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빌어먹을!

이젠 아침에 거울 보는게 무서울 지경이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이틀만에 이렇게 흉한 몰골로 변할수 있는거지? 눈은 움푹 꺼져 들어가고 코 밑엔 선명한 팔자주름. 안 그래도 피부가 늘어져 하루하루 탄력을 잃어가는게 눈에 보여서 짜증나 죽겠는데 이렇게 한 방에 훅 가다니! 올때 입고 온 바지에 주먹 하나가 드나든다. 에휴~그냥 공짜로 다이어트 했다 치자. 요즘 다이어트 하려면 무슨 연예인 식단이다, 요가다 헬스장이다 하며 돈이 얼마나 드는데.

대충 씼고 흰죽 몇 술 뜨고 출근하니 공장장은 이미 사무실에 와있었다. 참 난감하다. 분명 지각이 아닌데 상사가 나보다 먼저 출근했을 때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눈치 보이는 이런 찜찜한 상황, 사람들 눈에 꽤 불성실하고 일에 대한 열정이 없는걸로 보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

“저 지각 했나요?”

“아니야. 내가 좀 일찍 왔어.”

다…다행이다.

내가 발을 들여놓은지 몇 분 지나지 않아 행정경리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

공장장은 왜 왔냐는 얼굴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응? 아침에 오라 그랬잖아요? 까먹었어요?”

“아, 맞다. 기억력 좀 봐. 잠깐만.”

“오늘 내가 일이 있어서 오전에 잠깐 나갔다 와야 돼. 오전에 모모 따라다녀. 전문용어도 좀 익히고.”

공장장은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공장장이 떠나고 나는 곧바로 현장으로 향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어제 회의때 기술원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혀둘 걸 그랬다. 그래도 나는 물어물어 공장장이 말한 기술자를 어렵게 찾아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기술자님 따라다니라네요.”

공장장이 말한 모모는  40대로 보이는 덩치 좋은 여자였다. 여담이지만 이 공장의 현장 기술원들은 열학한 회사의 급식환경에도 불구하고 남녀 할것없이 모두 신체조건이 훌륭했다.

“야~근데 너 덩치가 이렇게 작아서 어디 버티겠냐?”

나를 아래위로 훑어본 여자기술원은 인사 대신 걱정부터 했다.나는 대답 대신 그저 웃어 보였다.

나는 기술원과 30센치 정도의 간격을 두고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라인을 따라 몇번 왔다갔다 하던 기술원은 한 재봉틀 앞에 멈춰서더니 갑자기 얼굴이 굳어졌다.

“조장 오라 그래. 야! 여기 어제 이렇게 하지 말라구 했어 안 했어? 말할때 안 듣고 쳐 잤어? 다들 귀가 먹었어? 어?”

이걸 어디까지 통역 해야하지? 통역 인생 10년만에 최대의 고비다.통역은 의사전달의 정확도와 같은 말을 얼마나 완곡하게 전달하느냐를 실력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야~ #$@&()_^$*)+(&^ 구나야!”

아…못 알아들었다! 분명 같은 언어인데. 내 듣기능력에 문제가 있는건가? 표정과 뉘앙스로 짐작해보건데 별로 좋은 말은 아닌것 같아서 나는 잠자코 있었다.

“뭐라 그러는거야? 번역 안해!^&*#$%@!$^*(%#&_)^+#”

헐! 이번엔 산동방언의 습격이다! 알고있었지만 사투리도 외국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예? 뭐라구요?”

이 후 며칠동안 이런 식의 대화는 내가 그만둘때까지 쭉 이어졌다.

“가서 조장 오라 그래.”

“어느 분이 조장입니까?”

“빨간 옷.”

빨간티를 입은 사람은 모두 3명.에라 모르겠다.

“조장님!조장님!”

나는 내가 낼수 있는 최고의 데시벨로 냅다 소리질렀다. 멀리서 조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헐레벌떡 뛰여왔다. 내 목소리가 높긴 높았나보다.

