할 수 있다. 

아마도 내가 수리하는 게 더 승산이 있을 것 같고 그래서 내가 손을 댔으면 하고 바라는 마당에 내가 나눕는 것처럼 보여주니까 다들 저러고 있겠구나. 참, 세상에-. 

요즘은 소설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연유와 오일을 해결해 주던 박보스가 어느 날 나진에 왔다가 보던 책을 두고 갔었는데 중국어로 된 거였고 너무 재미 있었다. 

중국의 한 의사가 아프리카에 지원갔다가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납치자들과 해후하고 비행기가 폭발하기 직전에 납치자들과 함께 도주한다. 테러 조직의 훈련을 받아 아주 훌륭한 간첩으로 단련된 후 모 국의 왕자 암살 사건을 조작하고 조직의 신임을 얻었다. 중국에서 이미 사망자로 인정된 그는 물론 이름도 고쳤고 고명한 화장술로 얼굴 모양도 자주 바꾸면서 다시 중국에 침투하게 된다. 

중국을 방문하는 모 국 대통령을 암살하는 제1인자로 출마하는데 호텔방에서 지나가는 승용차 속의 대통령에게 총구를 겨누었다가 아슬아슬한 그 시각에 암살을 포기한다. 그 때문에 테러 조직의 성원들은 하나 하나 죽어가고 의사의 부모들도 암살당하며 의사의 생명도 경각에 이른다. 

나중에 생명의 위험을 겪는 우여곡절을 경과하고나서 테러 조직의 보스를 죽이고 중국 경찰에 투항한다. 너무나도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대목도 많다. 게다가 추리와 첩보의 짬뽕으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독자의 마음을 후려잡는 매력때문에 나는 벌써 두번째로 읽고 있었다. 소설 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부기실 서쪽에 난 출입문을 빠져 수리소 쪽으로 걸어 올라가서 닛산의 조수석을 젖히고 음악을 틀어놓은 채 소설 속에 곤두박혀 들어가 오전 반나절을 허우적거렸다. 

용철이가 닛산을 회사의 주방 앞에 세울 때까지도 소설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모가 점심 먹으라고 큰 소리로 불러서야 겨우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며칠간 흐리터분하던 머리가 이제야 완전히 나아진 것 같았다. 오전에 본 소설의 내용을 음미하면서 밥을 맛있게 먹었다. 다만 한 그릇밖에 못 먹었을 뿐이었다. 

식사가 끝나니 로따의 말대로 회의가 열렸다. 내용은 하나뿐이었다. 나진에 있는 우리 식구들은 합심해서 서로 협조하면서 일하자-그거였다. 나를 빗대고 하는 회의라는 걸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나 외에는 그 말을 들어줄 만한 사람이 없어 보이는 모양이니 말이다. 

아침의 주유기 수리문제 때문이겠고 용철이와 조화스럽지 못하게 지내는 문제 때문이겠고 또 다시 다른 사람들의 일에 개입할까 하는 《돼먹지 못한 걱정위원장》꼬리를 드러냈기 때문이겠다. 공식적인 장소에서 나를 놓고 하는 얘기여서 종업원들이 보는 장소에서 욕지거리하는 것보다는 괜찮았지만 그 대신 모진 심리고통을 겪게 한다. 

그러나 나는 이내 이게 내가 바라마지 않던 결과가 아닌가싶게 생각되기도 했다. 그렇다. 바로 이 시각을 기다려 오던 내가 아니었던가. 언젠가는 위홍이와 맞붙게 되겠고 톡톡히 망신주려고 계획했었는데 이렇게 회의식으로 끝나고 보니 맹랑한 느낌이 들었고 시시하게 생각되었다. 

내가 손쓰기 전에 로따의 안걸이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속을 그렇게 많이 태워주던 조카의 체면이 그 정도로 중요하고 중독 후유증으로 아직 채 완쾌되지 않은 처조카의 건강은 그 체면보다 못하다. 그 건강을 깨뜨리고 그 체면에 뭐가 더 서게 되는 지 한 번 보고 싶어졌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진대 내가 주유기를 수리해내면 누그러든 것이고 로따는 나를 꺾었다고, 위홍이의 체면을 세워 주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단순하게 주유기를 수리하는 동안 흡입한 가스로 인해 후유증이 더 심해지게 되겠고 그 사실적인 것으로 내 건강도 좀 돌봐주게끔 로따를 감화시킬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주유기는 사실 고장나지 않았었지만 내가 분해한 후 다시 맞추어놓았고 고장 원인은 파이프 연결부위의 개스킷이 망가진 것이었다. 에어가 새게 되니 자연 휘발유를 뽑지 못하게된 고장이었다. 주유기 석대 중의 하나는 디젤용이었고 두 대는 휘발유용이었는데 가운 데에 장치했던 주유기는 처음부터 고장이 심해 사용하지 않았고 늘 쓰던 휘발유용은 두번째로 분해했던 것이다. 

위홍이가 옆에서 조수역할을 잘 해준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필요한 공구를 다 구해왔고 그리스도 뻬빠(페이퍼)도 다 갖다주었다. 분해했던 바에 피스톤을 잘 연마하고 기어마다에 그리스도 잘 발라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필터도 해체하여 잘 청소하고 다시 넣었다. 

출입문을 열고 뙤창도 열어 놓은 채 작업했지만 현훈증이 일기 시작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차 영감이 휘청거리는 나를 문밖에까지 부축해 주었고 에어가 새는 고장 쯤은 차영감도 잘 해낼수 있는 일이어서 10분쯤 앉아 있다가 방에 들어와서 누워버렸다. 메슥메슥한 느낌이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고 저녁 밥을 먹지 못한 채 초저녁부터 코를 드렁드렁 골면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평소에는 내가 장걸이를 악의 없이 욕해댔지만 그후 며칠 동안은 오히려 내가 장걸이에게서 욕을 얻어 먹게 되었다. 건강은 망가졌지만 로따의 가벼운 문안도 받아 보지 못했고 이모마저도 문안해 주지 않았다. 다만 위홍이의 태도가 성근해진 것밖에 없었다. 설화도 이때부터 나와 스스럼 없이 대화하기 시작했고 외숙모는 늘 걱정스런 눈길로 측은하게 나를 바라보 군 했었다. 

그때부터 나는 더는 정력적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는데 늘 낮잠을 잤고 흐리터분한 기분으로 지낼 때가 많아서 일의 능율도 높지 못했다. 낮잠을 거의 매일 잤고 운전도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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