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3시간 잤나? 희미한 알람소리가 귀마개를 뚫고 고막에 와 닿았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화장실로 향한 나는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을보고 흠칫 놀랐다. 거울속에 판다 한마리가 들어있었다. 간밤에 잠을 설치는 바람에 다크서클이 발바닥까지 내려온것이다.

어제 저녁 같은 불상사가 또다시 발생하는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대충 세수랑 양치만 하고 나는 일찌감치 식당으로 향했다. 나의 까다로움만 부각시키는 부작용이 있을 것을 우려하여 식사메뉴에 대해서 더이상의 불평은 삼가하겠다. 조식메뉴는 나쁘지 않았다. 사온 것들이긴 했지만 각종 전병, 야채 만두, 닭알, 오리알, 죽 그리고 각종 장아찌까지 구색은 다 갖췄다. 하지만 365일 똑같은 메뉴구성이라면? 아 죽은 매일 종류가 바뀐다. 생활개선을 한다고 일주일에 한번정도 물만두도 삶아준다.

문제는 그릇이였다. 설거지를 어떻게 했는지 밥풀이나 음식찌꺼

기가 묻어있지 않은 식판이 한개도 없었다.(그 와중에 주방장은 친절하게도 점심과 저녁에는 모든 반찬을 사람수에 맞춰 식판에 미리 담아준다.)그릇들에는 설거지 하고 남은 물기가 그대로 있었다. 밥 먹고 다시 3층으로 올라가기도 힘들고 가방에 그릇을 넣고 다니기도 뭐해서 수저만 챙겨서 내려온 게 화근이였다. 하여 내가 여기에 있는 동안 식사때마다 탑재한 마인드는 “설마 먹고 죽기야 하겠냐?”였다.그래도 될수록 그 전 때의 메뉴를 자동으로 파악하는것을 최대한 피하고자 나는 밥때마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음식이 담겨있지 않은 식판 빈 공간의 위생상태를 확인했다. 그 결과 주방장한테 요주의 인물로 찍히긴 했지만.

“좋은아침!”

그래도 생존은 해야하기에 먹는둥 마는둥 장아찌에 흰 죽 몇술 뜨고사무실로 향하는데 맞은편에서 식사를 하던 빨강머리의 신사가 따라나오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앉아있을 땐 몰랐는데 걸을 때 보니 다리가 많이 불편해보였다.

“누구세요?”

“나도 이 회사 사람이에요.”

“아…”

“어제 왔어요?”

“네.”

생존법칙1: 이유 없이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경계하라.

“조선(북한)사람들이 비록 가난하긴 하지만 뼈속에서부터 잠재해 있는 오기가 있어요.지금 중국 기술자들이 힘으로 누르고 있는데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선사람들의 반감만 키울뿐이야. 그래서 회사방침은 조선족들을 관리인으로 키워서 회사운영을 원활하게 하는거야.”

“여기 인사애도 올해 대학를 졸업했는데 내가 지금 한창 키우는 중인데.”

부장은 자리에 앉으면서 자신의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그렇게 되면 같은 민족이니까 그런 갈등도 많이 줄어들거고 통역비도 절감할수 있잖아. 지금 중국측 인원이 30명 정도 되는데 관리비가 45만원 들어. 조선측 인원은 700명이 넘는데 비용은 오히려 30만원 밖에 안 돼. 지금 회사의 상태는 다섯 사람이 네 사람 일을 하고 있어. 앞으로는 세 사람한테 다섯 사람 몫의 일을 시키고 네 사람 월급을 주는 상태로 만들어야 돼.”

아마 마지막 구절이 이세상 99.99%의 오너들의 마인드이리라. 모든 사장들은 자신의 돈을 아껴주는 직원을 사랑한다.

“조선(북한)사람들이 가성비가 좋아. 다들 자기네 나라에서 대학까지 나온 사람들이라 뭐든 빨리 배워. 저기 저 여자애 있지? 쟤가 지금 23살인데 김일성 종합대학을 나왔어. 근데 아주 고집이 세. 허허.”

신사는 턱으로 건너편에 앉은 여자애를 가리켰다. 그러고보니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한테서 뭔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 사람들도 다 조선(북한) 사람들인가요?”

“맞아. 내가 사장님한테 AE들 전부 조선(북한)사람들로 해달라고 그랬어.”