“얘는 1조 조장이고,2조 조장 오라 그래야지.”

(아놔, 그럼 미리 2조 조장이라고 얘기를 하든가.)

“2조 조장님은 어느 분입니까?”

“조기 재단에 있는, 조장동지!조장동지!”

우여곡절 끝에 겨우 지명자를 기술원 눈앞에 대령시킬 수 있었다.

“오늘 속도가 왜 이렇게 느려? 눈이 있으면 생산량 좀 봐라. 불량은 또 왜 이렇게 많아? 오늘 반품된게 몇개인 줄이나 알아? 니들 벌금 물려야 정신 차릴래?”

맙소사! 이걸 나보고 번역하라구!

불행하게도 인격은 번역이 안된다. 감정의 찌꺼기들은 걸러지지 않은채 오롯이 내안에 남는다. 이 직업의 제일 큰 애로사항이기도 하다.

“이런 썅! 내가 몇번을 말했어? 한시간 간격으로 생산량 체크해서 보고하랬지? 다들 하루종일 무슨 생각들을 하는거야? 내가 얘기할때 졸았어?”

한창 좀 더 순화된 언어로 표현할 단어선택에 고심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재단쪽에서 큰소리가 들려왔다. 40대중반의 남자기술원이 10대 후반 쯤 돼 보이는 조선 여직원한테 알파벳 T로시작하는 욕을 섞어가며 고래고래 악을 써대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서 음성을 제거하고 슬로우를 걸면 보기에 아주 웃기는 장면이 탄생할 것이다. 역시 멀리서 보면 인생은 희극이다.

“모모, 이거 무늬가 가로로는 맞춰지는데 세로로는 안 맞춰진단 말이야. 이거 어케 하니?”

라인의 어린 재봉공 하나가 몸통만 붙인 셔츠를 모모 코앞으로 들이 밀었다.

“어, 가로는 마차, 세로는 뿌 마차.”

(어라?)

“의사소통이 다 되네요?”

“그럼 1년 넘게 일했는데 이젠 이 정도는 다 알아 듣지.”

이래서 회사에서 통역월급이 조선사람들 다음으로 적은건가 보다.

“그럼 통역이 딱히 필요 없겠네요?”

“공예는 별문제 없는데 긴말은 전달이 잘 안돼. 회의할때라든지.그래서 기술원 두명이 하나의 통역이면 충분해.”

내가 보기엔 이 회사에서 통역은 욕을 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

“모모.이거 안되다. 지시서에는 가로 세로 다 맞춰라고 그랬단 말이다.”

재봉공이 아까 옷을 다시 들고 왔다. 기술원은 천쪼가리들을 이리저리 조합 해보더니 신경질적으로 옷을 나꿔채서 재단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더니 재단책임자 앞에 툭 내려놓았다.

“이거 어떡할거야?”

“이게 왜 이렇게 됐지? 그냥 잡아당겨서 대충 맞춰. 이 브랜드는 웬만하면 반품 안해서 괜찮아.”

“어제도  2시까지 했어?”

(뜨악!)

“어. 사흘동안 6시간 잤어. 진짜 너무 심하게 부려먹는다. 지금 부가치 하지?  오늘부터는 검사도 안하고 그냥 내려보낼꺼야.”

김부장은 키가 훤칠하고 몸매가 날씬한 40대 초반의 중년 아저씨다. 그래도 이 회사의 다른 기술원들(남녀 통틀어)에 비하면 성격이 온화한 편이다.

“안녕.”

기술원은 웃으며 나한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회의 때 모든 사람앞에서 자아소개를 한 덕분에 통성명은 생략할수 있었다.

“너 내가 여기 온 후에 몸무게가 얼마나 줄었는지알어? 서른근이야, 서른근. 내 키가 185 넘는데 지금 70키로나 될까 말까 해.”

이 사람도 강제다이어트 중이다. 이 회사의 로동강도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근데 기술자님은 통역 없어요?”

