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순간
한순간이였다!
이 모든 삶이 어찌 바로 이 한순간을 위해 달려온단 말인가?
꿈이리라… 이 한순간은…
(허헛! 별 꿈이 다 있네! 빨리 깨면 되리…)
나는 아들 민수의 손에서 한껏 비틀어진 핸들을 한번 바라보고 쓴 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나는 내 현실로 돌아가리라…)
항상 그랬다. 꿈에서 깨면 온전한 내 현실로 돌아갈수 있었다. 아무리 슬픈 꿈도, 아무리 허망한 꿈도, 아무리 행복한 꿈도 깨면 그뿐이였고 나는 내 현실을 그냥 평범하게 살아냈다.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그냥 현실이였다.
꽁꽁 언 두만강에서 놀다가 얼음구멍에 빠지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눈을 뜨면 옆에서 주무시던 어머니는 잠결에 키가 크느라고 그런다며 나를 다독여 줬고 약간 추울듯 말듯 그래서 어머니 품을 더욱 파고 들며 온 몸으로 느끼는 포근함과 어머니 살결의 따스함은 그때 내가 느끼는 현실이였다.
누군가의 발길질에도 나는 내 알량한 식량를 품에 안으며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난 죽어도 이것만은 놓을수 없어 하며 정신이 아찔해지는 순간 눈을 뜨면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이며 잠이 든 그 한적한 오후가 내 현실이였다.
언니네 집 닫혀진 문을 탕탕 두드리며 “언니, 제발 문 열어줘! 나 언니 말대로 그 사람한테 빨리 시집갈거야…근데 지금은 갈데가 없어! 제발 문 열어줘!” 산처럼 믿었던 언니에 대한 모든 실망과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모든 절망으로 슬픔을 토해내며 꺼이꺼이 울면서 꿈에서 깨여나면 남편은 나때문에 잠을 설친게 기분이 나쁜듯 무거운 이불을 한껏 펄썩이며 힘껏 돌아눕던 그 차거운 뒷잔등. 그 뒷잔등을 바라보며 숨을 죽이며 다시 잠을 청하던 그 기나긴 어두운 밤도 내 현실이였다.
그렇게 나는 꿈에서 깨면 항상 내가 속한 현실로 돌아왔고 때론 기쁘게 때론 슬프게 때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왔다. 꿈에서는 모든 느낌이 참 그리도 생생했는데 깨고나면 그 모든 느낌은 꿈에 속한것으로 돌아가고 나는 또 내 현실적인 모든 감각을 다시 떠올리며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갔다.참으로 냉정했지만 어딘가 측은한 구석이 많은 내 전 남편, 떠올리고 싶지 않는 내 처가집 식구들, 항상 사랑스럽고 미안한 내 새끼 민수…그들을 향한 모든 느낌들을 껴안고 나는 현실을 대면했다. 그리고 내 현실은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지금 이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이 나 자신은 꿈에 속하는것일가? 정녕 이것이 꿈이라면, 이 모든게 꿈이라면, 이 꿈속에서 깬다면 구경 나는 어떤 현실로 돌아가는것일가? 그 현실중의 나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사는걸가?
하지만 0.01초 사이에 전해지는 이 생생한 느낌, “으헉!” 나는 어마어마한 충격에 의해 차의 유리창문으로 튕겨져 나와 허공에 내팽겨졌다가 다시 길에 던져졌다. 머리는 아스팔트 길에 부딪쳤고 거대한 충격에 내 머리속의 모든 혈관들이 부르르 떨리며 말로 형언할수 없는 고통이 한꺼번에 닥쳐온다. 내 머리밑으로 스멀스멀 스며나오는 따스한 액체의 온기, 그리고 비릿한 냄새는 아마 나의 피 냄새리라…드디어 진정한 깨달음이 왔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모든것은 결코 꿈이 아니라는것…
내 진정한 현실은, 나는 방금 차사고가 낫고 크게 다쳤다는것이다. 어쩌면 죽음을 대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렇게 죽어가는 내가 진정한 현실중의 나였다.
“엄마!”
차안에서 아들 민수가 뛰여나오며 웨친다.
나는 민수차에 앉아 그의 혼수를 장만하러 훈춘에서 연길로 가는 길이였고 방금 큰 교통사고가 났다.
민수는 눈가를 다쳤는지 눈옆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민수는 내 몸을 흔들면서 외친다.
“엄마! 엄마! 정신 차려봐!”
(네 눈가에 피가… 네 눈을 다치면 안되는데…)
“우우우윽…” 나의 혀는 결코 내 뜻때로 돌아가지 않는다. 입을 열려는 나의 시도는 격렬한 신음소리가 되여 잡음과 함께 내 귀에 전해진다.
(아들, 네 눈가에 피가… 빨리 처치를…)
허둥허둥 전화를 찾는듯하던 민수는 내 몸우에 서서히 꼬꾸라 진다.
… …
“이 보시요! 정신을 차려요! 교통사고를 당하신것입니까? 당신의 밑에 있는 분은 당신의 어머니입니까?”
(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이 아이를 제발 살려주세요! )
“여성분이 아주 더 심하게 다쳤네요! 빨리 정신을 차리세요…어머니 가슴을 이렇게 압박하고 있으면 출혈이 더욱 심해지잖아요!”
(아니, 전 괜찮아요! 저보다도 이 아이를 제발 살려주세요…내 아이를 살려주세요,눈을 다쳤을가봐 너무 걱정이 되네요! 어서 좀 봐주세요! 어서요)
“여기 교통사고가 난것 같습니다. 지점은 해방로와 **가 교차거리입니다! 20대 남자와 50대 초반 여성이 심하게 다쳤습니다.” 행인 덕분에 드디어 신고가 제대로 접수되였다.
(얘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도움을 기다리거라… 내 영원한… 밤이 깊어지는구나!)
(민수야!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너와 엄마와 아들로 만난게 행복했어.)
