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은 마을 어귀에 크지 않은 강을 하나 끼고 있다. 겨울이면 아버지와 함께 그 곳에서 꽁꽁 언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빙어잡이를 했었고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할머니 집 축축하고 서늘한 장판에 하염없이 누워있었다. 방학마다 찾는 그 마을엔 사람 소리보다 동물 소리가 더 컸다. 할머니네 집에는 황구라고 불리우는 늙은 개가 작은 마당을 지키고 있고 한켠의 닭장에서는 고개를 빳빳이 쳐든 닭들이 수문장처럼 아침의 문을 열었다. 여름마다 매미의 울음과 풀벌레 소리가 자장가 되는 곳, 그 수많은 동물 중에 외로운 고래가 있다. 바다를 건너 산골 작은 강가에 몸을 붙인 외로운 고래 한마리.
“할머니, 52고래라고 들어본 적 있어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말을 건넸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없었다. 쌀을 씻는 소리만이 찰랑찰랑 일어났다. 빨간 노을이 집안에 침입해 축축한 장판에 네모낳게 내려 앉았다. 손을 뻗어 빛의 온도를 느끼다 다시 핸드폰 화면으로 눈길을 돌렸다. <혼자만의 노래를 하는 고래>라는 기사 한편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52고래라는 이름을 가진 희귀종 고래가 있는데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고래래요.”
“그게 무슨 말이냐?”
그제야 관심이 생기셨는지 할머니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한편으로 쪼르르 쌀뜨물을 덜어내는면서.
“고래들이 주파수로 소통하는 거 알죠? 근데 이 고래는 평범한 고래들이 내는 주파수랑은 아예 다른 52헤르쯔의 주파수를 내보내서 어떤 고래와도 대화를 못 한대요. 그래서 이름이 52고래라나 뭐라나…”
내가 늘어 놓는 설명을 듣긴 하신건지 다 씻은 쌀을 밥솥에 담는 손길이 분주했다. 조금 후, 솥뚜껑을 닫으며 할머니가 말했다.
“그럼 벙어리고래라는 소리냐?”
“네?”
“아무도 못 알아들을 말을 한다면서.”
“그렇긴 한데…”
“이웃집에 벙어리 같구만.”
그 말에 잠시 갈피를 못 잡아 머리를 굴리는데 마당에 있는 황구가 컹컹 짖어대기 시작했다.
"누가 왔나보다. 문 열어 줘라."
할머니의 말마따나 문을 열어보니 오래되어 헤진 모자를 비스듬히 쓴 까무잡잡한 얼굴이 앞에서 웃고 있었다. 이웃집에 사는 벙어리 아저씨였다.
몇년 전, 처음 봤을 때는 무섭고 낯설었다. 언제나 모자를 비스듬히 써서 그런지 해빛을 막지 못해 그을린 얼굴이 그때부터 까무잡잡했던 기억이 있다. 무더운 여름에도 짙은 남색의 운동복 바지를 입고 다녔고 입이 아닌 손으로 말하는 그 분주한 언어가 어린 마음엔 이상하고 불편했다. 겨울에는 근처 강가에서 빙어잡이를 하며 아저씨를 보았고, 여름에는 축축한 장판위에 누워 문틈으로 집앞을 지나는 아저씨를 보았다. 그 말인즉, 아저씨는 언제나 낚시대를 들고 다녔다는 얘기다. 비록 겨울과 여름에 따라 어깨에 지고 다니는 낚시대의 형태는 많이 달랐지만 어쨌든 내가 봐온 아저씨의 모습은 언제나 기다란 막대기 같은것을 어깨에 이고 한쪽 손엔 양철통을 든 채 꺾어신은 운동화를 털썩이며 걸어가는 모습이였다. 이따금씩 양철통에서 물줄기가 튀여나오는게 보였다. 그것은 분명 그 속에 갇힌 물고기가 생존을 위해 꼬리를 쳐올린 것임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만약 진짜 할머니의 말대로 벙어리 아저씨가 고래였다면 그 물고기들은 불행하게도 고래의 밥이 된것이다. 그러다 가끔은 내 밥상에 오르기도 했다. 아저씨와 단둘이 사는 그의 노모는 편찮은 몸을 이끌면서도 아들이 잡아올린 물고기들을 시내에 내다 팔았고 그러다 남는 녀석들은 항상 우리 할머니네 집에 보내왔기 때문이였다.
