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Acoustic Cafe-Last Carnival

이하 링크

https://youtu.be/xcmn329fUbo

11.

마리아 보육원에는 신부님과 어머니, 열일곱의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의 연령은 제각각이었고 성씨도 달랐지만 모두가 어머니를 어머니라 불렀다.  원래부터 그렇게 정해진, 불문율이었다. 나는 그 중 다섯번째로 어렸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그 곳에서 자랐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네 살 이전의 기억은 없다. 기억이 존재하는 순간부터가 삶이라면 나는 네살에 태어나 여덟살 즘 보육원에서 나왔다. 형과 다른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열일곱 모두가 손을 잡았어야 했으나 한 아이만 그곳에 남겨졌다.  열다섯을 앞두고 있던 승아 누나.  그 밤을 무사히 보냈다면 승아누나는 드디어 열다섯이 되었다고 기뻐했을 것이다. 돈을 벌고 싶다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 열다섯부터 법적으로 가능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이튿날이 생일일 터였다. 설레임을 안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누나는 더이상 눈을 뜨지 못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승아누나는 어떤 꿈을 꿨을까, 나는 가끔 생각했다.  보육원 건물 위로 솟아있던 십자가.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는 불에 약했다.  고고하게 하늘을 향하던 십자가는 끝내 하늘에 닿지 못한 채 화형당했다.  

-십자가를 등지고 죽어가던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해라.

신부님 입에서 떠나지 않던 말이었다.

형은 달리 얘기했다. 우리의 예수님은 승아라고.

12.

이무명은 자신이 형사라고 했다. 적어도 3년 전 까지는. 수사를 하다가 상사와 갈등이 생겨 하극상을 시전한 뒤로 해임되었다고 했다. 상사의 차를 야구 배트로 깨부수고 담당이 아닌 사건 파일을 훔쳐간 것이 하극상의 내용이었는데 시민을 지키는 경찰이 그토록 폭력적이고 비도덕적이라니, 차라리 해임되는게 시민에게 득이 될지도 몰랐다. 그가 왜 그런 사고를 쳤는지는 나를 찾아온 이유와도 유관했다.

-그 새끼가  우리 아버지 죽였어.

형이 죽인 사람들은 전부 남자였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중년 이상의 나이 든 남자들이었다. 삼년에 거쳐 형이 살해한 사람들은 모두 여덟명이었고 범행 기간은 그리 일정치 않았다. 유기 장소가 사람들의 접근성이 낮은 탓에 실종이 되고 두어달이 지나서야 시체로 발견되곤 했다.  실종된 남성을 수사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느슨했고 일련의 사건들이 연쇄살인이라는 줄로 엮이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년 남성을 타겟으로 하는 연쇄 살인은 이례적이라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고 형사들이 하소연하던 것을 들은 적이 있다. 

13. 

-피해자의 가족이라고 수사에서 빼더라고. 객관성을 잃기 쉽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게 복수라면 나는 도움이 못돼요.  형사들도 나 내버려뒀다고. 난 정말로 아는게 없으니까.

-복수?  그런 낭만적인 생각도 할 줄 아나?

이무명은 비웃었다.  어린 아이의 하찮은 순수함을 본 듯한 표정이었다. 

-복수는 상대한테  파괴할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할 수 있는거야. 너나 네 형 같이 구질구질한 인생에 파괴할만한 게 진짜로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

-너희 둘은 가진게 너네 둘 밖에 없잖아.

나는 그 순간 무엇이라도 반박하고 싶었다. 

-게다가 믿었던 형이 알고보니 끔찍한 살인범이고

그러나 아무리 처절하게 머리를 굴려도 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형을 지우면 또 형이, 또 지우면 어김없이 형이,  나에게 온전하게 주어진 단 하나의 존재였다. 

-어디 얘기해봐. 너나 정훈한테 지금 남은게 뭔데?

-개새끼.

형 나는 그때에야 비로소 잠에서 깬 기분이었어.  의식이라는 전원을 끄고 살다가 가장 멍청하고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죽어버리려 했던건지도 몰라.  거짓같은 일들이 나를 덮쳤으니 어떻게 진실되게 죽길 바랐겠어. 사인은 환상통.  공상소설만큼 헛된 부검서를 받으면서 종이와 잉크를 낭비하는 값 없는 죽음을 바랐는지도 몰라. 근데 이무명이 그 타산을 무너뜨렸어. 내 신세를 거짓된 이(异)세계로부터 땅 위로 끌어내려 줬거든.  말뚝 박 듯,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나를 제자리에 세워줬어. 친절하게 말뚝에 글자까지 새겨줬지.  "지구에서 가장 비참한 새끼" 라고.  

-그러니까 개새끼랑 손 잡으라고.  난 정훈 찾아낼거니까. 

-…

-너, 형이 진짜 살인자라고 생각해?