혈류공급을 멈춘 대뇌회로는 내 몸이 느끼는 모든것에 대해서 더 이상 아무런 정보도 전달해주지 않았다. 뼈속까지 스며들던 날카로운 통증과 수많은 불편함과 불쾌함…머리속의 모든 흐리터분함과 어지러움, 모든 짓누르는 무거움과 웅웅거리는 잡음에 대한 번잡한 느낌이 대번에 사라지고 나는 종래로 느낀적이 없던 홀가분함을 느끼며 자연속으로 자유롭게 스며든다. 마치 내가 살아내면서 내뿜던 그 숨결이 그냥 공기가 되여 이 모든 대자연속에 스며들듯, 나무나 꽃이나 돌이나 산이나 들판이나 구름이나, 저 가슴 미여지게 아름다운 푸른 하늘…생생한 색채를 나에게 안겨주며 나한테 무한한 의미를 전달하며 나는 그들과 하나가 될것만 같다.내 존재 자체가 이 모든 아름다운것들의 진정한 의미였었다. 더욱더 자연스러운 본체로, 그 아름다움이 시작되는 원천을 향하여…나는 거기에 사로잡히듯 가고야 말것이다.
혈류에 의해 돌아가던 모든 신경전달이 멈춘 모양이다.
모든 아픔이 사라졌다. 아아~ 아프다는게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였군…
정말 모든것이 이렇게 사라지다니. 나는 그 사라지는것에 대한 아쉬움마저도 가지지 않고 떠나다니…
살면서 나는 죽는 순간을 그렇게 무서워 했다. 이 순간을 나는 어떻게 맞이하게 될가 그렇게 무서우면서도 또 그렇게 궁금했다!
보지 못하면 어떻게 될가? 들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가? 느끼지 못하면 어떻게 될가! 말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가? 숨을 쉬지 못하면 어떻게 될가? 나는 그게 그렇게 무서웠다. 그런데 무서움이란 감정도 이 몸이 작동을 멈추니 나한테 전해주지 못한다. 몸이 모든 감각과 감정을 잃으니 이토록 홀가분한것을…이렇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평안함을 내가 느껴본적이 있던가? 내가 이 살덩이를 떠메고 이 살덩이를 작동시키느라고 잃어버린 자유가 바로 이것이였나…
- 잊혀진 한순간
“복금아! 어찌 이리 갑자기 가니? 내 간밤 꿈에 글쎄 네가 길을 가다가 시커먼 웅덩이에 빠지는 불길한 꿈을 꾸고 너한테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그 꿈이 이 꿈 일줄이야…그 꿈이 이 꿈일줄이야!! 아이고~ 아이고~ 기가 막혀라! 아들을 장가보낼 준비 다 하고 이제 고생끝에 낙이 오나 했더니 어찌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이렇게…” 복실이 이모가 오셨다. 허둥허둥 달려와 엄마 몸을 붙잡고 통곡을 하신다.
아직도 따뜻한 내 엄마, 나는 이 모든게 믿겨지지 않는다. 아까만 해도 나와 혼수준비에 대해 말을 하고 내 결혼 걱정도 했는데 지금도 엄마 몸은 이렇게 따뜻한데…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나한테 이런 벌을 주는것일가? 도대체 왜…
“네가 차를 몰고 네 어머니는 조수석에 탔니? 응? 무슨 운전을 그렇게 했니? ”복실이 이모가 눈물을 훔치다 말고 치뜨면서 나한테 뭔가 퍼부으려고 했다가 애써 참는듯했다.
“…” 나는 복실이 이모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멍해졌다.
“그래 앞에 가는 차를 오른쪽으로 피했니 아니면 왼쪽으로 피했니?”이모가 내 옷을 부여잡고 뒤흔들었다.
“무슨 뜻이에요 …”기분이 너무 나빠서 화를 내려했지만 웬지 자꾸 주눅이 든다.
“아니, 그걸 왜 묻는지 몰라? 도대체 네가 앞의 차를 피하려고 차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 피했니 아니면 왼쪽으로 돌려 피했냐고? ”
“잘 모르겠어요! …”
나는 이모가 왜 이걸 묻는지 너무나 궁금하고 너무나 불쾌한데 불과 몇시간전의 일이 실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머리속이 공백으로 되다니…아무 생각이 나지 않다니…
머리가 정말로 빠개지는듯 아프다. 나도 어디가 잘못된것일가?
“하긴 어미가 새끼를 잃고는 또 어찌 살리… 바뀌여 졌다면 네가 또 어찌 살겠니?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을 네가 당하는거니? 죽은것이 불쌍하지!! 복금아! 복금아! 어찌 이리 갑자기 이리 험하게 가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렇게 급히 갈 변이라구야! 도대체 어찌 이런일이…” 이모는 가슴을 치며 통곡하다가도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나를 자꾸만 흘끗흘끗 보았다.
내 탓인가…?
나는 내 두손을 내려다 보았다.
마치 누군가가 그 기억을 지우기라도 한것처럼 그 순간을 기억할려하면 억장이 무너지게 머리속이 하얘지며 머리가 너무 아파온다. 그런데 이모 말대로라면 그 한순간 내가 핸들을 내쪽으로 틀거나 엄마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비틀거나 했을텐데…
가슴이 철렁하며 온 몸에 힘이 빠져갔다.
절때 나일리가 없는데…
- 알고 있는 한순간
자꾸만 교통대 근처에서 서성이는 민수를 정상이라고 볼수 없다. 교통대 사람들도 그를 보는척도 하지 않는데 민수는 자꾸만 싱겁게 이것저것 뭔가를 물어보는 모습이 내 보기에도 안좋아 보였다.
퇴직을 앞둔 나이 듬직한 한 늙은이가 담배를 피우며 퍼그나 푸근하게 민수를 바라보며 늘쩍늘쩍 말을 한다. 그래서 나도 약간 앞으로 다가가서 들어보았다.
“차사고가 나면 거의 절대 대부분은 조수석에서 더 큰 피해를 보니 너무 자책하지 말게.이미 반복하여 확인을 했지만 그 사고 현장 사진에서 알수 있는것은 하나도 없으니 찾아와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걸 자네도 알지 않나…”
민수가 뒤돌아서는데 힘이 많이 빠져 있었다. 돌아서며 분명 나를 보았을것 같은데 나를 외면하는지 그냥 대문을 향하고 있었다.
“민수야~ 민수야!”나는 종종걸음으로 민수를 뒤따라가며 불렀다.