“원래 나랑 모모가 공동으로 통역을 하나 뒀는데, 지금 공장장 따라다니는 애 있잖아?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천천히 정리되겠지. 너 마침 잘 왔다. 나 통역 좀 해줘.”

“네.”

“어이, 조장! 이리 좀 와봐. 이거 보여? 이거 왜 이렇게 잘랐어?”

조장은 원단만 빤히 들여다볼 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잘 들어, 난 한번만 말한다. 다음에 또 이렇게 하면 나 진짜 욕한다.”

욕도 예약제가 있는 줄은 몰랐다. 그래도 예고도 없이 듣게 되는 욕보다는 나을 것이다. 불행한것은 이 말조차도 내가 전달해야 한다는거다.

“알았다.”

어린 조장은 방긋 웃어보이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조선측 직원들은 거의 모든 대답을 반말로 한다.

“갈게.”

모모는 갖고 왔던 원단을 들고 라인으로 향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다른 기술원들과는 달리 모모는 작업지시서를 확인할때 빼고는 도무지 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른 기술원들은 잘만 앉아있던데? 덕분에 11시간 동안 내가 앉을수 있는 시간은 모모가 화장실에 가는 시간 뿐이였다. 그 긴 시간을 내 가느다란 다리로 버티는 건 무리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제일 먼저 느는 것 중의 하나가 잔머리다. 나는 기술원이 이동하지 않을 때에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앉을 곳을 물색했다. 도저히 찾지 못할 때엔 그냥 땅바닥에 철퍼덕 엉덩이를 깔고 앉아버렸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힘듦은 한 여인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였다.오후에 공장장과 함께 질량검사를 다닐때 완성반에서 만삭의 임산부와 맞닥뜨렸다. 다음달에 출산예정이라는 질량검사원은 하루 11시간 이상을 꼬박 선채로 몸의 하중과 아이의 무게까지 함께 견뎌야 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어딘가에서 종소리가 울리더니 갑자기 공장의 모든불이 일제히 꺼졌다.

“뭐예요?”

“조선(북한) 사람들 밥 먹으러 가는 거야.”

“그럼 그동안 우린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어야 돼요?”

“응.”

“그럼 우리도 11시 반에 밥 먹는게 낫지 않아요? 시간낭비 하지 말고. 어차피 컴컴해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데.”

“몰라, 사장이 정한거야.”

“왜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게 하는게 훨씬 효율적이다.

“낸들 아나? 이유가 있겠지.”

하긴 직장생활을 함에 있어서 뭐든‘그러려니, 다 높은 분들의 깊은 뜻이 있어서 그렇겠거니’하고 생각하는게 심신에 이롭다. 항상 이놈의 ‘왜?’가 문제다.

“그럼 쟤네들이 돌아와야 우리가 밥 먹으러 가는거예요?”

“응.”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나는 애저녁에 배가죽이 등에 달라붙었다.아무것도 안보이는 깜깜한 어둠속에서 기다리려니 시간은 더욱 더디게 흘렀다.

“커피 한잔 타주라.”

어둠속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돈 내라.”

여자가 웃으며 대꾸했다. 맨 끝에 자리한 봉제라인의 기술원 목소리였다. 같은 회사는 아니지만 사장을 빼고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중국측 직원이다보니 서로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다.

“야야, 쩨쩨하게 굴지 말고 한잔 마시자.”

“이거나 타서 마셔.”

기술원은 살구씨처럼 생긴것이 반 쯤 담겨있는 통을 남자한테 건넸다.

“이게 뭐나?”

“목에 좋단다.”

이 회사의 공장장부터 시작해서 기술원들까지 거의 모든 관리자들테이블엔 이 물건이 상비약처럼 한통씩 구비 돼있다. 그런데 공장장이 목이 한달째 낫지 않는다고 하는 걸 보면 딱히 효과가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북조선엔 이런거 없니?”