14.

아이는 아이일수록 유리했다. 아이는 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었다. 승아 누나는 누구보다 아이이고 싶어했다. 나이가 적을수록 입양 가능성이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단체로 목욕하는 밤이면 누나는 절로 들떠있었다. 이튿날에 부모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찬물 목욕에 얼어붙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부지런히 빗어내렸다.  다 마르기 전까지는 절대 눕지 않았다. 

-누나는 안 졸려?

-젖은 채로 누우면 내일 머리가 삐쭉 선단 말이야.

-그러면 안돼?

-안 예쁘잖아, 난 곧 열두살이라 하루 빨리 입양가야돼.

하지만 냉기 가득한 방에서 머리는 쉽게 마르지 않았고 승아 누나는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밤을 넘겼다.  아침이 되자 다른 누나의 머리끈을 몰래 훔쳐다가 허리까지 오는 머리를 끙끙 대며 땋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울 앞에서 서툴게 묶은 양갈래를 다듬으며 웃는 연습을 했다. 열심히 말려놓은걸 왜 도로 묶냐고 물으면 그게 더 아이같아 보여서라고 했다. 

-긴 머리는 징그러워. 꼭 생리하는 언니들 같아.  어른들은 나이 많은 아이를 안 좋아하거든.

승아 누나는 어른들 마음에 들려고 무던히 머리를 굴렸다.  입양 기관에서 부부 한 쌍을 데리고 보육원을 찾는 날이면  누구보다 먼저 문 앞에서 공손하게 배꼽인사를 했다.  간혹 살가운 어른들이 그런 승아 누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그때마다 누나는 세상에서 제일 큰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이후의 면담 시간에는 세상에서 제일 작아 보이기 위해 힘껏 몸을 말아넣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큰 체구를 감추고 똑똑함을 뽐내기 위해 유난히 말을 많이 했다.  나는 그런 누나가 질주하는 달팽이처럼 보였다.  굽고 무거운 등으로 빠르게 갈리 만무했다. 물론, 승아 누나는 보육원을 단 한 발짝도 떠난 적이 없다. 

15. 

-정훈 동생이라고? 별로 안 닮았는데?

최부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형에게 가족이 있다는 얘기를 같이 일하면서 들은 적이 없는 듯 했다.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나를  훑어보면서 말하기를 주저했다. 

-제가 정훈이 친한 형인데 얘 동생 맞아요. 

이무명이 옆에서 거들며 담배 한 개비를 내밀었다.  그제야 조금 믿음이 갔는지 최부장이 담배를 받았다. 이무명이 불을 붙여줬고 최부장이 입을 열었다. 

-글쎄… 근태는 참 좋았지? 몇년을 일하면서 지각이나 결근 한번 없었어. 야근도 지가 먼저 나서서 도맡아 할 정도였고. 이깟 자동차 하청 업체에서 벌면 얼마나 번다고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나 싶었다니까. 그래서 뉴스에 나오고 경찰이 찾아왔을 때 우리 직원들이 얼마나 놀랐는데. 하나같이 그럴리 없다고 믿지 않았어. 

형은 성실했다. 낮에는 하청 공장에서, 밤이면 퀵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꽤 오랜 시간동안 형의 성실함은 나를 괴롭게 했다. 형 덕분에 학교를 다니던 나에게 그것은 오직 나로 인한 희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느날, 형이 자다 깨서는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어깨를 맥없이 들썩이고, 눈물이 소리를 자꾸 집어삼켜서 분명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형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유민아 나 잠드는 게 무서워 눈 감으면 불에 타 죽을 것 같아 유민아, 라고.

-혹시 정훈 개인 책상이나 물품 보관함 이런게 있을까요?

-라커룸이 있긴 한데… 거기에 뭐가 남아있을래나.

16. 

형의 라커 속에는 피로 회복 음료수 두병, 두벌의 작업복과 장갑, 안전모가  전부였다.  라커 안을 살피던 이무명은 거침없는 손길로 곱게 개인 작업복을 꺼냈다. 이어 상의와 하의의 주머니를 차례대로 확인했다. 

-너무 친절해서 뒤를 밟는 맛이 안 나네.

하의의 주머니에서 쪽지 하나가 나왔다. 그가 쪽지를 펼쳐봤다.  

-청산시 유지군 부용리 22-8,  여기 어딘지 알아?

-처음 들어봐요.

-거짓말 하지 말고.

-거짓말은 그쪽이 더 잘 하던데. 우리 형이랑 언제부터 친했는데요. 

최부장 앞에서 그토록 능청스럽게 말을 지어낼 줄 몰랐다. 무명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저 쪽지를 본인의 자켓에 찔러넣고 형의 작업복은 구겨서 라커룸에 넣어놨다.  

-임기응변 몰라? 하여간 어린 티를 내요.