“이모는 무슨 일로 왔어요?”민수가 아주 언짢게 물어본다
나는 민수의 팔을 붙잡고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민수야. 저 말을 들어라.그렇게 자책하지 말라!어머니가 주신 목숨을 잘 살아가야지! 너는 엄마를 죽인 살인자가 아니야…그런 생각 하지마! 절때 아니라니깐!”
“엄마를 죽인 살인자가 아니라고?” 민수는 자신의 등을 두드리는 내 손을 홱 뿌리치며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반응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래 내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니? 네 엄마는 너때문에 돌아가신게 아니야! 절때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이모! 한번만 다시 그 말 내 앞에서 해봐! 왜 자꾸 그말 입에 올리는데? 도대체 왜?”민수는 바득바득 기를 쓰며 소리를 질렀다.
어릴때 엄마가 보고싶다고 내 품에 안겨서 기를 쓰면서 울던 작고 까만 곱슬머리가 생각이 나며 나는 눈물이 났다. 얼마나 자책이 되고 얼마나 마음이 안좋을가! 저 말을 꺼낸 내 잘못이 크지…
“그래 알어, 알어! 네 마음이 안좋으것도 알고! 어미 없는 네가 젤 불쌍하지…”
내가 민수를 바라보는데 민수는 아직 화가 가시지 않는 모양이였다. 성격이 불같은 지 애비를 닮아서 인내심이라고는 정말로 꼬물만치도 없는 저 성격이 언젠가 일을 칠꺼라고 생각했지만 이 지경으로 일을 칠줄이야…지금도 동생 복금이를 생각하니 정말 억장이 무너진다. 한국에 가서 그렇게 고생만 하던 불쌍한 복금이를 생각하며 어릴때부터 민수를 우리집에서 키우다 싶이 했는데 집에 올때마다 정말로 외고집을 피우며 말을 듣지 않는 민수는 지금도 나는 답이 없다. 민수때문에 나와 우리 은주가 한 마음 고생을 생각하니 나도 솔직히 속이 편하지는 않았다.
“너 왜 자꾸 내 전화를 안 받니?” 나도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눅잦히며 다그쳐 물었다.
“핸드폰이 고장났어요!” 새빨간 거짓말이다.
“민수야!”나는 방법이 없이 큰 소리로 민수를 불러세웠다.
“너도 네 어머니가 세상을 뜨기 전날에 얘기를 들었으니 알고 있을것이다. 네 어머니 통장에 10만원은 내 돈이야. 그 돈은 내가 네 이모부가 또 주식에 넣을가봐 몰래 저축한 돈이야. 네가 지금 어머니때문에 마음이 슬픈것은 알고 있지만 처리해야 할 일들은 똑똑하게 양심적으로 처리해야만 한단다.” 나는 단호하고 따끔하게 민수를 다그쳤다.
“너의 한족 장모가 신혼집 장만하는 돈으로 25만을 너한테 요구하지 않았니? 네 엄마 통장의 13만은 너의 어머니 돈이고 10만원은 내 돈이고 그래서 너의 엄마는 세상뜨기 전날 나하고 네 장모한테 20만으로 어떻게 얘기해볼가 하면서 토론하고 있었어.”
“무슨 소리를 하시는거에요? 우리 어머니가 한국에서 힘들게 벌어놓은건데 왜 지금 그러세요? ” 민수가 눈을 똑바로 뜨면서 하는 말에 나는 순간 기가 찼다.
“네 어머니가 자신이 벌어놓은것이라고 그러든?” 나는 너무나 당황해서 입안 바짝바짝 말라들어가고 있었다.
“네! 차사고 나기 전날 엄마가 한국에서 힘들게 벌어 장만한것이라고 똑똑히 말씀했어요! 이모에 대해서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어요” 민수의 말 또한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어서 나는 더욱 기가 찼다.
“그럴리가! 이 에미 잡아먹은 나뿐 놈아,그럴리가!”나는 할말이 잃어졌다.
“이 살인자 놈아! 네가 엄마를 죽이고 뭘 잘했다고 그래? 너 내 돈 내놓지 않으면 널 내 동생 죽인 살인자새끼로 신고해버린다. 네가 그 한족 계집한테 장가 갈려고 이 살인극을 꾸민거지?”
“나한테는 당신같은 이모가 세상에 없어! 어떻게 나한테 항상 그런 말을 퍼부으면서 나를 이렇게 억울하게 할수 있어? 이모는 늘 그런 식으로 날 억울하게 만들었지? 변하지도 않아! 이모 여직껏 나한테 어떻게 해준걸 이모 마음이 더 똑똑히 잘 알잖아! 우리 모든 연을 끊어! 두번 다시 보기도 싫어! 난 이모 얼굴 보는것도 역겨워!” 민수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린다.
“야! 이 양심없는 자식아! 네 엄마 한국가고 내 너를 우리집에서 그리 긴 세월을 하루같이 그렇게 제 새끼처럼 키워줬는데…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네 어찌 그런 말을 퍼붓는거니? ”
“제 새끼처럼 키워줬다고? 흥! 이모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어! 두렵지도 않아?”
“야, 이 나쁜 놈아! 너야 말로 하늘이 내려다 보고 있어! 내 돈 내놔!!”
내 손은 민수의 옷덜미를 잡고 악을 쓰고 있었다.
민수는 뒤돌아서서 주먹으로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씩씩 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민수야~”나의 부름에는 더 이상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한순간
민수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허리치료를 받는 병원으로 찾아갔지만 그는 병실에 없었다. 한 오분쯤 기다리다가 그에게 전화를 하니 그는 맛사지 받으러 나와 있다고 하며 십분을 기다리라고 했지만 정확히 반시간만에 도착했다. 덩치가 크고 든든해 보이는 그의 한족 안해가 그를 부축하는척을 했지만 사실 민수의 걸음걸이는 멀쩡한 편이였다. 그 한족녀인과 처음 보는 사이라 인사를 먼저 해야 하나 아니면 민수가 뭐라고 소개하길 기다려야 하나 망설이는데 민수는 나한테 뭐하러 왔느냐고 물었다.
“허리가 많이 아프니?” 나는 나의 관심을 표했다.