“이게 무슨 별거라구. 내가 80년대 처음 중국에 나왔는데 그 때는 중국도 못 살았었어. 지금 중국은 그 때보다 너무 물질적으로 변했어. 가난한 건 창피한게 아니야. ”

요즘 같은 세상에 참으로 보기 드문 가치관의소유자다. 하지만 그게 국제관계에도 적용될까?

“가난한 건 창피한거야.”

“아니야….”

두 목소리는 어둠속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3년 같았던 30분의 기다림끝에 드디어 식사를 마친 조선의 직원들이 하나둘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제대르 먹었니?”

아까 그 목소리였다. 알고보니 남자는 모모네 라인의 조선 측 사장이었다. 그는 식사를 마치고 오는 어린 종업원한테 살갑게 물었다.

“예. 다 먹었슴다.”

여자애는 수줍게 웃으며 대답하고는 자기자리로 총총 뛰여갔다.

10년 가까이 되는 직장생활을 통틀어 처음 들어보는 훈훈한 대화다.(내가 냉정한 상사들만 만났던 건가? ㅠㅠ)

“이제 우리도 가죠?”

나는 부랴부랴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몇시야?”

“11시 58분이요.”

“12시 되면 가자.”

“네? 1분이라도 먼저 가면 안되는거예요?”

“시간 되기전에 가면 욕 먹어.”

비교가 없으면 상처도 없다. 기대는 금물이다.

정시에 꼭 맞춰 도착한 식당에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이럴때는 자리를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여기!”

다행히 어제 말을 섞었던 몇명이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내가 들어오는것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우 짜!”

거의 동시에 똑같은 말이 우리 네 사람 입에서 튀어 나왔다. 곳곳에서 탄식과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젠 아주 식사시간이 고역이다.

“주방장이 옛날에 소금장수였었나봐.”

“그러게 말이야.”

“밥은 또 왜 이렇게 딱딱해.”

“어우, 나는 집에서 이런 밥은 아예 숟가락도 대지 않는데.”

“생존을 위해서 먹는다고 생각 해.”

“하하하”

이로써 내가 유난 떠는게 아닌 것이 증명됐다. 여기 온 후로 아침에 삶은 닭알, 점심에 닭알볶음, 저녁에 닭알국이 메뉴로 나오는 통에 아주 내가 닭이 될 판이다.

“아드득!”

밥 먹는데 이 무슨 청량한 소리인가? 한창 반찬과 주방장을 안주 삼아 신나게 씹고 있는데 어제 퇴근시간에 함께 수다를 떨었던 여자애가 조용히 일어나더니 주방에 있는 쓰레기통으로 급히 뛰어갔다. 잠시후 그는 비 맞는 이모티콘과 같은 얼굴을 하고 돌아왔다.

“돌 씹었어?”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넌 왜 반찬만 퍼왔어? 밥은?”

“다이어트 중이예요.”

이 노동강도에 다이어트 하겠다는 용자가 있다니.부럽다,그 젊음과 체력이.

“아이고, 어떻게 내가 한 것보다 더 맛이 없냐?”

남편에 애까지 있는 젊은 새댁이 미간을 찌푸렸다.

“요리 잘하시나봐요?”

“아니, 나 집에서 음식 안 하는데? 요즘 여자들 누가 집에서 요리해요?”

“남편이 뭐라 안해요?”

“암말 안하던데?”

요즘은 그래도 일하는 여자들이 육아와 일과 집안일을 병행했던 우리 어머니들 때 보다는 많이 편해졌나보다. 아니면 이 여자가 특별히 운 좋은 케이스인 건가?

“내가 아는 집도 여자가 집에서 손가락 까딱 안한대요. 남편이 집 치우란 말도 안 하고 밥하란 말도 안 한대요. 그저 집에 고이 모셔놓고 있대요.”

92년 생이 한마디 거들었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이런 쪽에 정보가 더 빠르다.

“보모를 쓰나보지 뭐.”

“아니래요. 남편이 일하고 밤 늦게야 집에 들어온대요.”

“그럼 남편이 바깥일과 집안일 다 한단 말이야?”

“그러겠죠 뭐.”

