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는 어머니를 존경해왔다.

어머니는 아버지 지휘하의 음악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악단들에서 앞다투어 스카웃 제의를 해오던 유망한 피아니스트였다. 어머니의 연주는 언제나 누군가의 감동, 추억, 그리고 나의 꿈이였다. 내가 피아노를 시작했던 이유였으며 아버지라는 가시넝쿨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온 희망이였다. 그랬던 어머니의 피아노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던 그날, 내 피아노 역시, 봄빛을 등지며 시드는 선단화가 돼버렸다. 아버지는 엄격했고 나는 그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뛰어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냥 내가 그만 두길 간절히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잃어버릴 두번째 피아니스트가 돼버린다는 두려움에 그렇게 모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달간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는 걸 봐선, 아버지 가슴 속에도 커다란 생채기가 생겼구나 싶었다.

라일락 향이 꽃집에서 사그라진지가 두달남짓 되였다.

노아의 걸음이 끊긴지가 두달남짓 되였다.

매일 그 예쁜 손을 타던 하얀 피아노에 뿌연 먼지가 쌓이면서 다시 테라스에는 예전같던 적막이 내려 앉았다. 나역시 늘상 서있던 자리에서 커터칼을 손에 들고 베고, 찢고, 붙이고 그렇게 지내왔다. 익숙했던 것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건 내겐 문제가 아니였으니까. 어머니도 그랬고, 피아노도 그랬으니, 노아 역시 예외되지 않았다. 창밖의 어둠이 짙어지던 그날, 서둘러 앞치마를 거두어내고 어지럽게 널린 꽃잎들을 쓸어내는데 가게문이 열리는 소리가 등 뒤로 들렸다.

-…영업 끝났는데요.

두달만에 마주한 노아는 어딘가 수척해 보였다.

얼마 안남은 라일락으로 꽃차를 탔다. 노아 앞에 한잔, 내 앞에 한잔, 마주한 두잔에서 뜨거운 김이 피여올랐다.

-더는 안 보이길래 떠난줄 알았어.

-그러길 바랐어?

달그닥- 찻잔을 들어 올리는 그의 손이 느렸다.

-그럼.

그 손이 움찔, 허공에서 멈춘 찻잔이 내가 뱉은 두 글자를 그대로 당해내다 다시 테이블로 내려졌다. 잔 속에 꽃잎이 물결따라 뱅그르르 돌아쳤다. 답을 마저 이어야 할것 같았다.

-이런 작은 가게따위가 아니라, 독일에서 연주해.

그와 똑바로 시선을 맞추며 뜻을 전했다. 동그란 눈이 내게로 잠시 초점을 맞추다 이내 방향을 틀어 다른 쪽을 응시했다. 그 시선의 끝엔 유리문 너머의 피아노가 있었다.

-다들 그랬어. 진지하게 피아노 배우라고.

-…

-근데 난, 내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싶어.

여전히 차분한 그의 목소리가 나즈막히 저만의 음표를 써내려갔다.

-혜원아.

감싸쥐고있던 찻잔의 열기가 시들해질 무렵, 딱 그만큼의 온도로 그가 나를 불렀다.

익숙했던 선한 두눈엔 낯선 기운이 서려있었다. 보라빛도, 분홍빛도 아닌 그 어중간한 경계에 놓인 라일락의 빛갈마냥, 처음 마주하는 노아의 눈빛이 곤혹스러웠다.

-내가 수평선 같다 그랬지.

애처롭게 와닿은 그 한마디에 가슴이 아렸다.

지난 날의 기억이 공기 사이로 부서지며 그가 나한테 피아노같다며 읊조리던 소리가 생생했다. 너는 수평선을 닮았어,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그 밤의 바람이 또 한번 어깨를 훑고 지나는 것 같았다.

-근데 틀렸어.

말을 마저 이으려는 아이는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적도에서 보는 바다의 끝이, 극지에서 보는 바다의 끝과 다르듯, 애초에 없어… 수평선 같은건.

-노아야.

-그러니까,

본능적이게도, 또는 이기적이게도, 나는 그순간 시간이 멈췄으면 하고 기도했다. 노아가 문장을 끝맺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아니야. 네 수평선.

라일락이 피고 지기를 다섯번 반복했다.

하지만 그토록 눈부시게 개화하는 라일락을 찾아주는 손길은 한번도 없었다.

그 사이 테라스는 예쁜 테이블과 의자로 새단장을 하였고 원래 그곳의 주인이었던 흰 피아노는 실내에서 한자리를 맡고 있었다. 꽃내음에 휘감겨 주인공처럼 서있는 피아노의 그림이 보기 좋았는지 가게를 들르는 사람들마다 분위기가 로맨틱하다며 좋은 말을 남겼다.

그리고 가끔, 아버지가 가게를 들렀다.

피아노를 옮기는 것도 아버지가 제안한 것이였다.  사람도, 사물도 무용지물로 살다 가서는 안된다고, 엄마라고 생각하고 잘 보살피라고, 말하시던 아버지가 나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달라진 아버지의 태도를 내 선에서 다시 정리해 보기에는 신경 쓰이는 내용들이 더러 들렸다. 아버지는 간간히, 그 아이의 소식을 전했다.

독일은 아니지만, 그보다도 훨씬 자유로운데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고.

이 지구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이들을 위해 페달을 밟고 건반을 누른다 하였다.

사람들은 그걸 헌정공연이라고 했다.

참으로 노아다운 발상에, 그곳에서도 예쁘게 웃으며 연주하고 있을것 같은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정말이지, 꽃같은 사람이였다.

-노아 그아이, 공연 잠시 쉰다더라.

아버지의 작업실을 빠져 나오며 들은 마지막 한마디가 뇌리에 박혔다. 문득 처음 들었던 그 아이의 피아노 소리가 귓가에서 울리는 것만 같아, 짤막했던 아이의 손톱이 떠올라 잠시 멍해 있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가게를 주인 없이 오래 비워둘순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익숙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거슬러 오르는 시간과 함께, 수많은 꽃내음 속에서도 단 하나의 향이 농도를 더했다.

향의 근원지로 다가서는 몸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흰 피아노 위에 놓인 연보라빛 라일락, 그 밑엔 정갈히 깔린 악보 하나.

“Fantasy in F minor D.940

네 손을 위한 판타지아”

눈물이 흘렀다.

불현듯 눈앞에, 하나의 직선이 빛을 내며 양쪽으로 무한히 뻗어 나갔다.

나의 수평선이었다.

-终

이 글을 공유하기:

미네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좋아요 좋아요
3
좋아요
오~ 오~
0
오~
토닥토닥 토닥토닥
0
토닥토닥

댓글 남기기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