둥글고 허연 어깨가 나온 옷을 입은 그 한족녀자가 나와 민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우리들이 하는 얘기의 뜻을 알려는듯 애를 썼다.
나는 민수의 한족 안해가 엄마를 잃은 민수한테 위로를 건네며 한국에서 평생스레 일한 엄마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말라고 못을 박아 말했을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차사고가 난지 이제 몇달이 지났어도 붓기가 내리지 않고 불그럭푸르럭한 그의 오른쪽 눈을 바라보며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어쩜 엄마를 잃은 민수한테는 엄마의 모든 재산을 찾아 갖는것이 상실에 대한 커다란 위로가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차사고때문에 결혼 날자가 많이 미루어진거죠?” 나는 우리의 대화내용이 궁금해하는 그녀한테 말을 걸었다.
“민수의 외사촌 누나가 되는거죠? 아까 얘기를 들었어요. 민수가 어머니때문에 많이 힘들어 해서 결혼식은 그냥 간단한 식사로 대신했어요.” 그녀가 눈을 깔며 말했다.
“아, 네~~” 나는 그녀의 말을 더 이어가지 않고 눈길을 돌려 민수를 바라보았다.
친구한테서 빌린 큰 차 차문을 열며 이모를 보며 시뚝해할 민수와 덩치도 크고 키도 훤칠한 아들을 보며 기분이 들떴을 이모를 상상해 보았다.
저 희뿌옇고 커다랗고 넙적한 저 얼굴은 부은걸가 아니면 그냥 살이 저렇게 많이 찐걸가? 나는 민수를 찬찬히 뜯어 보았다. 민수는 고개를 숙인채 그의 두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은주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내 손으로 내 엄마를 보냈다고…”
민수의 눈에서 커다란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아직도 교통대를 찾아가니? ”
민수가 고개를 들어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괴롭게 한숨처럼 내뱉었다.
“생각나지 않아서…”
민수의 한쪽 눈은 점점 정기를 잃어가는 듯한 느낌이였다. 약간 느릿한 반응은 민수가 뭔가를 점점 잃고 있다는 감이 들었다.
정적속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흘러가고 흘러오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에 대해서 얘기를 먼저 하지 않았다.우리 둘은 그것에 대한 감정을 느낄 마음이 혹은 느낄 여유가 혹은 느낄 용기가 없었다.
“교통대에 가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걸 알아! 휴~” 민수가 내뱉었다.
“이모는 잘 지내?” 민수가 뒤이어 물어온다.
“치매가 더 심해졌지… 아직도 네 엄마가 우리 집에 두고 간 옷을 인형처럼 품에 안고 주무셔! 때론 네 엄마 이름을 부르며 울음을 터뜨리지… ”
나를 바라보는 민수의 눈에 더 크게 눈물이 고인다. 남자인 민수가 이렇게 눈물이 많다니…
“너도 엄마 보고 싶어 어찌 사냐고 그러다가 또 너한테 된욕질이고… 너 우리 엄마 성격 잘 알잖아! 아직도 난 맨날 욕 얻어 먹어!”
“난 이모가 나를 오해하는게 싫어서 발길을 끊은거야! 이모 신체건강도 사실 엄청 걱정이 되는데…”
“오해?” 내 마음에는 심한 파문이 잃었다.
“아니야! 됐다… 지난 일을 말해선 뭐해…난 너하고까지 이러고 싶지 않아! ” 민수는 담배를 한대 꺼내서 문다.
“나하고 까지 뭘?” 내가 되물었다.
“너 이럴려고 나를 만나러 온거니?” 민수가 갑자기 굳어진 표정으로 정색을 한다.
시간은 내 머리속에서 강물처럼 흐르고 흐른다. 그때의 그 시간은 거대한 충격에 물렁물렁해진 이모의 뇌속에서는 어떻게 흘러갔을가?
“너 내 초중 동창 향화 생각나지? 저번 겨울에 차사고 난…”
민수는 그냥 고개를 숙이고 있다.
“너의 차사고랑 비슷한 케이스였는데…”
무슨 실마리를 찾듯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민수의 눈에는 빛이 났다.
“그날 만삭이 된 몸으로 남편이 차를 몰고 시댁에 가는 길이였는데 눈이 많이 내려서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웠고 차가 앞에 가던 트럭을 박았대…”나는 민수의 눈을 더욱 깊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핸들을 돌려 자신은 즉사하고 향화는 겨우 생존을 했지!”
민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민수는 애써 태연한듯 했다.내 마음속 깊은곳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부르르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사람이 핸들을 돌려…자신이 즉사해…?”민수는 떠듬거렸다.
“너 나한테 이 말을 하러 왔지? 기어이 이 말을 하러 왔지? ”민수는 악을 바득바득 쓰면서 나한테 고함을 질렀다.
……
(네가 그 돈을 가져가지 않았더면…네가 방금 이 모든걸 오해라고 하지만 않았어도…)
나는 민수한테 미안한 마음이 드는것을 애써 참으며 방금 내 뱉은 어마어마한 말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난 사실을 얘기했을 뿐이다. 나는 애써 내 마음을 정리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사실을 얘기했다.
(네가 그 돈을 가져가지 않았어도…)
나는 솔직히 힘든 일이 생길때마다 웬지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드는것을 멈출수가 없다. 민수가 그 돈을 가져가지 않았더면 엄마의 치매가 요 몇달채 더 심해지지 않을수 있지 않을가?
민수가 그 돈을 가져가지 않았더면 요즘 좀 더 푼푼하게 엄마를 보살펴 드릴수 있지 않을가?
나는 민수가 어떻게 태연한척 버티여 내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주 어릴적, 민수가 우리집에 와 있을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민수와 그의 어머니 일로 싸우면 나는 무서운 마음에 민수한테 빨리 너의 집으로 가라고 새 된 소리를 질렀고 민수는 몇초간 꼭 방금 했던 저 표정으로 태연한척 버티여 내다가 말없이 구석에 머리를 틀어박고 쭈크리고 앉아서 주먹으로 터져나오는 울음을 막으며 훌쩍거리군 했다. 나는 그때 민수의 모습이 병든 강아지 같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약간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저 태연함뒤에 무너져내리고 있을 민수의 영혼…난 이제 더 이상 민수를 만나지 않을것이다. 화도 나고 미안하기도 하고, 민수도 나 자신도 싫어지는 이런 복잡한 감정괴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민수와 나 사이를 이렇게 가로막고 있는 이 감정괴물을 이젠 더 넘어설 방법도 넘어설 생각도 더 이상 없다.
