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이 채 닿지 않는 과거의 시간은 언제나 엄마의 서술로 영사기처럼 돌아간다.  약간의 허구와 내가 나도 모르는 새에 조작한 기억들이 한데 엉켜 흐릿하게 돌아가는 영상. 그 불완전한 필름에는 언제나 아빠의 자전거 뒤에 앉아 우리 동네 내리막을 종횡무진하는 내 모습과 오래 되어 먼지 쌓인 피아노 한 대가 있다.


아빠는 언제나 어린 나를 자전거 뒷자리에 앉히고 작은 동네를 누볐다. 그 취미는 계절을 따지지 않았다. 엄동설한에도, 해빛이 정수리를 따갑게 때리는 혹서에도 내리막을 질주할 때 꺄르르 터뜨리던 딸아이의 웃음 소리를 듣기 위해서 페달을 밟았다. 덕분에 겨울이면 콧물을 달고 살고 여름에는 두 볼이 까무잡잡하게 타들어가도 헤벌쭉 즐거워하던 아이를 보며 엄마는 차마 아빠의 고약한 취미를 말릴 수가 없다고 했다. 난 그저 신이 났을 뿐이었다. 아빠의 자전거에서는 늘 시원한 바람이 스쳤고 재미나는 이야기들이 쏟아졌으니까. 그 자전거 뒷좌석에 앉는다는 건 아빠와 나 둘만 있는 소행성을 타고 우주를 가르는 것만 같은 일이었다. 어린 왕자가 살던 별처럼 나와 아빠가 살던 소행성. 나는 행성에 앉아 수없이 많은 별들 사이를 지나쳤다. 그중 소리나는 흑백의 어느 별 이 나를 오래도록 붙잡아 두었다. 피아노가 여섯살이었던 나의 일상에 찾아온 것이다. 


갓 입학한 유치원 한켠에는 낡은 피아노 한 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먼지 쌓인 피아노는 지나온 세월이 길어 건반을 아무리 눌러대도 노인의 헛기침마냥 삐걱거리는 음을 애써 뱉어냈다. 조음사가 없었던 건지 구석에 방치된 채 찬밥 신세가 된 피아노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있다 손을 들어 올려 무작정 눈앞의 건반 하나를 눌렀다. 묵직한 소리가 돌연 새어나와 놀라기도 잠시 손가락을 타고 전해져 오는 건반의 중량이 생경해 손가락을 옮기며 백건을 차례대로 타고 올랐다. 그날 저녁 아빠가 데리러 왔을때 나는 다룰줄도 모르는 피아노 앞에서 작은 손가락에 그 감촉들을 담아내는데 빠져 자리를 쉬이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빠의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나는 아빠의 등에 손을 얹어 상상속의 피아노를 그렸다.


“딸, 피아노 처음 봐서 신기했어?”

“응!”

“어마어마한 피아니스트가 되려나보다. 그치?”

“아빠, 피아니스트가 뭐야?”

“피아노 칠 때 행복한 사람. 그게 피아니스트야”

“아빠는 뭐 할 때 제일 행복한데?”

“우리 딸 행복할 때.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피아노 사놔야겠다.”


선선했던 밤바람이 아빠의 옷깃을 잡고 흔들다 멀리 사라졌다. 아빠의 등 뒤에서 바라본 밤하늘에 음표같은 별들이 반짝였다. 그 별들을 다 이으면 드뷔시의 달빛이 울려퍼졌을까, 꿈결같이 몽롱한 기억들은 빛났다 사라졌다 점멸만을 반복한다.  


그러나 아빠는 여느 동화 속 갑자기 들이 닥치는 클라이막스처럼 화창한 어느 날에 교통사고로 인간이 볼 수 없는 우주로 갔다. 내가 앉던 자리는 비워둔 채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내가 좋아하던 그 내리막에서 사고를 당했다. 죽는다는 게 무엇인지 몰랐던 나는 어두컴컴한 장례식장에서 아빠의 칙칙한 영정사진이 조금 무서웠을 뿐이였다. 그러다 그해 생일에 내가 받은 생일선물 중에 장난감 피아노 하나 없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여전히 네모난 책상을 피아노 삼아 피아니스트 놀이를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 어쩌면 영원히 피아노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달라고 떼를 쓸만한 아빠가 이젠 없다는걸 그제서야 어렴풋이 눈치챘고,  그래서 엉엉 울고 말았다. 나중에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집 거실에 고고한 기운을 풍기며 서있는 피아노를 보고서도 대뜸 울음이 터졌다. 친구가 아무나 못 사는 피아노라고 자랑을 했던 탓도 아니었고 나 보란듯이 연주를 한 탓도 아니였다. 다만 내 것인 줄 알고 있던 소중한 인형을 뺏긴 듯한 상실감에 서러워서 울음이 터졌다.  왜 그렇게 피아노만 보면 눈물부터 비집고 나왔을까, 만약 그때 아빠가 옆에 있었다면 나에게 이렇게 얘기해 주었겠지.  딸아 그건 꿈이라는거란다.  비록 나의 작은 행성에 아빠는 더이상 없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나를 데리고 이사를 갔다. 탈탈거리며 달려가는 용달차 안에는 이사짐이 많지 않았다. 그 속엔 피아노도 자전거도 없었고 공허한 빈자리만큼 나의 행성에도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아빠의 잔상을 뒤로하며 나는 여느 친구들과 똑같이 학교를 가고 뛰여놀기도 하며 그렇게 커갔다. 비록 엄마 뿐인 편부모 가정이였지만 엄마의 수고와 사랑에 나는 큰 빈틈을 느낄 새 없이, 이제 와서 아빠의 모습을 눈 감고 그리라면 기억이 희미할 정도로 어느새 커버렸다. 그래서 가끔은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아빠가 없이 내가 마음대로 웃어도 되는걸까, 이렇게 기억을 쉽게 지워도 괜찮은걸까. 


