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저 도착했어요.”

나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오전에 연락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지금 내려 갈께요.”

벽돌색과 흰색이 교차한 공장건물은 개발구의 많은 기업들가운데서도 유난히 눈에 띄었다.

“파.시.페.이.커…퍼시픽?태평양?”

한창 회사이름에 대해 ‘궁예질’을 하고 있는데 자동문이 스르르 열렸다.안으로 들어가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 경비원이 경비실에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연락 받으셨어요?”

“네. 이리 주세요.”

경비원이 트렁크를 건네라고 손짓했다.

“담당자가 내려온다고 하던데요?”

“그래.그럼 기다리든지.”

“아,이 근처에 슈퍼가 있나요?새활용품 좀 사야 돼서…”

“개발구에 슈퍼가 어딨어?룡정이나 연길에 가야 있지?”

“예?”

“없어 없어”

역시 모친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셨다.

한 10분쯤 지나자 한 남자가 슬리퍼를 질질 끌고 공장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XX이시죠?”

며칠전 통화할때와 똑같은 어눌한 말투였다.

“네.저랑 통화하셨던…?”

“네.맞습니다.”

바가지 머리에 초점없는 눈동자였다.

“지금 빈방이 306호 밖에 없죠?”

남자가 경비원한테 물었다.

“네.그럴껄요?”

“그럼 일단 306호에 묵으세요. 305호는 사장님 방이고 그 옆은 공장장 방입니다.사장님은 지금 출장중이신데 며칠후에 돌아올겁니다.”

“예?!한층에 남자 방이랑 여자 방이 섞여있는겁니까?”

“예.상관 없지 않습니까?”

“어…”

“그럼 그 방은 저 혼자 쓰는겁니까?”

“일단은요. 며칠 후에 한 사람 더 오면 두 사람이 한방을 쓰게 될겁니다.”

“네.”

“트렁크 이리 주세요.제가 들어드릴께요.”

누가 보면 이민이라도 가는 줄 알겠다. 트렁크 두개에 큰 배낭 하나에 컴퓨터 가방까지,이게 다 서른도 넘은 딸래미가 아직도 어린애인줄 알고 있는 짐 없는 짐 바리바리 싸보낸 모친 덕분이다. 덕분에 장정 두명이 합세해서야 한꺼번에 모두 옮길수 있었다.

“여깁니다.”

30도 더위에 헥헥거리며 3층까지 짐을 끌고 올라오자 남자가 306호라는 표말이 붙은 방을 가리켰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래동안 밀폐된 공간 특유의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싱글침대 두개와 컴퓨터 책상 하나, 빨래건조대가 전부인 방은 침대머리며 창문이며 먼지가 시커멓게 내려앉았고 땅바닥과 쓰레기통에는 언제 버렸는지 가늠도 안되는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화장실이 단독으로 달려있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나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대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 집주인한테 몇백원 빚지고 시작한다는데 공짜로 재워주는게 어디냐? 그것도 독방을.

“여기 원래 누가 쓰던 방이었죠?”

남자가 짐꾼한테 물었다.

“걔 누구냐? 홍 뭐시기?”

“누구? 아 홍자요?”

“응, 원래 걔 혼자 쓰던 방인데 후에 사직했잖아? 그 뒤로 쭉 비워뒀어.좀 더럽죠? 청소를 안해서…”

“괜찮아요. 제가 하죠 뭐.”

“그럼 일단 간단히 소개해드릴께요. 우리 회사의 출근 시간은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 반까지예요. 아침은 7시 30분에 식당에서 드시면 되구요. 점신시간은 12시부터 1시까지예요. 12시 50분까지는 라인에 도착해야 됩니다. 저녁은 5시 반부터 6시 까지. 지금 시간이 5시 넘었네. 좀 있다 내려가 저녁 드시면 되겠네요. 그럼 쉬세요.”

“네.”

나는 트렁크를 열고 주섬주섬 갖고 온 짐들을 풀기 시작했다.

근데 이 허전한 느낌은 뭐지? 뭔가 빠진것 같은데…

“아 맞다,방 키!”

키를 받는것을 깜빡했다. 나는 서둘러 문자를 보냈다.

“방 키 안주고 갔습니다.”

“아, 키는 없습니다.”

“예? 키가 없다뇨?”