내가 정말 그리 잘못된 말을 하긴 한걸가? 그럼 희미해지고 있는 내 엄마의 영혼은 도대체 어떤 형체일가? 나는 엄마한테 갔다. 내 양심의 불안함을 눅잦히고 싶어졌다.
엄마는 귤껍질을 발라내기 바쁘게 걸탐스럽게 입에 넣기 시작했다.
(우리 어머니 마음속에는 굶은 여자아이가 살고 있나 봐!)
치매기가 있으시면서부터 갖은 욕설과 함께 유난히 식탐이 많아지신 어머니에 대한 나의 결론이였다.
“엄마, 나 오늘 민수를 만났어! ”
“우리가 자기를 오해했다고 우릴 만나기 싫다네…나 원참! 우리가 뭔 오해를 한거야? 지가 우리 돈 가져간거잖아! 왜 그걸 오해라고 말하지? ”
엄마는 아무말도 안하시고 귤만 드신다.이미 네개째 귤을 발라드시고 계셨다.
“엄마, 어떻게 생각해? 엄마, 민수가 정말로 못돼 먹었지? 민수때문에 엄마가 이렇게…”집에만 계셔서 피부가 허연 엄마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났다.
“씨~ 그 민수만 아니여도… 엄마! 내 오늘 가서 한번 혼내주고 왔어! 아마 마음이 되게 괴로울거야!”
엄마는 귤물이 흐르는 입을 닦으시면서 나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였다.
“이년아! 네가 뭘 잘했다고, 민수 걔를 쫌 고만둬라! 넌 예전부터 맨날 민수한테 화풀이하고 걔랑 걸고 들고…민수는 이젠 기다릴 엄마도 없는데…”
치매가 걸린 엄마는 우는 모습도 몹시나 흉하다.
“난 그냥 사실을 말했어. 같은 차사고인데 차를 몰던 향화 남편은 즉사하고 차를 몰던 민수는 살아남았어. 그래서 이모가 세상뜨고…그건 사실이잖아! 난 그냥 그 사실을 얘기하고 왔어. 거짓말도 아니고 ”
“네 그 고약한 심보나 좀 봐라! 아무리 그래도 너랑 한 집에서 자란 한집식구 같은 사촌인데…” 엄마는 기가 막힌지 말을 잇지 못하셨다.
나는 엄마를 찬찬히 보았다. 엄마의 말씀중 어디까지가 치매 증상 때문이고 어디까지는 아닐가?
“엄마! 민수가 엄마가 어떻게 모은 돈을 가져갔는데…엄마도 민수가 미우면서! 왜 나한테만 이래? ”나는 너무나 억울한 마음에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그 민수녀석! 지 아비 닮아서 인정머리가 없긴 하지!어쩌다 이리 큰일 쳐가지고…지 어미 잡아먹은 놈같으니라고~ ”
“오늘 병원에 가보니 아래우 명품을 차려입고 새 신발 신고 맛사지 받으러 다니고 그러던데…우린 사는 꼴이 이게 도대체 뭔데? 엄마가 그 돈 때문에 마음 고생하다 이렇게 된걸 생각하면!”
엄마와의 대화가 헷갈렸고 나는 마음이 더욱 복잡해졌다. 아프시기전에도 이런 종류의 대화에서 엄마 내 편인적이 결코 없었다. 엄마는 항상 선생님 편이거나 나와 다툰 친구 편이거나 민수편이였지 정말 한번도 내 마음을 제대로 봐줄려고 하지 않았다. 철이 들어서는 그게 엄마가 어찌하나 나를 바르게 키울려는 노력이라고 리해할려고 했고 후에는 모든 상황에서 딸의 잘못만 보는것은 어쩜 엄마의 자격지심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틀리던 맞던 나는 엄마앞에서는 항상 틀린셈이였다.
어머니는 귤을 다 드시고 포만감을 느끼시며 침상을 정리하며 주무실 준비를 하신다. 어머니는 잠에 빠져드신다. 쭈글쭈글한 어머니의 피부, 집에만 생활하셔서 피부는 희고 빛까지 뿌리지만, 입은 하 벌린채로 주무시는 모습에 나는 만감이 교차한다. 방금 나한테 퍼부으신 그 욕설조차도 꿈결에 벌어진 일이듯 어머니는 잠에 빠져 계셨다.
5. 버려진 한순간
“엄마! 가지마! 가지마!”
나는 발을 죽어라 동동 구르며 엄마의 다리에 매달리며 그리도 기를 썼다.
“민수야!엄마 말 좀 들어! 엄마 열밤만 자면 꼭 돌아올게! 은주랑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응!” 엄마는 입술을 꼭 깨물며 나를 내려다 보더니 쭈크리고 앉으며 꼭 안아준다. 목더미로 흘러내린 엄마의 머리카락사이 그 익숙한 포근한 살냄새에 더욱 울컥 눈물이 났다.
“엄마! 어떻게 하면 가지 않으수 있어?”나한테 열은 너무나 큰 수자이고 정말로 영원과도 같은 숫자였다.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물었다.
엄마는 한번 더 꼭 껴안더니 되돌아섰다.
“엄마아아아!”
나는 모든 힘을 다해 모든 간절함을 다해 고함을 질렀다. 엄마가 드디어 뒤돌아본다.
그런데 엄마의 얼굴에 온통 피가 묻어있는게 아닌가? 동공은 절반쯤이 풀려 있는데 그 눈에는 피가 가득하다. 머리의 살과 뼈가 함께 엉켜져 진흙창처럼 흐르고 온 몸에는 피투성이다.