“그래서 뭘 하고 싶니?” 

“…”


다만 그러한 순간들이 있었다. 문득 아빠가 있었으면 하는 순간들.


“꿈이 있니?”


대학진로상담을 하며 선생님에게 질문 받았던 순간.


“잘 모르겠습니다…”


우유부단한 내 대답에 선생님은 잠시 애매한 웃음을 보이고서는 전국의 대학 정보를 설명해 주시기 시작했다.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내 성적에는 어떠한 대학들이 가능하고 그 대학에서의 어떤 전공을 배우는게 취직에 유리하다 했다. 그리고 현재 인기가 좋다던 직업군을 쭉 나열해주었는데 몇분 뒤 사무실을 나선후 내 머리속에 남은건 고작 한 마디 밖에 없었다.  “꿈이 있니?”


만약 그 순간, 질문을 한게 선생님이 아니라 아빠였다면 나는 뭐라 대답했을까?  마땅히 하려 했던게 있는것도 아니였지만 떠오르는게 없던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 순간, 잠깐 잊고 살았던 나의 행성이 떠올랐고 그곳을 에워싸던 피아노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게 꿈이 될 순 있는지 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여러차례 비슷한 질문들을 받곤 했다. 하지만 어느 때든 내 대답은 예전과 다를바가 없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한번도 제대로 다뤄본적 없으면서 고작 어린 날의 환상으로 꿈이라고 답을 준다면 누구든 황당한 얼굴로 나를 바라볼 게 뻔했다. 이제 나는 피아노를 봐도 울지 않았고 시시때때로 아빠 생각에 떼를 쓰던 꼬마도 아니었기에 그 앞에서 내가 할수 있는 말은 잘 모르겠다는말 밖에 더는 없었다. 그러니 아빠라도 있었으면 차라리 아빠한테 물어봤을 텐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나는 그런 식으로 늘 혼자서 해결할수 없는 부분에 대해 멋대로 아빠의 이름을 빌려 책임을 떠넘겼다. 비록 내 키는 이제 피아노보다 훨씬 커졌지만 사실 내 시간은 아직도 그 행성에 묶여있는 건 아닐까, 그 행성은 너무 작아서 자전 능력도 엉망이고 중력도 받지 못해 시간을 흘려보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그곳과 이곳은 시차가 너무, 너무 커서 시간이 늘어지는 한 가운데 나만 그저 혼자 부유하고 있는게 아닐까. 힘없이 부유하는 나를 제쳐두고 이미 눈앞의 태양을 향해 수많은 아이들이 앞질러 달려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시 쫓아가려 해도 나에겐 도구가 없었다. 하다 못해 오래된 자전거 한대도. 


내 기억이 채 닿지 않은 곳을 언제나 손 봐주던 엄마는 대학교 졸업식 날, 나를 맞은편에 앉히고 처음으로 많은 얘기를 했다. 딸애의 특별한 행사를 마치고 어쩌다 술을 연거푸 마시더니 대뜸 내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오랜 얘기를 꺼내는 목소리는 낡은 장작이 일으키는 불씨마냥 젖은 마음 구석구석을 따뜻하게 말려주는 것 같았다.   


“딸, 아빠가 돌아가시고 주위에서 제일 많이 했던게 동정이야… 이젠 행복해질 일만 남았는데 그걸 누리기도 전에 죽었다고, 살아온 날에 비하면 살날이 한창 많은 청춘인데 너무 이르게 세상 떠났다고 다들 그랬어…그러니까 딸, 엄마는 네가 아빠가 채 누리지 못한 청춘들까지 다 가져가길 바란다.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하게…알겠지?”


돌이켜 보면 그건 엄마 나름의 고백이었다. 여섯살의 꼬마로부터 제법 성인의 모습을 갖춘 자식을 보며 그날 엄마는 처음으로 아빠에 대한 묵혀둔 이야기들을 꺼냈다.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이어갔다.


“엄마도 아빠 못지 않게 우리 딸 피아노 치는 모습 보고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돼서 너무 미안해… 그게 네 마음속에 아직까지 그늘로 남아있다면 이 엄마가 사과할께, 그러니까 절대 아빠를 미워해서는 안돼.”


차분히 얘기를 듣고만 있었는데 자꾸 눈물이 비집고 흘렀다. 한동안 무감각했던 눈물샘이 오랜만에 피아노 세글자에 터졌고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던 아빠의 모습이 다시 생생해졌다. 나는 그날, 온 저녁을 엄마를 부둥켜 안고 여섯살 때보다 더 세게 울음을 터뜨렸다. 나의 작은 행성에 소나기가 빗발쳤다. 그래 나는 사실 아빠를 원망한만큼 그리워했구나, 피아노를 못 버릴만큼 꿈이 간절했구나,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외면하려던 만큼 사실은 누군가 진심을 알아주길 바랬구나. 

나의 작은 행성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섬광을 내뿜는 찰나의 시간에 영원같이 아득한 멸망을 일으킨다. 아빠 그거 알아? 행성은 생명을 다 하면 폭발해. 눈부시게 폭발해서 유성우로 내린대. 그동안 묶여있던 시간을 풀어헤치 듯 아주 빠르게 수만갈래로 부서져 내릴거야. 그 중 한갈래에는 분명 아빠가 있겠지. 길게 늘어지는 유성의 꼬리에 앉아 자전거 타듯 씽씽 달리자. 머리 위로 찬란하게 쏟아지는 별의 잔해를 보며 다시 다정한 얘기들을 나눴으면 좋겠다. 


아빠, 이것 봐.

내 청춘은 이토록 눈부실거야.










2016의 겨울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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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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