“여자는 일하고 들어온 남편 밥도 안 차려주고?”

“그런대요.”

“그럼 남자는 진짜 보기만 하려고 여자를 데려온거야? 그 남자 머리가 어떻게 된거 아냐? 아~ 여자가 무지 이쁜가 보네?”

“이쁘긴 이쁘죠.”

아하~그러면 이해가 간다.

“아이고 그게 얼마나 가겠니?”

“결혼한지 몇년 됐는데 아직 이혼 안 했대요.”

여자 셋만 모여도 접시를 깰수 있다. 우리들의 수다는 밥 먹는 내내 이어졌다. 물론 그 중에는 남자들이 들으면 입에 거품 물 내용들도 있었다.

“다 먹었으면 먼저 가.”

안 그래도 밥 먹는 속도가 느린데다 12시 정각에 맞추느라 남들보다 늦게 온 탓에 내 접시에만 아직도 음식이 남아있었다.이럴 땐 먼저 가 주는게 차라리 마음 편하다.

“괜찮아요. 가면 또 일해야 돼요. 힘들어요.”

학교를 갓 졸업했다는 23살짜리 새내기가 울상을 지었다.

“1시부터 아니야?”

“말만 그래요.”

“그래 그럼. 넌 어쩔거야?”

“난 산책 좀 할래. 요즘 자꾸 배가 나와.”

“같이 가자.”

“그래.”

아무래도 사무실은 듣는 귀가 많아 뒷담화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장소다.우리는 회사의 담벼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너 누구한테 면접 봤어?”

그가 먼저 물었다.

“행정경리인가? 그 사람이 보던데?”

“그래? 나는 건우한테 봤는데.”

“건우? 건우가 누구야?”

“원건우.인사 말이야.”

“아, 걔가 건우야?”

“걔 좀 이상해. 해야 할 말은 안 하고 묻는 말에도 바로바로 대답 못하고, 좀 띨띨한거 같애. 나한테 면접볼 때 회사에 연길에서 출퇴근하는 통근차가 있다구 했거든? 알고보니 자기차 얻어 타고 다니라는 말이었더라구. 근데 걔는 저녁에 5시면 퇴근하잖아? 그럼 저녁에는 택시를 타든 뭘 타든 내가 알아서 방법을 찾아야 한단 말이야.”

“그럼 회사에서 영수증처리는 해주겠지?”

“재무과에 물어봤는데 비용처리 안 된대. 그래서 그 시간에 퇴근하는 사람들은 저녁에 가능하면 회사사람들 차를 얻어 타구 다녀. 근데 그건 돈 안드니? 다만 얼마라도 기름값 쥐여줘야 할거 아냐?”

“더 문제인 건 인사 걔가 아침에 픽업 장소에 아무 때나 온다는 거야. 너도 알다싶이 모든 사람들이 출근카드 찍잖아. 지각하면 1분에 10원씩 월급이 깎여.”

“뭐?”

“너 몰랐어?”

“어!”

“그러니까 내 말이.이런 것들은 면접때 똑바로 말해줬어야지.”

“근데 이 회사 보니까 인사담당이 딱 한명이던데? 70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을 한 사람이 다 관리할수 있는거니? 조선인원을 3000명까지 늘릴 계획이라던데…”

“관리는 개뿔! 걔 사장 조카래. 친 삼촌이라나 뭐라나. 며칠전에 졸업한 애가 무슨 관리를 해? 그냥 코찔찔이 애지.”

“근데 넌 여기가 월급 한달 미뤄서 주는거 알고있었어?”

나는 주위를 한바퀴 둘러본 후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그의 귀에 속삭였다.

“응. 인사가 나한테 준 오퍼에 써있드라. 내가 보여줄게.”

그는 나한테 위챗 대화내용을 보여주었다.

“오퍼? 그런것도 있어? 언제 받았는데?”

“면접 보고 그 날 오후에 바로 왔던데? 넌 못 받았어?”