“아이고…몸 성치 않은 양반한테 대접할 것이지. 고맙소”
할머니가 아저씨의 양철 그릇을 대신 받아들었다. 그 안에 든 살이 오른 송어를 보고 있는데 할머니가 팔꿈치로 나를 스윽 밀쳤다. 내 반응이 시큰둥했는지 성의 있게 고맙다 인사드리라고 핀잔 주었다. 대충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전하자 아저씨는 소리없이 미소를 지을 뿐이였다.
“거참, 나는 이제 갈 때가 다 된 몸이고, 저 놈 자슥이 어여 장가를 가야 할텐데. 허구한 날 미끼나 던지고 있으니…”
언제부턴가 마당에 들어선 이웃집 할머니가 능청스럽게 농담을 던졌다.
“어디 심성 좋은 처녀가 그 미끼를 안 문다니? 네 놈 장가가는거 보면 소원이 없겠다 쯧쯧…”
혀를 차는 소리에 아저씨가 민망해 났는지 뒤통수를 긁적였고 할머니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지나가는 길에 들렀네. 이만 식사들 하시오.”
먼저 뒤돌아 선 이웃집 할머니를 따라가 곁에서 나란히 걷는 아저씨였다. 좁고 느린 노인의 보폭을 맞추는 모습을 보는데 문득 기사에서 본 52고래가 겹쳐졌다. 소통하는 고래친구가 없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라고 불린다고 했으나 이 마을에 사는 52고래는 전혀 외롭지 않아 보였다. 노모의 발자국마다에 따라붙는 털썩거리는 운동화가 고래의 경쾌한 꼬리짓 같았으니까.
마침 시골 하늘의 노을이 조금씩 흩어졌다. 그 빈자리로 먹구름이 하나 둘 몰려들었다.
유독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자장가처럼 듣던 매미 울음이 사라지고 개구리들이 떼창하듯 울어대던 밤, 할머니는 곧 비가 올거라고 얘기했다.
“쾅쾅-”
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놀라서 떠진 눈앞에서 불꺼진 집안이 순간 번뜩였다. 그 번뜩임에 새벽 두시를 갓 넘긴 시계가 시야에 들어왔다. 창밖으로 번개가 치고 있었다. 또 다시 쾅쾅쾅, 누군가가 문을 무섭게 내리쳤다. 할머니도 놀라 깨서는 벌떡 일어났다. 문을 향해 걸어가는 내내 누구냐고 소리치며 물었지만 대답 한번 없이 쾅쾅거리는 소리만이 멈추질 않았다. 그러다 결국 문이 열리고, 난 할머니 뒤에서 숨 죽이며 그 불길한 문틈을 주시했다.
“…..”
비를 맞고 있는 익숙한 인영의 손짓, 그 소리 없는 손짓이 허공에서 바삐 돌아쳤다. 양손이 서로 부딪히다가 코를 쓸고 입을 쓸며 가슴을 내리쳤다. 그 앞에서 할머니는, 나는, 넋을 놓고 바라보기만했다. 손짓이 말이 되어 닿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서로 주파수가 달랐다.
분주하게 접었다 폈다 하는 손가락 끝으로 비물이 튕겼다. 벌어지는 입사이로 새나와야 할 말소리가 내 숨소리보다도 작았다. 누구보다 시끄러웠을 그 소리의 주파수가 자꾸 천둥의 교란을 받았다. 결국 아저씨는 외로운 52고래였던걸까. 낮이면 함께 찾아오던 노모는 옆에 없었다.