그리곤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그대로 지나쳤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뒷모습에 성가심이 가득했다.

17.

이무명의 차는 당장 폐차 처리를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만큼 고물덩어리였다.  금이 간 차창들과 찌그러진 보닛, 힘 빠진 수동식 기어에 히터는 제대로 작동이 되지도 않았다. 공장까지 그의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은은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지경이었다.  

-똥차라고 무시하나 본데 이래 봬도 잘 굴러가. 나 봐, 멀쩡하게 살아 있잖아.

-…신의 은총 몰빵이네.

이무명은 픽 웃더니 운전석에 올랐다.  젖혀진 문을 잡고 머뭇거리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여기서 찢어지면 너만 손해다.  오가는 차도 없는데 괜찮겠냐?

아니나 다를까 주변을 둘러보니 허허벌판에 공장 하나와 종일 누워있어도 별일 없을 것 같은 휑한 도로가 적막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최악보다 차악을 택하는 마음으로 조수석에 올라탔다. 

-형사가 사람 협박하네.

-지금은 그냥 시민이다. 아니 근데,

-…?

-너 고딩 놈이 왜 아까부터 반말이야?

그런걸 따지는 성미로는 안 보였는데 언성이 조금 높은 걸 보니 진심인 듯 했다. 

-그쪽 몇살인데요

-너보다 먹어도 한참 먹었어 새끼야

-그럼뭐… 아저씨?

-…

-설마, 할아버지?

이무명은 옆으로 길게 찢어진 홑꺼풀의 눈을  갖고 있었다.  대체로 그런 눈들은 가만히 있어도 싸늘함을 풍겼다. 할아버지냐는 소리에 그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웃자고 한 농담인데 죽자고 노려보네…

-그래, 할아버지 맞으니까 노인 공경하고.

체념하듯 말하며 그가 시동을 걸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 그의 나이는 삼십 후반이었다. 투박한 언행과는 다르게 이무명은 흰 얼굴에 크지 않은 체격이라 나이에 비해 어려보였다.  유약한 인상에 형사라니, 어울리지 않았다.  자연스레 정훈 형이 생각났다.  형의 얼굴도 결코 살인자의 얼굴은 아니었다. 

18.

이무명의 차를 같이 타는 동안 알게 된 사실은, 그가 심각한 골초라는 것이다.  운전하는 내내 한 손에 핸들을, 다른 손엔 담배를 놓은 적이 없었다.  그는 몇시간을 내리 줄담배를 피워댔다. 내가 목구멍에 얹히는 연기를 참지 못하고 콜록대면 조용히 창문을 내려줬다. 그러나 효과는 별로였다. 기체는 본래 정처가 없었다.  보이지 않게 어디에나 만연해 있는 것이 꼭 불행과 닮아 있었다.  또 다른 사실은,  그의 음악취향이 구닥다리라는 것이다. 그는 오로지 한 곡만을 반복 재생했는데  생각해보면 제법 기괴한 광경이었다. 서로 불신하는데다 불편하기만한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노래를 들으며 달리는 모습이.  노래는 퀸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  베이스가 강렬한 빠른 곡이었다. 좋아하는 곡이라더니 음악에는 전혀 감흥이 없어 보였다. 몸을 움직이지도 따라 부르지도 않고 내내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이 노래를 왜 좋아해요?

-가사가 재밌어. 아주 용감한 살인을 노래하거든.

 

용기와 살인이 한 문장을 이룰 수 있는 것인가.  형이 갖고 있던 건 용기일까 광기일까 

-형을 그렇게 죽이고 싶어요?

그가 잠시 입을 달싹였다. 

-아니.

-대체 그럼 원하는 게 뭐지

-…속죄

-하나님이라도 믿으시나

-너는?

-네?

-너는 믿냐고 하나님 같은거

-…

-보육원에서 시키던 거 아직도 하냐고.

19. 

보육원을 나온 뒤로부터 형은 줄곧 불면증에 시달렸다. 밤에 일을 나가는 것 역시 불면증으로부터의 도피였다. 매일밤 악몽이 형을 짓눌렀다. 어떤 꿈이냐고 캐물어도 형은 마땅한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잠에 들면 언제나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고통스러운 기억 속을 헤매는 듯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그 속에서 벗어나고자 악착같이 중얼거렸다.  

"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아버지의이름이거룩히빛나시며아버지의나라가오시며아버지의뜻이하늘에서와같이땅에서도이루어지소서오늘저희에게일용할양식을주시고저희에게잘못한이를저희가용서하오니저희죄를용서하시고저희를유혹에빠지지않게하시고악에서구하소서아멘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아버지의이름이거룩히빛…"

나는 형에게 그가 기도문을 외운다는 사실을 말해줄 수가 없었다. 형은 누구보다 신을 저주했고 경멸했고 짓밟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보육원…다 알고 있는거예요?