“어, 난 그냥 급여나 근무시간에 관해 주고 받은 대화밖에 없어.”

“여기봐. 월급, 계약기간 다 적혀있지?”

“어? 너도 4000이네?”

“응.넌 얼마야?”

“너랑 똑같아.”

“넌 우리보다 많을 텐데? 너는 공장장 조수로 온 거잖아?”

“시작은 똑같애.잘 하면 올려주긴 한다는데…”

“그거 다 거짓말이야. 내가 옛날에 다니던 회사 사장도 계약서 쓸 때 똑같이 얘기했거든? 근데 4년 넘게 월급 한번 안 올려주더라. 그러면서 관두겠다 그러면 또 안 놔주고. 난 이직도 되게 힘들게 했어.”

한 회사에 몇년동안 다닌 사람들은 알 것이다.갑들이 흔히 얘기하는 ‘잘하면’은 ‘내 기분 봐서’와 같은 뜻이다.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월급인상 약속은 아무 의미가 없다. 계약서에 적시된 월급금액이 퇴사할때까지 내가 받게 될 월급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

“저번 주에는 글쎄 나한테 일요일에도 출근 하라는거야.”

“그래서 뭐라 그랬어?”

“일 있어서 못 나온다 그랬어.”

“원래 일요일에는 휴식하기로 한거 아니야?”

“특수상황이래. 안 그럼 납기를 못 맞출 것 같다면서.”

“그래서 안 나왔어?”

“어.”

“잘했어. 그거 당연한 권리야.”

“그랬더니 인사가 나한테 만약 안 나오면 휴가로 처리한다 그러더라. 하루치를 월급에서 깎는다는 소리지. 이제 월급 나오면 알겠지만 만약 진짜로 그런 식이면 나 회사 관둘거야.”

“로동법”에는 주말휴식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그저 제38조에 “고용단위는 근로자에게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의 휴식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애매한 문구와 주 근로시간만 규정 해놓고있다. 생산의 수요로 추가근무를 해야 할 시에는 근로자와 협의하여 근로시간을 연장할수 있다(제41조)는 조항도 있다. 이는 기업들에게 주말 출근을 정당화하는 빌미를 제공하였고 연장근로수당에 관한 부분은 이미 지켜지지 않은지 오래다. 언젠가부터 많은 기업들이 주 5일 근무제는 당연한 것이 아닌 “복지”로 근로조건에 포함시켰고 인사들은 면접시에 “우리 회사는 주말에 이틀 모두 쉽니다.”라고 선심쓰듯얘기한다.

“나두 조수일은 못 할것 같애. 시간이 너무 길어. 그냥 통역 좀 하다가 그만둘래. 여기 오래 할 데가 못 돼.”

“통역들 힘들어.하루종일 서있어야 되구.”

“너는 어때? 할만해? 넌 전공이 뭐야?”

“난이-커머스(电商)전공이야.”

“어때? 이 일 적성에 맞어?”

“여기 와서 처음 찾은 직장이야. 그냥 면접보구 합격하니까 출근했어. 나두 길게는 못 해.올해 년말까지?결혼하면 관둘꺼야.”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었다.

“아. 너도 본지방 사람이구나.”

“아니 난 고향이 대경이야.”

“뭐?대경에서 여기 면접보러 왔단 말이야?”

아무리 중국에서  이정도 거리이동은 축에도 못 낀다지만 그래도 대단했다.

“아, 그건 아니구.우리 언니가 여기로 시집왔어.그래서 우리 가족 모두 여기로 건너왔구.남자친구도 여기 사람이야.”

“너 여기 온지 얼마 안됐다며? 근데 벌써 결혼해? 와 빠르다. 몇번 만나보지도 않고 결혼결심을 하다니. 대단하다”

“만난 적 없어.”

“뭐?”