할머니가 나를 집에 두고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이웃집으로 부랴부랴 향했을 때 나는 다시 이부자리에 누웠다. 쏟아지는 장대비에 안 그래도 축축했던 장판이 더욱 습기를 머금었다. 온 집안이 커다란 어항같았다. 들이마시는 공기가 물방울처럼 기도에 맺혔다. 그 가운데서 다시 까무룩 잠에 들어 그런지 바다에서 헤염치는 이상한 꿈을 꾸고 말았다. 그리고 꿈속에서 52고래를 만났다. 주둥이를 벌리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들리지 말아야 할 그 소리가 소란스럽게 귓가에서 울려댔다. 낑낑, 잉잉 애타는 소리만 내니 노래하는 게 맞는지, 혹시 울부짖는 건 아닌지 알길이 없어 팔다리를 저으며 다가가려 했지만 애를 쓸수록 멀어져만 갔다. 그러다 결국 눈이 떠졌다. 의식이 돌아오자 적막만이 집안을 촘촘히 채워 흠칫 숨 죽이고 말았다. 할머니의 흐트러진 이불은 그대로였고 여전히 비어있었다. 더이상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으스름한 빛이 집안으로 기울어졌다. 시골의 새벽은 어느새 소리없이 장대비를 거두어갔다. 한 여름밤의 꿈처럼 감쪽같이 간밤에 들이닥친 손님을 감췄으나 커다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이웃집 할머니마저 영원히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버렸다.
간밤에 이웃집 할머니의 지병이 발작했다고 했다. 거품을 토하며 기절하셨는데 그 옆에서 아저씨는 급히 응급번호를 누르고 수화기를 들고서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고 했다. “여기 사람이 위험합니다” 라는 말 한마디, 그 말 한마디를 못하는 아저씨는 어떤 마음이였을까를 생각해본다. 영혼의 끈을 놓아가는 노모 앞에서 아무런 말도 못하며 그저 오열했을 아저씨를 생각해본다. 내가 꾼 꿈은 사실 꿈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아버지가 데리러 왔다. 짐을 챙겨 차에 올라타는데 할머니가 못내 아쉬운 듯 이것저것 손수 만든 반찬거리들을 보따리에 싸주셨다. 언제 준비하셨는지도 모르게 많은 반찬통들을 받아 드는데 순간 얼마 전에 아저씨가 문 앞에서 건넸던 양철 그릇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아저씨 역시 머지 않아 어딘가로 떠난다고 했다. 비록 아직도 까무잡잡한 얼굴에 채 가시지 못한 슬픔이 구석구석 묻어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원래대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아마도 다른 곳으로 가서 계속 낚시대를 늘어뜨리고 고기잡이를 할것이라고 했다. 노모가 아들 대신 바라던 인생의 짝을 찾는 일, 그것을 위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을 어귀를 벗어나는 차가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에 흔들렸다. 아버지가 틀어놓은 철 지난 유행가에 맞춰 차가 속도를 올리며 달렸다. 점점 빠르게 스쳐가는 강가의 풍경을 바라보다 강 한 가운데에 우뚝 서있는 인영이 보여 창을 내렸다. 비스듬히 쓴 모자와 어깨에 인 양철통과 옆에 축 늘어뜨린 낚시대, 익숙한 뒷모습이 점점 작아져갔다. 대신 그가 고요한 수면에다 뱉어내는 소란스러운 말들이 내게까지 닿는듯 했다.
할머니네 집 강가에는 외로운 고래 한마리가 산다. 주파수를 조절하며 다시 바다로 나갈 꿈을 꾸고 있다.
2015, 여름에 씀
주파수가 맞지 않는 외로움이란… 짝이 아니라도 벗도 마찬가지인거 같습니다
주파수가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참 어렵고 드문 일이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