“아아아악!” 숨이 막혀오며 머리가 부어 오르며 빠개지듯 아파오며 나는 꿈에서 깨였다. 쥐죽은 듯 조용한 어둠속에서 허연 가구들이 윤곽을 드러냈다. 내 신혼집…
너무나 많은 감당할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며칠전 아내가 어디 간다고 했다. 뭐라고 진지하게 나한테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교통대로 나가봐야 해서 후에 말을 하자고 집에서 나와버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보니 아내는 집에 없었다. 옷장에는 그녀의 옷도 없다. 그녀마저 나를 떠난것일가? 나한테 하던 그 얘기들을 좀 더 귀담아 들었어야 했나? 그런데 머리속이 너무 복잡해서 죽을것 같다.
“어머니를 죽였다고 자책하지 말고 잘 살어!”
“핸들을 돌려 그 사람은 즉사하고…”
“그런데 너는 어머니를 죽이고 네가 살아남았어!”
“이 어머니를 죽인 살인자새끼야!”
“남의 재산까지 까먹으면서 꼭 잘 살어! 얼마나 잘 사는지 이 두눈으로 꼭 보고 있을터니…”
나는 가끔 복실이 이모의 욕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예전에는 내가 미워서 하는 욕설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어쩌면 복실이 이모는 화나든 슬프던 모든 힘든 상황을 욕을 하면서 버티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나에게 향해 비수처럼 꽂히던 그 욕을 이젠 리해할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나는 참하고 온천하게 자란 은주한테서 그 서슬 푸른 복실이 이모의 얼굴을 보았다. 부모도 아니면서 부모인척 이모와 이모부도 힘들었을거라는 생각을 요즘 해본다. 친형제도 아니면서 친형제인척 은주와는 많이 싸웠다. 나는 그들과 부대끼며 나는 사람들과 지내는 방법은 배웠지만 잘 지내는 법은 배우지 못한걸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내 어머니 통장의 돈을 가졌을뿐인데 어찌 아무런 증거도 없이 이렇게 사람 마음에 대못을 박는 말을 할수 있을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증거라도 나오면 그 십몇만의 돈은 그들에게 돌려줘야 되지 않을가 남겨두려 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야금야금 그 돈도 거덜이 났다. 죄의식과 같은 패배감이 몰려온다. 엄마한테 모든게 미안하다. 잘 살려고 하는데 정말로 잘 살아지지 않는다.
“당신의 어머니가 어떻게 모은 돈인데…그 말들을 도대체 어떻게 믿어요? 무슨 증거라도 있냐 말이에요? 아들인 당신이 잘 사는게 가장 큰 효성이 아닌가요!”
아내의 챙챙한 목소리는 약간 소란스러웠다.
희붐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나는 머리맡에 놓여 있는 신경 안정제들을 바라 보았다. 꼬박 몇달동안 모아둔것이 자그마한 산을 이루었다.
나는 수도를 틀고 찬물에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옷을 입고 얼굴을 닦고 교통대 앞에서 서성거렸다.
그 노인네가 오늘에는 나올지 모르겠다. 엄마가 차사고 날때 그는 교통대대장이였지만 이젠 퇴임하고 그냥 노인네였다.
그는 퇴임이 아쉬운지 사람들이 출근하기전 새벽이면 교통대 문앞에 산책을 오군 했다. 낙엽같은것이 날려와 있으면 쓸기도 하고 그냥 뒤짐을 지고 이슥히 있다가 담배 한대를 태우고 가기도 했다.
노인은 먼곳으로부터 나를 보더니 발걸음을 약간 다그치며 가까이로 걸어왔다.
“왜 또 왔나?”
“… …”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가?”
“… …”
“그 곳은 사고 다발지역이네… 이제 다시 가보면 알겠지만 십자로이긴 하지만 그게 정확하게 모가 잘 난 십자가가 아니야. 그리고 그 길이 고속도로와 통하고 있고 인적기가 드물어 차들의 속도가 빠르거덩…”
이미 수십번, 만날적마다 나한테 해준 말이였다.
아직 새벽이라 주위는 조용했고 길가는 행인들도 드물어 트럭들이 드문드문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전속력을 내며 쌩 하고 지나갔다.
나는 지나간 트럭의 뒤모습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한번의 잘못은 대가가 엄청나지만 다 이겨나갈 힘도 있어! 자네 아직 젊지 않는가? 그렇게 죽고 싶은 만큼 자네는 살고 싶은거네! 그 누구보다도 자네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는가? ” 노인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나는 그 노인의 푸근한 눈길을 보며 그 살고 싶었던 간절함이 생각났다. 어쩜 그 간절함으로 그 순간 나는 핸들을 나의 쪽으로 돌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맞아! 머리속에 공백으로 되였던 그 한순간의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는 그때까지 그 미래의 한족 며느리가 참하다고 감탄을 하시다가 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계셨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뭐라고 말할까 생각을 하다가 앞을 보니 갑자기 멈춘 앞의 차를 향해 나의 차가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나는 그 순간 자신한테 유리한 쪽으로 핸들을 비튼 나의 행동에 너무 놀라고 당황했고 엄마는 거대한 충격에 의해 이미 창밖으로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엄마는 그렇게 튕겨나가면서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 미소가…무슨 의미일가? 왜 그렇게 미소를 지으셨을까?
엄마의 입술에 스치는것은 미소였는데, 엄마의 눈길에는 슬픔이 어린듯, 원망이 어린듯…아~ 이 모든게 너무 또렷하게 생각이 나며 정말 심장이 아파오며 고통 스러웠다.
나는 주먹으로 터져나오는 울음소리를 억지로 막으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엄마가 창문으로 튕겨져나가는 그 순간의 저 눈빛…
밤이면 밤마다 꿈속의 그 엄마의 눈에서는 눈물이 고이고 피가 고이지 않았던가…
“엄마… 다 내탓이야! 내 탓이 맞아! 내가 핸들을 돌렸어! 미안해! 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 죽겠어! ”
“엄마아!!!”
입으로 혀로 절때 번져지지 않던 그 그리운 부름이 새여나왔다.