“남자친구는 지금 미국에 있어.유학 갔다가 석사 학위 따고 눌러앉았는데 우리 언니랑 그 집 부모들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더라구.맞 선두 화상채팅으로 봤어, 그 집 부모랑 함께 셋이. 근데 그 남자가 그 날 바로 자기 엄마한테 ‘ 어머니,당신 며느리예요.’ 그러는거야. 그리고 지금도 쭉 온라인으로만 만나구 있고.”

어머 박력 보소!

농담이 아니라 요즘은 옛날보다도 자유연애가 힘들다. 회사에 인질로 잡혀있는 바람에 소개팅이나 맞선 같은 인위적인 만남이 아니면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젊은이들이 사방에 흩어져 사니 만남의 방식도 점점 진화한다. 그래도 그렇지 번개불에 콩 구워먹는 것도 아니고 운명적인 사랑까진 아니더라고 인터넷채팅 몇번에 결혼결심을 하는 건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사실 남자친구가 이번 주말 자기 부모한테 인사하러 가래.이거 맞는거야? 아직 남자 얼굴도 못 봤는데 부모님 먼저 만나는게?”

“글쎄다. 결혼이 확정된 사이라면 뭐…모르겠다.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하니? 넌 어때?이 사람이다 싶은 생각이 들어?”

“사실 잘 모르겠어. 얼굴을 안 보니까 아무 느낌이 없는것도 같구.”

“우리 부모님들이 맨날 그러잖아?그냥 웬만하면 된다고.”

“우리 사촌언니가 학교 선생님인데 부모님들이 하도 닦달해서 여러남자 만나봤거든? 중학교 졸업하고 사업해서 돈 꽤나 있는 남자도 만났고, 아무튼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을 여럿 만나봤는데 우리 언니가 전부 퇴짜를 놨어.학위 그런 것보다 가치관과 관심사가 다르니까 더이상 대화를 이어갈수가 없더래.사람이 그냥 입에 밥만 들어가면 사는게 아니잖아?”

“맞어. 우리 부모님들이 문제인걸까 우리가 유난떠는걸까?”

“부모님들은 우릴 이해 못해.”

“그런데 인터넷으로 한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않을까?”

“그러잖아도 어제 채팅 하면서 얘기했어. 우리 둘다 어린 나이도 아니니까 시간 낭비하지 말고 가리고 덮고 하지 말고 서로 진실한 모습만 보여주자고. 그래놓고 나도 항상 필터 넣는다? 크큭”

“근데 결혼이민 그거 모르긴 몰라도 시간이 좀 걸린다던데.내가 아는 사람은 5년 넘게 기다렸다 그러던데?”

“말로는 2년이 걸린대.신청자가 많으면 더 걸릴수도 있고.”

“그럼 서로 왔다갔다 해야 되겠네?”

“응. 자기가 가끔 들어오겠대.”

“불안하지 않어?”

“하하. 미국여자들 들어갈 데 들어가고 나올 데 나오고 몸매들이 장난 아니잖아? 그래서 내가 그랬어.나는 글래머가 아니라서 널 만족시켜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그랬더니 걔가 뭐라 그러는줄 알아?”

“뭐래디?

“‘음…좀 작긴 작네? 그냥 대충 살자.’그러더라. 흥! 나는 걔가 날위해서 자기는 그런 여자들 안 좋아한다고 얘기해 줄줄 알았거든?”

그가 샐쭉거렸다.

“푸하핫.”

30대가 되면 여자들도 대화의 수위가 꽤 쎄진다.

“사실 나도 알아. 미국에 제대로 자리를 잡은 남자들이 뭐하러 중국에서 여자를 찾겠니? 사고방식도 많이 달라졌을거고, 거기 주류사회에는 진입 못하고 자기 경제력으로는 거기 여자들이 쳐다도 안 보니까 상대적으로 만만한 국내 여자들과 결혼하려 하는거겠지. 우리 나이가 되면 선자리도 잘 안 들어와.”

