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좀 검색해 봐.”

공장장은 나한테 어제 병원에서 타왔다는 약을 내밀었다.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얼마의 시간간격을 두고 먹어야 되는지 등등다.”

“네.”

공장장이 건네준 약들은 각각 혈액순환개전제, 항우울제, 수면제였다. 문제는 항우울증 약은 수면장애를 유발하는 부작용이 있었고 수면제는 소화불량, 구토,어지러움증 등을 동반했다. 게다가 이 약들은 같은 시간대에 복용하면 안되는 것들이였다.

“이 약들이 다 뭔지 알고 타오신거예요?”

“글쎄 잘 모르겠다. 내가 밤에 잠이 안 온다니까 의사가 우울증 약이랑 수면제 떼주더라.”

“여기 보세요. 부작용이 이렇게 많은데 병 떼려다가 오히려 병 걸리시겠어요.”

안 그래도 며칠전 애 둘 아빠인 심천 모 IT회사 중역이 우울증때문에 자기집 아파트에서 투신해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했던터라 나는 우울증이라는 말에 괜히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내가 밤에 잠을 잘 못자는건가? 어쩐지 약 먹은 후로 증상이 더 심해지더라. 입맛도 없고.”

“웬만하면 드시지 마세요.”

“그래야겠다. 밥 먹으러 가자.”

식당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반찬을 한바퀴 둘러본 공장장은 아침에 먹고 남은 찐빵에 생 양파와 되장만 잔뜩 식판에 담아가지고는 내가 미리 잡아 놓은 테이블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왜 밥을 안드세요?”

“차라리이게 나아. 에휴, 저 요리사 진짜 머리 아프다.”

공장장은 찐빵의 껍질을 발라내며 투덜거렸다. 옛말에 소도 부려먹으려면 먼저 여물부터 든든히 먹여야 한다고 했건만 이놈의 회사는 사람을 소보다도 못한 취급을 한다.

“사장님이 데려온 요리사인가봐요?”

“알게 뭐야.”

“그러니까 다들 밥먹는게 고역이여도 아무말도 안하죠.”

“사장은 그런거 신경도 안 써. 자기는 여기서 1년에 한끼 먹을까 말까인데. 집에 있을 때는 남편이 쉬는 날만 되면 보양식을 해줬는데. 그때 해줬던 음식들 먹고 싶다.”

“이곳 음식은 입에 맞으세요.”

“그럼.룡정시내에 있는 냉면이랑 불고기랑 너무 맛있던데?”

공장장은 앙꼬도 없는 뻑뻑한 빵을 질겅질겅 씹으며 대답했다. 보는 내가 목이 메일것 같았다.

“어때? 며칠 해보니까?할만 해?”

“아직까지는 괜찮아요.”

“내가 인터넷에서 보니까 젊은 여자애들 좋은데 시집가려고 공부한다며? ”

“그…런 경우도 있겠죠 뭐.”

“공부보다 성형.”, “지식무용론”같은 신조어들이 난무하는 판에 현실에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자를수 없어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러니까 우리처럼 얼굴도 안되고 학벌도 안되는 사람들은 이렇게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 팔자인거야.”

(…실례지만 그 ‘우리’에 나도 포함되는 겁니까?)

“나는 20살에 사회에 나온 후에 한번도 8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저번 회의때 공장장은 기술원들의 무책임한 태도를 질책하면서 본인의 경력을 대충 읊었었다. 자기는 국내의 한 방직공장의 재봉공으로 시작해서 동남아의 한국패션회사에서 관리자의 자리에 오르고 오늘날 공장장이 되기까지 한번도 특진을 한적이 없고 이 자리까지 한발한발 착실하게 올라왔노라고, 보고있지 않아도 다 아니까 우리한테 꼼수를 부리지 말라고 했었다.

정말 그의 말대로 ‘요즘 젊은것’들이 고생을 못 견디는 것일까?

그 날 저녁, 기술원들도 하나 둘씩 퇴근하는 시각, 공장장은 형광펜으로  체크해가며 완성품의 실제 치수와 작업지시서에 적힌 치수를 꼼꼼하게 비교하고 있었다.

“라인에 가서 이 세개 패턴의 셔츠를 각각 한장씩 가져와.”

