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이리도 휘영청 밝다니, 참 측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촉규화蜀葵花처럼 작고 유약한 치를 보고 있으면 절로 드는 생각에 무방비해졌다.

– 집중해.

아, 다만 이제 그는 더이상 작고 유약하지 않을뿐. 그는 이젠 접시꽃이 못되었다. 무엇이 그를 바꾸었을까. 결코 경멸할수 없는 시간일까. 그렇다면 시간은 필히 잔인하다.

– 다시…

검집에서 이미 뽑혀진 검 위로 빛 한줄기 비친다. 지금은 비무比武를 하는것이 아니다, 다시 상기시키려는 몸짓이라기엔 지나치도록 고요하고 청아하다.

– 돌아올순 없는거지.

조금의 침묵이 이어진다. 그와 함께 떨림을 멈추는 속눈썹이 스르르 열리며 뒷말을 마저 뱉어내고야 만다.
분명 묻는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무거웠으므로. 또한 확답이라기엔 애절함이 깃들어있었다.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토해내듯 하는 말은 미뤄둔 모든 말들을 다 물리치고 가장 절실한 답만을 원했다.

– 허.

비식 멋없이 튀어나가는 헛웃음이다. 그답지 못하다. 가볍게 일기 시작한 바람이 연한 검은색을 띠는 머리칼을 고운 옷감위로 흩뿌렸다. 그리고 그런 바람에 동조하듯 제 정인쪽에서는 체념의 뜻을 담은듯한 헛웃음이 흘러나간 것이다.

– 잊지 못하는 것은 걸었던 길뿐이라.
– 충분히 다시 걸을 수 있어.
– 꽃이름을 가진 곳에 살고 싶었어.
– …
– 헌데, 지금은 온통 절벽이야.

찢어진 창호지를 통해 섞여드는 빛에 의해 적나라이 드러나는 웃음이 희미했다. 얇은 입술이 묘한 호선을 그리며 이지러지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하나의 떨림을 대변하듯 잔잔하게 파도치는 검집은 그 감정의 크기를 눈치채게 했다.

– 챙

날카로운 선공을 급히 막아내는 검이 유연하게 춤을 췄다. 그는 곧바로 뒷발을 내딛어 거리를 벌린다.
예상컨대 그 까닭은 절절한 두려움일 것이다.

이윽고 한숨소리.
손목을 돌려 검을 바로잡는 얼굴은 변함없이 평온하다.

– 검술에선 방심이 독이라고, 몇번이고 말했던건 너잖아.

서늘한 검이 목부근까지 닿았다 이내 떼어진다. 마음만 먹는다면 반창을 입히고도 넉넉했다. 그는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형체없는 망설임만큼은 어둠속에서도 선명하므로. 크게 울리는 바람소리는 검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검을 든 오른팔로 그의 흐름을 제지하고 왼팔로 방어를 했다. 힘의 차이에서 밀려 자세가 낮아지고 있었다. 이상태로 오래 버티는 것은 무리다. 그런 그도 애써 버티고 있는 것이 분명한 모양이다. 곧이어 그 구레나룻에서 은이슬이 툭하고 떨어지는데.

– 넌.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표정을 한 그의 공격이 흐려지더라.

– 나를 꼭 바스라지게 만든다.

그리워하지 않으려 다른 길을 걷고 또 걸어도,
결국은 너에게로 향하는 다른 길이란걸 알게 되고.

– 내가 다 흩어질 즈음에야 후회하도록 만들어.

그의 검은 기어코 뺨을 베어내고 나서야 떨어졌다. 핏기를 머금은 검에 닿는 그의 시선. 그는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스친 곳에 생겨난 것은 찰과상뿐이 아니었다. 그 한기가 뼛속까지 전해지는데 비단 그럴리가 있나.
허공에서 방황하던 그의 검은 곧 꺼질듯한 등잔불의 타버린 심지를 잘라낸다. 이미 타버린 것은 그을음만 남기니까. 애석하게도 그 잔재마저 함부로 대할수 없었으므로.

파리하게 질린 그의 낯빛이 보였다. 그의 손에서 휘둘러지는 검은 늘 서정적이었다. 그 틈을 타 비어있는 어깨를 노리자 그가 몸을 낮추고 완력으로 검을 밀어낸다. 금속이 부딪치며 내는 파열음이 거셌다. 검을 든 손목까지 얼얼해졌다.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던 다리가 뒤로 밀렸다. 완력만으로 그를 이길 방도는 없었다. 몸을 뒤로 빼 얻은 추진력으로 간신히 그의 검을 밀어내니 바람빠지는 웃음이 들린다.