어디 소개팅 뿐이랴. 여자들은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3으로 변하는 순간 곳곳에서 행해지는 차별과 불이익에 노출된다. 미혼,기혼 할것없이 사회적 통념의 결혼적령기와 가임기에 처했다는 이유로 승진은 커녕 변변한 일자리도 잘 차려지지 않는다. 같은 나이대의 남자들과 동등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취업시장에서 갓 졸업한 새내기들보다도 못한 값에 매겨진다. 35살을 넘어가면 아예 오라는데가 없다.

“그래서 그렇게 급하게 결정한거야?”

“뭐 더 골라봤자 거기서 거기겠다 싶더라. 걔 말로는 미국 가게 되면 내가 돈 안 벌어도 되고 집안일도 안 해도 된다는데 그게 어디 그렇니?  남편이 돈 벌면 나는 하다 못해 밥이라도 해줘야 할꺼 아니야? 집안일도 해야 하고. 진짜 걱정이다.나 밥 한번도 해 본적 없는데…”

전업주부라면 요리를 못하면 직무유기지만 요즘은 여자들도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엄마가 해준 밥 먹고 학교 다녔고 일을 시작한 후에는일에 파묻혀 살고 또 밖의 음식을 사먹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요리사들이 아닌 다음에야 요리를 잘 하는 여자들은 그야말로 팔자가 핀 사람들이다.

“아까 밥 먹을 때 말했던 커플들 오래 못 갈거야.아무리 남자가 여자 외모에 홀려도 그거 길어야 3년이야. 남자가 힘들게 일하고 들어왔는데 여자가 집에서 고이 놀면서 자기 밥도 안 해주면 결국엔 남자도 맥 빠지고 사랑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 아니야? 일방적인 관계가 오래 지속될리가 없잖아? ”

“맞어.”

30대가 되면 좋은 점은 감정이 전부인 20대 때보다는 이성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생겼다는  것이다.

“그럼 결혼 언제해?”

“남자친구가 년말에 들어온대. 상견례 하고 바로 떠날꺼야.”

“그럼 넌 굳이 이렇게 위험한 일을 안 해도 되잖아? 늦은 시간에 여자 혼자 퇴근하고.”

“어휴, 어제 저녁 진짜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건우 차에서 내려서 엄마가 데리러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맞은 편에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갑지가 나한테 뛰여오는거야. 그냥 내 착각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뛰였어. 어제 하필 치마를 입어가지고 뛰는게 얼마나 불편하던지. 우리 엄마가 몸이 편찮아서 내가 돌봐줘야 되는데 오히려 내가 걱정시키고 있어. 엄마가그시간에 매일 마중이나 나오게 하고.”

“내일부터는 뛰기 편한 운동복에다 운동화 신고 다녀.”

“그러려고. 그래서 오늘 바지 입었잖아? 하하! 사실 꼭 이 일 안해도 돼. 남자친구가 매달 1000달러씩 보내 주거든. 그런데 그 돈 나 쓰라고 주는 게 아니라 모아뒀다가 년말에 함께 여행 가재. 그리고 나 대경에 집 사놔서 퇴직할 때까지 매달 대출금 물어야 돼.”

“어차피 미국 가서 살꺼라며?”

“집값 오르면 팔려구. 요즘 시세에 팔면 10만 넘게 밑져. 그래서 할 수없이 그냥 놔두고 있는거야. 우리 언니도 그러더라. ‘니가경험 쌓아서 공장 차릴 것도 아니고 뭐하러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냐?’ 고. 나도 모르겠어. 생각 중이야. 하는 데까지 해보고 정 힘들면 관두려고.”

여러 선택지가 있다는 건 참 부러운 일이다.

“저기 조선사람들 숙소지? 우리 한번 들어가 보자.”

한참 신나게 수다 떨던 그는 갑자기 조선인전용식당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야야! 거기 중국사람은 못 들어가!”

나는 급히 그를 불러세웠다.

“왜?”

“몰라. 자기 나라 사람들 아니면 식당이랑 숙소에 함부로 못 들어가게 해”

조선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간은 '외부인 출입금지' 구역이다.

“아쉽다.”

“이제 시간 다 됐다. 사무실 들어가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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