공장장이 샘플종이에서 3개의 서로 다른 패턴의 천을 가리켰다.내 눈엔 다 비슷비슷해 보였다.

“잘 봐.헷갈리지 말고.”

나는 16개의 봉제라인을 뛰어다니며 샘플지의 패턴들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 2개는 그래도 쉽게 찾았는데 나머지 하나가 좀처럼 눈에띄지 않았다. 샘플지를 갖고 올걸.나는 또다시 라인들을 헤집고 다녔다.

“여기요.”

나는 내 눈에 같은 패턴으로 보이는 마지막 셔츠까지 찾아서 공장장앞에 내밀었다.

“어디 보자.엥? 잘못 갖구왔어. 이거 아니야. 다시 갔다와.”

내가 이럴줄 알았다. 어째 찜찜하더라니. 나는 또다시 주먹을 부르쥐고 라인 사이사이를 뛰기 시작했다. 4만평방미터라는 공간의 위엄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이거 맞습니까?”

(이번에도 아니면 내가 확…)

“어,이번엔 맞게 갖고왔네.”

"휴~"

그는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잘 봐둬.앞으로는 이거 다 니가 해야 되는 일들이야.”

“네…”

“근데 공장장님.”

“왜?”

“공장장님은 보통 몇시에 퇴근합니까?”(사실은 내 퇴근 시간을 묻는거였다.)

“지금은 안 바쁘니까 10시,늦어도 11시면 퇴근할수 있는데 오더가 많아지면 1시가 될지 2시가 될지 장담 못해.”

‘로동법’제 36조는 하루 근로시간을 8시간으로, 일주일 근무시간을 최대 44시간 이하로 제한하고 초과부분은 모두 야근으로 친다. 단 기업의 경영수요나 ‘특별한이유’때문에 부득이하게 근로시간을 연장해야 할 경우 하루에 최대 3시간까지 연장근무가 가능하되 한달 누적 야근시간이 36시간을 넘지 못한다(‘로동법’제41조). 그리고 어떤 출근제도를 실시하던 기업의 로동자에게 야근수당을 지불해야 하며 주중에는 1.5배, 주말에는 2배, 법정휴일에는 3배의 월급을 지불해야 한다(‘로동법’제44조). 취업준비생들과 직장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지만 쉬이 입밖으로 꺼낼수 없는 홍길동 같은 법률조항이다.

그러니까 법대로라면 ‘855’기준 기본월급을 3000원이라고 가정했을때 이 회사의 통역들은 아무 이유 없이 인당 매달 2030원의 월급을 떼이는 셈이다.

“공장장님,여기 모든 사람들 다 일주일에 하루 쉬나요?”

“원칙상으로는 일주일에 일요일 하루 쉬는데 조선(북한)사람들이 귀국하거나, 그 사람들 2달에 한번씩 평양에 돌아가거든,비자때문에. 그럼 그번 일요일은 못 쉬지. 그리고 조선의 명절 같은 때 휴식하게 되면 일요일에도 출근해야 되고. 그리고 출고날짜가 일요일로 잡혀있거나 고객이 오더를 일요일에 내리면 못 쉴수도 있고. 저번달에는 한번밖에 못 쉬였어.”

“그럼 명절때나 법정공휴일에는 어떡합니까?”

“여기는 기본적으로 휴가가 없어.”

“설에도요?”

“응. 쉰다 해도 길어야 음력설에 3일 정도?  5.1절이나 국경절에는 기본적으로 쉬지 못해. 외지 사람들은 1년에 3번 집에 갈수 있고 회사에서 왕복 교통비도 제공하는데 현지 사람들은 아마 집에 갈수 없을거야. 우리가 조수를 뽑은 이유도 나 없을때 내 일을 대신 해줄 사람이 필요해서야.”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국경절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여행지를 검색하는 사람한테. 누구를 탓하리오.오기전에 이런것들을 자세히 체크하지 않은 내 탓인것을.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이곳이 오래 일할 곳인지 아닌지 금방 판단이 선다. 하지만 나는 이고 지고 온 짐들이 아까워서 그래도 한달은 버터야 겠다고 속으로 되뇌이였다.

“쉬게 해줄거야. 내가 사장한테 잘 얘기해줄게.”