“숙소의 모든 방은 키가 없습니다. 경비실에서 통일적으로 관리합니다.”

(이 무슨?)

“그럼 밖에 나갈때 문을 안 잠그고 그냥 나간단 말입니까?”

“예. 외부인이라고 해봐야 청소해주는 조선(북한)사람 두명밖에 없는데 물건을 잃어버릴 일은 없을겁니다.”

“어…”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다. 회사규정이 그렇다는데 첫판부터 개길수는 없고 어쩐다? 현금은 얼마 없으니 상관없는데, 할수 없지 뭐. 나갈때마다 지갑을 지니고 다니는수밖에. 그밖에 값나가는 물건이라야 노트북이 다인데…잠깐만 복도에 cctv가 있었더라?

시계가  5시 반을 가리키자 나는 짐을 정리하다 말고 밥그릇과 수저를 들고 식당으로 향했다. 살짝 멀미도 나고 더운 날씨에 입맛도 없었지만 다년간의 숙소생활로 다져진 경험상 늦게 가면 국물도 없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그리고 주변에 먹을거리를 구할곳이 없는 관계로 때를 놓지면 오늘 저녁은 쫄쫄 굶어야 한다.

식당에 들어서자 밥을 먹고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씩 나를향하기시작했다. 낯선이의 대한 호기심일까 아니면 경계심일까? 몇초밖에 안되는 시간동안 나는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주방에 들어가니 모든 반찬은 이미 거의 밑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딱 1인분의 밥과 반찬이 식판에 담겨있었다.

(이거 먹어도 되는건가?)

나는 동 난 반찬그릇과 식판을 번갈아 보며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갈팡질팡하였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는 식판을 가리키며 요리사로 보이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거 니꺼 아니야!”

밥그릇의 밥을 입으로 꾸역꾸역 밀어넣던 요리사가 놀리는듯한 뉘앙스로 소리쳤다. 그 바람에 남은 반찬 쓰레기 던지러 왔던 직원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물어보잖아요!”

(우쒸! 먹는거 갖고 치사하게!)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얼마 안 남은 반찬과 밥을 챙겨간 그릇에되는대로 퍼담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아마 높은 분을 위해 특별히 남겨둔 것이였으리라.

계산착오로 먹을것은 하나도 안 사왔으니어쩐다? 허나사나 먹긴 먹어야 하는데…근데 암만 쳐다봐도 비주얼이 어째…

나는 팔짱을 끼고 한참동안 밥그릇을 째려보다가 모친한테 영상통화를 걸기 시작했다.

“어, 도착했냐?”

엄마는 소파에 누운 채 내 전화를 받았다.

“응. 엄마 딸 개밥 먹게 생겼다?”

나는 휴대폰을 밥그릇속으로 들이밀었다.

“끌끌끌, 니가 그 동안 너무 편하게 살았지? 고생 좀 해봐라! 크크”

“이 아줌마가! 딸내미 고생하는게 재밌어?”

“그럼 밖에 나가면 그러려니 해야지 어쩔거야?”

고생을 모르고 자랐다는것은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밖이 내 집 같기를 바란다는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요리사 엄마를 둔 덕분에 우리 집 식탁은 늘 여느 고급 식당 부럽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집들도 우리 집 같은 줄만 알았다. 고중을 졸업할때까지는. 덕분에 외지에서 대학 다닐때 나는 숙소 식당 음식에 제일 늦게 적응하는 학생이였다.식당밥이 엄마가 해준밥보다 맛있다며 좋아하는 룸메이트들을 도무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그래도 대학 식당이 여기와 다른 점은 돈을 내면 그나마 좀 나은 음식을 사먹을수 있다는 것이다.

“아 몰라. 여기 완전 감옥이야.”

“그래도 기왕 간거 하는데까지 해봐라. 여기 그만한 월급 주는데 없다.”