"네…"

“일단 며칠 해봐. 원래 공장장조수 일이 그래. 통역들은 정확히 8:30분이면 퇴근할수 있는데 공장장 조수일은 퇴근시간이 불규칙해. 밤11시가 될수도 있고 새벽 1시, 2시가 될수도 있어.아무튼 생산일이라는게 그래. 조수의 월급은 인턴기간에 4000이고 정식 채용되면5000이야. 통역들은 4000받고. 먼저 조수일 며칠 해봐. 안되겠다 싶으면 통역이든 다른 자리든 니가 맘에 들때까지 바꿔줄께.월급은 사장님하고 다시 협상해봐. 월급 보험 이런거.”

이때는 몰랐다.지금 이 순간의 대화가 앞으로 나한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새벽 1,2시? 이건 얘기랑 다르잖아? 근데 보험이 선택사항이야?)

“보험은 당연히 들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아니, 이것도 회사랑 얘기해야 해. 보험을 들지 말지.우리 회사는 보험을 월급에서 깎는게 아니라 추가로 회사에서 내주는거야. 한 700원 정도? 예를 들면 월급이 4000인데 보험을 들겠다,그럼 실질적인 월급은 다른 회사의 5000과 같은거지.”

“알았어요. 일단 며칠 해보고 다시 얘기합시다.”

“그래. 잠깐 기다려. 좀 있다 공장장한테 데려다줄게.”

“아 그리고 일하면서 공장장한테 서운한게 있으면 나한테 얘기 해.공장장이 성격이 급해서 어떤 때는 말을 좀 심하게 하거든.그게 공장장이라는 위치나 아니면 필요에 의해서 일부러 그렇게 해야 되는 측면도 있으니 니가 좀 많이 이해하고.”

남의 돈 먹기가 어디 쉬운가? 옛날 며느리 시집살이처럼 직장생활도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이다. 그래서 다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하는거지. 뭐 요즘 90후중에는 상사한테 욕 들은 순간 사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지만 내 나이 되면 그 정도는 웃으면서 넘긴다. 연륜인건지 손자가 된건지는 모르겠다만.

“네.”

“그래. 먼저 현장부터 한번 둘러보자. 너도 분위기부터 먼저 익혀둬. ”

우리는 사무실과 가장 가까운 재단부부터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는 주로 남성용 셔츠를 만들어. 대부분 수출용이지. 주로 미국이나 한국으로 나가고 국내도 시장이 있긴 한데 오더가 많지는 않어.”

빨강머리신사는 나한테 회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 해주었다. 4만평의 위엄은 실로 대단했다. 재단부터 완성까지 오는데 한참이나 걸렸다.완성 쪽에는 포장을 기다리고 있는 여러 패턴의 셔츠들이 가지런히 걸려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런건 얼마정도 해요?”

“2000원.이건 미국으로 나가는거야.”

“흐익!”

내 보름치 월급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루 12시간(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씩 꼬박 한달을 일해야 겨우 셔츠 두장 살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가공비만 받아.원단은 고객이 제공하는거야.”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불행하게도 가공업은 전체 산업체인에서 제일 밑바닥에 위치한다. 윗 단계에서 먹고 남는 부스러기를 가져간다는 얘기다. 전체 파이에서 가져가는 지분이 1% 미만이다.

“어, 여기 있었네. 공장장,얘는 우리가 채용한 조수야. 오늘 첫 출근이야. 며칠 데리구 있어봐봐.”

현장을 한바퀴 돌고 돌아오는 길에 빨간머리신사는 한 여자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편견이란 것이 이래서 무서운건가보다. 왜 나는 당연하다는듯이 공장장이란 직위와 남자라는 성별을 매치 시켰을까? 공장장은 체격이 호리호리한 여자였다. 하지만 눈빛과 카리스마는 체격이 건장한 남자들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뒤에는 통역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도 한명 대동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XX대학 나왔대. 잘 키워봐봐.”

그녀는 슬며시 웃기만 할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신사가 떠나고 우리는 재단쪽부터 차례로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어, 제가 들께요. 이리주세요.”

나는 공장장이 들고있던 옷뭉치를 뺏어들었다.(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구)

“!^$%)*^&$#)”

“예?”

“안되겠다. 니가 번역해.”

공장장은 통역을 돌아봤다.

(엥? 벌써 짤리는건가? 너무 하는거 아니야?ㅜㅜ)

“니 문제가 아니야. 니가 금방 와서 어떤 용어는 익숙하지 않을수 있어. 그리고 내가 지금 목이 아파서 같은 말을 두번 하기 힘들어.”

“네.”

(휴,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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