공장장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인츰 말을 바꾸었다.

“다됐다. 자 이제 이거 다시 원래 위치로 갖다 놔.”

공장장은 웃으며 세개의 셔츠를 나한테 떠넘겼다.

“네?네…”

(이런!)

회사건물이 큰게 직원들한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이제 완성반 가자."

발바닥에 불이 나게 셔츠를 원래 있던 자리에 갖다놓고 막 숨을 허떡이며 뛰여오는데 공장장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기요, 좀 쉬었다 하면 안될까요?)

완성반은 내일 출고를 앞둔 제품의 막바지포장이 한창이였다. 완성반의 책임자는 회사의 부공장장도 겸하고 있는 사람으로 뼈만 남은 앙상한 체구에 등이 활처럼 굽은 예순 가까이 되는 할아버지였다.

“류공장장, 오늘 어떨것 같습니까?”

“모르죠. 밤을 새서라도 맞춘다는데…”

“어제도 2시까지 했다면서요?”

“네.”

“그럼 안되죠. 갑시다. 저쪽 사장님을 만나야겠어요.”

봉제라인은 출고를 맞추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아이고 사장님.”

공장장은 조선측 사장한테 손을 내밀었다.

“어이구, 공장장님 아직도 안 들어가고 있었시오?”

“사장님, 지금 몇개 남았습니까?”

“한 200개 정도 남았나? 아, 요건 팔만 달면 되니 오늘 밤을 패서라도 오다는 꼭 맞추겠으니께니 걱정 마시라요.”

“이렇게 합시다. 어제도 애들이 2시까지 했는데 오늘까지 밤 새면 너무 힘들겁니다. 그거 남은거 저기 다른 회사에 넘깁시다.”

“아니, 괜찮시오…”

조선의 사장은 한사코 거절했다. 조선 측은 완성한 오더의 수량으로 인건비를 받는다. 줄어든 오더는 곧 차감된 돈의 액수를 뜻한다. 때문에 가끔 조선업체끼리 오더를 놓고 싸우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애들은 괜찮을지 몰라도 이분이 못 버팁니다. 봉제쪽에서 2시에 끝나면 완성반은 진짜 밤을 꼴딱 새야 됩니다.이분이 년세가 있으셔서 며칠 련속 그러는 건 무리입니다.”

“아니, 우리가 거의 다 한걸 왜 넘기라 그러나?”

사장의 말에서 슬슬 역정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같은 말을 두번씩 반복해야 하는 나도 짜증이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 팔 달기전 과정까지는 사장님 회사에서 한걸로 계산해드리겠습니다.”

"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사장은 못내 내키지 않는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할수 없지. 내가 졌습니다. 통역 동무, 전해주시오. 이 두분 한테 내가 졌다고. 대신 나중에 우리한테도 오더 줘야 됩니다?”

“어우, 당연하죠. 다음에 큰 걸로 드릴께요, 자.”

공장장은 또다시 손을 내밀었다.

사장이 멀어져가고 우리 셋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됐습니다, 류공장장. 오늘은 일찍 들어가셔도 되겠습니다. 어우, 벌써 11시가 다 됐네. 저것만 마무리 하고 들어가세요. 우린 가볼께요.”

“네. 잘 들어가세요.”

“네, 가자.”

“몇시까지 하는게 중요하니? 저게 다 돈인데.”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자마자 공장장이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네?”

“2시까지 하면 인건비보다 전기세랑 물세가 더 많이 나와. 여기 한달에 전기세만 45만원 나온다.”

순간 뒤통수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그러니까 오늘의 "조퇴"는 직원들의 건강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비용절감을 위한 결정이었던 것이다. 이윤창출은 기업의 존재이유다. 이윤 최대화와 비용최소화가 경영의 기본원칙인 것도 맞다. 하지만 이 씁쓸한 기분은 뭘까?

“오늘은 몇시에 끕니까?”

진즉 퇴근했어야 할 총무는 아까부터 쭉 대기하고 있었다.오늘따라 그의 손에 들려있는 일수가방과 짧은 스포츠머리와 한쪽 귀에서만 반짝이는 귀걸이가 유난히 불량스러워 보인다.

“11시에 꺼.”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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