열밤만에 결코 돌아오지 않았던 엄마…이모와 이모부가 부부싸움 하며 은주가 나를 집에서 나가라고 문밖으로 밀던 그 숨막히게 무섭고 떨리던 나날들에 모든 슬픔과 소외감으로 수없이 그리웠던 “엄마”, 그러다 다시 아빠한테 보내지고 할머니한테 보내지면서 할머니한테서 들은 엄마를 향한 수없는 욕설, 담임선생님댁이라는 그 어려운 곳에까지 보내지면서도 결코 돌아와주지 않은 엄마…
내가 진정 그리웠던것은 엄마와 같은 그 사랑이였는데… 엄마의 사랑은 왜 나한테 이렇게 어렵게 꼬이고 꼬이기만 한것일가?
“엄마…!”
모든 원망과 그리움과 미안함으로 범벅된채 나는 엄마를 그려보았다. 다섯살적에 엄마를 한국으로 떠나보내며 모든 간절함으로 엄마를 부르던 내 안의 그 남자아이의 또랑또랑한 외침이 세상을 잃는듯한 슬픔으로 내 가슴에서 터져나왔다.
“엄마아!”
밥 차려주시는 엄마, 재워주시는 엄마, 학교에 다녀오면 기다리는 엄마,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시는 엄마, 가끔은 야단도 치시는 엄마, 함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는 엄마…
나는 이 모든 엄마를 잃어버렸다!
“엄마,그때 왜 떠난거야? 난 엄마가 다 돈때문에 떠난거라고 엄마가 벌어놓은 모든 돈을 다 뺏고만 싶었어! 엄마…우린 왜 이렇게 되여야만 해?”
“엄마 근데 미안해…엄마 다 내탓이야! 다 내탓이야! 엄마한텐 내가 태여난것도 엄마한테는 힘들었지? 난 그걸 알아…”
“난 태여나지 말았어야만 했어…”
지금 이 순간은 살아있다는 자체가 너무나 괴로워진다. 저 거대한 트럭들이 지나다니는 아스팔트길, 또 한번의 차사고에 그냥 몸을 맡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날, 피투성이가 된채 아스팔트길에 누워있는 엄마를 향해 허둥지둥 달려갔을때 마지막 숨을 모으면서 나를 그렇게 걱정스레 바라보던 엄마의 그 눈길이 선하게 떠오른다.
한국으로 가신다고 돌아서시던 그 걱정 어린 젊은 엄마의 눈길과 꼭 같은…
내가 마음으로 들은, 결코 귀로는 들려지지 않는 그 다정한 말소리…
“민수야!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너와 엄마와 아들로 만난게 행복했어.”
피범벅으로 된 엄마의 젖가슴에 머리를 파묻었을때 엄마의 가슴으로 울린 엄마의 말소리였다!
6. 진정으로 마지막 한순간
나는 죽음의 한순간을 넘어서서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내 모든 부끄러움이 피여오르는 그곳… 오직 순결한 양심만이 대면할수 있는 그곳…
아들, 영원의 끝에 가닿게 되니 나는 그 한순간의 나 자신을 보는구나…
그 한순간, 그 한순간 그 허구픈 웃음 대신 “이 10만원의 돈은 이모의 것이야. 우리것이 아니야! 꼭 돌려줘야 해!” 그 양심적인 말을 똑바로 할수 없었던 나, 그냥 너한테 미안한 마음과 네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어영부영 어찌 처리해야할지를 모르고 이것 저것 생각하면서 “이제 보자”이러면서 그리도 머뭇거렸던 나, 그 한순간 나는 누구였을가?
“돈도 중요하지만 성실한 네 능력으로 결혼생활을 잘 할수 있어!”이렇게 너를 믿어주며 축복해주며 이 얘기를 결코 할수 없던 나는 누구였을가?
복잡하고 이해할수도 없는 계급투쟁이요 정치투쟁이요 하던 그 시절, 배만 무지무지 고팠던 그 시절, 쥐굴속에서 나온 콩 몇알을 가지고 언니와 한알이라도 서로 더 먹으려고 기를 쓰면서 나는 가난이 주는 비참함을 알게 되였지…가난이 얼마나 두려운것인지 가난이 주는 허기가 얼마나 괴로운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게 되였어. 난 그런 어린시절을 보냈지!
나는 너한테 모든 사랑을 주는 엄마라는 존재로 보여졌을지 모르지만, 너는 그렇게 기대를 했을지 모르지만 사실 나는 그렇지 않아. 나는 내안에 생생하게 살아 숨쉬며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공포에 어린 눈길로 어서 빨리 모든 불행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그 배고픈 여자아이의 광기에 휘둘리는 의지할데 없는 힘겨운 아낙네였어.
다시는 그런 괴로움을 경험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은 나에겐 한 인간으로서 가질수 있는 존엄과도 같은것이였어. 그러다가 세월이 좋아지며 나는 돈이 가져다주는 위력에 어마어마하게 감탄을 했지. 이 모든걸 겪어보지 않는 너희들 세대는 그걸 이해할수가 없을거야. 그냥 탐욕이라고 돈을 따른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배고픈 고생을 해보지 않은 너희들은 결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 우리가 돈을 위하여 가정이든 무엇이든 소중한 가치를 버리는 가련한 인생으로 여겨지겠지?
영원히 돌아가고 싶지 않는 그 나날에 대한 두려움에서 도망치는것 그건 나에게 생존 방식이였어. 어릴적 가난은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었거든. 그런데 아쉽게도 그 불행은 나 자신한테로부터 도망치면서 나는 나한테 가장 소중한 또 다른 생명인 너한테서도 멀어져 갔구나.