-내가 아무 정보도 없이 혼자 힘으로 뛸가봐. 같이 일했던 후배들이랑 아직도 연락해. 약간의 협박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럼 왜 처음부터 모른척 한건데, 사람 떠보면 재밌어?

-모른 척 안했어. 굳이 얘기를 안 꺼냈을 뿐이지.

이무명의 시선은 줄곧 앞을 향했다. 어떤 얘기를 하든 그의 어조에는 무신경함이 배어있었다.  뱉는 말에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태도, 듣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겠다는 선언. 달리는 도로가 갑자기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해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나는 너무 어리고 약했다.  나는 너무 잦게 상처 받았고 그는 너무 쉽게 파괴적이었다.

-난 신 안 믿어. 이유없이 사람을 죄인 취급 하니까. 너도 믿지 마라, 병신같이.

20. 

형의 증상은 어느 순간부터 심해졌다. 작은 도시에서 시체들이 불규칙하게 발견되던 즘이랑 맞물렸다.  형은 아마도 자신을 죽이지 못해 남을 죽였을 것이다. 끈질긴 악몽도 형을 죽이진 못했다. 처방으로 받은 수면제도 형을 죽이진 못했다.  어느날부턴가 자해시도를 하는 형 때문에 되려 내가 불면증에 시달렸다.  기숙사제 고등학교로 입학하면서 불안함은 밤마다 나를 집어삼켰다.  떨어져 있는 형이 오랫동안 연락이 안되면 너무 초조해서 하던 일을 전부 내팽기치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날도 어김없이 전화를 받지 않는 형때문에 기숙사를 빠져나와 폭우를 뚫고 달려갔다.  다급한 손길에 젖은 신발이 잘 벗겨지지 않아 현관에서 넘어질 뻔 했다. 형은 창가 아래에 누워있었다. 모로 누워 이불로 온몸을 덮은 실루엣이 마치 무덤같았다.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벼락이 번쩍 칠때마다 뚜렷하게 빛났다. 이불 틈으로 삐져나와있던 앙상한 발목, 바닥엔 약통이 입구를 벌린채 놓여있었다.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한 발짝 씩 내딛을 때마다 뚝뚝 떨어지는 물이 그림자 대신 남았다.  

-형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심장이 곤두박질 치는 것 같았다. 

-..형!

형의 발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기다 싶이 다가가서 형을 마구 흔들었다.  젖은 앞머리가 눈을 계속 찔렀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빗물이 눈물이랑 섞였다. 형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실눈을 뜨고 바라봤다. 쫄딱 젖은 모습으로 저를 부르짖는 모습에 조금 놀란듯 했다. 이윽고 옅은 미소를 보였다.

-미안 유민아, 오늘은 약효가 좀 잘 받네.

-왜 이렇게 사람을 놀래켜, 연락 안되면 미쳐버릴 것 같다고 내가 몇번을 얘기했어!

-미안, 미안해 유민아. 

형이 몸을 일으켜 옷소매로 빗물들을 닦아줬다. 약기운이 감돌고 있는지 소리가 먹먹했고 행동이 느렸다.  비로소 안도하게 되자 눈물이 쉴새 없이 받쳐 올랐다.  

-옷 다 젖었네,  감기 걸리겠다.

형이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려갔다. 맨살에 냉기가 닿아 섬찟했고,  형의 품 속으로 파고 들었다. 형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두 손으로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아무일 없어.

빗줄기가 창을 요란하게 때렸다. 저 많은 비가 한데 모이면 바다가 되려나. 그 바다만큼의 무게일까 형의 목소리는. 그러면 나는 어디까지고 그 속에 가라 앉을텐데. 익사하는 줄도 모르고. 울음이 가시기 시작했다. 형의 손이 척추뼈를 하나 둘 짚으며 올라왔다. 어깨에 묻었던 얼굴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뒤통수를 감싸는 손길과 살을 스치는 콧날의 감각에 나는 움츠러드는 몸을 어찌할 수 없었다. 

-너 몸에서 비냄새 나.

코를 박고 체취를 맡던 형이 입술을 포개왔다. 다른 쪽 손은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 바지 안으로 파고 들었다. 찰나의 번개에 방안이 밝아졌다.  스치듯이 형의 얼굴을 보았다. 평온했다. 나는 닿지 않는 비에 젖는 기분이었다. 믿지도 않는 신의 뜻을 부끄럼 없이 거슬렀다.  

-입 벌려 유민아. 

 

그러나 형의 말은 중력같았다. 나는 그것을 거스른 적이 없다.  

 

이 글을 공유하기:

미네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좋아요 좋아요
4
좋아요
오~ 오~
0
오~
토닥토닥 토닥토닥
0
토닥토닥

댓글 남기기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