– 벨 수 없을거라 생각하는건 아니지?
– 이미 베어냈잖아.

이 관계를.
말을 끝냄과 함께 빠르게 겨눠지는 검을 그가 팔의 노뼈橈骨로 막아낸다. 이윽고 그가 꺼내든 단도가 검의 바깥쪽을 파고들었다. 신속한 그의 움직임에 검이 속절없이 뒤로 밀려났다. 엉킨 검들이 부딪치며 나는 소리에서 냉기가 일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도 핏기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정면으로 들어가는 공격에 그는 몸을 돌려 피해낸다. 그의 움직임은 때론 사슴같이 고요했지만 또는 범처럼 묵직하기도 했다. 마른 침이 목울대를 넘어 어렵게 삼켜졌다. 한시도 놓아주지 않고 파고드는 그의 검이 인색하리만치 집요했다. 한번, 두번, 그리고 세번. 챙- 부딪치는 검을 피해낸다.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었다.
이윽고 다가오는 검은 움직임이 크지 않았다. 다만 검날은 빠르고 정확했다. 검을 높이 치켜든 것이 실수였다. 이젠 더이상 막을 수 없었다.

– 근사한 임종을 위해 내 모든걸 탕진하고 있는거야.
– 허나,
– 때론 네 일부라 생각하던 것이 네 전부가 되어있을때도 있을거다.

그래서 그래.
축축한 말에 젖는 것은 발끝이었다.
밖이 서서히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온갖 값어치 나가는 것들이 사라졌으니 그럴만도 하였다.

검 두개를 거두고 유유히 사라지는,
검은 복면을 쓴,
그가 다리를 절뚝이며 멀어져간다.
솟구치던 순간, 영영 가라앉았으니.
그는 순차대로 사라져 갈 수밖에.

> 참斬월행 (外)

간밤 박대감네에 도적이 들었다는 소리가 온통 전해졌다. 어떤 이는 통쾌하다 소리쳤고, 또 어떤 이는 그 집안의 심지 곧은 아씨를 걱정했다. 그리고 그 아씨는 반박도, 인정도 하지 않은채로 가만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마을 아낙들은 계속하여 소리를 낮춰 서로에게 전했지만, 소문이 흉흉한건 사실이었다. 검은 복면을 쓰고 긴 칼과 짧은 칼을 하나씩 가지고 다닌다더라, 다리 한쪽을 못쓰는 병신이라더라, 원한을 품은 이가 있어 일부러 접근한 것이라더라, 같은 소문들은 연기처럼 빠르게 퍼졌다. 소문이란 것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정녕 처음으로 했다. 안부를 묻지 못해도 생사를 확인할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쓸쓸하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 가지 마시어요.

손목을 가볍게 잡아 막아서는 순이에게 웃어보이며 삼삼오오 모여있는 여인들의 뒤로 향했다.  

–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누가 다가서는지도 모르고 열렬히 담론을 나누던 이들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 어머. 아씨.
– 아씨, 몸은 좀 어떠십니까?
– 간밤에 도적이 들었단 이야기를 전해듣고 어찌나 걱정되던지요…

때에 맞지 않는 웃음이 살풋 튀어나갔다. 사람들은 언제나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쉽게 휘둘렸다. 사연따위는 그저 부속일뿐.

– 그대들은 왜 하필이면 우리 아버지였는지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고요했다. 말은 나비처럼 가볍게 내려앉았고, 또한 그 어떤 파동도 남기지 않으채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 겨울이 오려는 모양이야. 해가 이리도 빨리 지다니.
– 아씨, 지금 놓치면 다시는 보기가 어려우실 겁니다.

순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계속 옮겼다. 그에 순이도 더이상은 아무 말도 보태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이리도 모호하고 흔들리는데 어찌 붙잡아야 하는가.

빈틈없는 적요였다.
밀물처럼 몰려오는 정情이 들짐승처럼 지독스레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것은 여전히 사무치도록 뒤를 밟을 가혹함이었다.

# 错位时空, 이 노래 抖音에서 요즘 계속 들리던데 노래 넘 좋아효.. ㅠㅠ 그래서 예전에 써뒀던 소설에 호다닥 내용 보태서 이렇게 올려요. 이 노래 정말 모르는 사람이 없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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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턴

거리의 새턴은 씁니다. (+ 海子,顾城을 사랑하는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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