이곳은 내가 고향에 돌아온 후 처음 찾은 직장이다. 이곳의 월급은 다른 회사에 비해 1000원정도 많다. (지금 올라오는 광고에는 거기에 1000원이 더 붙었다.) 그래서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력서를 넣었고 면접도 비교적 쉽게 통과해서 이민가는 사람마냥 큰 짐 작은 짐싸들고 오늘부로 숙소로 들어왔다. 물론 출근시간이 다른 곳보다 길다는 단점과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이 분리가 안된다는 불편사항이 있지만 당분간 결혼사업과 연애사업 모두 계획에 없고 노는데 별 관심도 없는지라 나는 군대 왔다 치고 한 1년정도 버텨볼 생각이였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관리학원에는 예로부터 전설처럼 내려오는 각 학과에 상응하는 자조섞인 별칭들이 있다.회계전공자는 이중장부 제작자, 마케팅 전공자는 사기꾼, 인력자원관리학과 애들은 인신매매범(이게 제일 무시무시하다!), 그리고 우리 학원 전체를 아우르는 상인(商人)은 ‘사람을 해치는 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상인(伤人)이 그것이다.

그리고 경제학은 실용성은  1도  없이 똥폼만 잡는 학문이라고 전공자들끼리 모여 낄낄거렸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내가 10년의 사회생활로 얻어낸 결론은 경제법칙도 자연의 섭리처럼 의외로 과학적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경제학은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사용가치가 아니라 가치이며 그 가치는 사회적필요로동시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그 뜻인즉 특정시기에 특정 상품(로동력도 포함)의 가격은 그 시기의 기술발전수준과 경제상황 등 물질적토대에 의해 결정 지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학 필수전공과목인 경제학의 첫 수업에서 당시 학과장이였고 우리 나라 경제학분야의 권위 중 한사람이였던 담당교수는 경제학의 기초가 되는 이 리론부터 180도 뒤집었다. 그는 경제학에서 가격을 결정하는것은 로동시간이 아니라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라고 설명했다.‘희소성이 곧 가치’라는것이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당시 강당을 가득 채운 200여명의 학생들이 웅성웅성 대기 시작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6년동안 간직했던 지식체계가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는데 나를 포함한학생들이 느꼈을 혼란은 너무도 당연한것이였다.

때문에 거시적인 공급과 수요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 시장가격보다 높은 값을 지불하고 무언가를 사려 한다면 한번쯤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높은 값에도 불구하고 팔려는 사람이 없다면 더욱더 그 가격에 숨은 비밀을 잘 파악해야 한다.

아무런 위로도 받지 못한 나는 엄마한테 음식타발만 30분동안 해대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한참동안 밥그릇을 쏘아보다가 꾸역꾸역 음식들을 입속으로 밀어넣기 시작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먹을게 없어서 굶었다고 소문나면 비웃음 당하기 딱 좋은 얘기거리니까.

이제 내 감옥생활을 버티게 해줄 유일한 희망은 와이파이와 일주일에 한번 허락된 일요일의 외출기회 뿐이다.

근데 이놈의 와이파이는 속도가 왜 이모양이냐?

집에서는 그렇게 재미있던 예능프로도 오늘따라 왜 이렇게 하나도 재미없지?

나는 동영상사이트에서 되는대로 이것저것 클릭 해보다가 알람을 맞춰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알람을 맞춰놓은건 괜한짓이였다. 나는 얼마후 복도에서 들리는 시끌벅적한 소리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숙소로 복귀하는 발걸음소리였다. 나는 어둠속을 더듬어 휴대폰을 켰다. 시계가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이 놈의 회사는 일요일에도 이 시간까지 일하나?

그렇다고 새로운 룸메이트가 들어올 것을 대비해 가져온 귀마개를 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명색이 첫 출근인데 알람도 못 듣고 자다가지각할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할수없지. 저 사람들이 다 방으로 들어가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역시 괜한 기대였다. 한 10분쯤 후 부터는 여기저기서 샤워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방음처리 같은거? 됐을리 없다. (너무 사치스런 기대였나?)

한 30분쯤 지나서야 모든 소음들이 사그라들었다. 나는 다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단잠을 방해하는 존재는 또 있었으니, 이번의 소리는 아까의 소음들과는 데시벨의 클라스부터 달랐다.바로 조선의 직원들이 귀가하는 소리!(며칠동안 관찰한데 따르면 그들은 밥 먹을때도 퇴근할때도 모두 단체로 움직였다.) 거기다 리더로 짐작되는 사람의 일장연설까지!.

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비상용으로 갖고 온 귀마개를 귀에 쑤셔넣었다. 그렇게 몇시간의 사투 끝에 나는 겨우 잠들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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