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그 소식 들었니?"

       "무슨 소식으"

        "며칠전 소식인데. 그 방방이라는 아즈마이 쓴 일기가 미국에서 출판한단다. "

        "음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자고 그랜다니, 그 말도 안 되는 일기를….."

       은행을 가는 길에서 드른 내용이다.  며칠전( 더 오래전일지도 모르겠다.), 방방이라는 아주머니가 쓴 일기가 미국에서 출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미국에서 출판을 한다고 하니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왜 미국에서 출판하면 대단한가고? 어릴적부터 선생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했던 나로써 "미국은 세계 1위 국가", "미국은 세계에서 패권주의를 실시하는 나쁜국가"라는 말을 주구장창 들어왔으니 말이다. 그러니 중국사람으로써 사회주의의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써 그 사상으로 쓴 일기가 이러한 "세게 1위 국가"와 "패권주의 국가"에서 출판하는데 대단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 일기는 무조건 우리가 어릴적부터 배워왔던 이야기 속 인물들처럼 열심히 생활하고 있거나 아니면 자본주의의 암흑함을 비판하는 맑스주의 비평의 영향을 깊이 받은 일기일 것이다. 그런 이야기인데 자본주의 패권국가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조차 동감을 해서 출판을 한다는데 대단하지 않을 수 있는가? 뭐, 아니라고?  음. 그러면 뭐지, 읽어는 보지 못했는데 아무튼 다들 욕하는 걸 보니 좋은 물건은 아닌가 싶다. 근데 다들 뭐가 무서워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다고"한탄까지 하는지……

      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니 은행에 도착했다. 

        요즘 위쳇이나 알리페이가 보편화되어 있으니 은행에 가는 경우가 줄어들었을거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라고 하여도 은행은 우리들한테 없어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돈에 관한 그 어떠한 문제도 은행에 가야하니 말이다. 나도 일년에 몇번은 안 되지만 은행에 가는 경우가 있다. 딱히 뭐하러 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매번 갈 때마다 왠지 모르는 '공포감'이 몰려오는 것만은 기억난다(워낙 소심해서 그럴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은행에 가면 우선 순서대기표를 끊고 길게 늘어진 걸상에 앉아 있어야 한다. 여기서부터 나는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언제면 내 순서가 올지 모르겠고 또 어느 창구가 나를 위해 "서비스"를 제공해주는지도 모르겠고 마지막으로 혹간 다른데 정신을 파는 사이에 순서를 놓지면 누군가가 뭐라고 푸념하지 않을가 "공포감"이 밀려오니 말이다. 이렇게  "공포감"이 있는 기다림이 끝나고 나면 또 다른 "공포감"을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밀려오는 "공포감"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는 것은, 오늘 엄청 이쁜 은행원이 나를 위해 "서비스"를 해준다. 얼마나 두꺼운지도 가늠이 안 가는 유리창 뒤어 앉아 있는 은행원, 그리고 그와 마주보고 앉아서는 소리도 이상하게 나오는 스피커에 귀를 기울이면서 한마다라도 놓질가 근심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은행원이 건네주는 뭔지 모를 종이에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는 말소리를 들으면서 "아, 사인해라는 말이구나"라고 생각하고는 척척 사인을 하고 돌려주면 이번 "서비스"는 끝나게 된다. 고객으로 들어가서 얼마 안되는 "재산"에 대해 "처분"을 하러 갔는데 왠지 모르는 싸늘함과 도장 "꽝꽝" 하는 소리 몇번으로 모든 업무가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시 생각해보니 뭐가 문제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돈에 관한 "서비스"를 받으러 갖고 나한테 싸늘함을 건네주었던 은행원은 그저 간단한 말과 행동으로 그 "서비스"를 끝마치면 되니 말이다. 더 많은 소통이 없는 일방적인 정보를 주고 받는 단순한 관계뿐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그 어떠한 대화도 나와 은행원의 시간을 낭비하는 행동으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근데 나와 은행원의 관계는 진짜 그저 단순한 도장 몇번 "꽝꽝" 찍으면 끝나는 그런 관계뿐일까? 혹시 그 은행원이 엄청 "이쁜" 나머지 말이라도 좀 걸어보려고어떻게 될까?  돈에 관한 업무를 하러 갔으면 빨리빨리 업무만 끝마칠거지 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나고 욕을 먹을까?  에휴, 그래도 한마디쯤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도장을 찍고 있는 은행원을 보고 " 참 이쁘네여"라고 말이라도 건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은행원은 나한테 웃어줄까? 아니면 시끄럽다고, 업무가 끝났으면 빨리 다른 손님을 위해 자리를 비켜라고 할까? 이것도 아니면 나와 은행원은 말을 이어서 하고 있는데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다른 손님이 나한테 욕을 하지는 않을까?   그래도 안 비키겠다고, 무조건 이 이쁜 은행원하고 끝장을 보겠다고 계속 대화를 하면 혹시 은행 경비원 아저씨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면서 나를 끌어내리지 않을까? 

          에이, 생각을 하다 보니 왜 비극적인 생각밖에 안든다. 이쁘다고 말을 건다고 생각하니 욕을 먹을거라고 생각되고, 아니면 다른 고객들한테 누를 끼친다고 욕을 먹을거라고 생각되고, 또 아니면 다른 고객한테 직접 욕을 먹을꺼라고 생각되고, 마지막에는 심지어 경비원한테까지 욕을 먹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들을 하면서 확인할 수 있는 일은 한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은행이라는 곳에서 나와 은행원 사이말이다. 즉, 생각을 하면 그 어떠한 이야기도 발생할 수 있지만 생각을 안 하면 그저 간단한 "꽝꽝"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끝난 다는 것이다. 물론 그 어떠한 일은 비극일수도 있고 희극(불가능하겠지만)일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서 나의 머리속에서 진행하는 사건에 대한 발명과 재발명을 통해서 구성되는 이야기는 나의 세계속에서만이라도 진행되는 불안하거나, 지속적이거나, 심지어 희망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니 말이다. 누가 알까. 혹시 용기가 있어 한발짝만이라도 앞으로 가면 그 이야기가 현실로 될지 말이다. 물론 그 현실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나의 얼굴과 "은행원"과 나의 주변에 서있는 "손님"과 "경비원"하고도 토론을 하고 그 토론을 근거하여 결과를 생각하고 후속적인 이야기에 대한 진행여부를 생각해야 하니 말이다. 

           말을 걸어 말어? 에이, 그냥 갈련다. 생각만 해봐도 그렇지 않은가, 어릴적 사상품성 교과서에서 어떻게 배웠던가? 다른 사람한테 페를 끼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착한 마음이 있어야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8영8치에서도 안 배웠던가? 그리고 "조화로운 사회"에서도 안 배웠던가? 엄청 이쁘다고 말을 걸면서 다른 사람의 시간을 낭비하면 "조화로운 사회"가 아니지. 

          에이, 그냥 갈련다. 

         "미국이 나쁘다이, 어찌무 그런거두 막 출판하니."

        "그러게 말이다. 근데 니 그 일긴지 뭔지 읽어봤니"

         "아니, 요즘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언제 그런거 볼 시간이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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