아들, 너와 엄마로 만났는데 나는 결코 너를 사랑해줄줄 모르고 내 그 배고픈 여자아이를 품은채 그 아이를 위로하느라 난 내 몸을 살아내느라고 바빴구나… 내가 겪었던 모든 가난의 세월들이 어찌 이렇게 내 인생의 괴물이 되여 이리도 나를 괴롭혔을가? 나도 생각하면 참으로 억울해. 그 가난의 세월에 대한 이 억울함과 무서움…그게 도대체 누구의 책임이라고 할수나 있을가? 우리는 그 누군가의 책임도 물을수 없는 거대한 공포에 휘여잡혀 살고 있지…그 공포는 너무나 커서 우리는 순간순간 감지하면서도 순간순간 체념을 하고 사실 감지할수마저도 없었다고 력사에게 얘기를 할지도 몰라,들어주는 귀라도 있다면… 하지만 우린 알지, 뭔가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순간에는 그 괴물의 손아귀가 덮칠것이라는것을…그래서 그 지난 날, 내 안에서 그렇게 보채고 있는 그 배고픈 아이가 그리도 억울하면서도 나는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을수가 없었어. 더 말도 안되는것은 책임을 묻는척을 했고 책임을 지는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듯 쇼를 하면서 행복한척을 했지. 그 책임을 물었더면, 그래서 모든게 명확해 졌더면 나는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한테 그 시대를 바라보며 현실속의 책임과 용기를 북돋을수 있는것은 결코 없었어. 아무도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알려주려 하지 않았고 지극히 평범한 우리는 그러한것들의 의미조차 알수 없었고 모든 인과관계가 그토록 불분명한 세월을 살면서 선택했던것은 오직 나를 보호하기 위한것, 어린 시절 겪었던 그 굶주림으로부터 뛰쳐나가는것이였어. 겉으로는 괜찮은 척을 했고 속으로는 진저리를 쳤어.
그 가장 큰 대가로 나는 내가 무엇을 잃어가는지 나는 알수가 없었어. 내 그 마음속 깊이에 깔려 있는 두려움때문에 나는 내 소중함을 생각하기보다는 도망치기에만 급급했지.두려움과 불안함으로 하는 선택들은 어리석은 선택들이였지.그 선택중에는 네 아버지와의 리혼이 있었고 한국행이 있었고 수많은 크고 작은 도피가 있었어.
그 지난 세월의 무거움을 너한테 이렇게 물려준 이 엄마는 부끄럽구나! 아, 수많은 부끄럼중에 어찌하여 유독 이 부끄러움의 고통만이 영혼에 속한것일가? 내 영혼은 어찌 이 부끄러움만 이리도 깊이 느끼는것일가?
아들, 네가 저지른 일은 잘못이지만… 그 잘못이 다 너의것이 아니라고, 거기에는 이 엄마가 물려준것이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물려준것 또한 다 이 엄마의 잘못이 다가 아니라고 하면 넌 이해할수 있을가? 넌 이 엄마가 살아온 그 세월을 이해할수 있을가? 그 시절, 그 사회, 그 역사, 한 인간의 본능과 본성, 엄마 나름대로 받쳤던 그 최선과 그리고 인간으로서 어찌할수 없었던 실수, 절제되지 않은 욕구들, 책임을 피하며 살아왔던적도 있었지만 한 인간으로서 할수 있는 한 진실하게 사랑하려고 애를 썼다는것, 그러면서도 인간에 대해서 그리도 무지했지만 나는 또한 인간적으로 살아냈다는것…
넌 정녕 사랑을 갖고 모든것을 품으며 이 모든 모순투성이의 인간을 이해할수 있는 통찰을 가질수 있을가? 넌 그런 사랑을 가지고 또 네 자신을 바라보며 네 소중함을 깨달을수 있을가? 네 실수와 잘못을 반성할 용기마저도 너 자신을 향한 사랑임을 넌 깨달을수 있을가?
아들, 그 핸들을 그렇게 돌리고 네가 살아남았다는게 이 엄마는 이렇게 고마운데 너는 지금 살인자라는 자책감에 악몽에 시달리는구나…너의 그 악몽속에서 이 엄마를 닮은 형상을 하고 머리를 흩날리며 억울하다고 네 목을 조르는 사람은 절때 너를 사랑하는 이 엄마가 아니란다. 그것은 이 모든 사건에 놀란 너 자신, 이 일로 인하여 저도 모르게 이모의 재산에 손을 댄 너를 용서할수 없는 무의식속의 네 자신, 이모의 저주에 놀란 너 자신과 나를 향한 그리움으로 생겨난것이란다. 제발 그걸 알아주길! 난 그렇게 네 목을 조를 정도로 너를 원망하지 않아… 사랑하는 아들, 난 내가 죽고 네가 살았다는게 정말로 기꺼운데 넌 이런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수 있을가?
다만 내 영혼 깊은곳에는 참을수 없는 괴로운 궁금증 하나가 피여나는구나…
그 한순간, 그 한순간… 이 엄마를 외면하고 핸들을 돌린 너한테 지극히 같은 인간으로서 약간의 씁쓸함을 느낀건…그 한순간,나는 나를 안아주던 내 엄마가 생각이 났고 너에게 젖을 먹여주던 내 젊은 시절이 생각이 났고 사랑하려고 무지 애를 썼던 너의 아버지도 생각이 났어.
그 한순간 너는 핸들을 돌리지 않을수 있었을가?
그 한순간을 우리는 우리 손으로 어떻게 할수는 있을가?
인간의 본능은 그렇게 통제하기 어려울때도 있지 않니?
엄마와 아들로 만났지만 우리는 다 주어진 한 몸 잘 살아내고 싶은 사람이였어! 너는 아직도 그 몸을 살아내고 있고 나는 네 덕분에 그 한몸을 벗어났지.
네 덕분에…
아들, 모든 인간은 모두 그렇게 살아! 오직 자신한테 주어진 생명에만 초점을 맞춘채 때론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며 혹은 이타적으로 되고 싶어하며… 그건 인간이 벗어날수 없는 운명과 같은 모지름이야! 이걸 직면할 용기를 추스릴수 있을때 인간은 진정한 존엄을 알게 되지.
세상에 일어나는 가장 선한것과 가장 악한것은 다 이 용기에 있지 않을가? 그런데 선과 악의 개념자체를 부수고 오직 인간을 그 존재 자체로 아름답게 볼수만 있다면…모든 인간사이의 역동에 선과 악의 구조가 아닌 사랑의 의미를 부여할수만 있다면…그렇게 실수를 하며 사랑을 하며 인간다워질수 있다면…
아아~ 나는 그렇게 살지를 못했지만 오직 너는 그렇게 되길…
오직 너는 그렇게 되길!
오직 너는 그렇게 되길.
나는 서서히 내가 가야할곳을 향하고 있구나.
내 이 부끄러움은 그 아름다움을 감당이나 할수 있을가?
그 궁금증에 내 영혼은 한없이 떨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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