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몇해전 내가 겪었던 일은 갓 세상밖으로나온,아직 사회초년생이였던 나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였다.잊고 싶은 기억들이고 할수만 있다면 그 며칠간의 시간을 내 인생에서 통째로 들어내고 싶지만 굳이 안 좋은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내는 이유는,갓 학교를 졸업한 사회초년생들과 외국에서 직장을 찾고자 하는 여성들,또 류학생활을 꿈꾸는 학생들한테 경종을 울려주기 위함이다.

1.호치민 도착

‘오늘  점심은 미스 리 혼자 드셔야 될것 같습니다.제가 점심에 볼일이 좀 있어서요.오후에 사무실 가서 사장님 뵙고 숙소로 갑시다.그럼 오후 2시에 여기에서 다시 보는거 어때요?’

신호동도 무시하고 질주하는 오토바이들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진 나한테 남자가 오늘 일정을 읊기 시작했다.

‘네.그럽게 합시다’

‘저…’

‘네?’

남자가 뒤돌아 가려다 말고 다시 몸을 돌렸다.

‘미스 리도 함께 가실래요?’

‘어디를요?’

남자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점심에 소개팅이 하나 잡혀있어요.한국에서 대기업 다니는 친구놈이 하나 있는데 베트남 여자를 소개시켜 달래요.그래서 제가 거래하는 은행에 다니는 아가씨를 소개시켜줄려구요.괜찮으시면 미스 리도 같이 가실래요?’

‘네?’

(내가 잘못 들었나?뭐래는거야 지금?채홍사 납셨습니다야?이게 말로만 듣던 다각도 미팅인가?근데 대기업씩이나 다니는 사람이 왜 여기까지  와서  여자를 구하지?)

어지러운 시내풍경때문에 괜히 예민하게 반응하는건가 싶어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 참고 차분하게 반문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한국여자들은 너무 자본의 논리에 길들여져 있어요.몇백짜리 가방 사는 여자보다 국적은 달라도 서로 마음 맞춰 살수 있는게 중요하 다고 생각해요.지금 소개시켜주려는 여자는 23살인데 호치민에서 명문대학을 나왔어요.나름 엘리트예요.’

(이런 미친XX.본인이 45살이라고 했으니 친구라는 사람도 동갑이란 얘기잖아?.명문대학을 나온 23살짜리가 미쳤다고…)

‘아니요.다녀오세요.’

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겨우 다시 집어넣고 남자를 쏘아보았다. 

‘그렇죠.미스 리가 거기 가긴 좀 그렇죠?없었던 일로 합시다.그럼 있다 봐요.’

남자는 나의 싸늘한 눈빛을 느꼈는지 말았는지 머리만 긁적였다.

‘네.’

‘저 그럼…’

남자는 고개를 까딱 해보이고는 휙 하고 가버렸다.그렇게 나는 태여나서 처음 보는 호치민의 중심가 한복판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이럴줄  알았으면  출국하기전에  베트남어 공부를 해두는건데.워낙 비자가 갑작스럽게 나왔고 또 방향감각도 젬병인지라 나는 멀리 가지 않고 주위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다.하지만 내 의지와는 달리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부대때문에 도저히 길을 건널 엄두가 나지 않았다.다행히 열발자국 정도 걸으니 골목안에 서브웨이가 눈에 띄였다.

‘굿모닝!’

문을 열고 들어가니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던 외국인 사장이 일어나며 인사를 건넸다.

‘굿모닝!어우 다행이다.뭐가 있어요?’

교과서 영어를 써먹는 날이 올줄이야!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외국에서 지내보지 않은 사람은 이 기분 모른다.

‘여기 있어요.오늘의 메뉴를 시키면 할인도 돼요.’

사장이 커다란 메뉴판을 가리켰다.

‘그걸로 주세요.’

나는 샌드위치와 콜라가 포함된 세트메뉴를 시켰다.

‘네.그럼 편한데 앉으세요.’

‘뭐해!주문 들어왔잖아!세트메뉴 하나’

사장은 멀뚱멀뚱 서있기만 하는 종업원을 째려주고는 다시 컴퓨터 앞으로 가 앉았다.

가게에는 손님이 나 하나밖에 없었다.주위가 조용해지니 머리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본인을 유명한 한국 대기업의 책임자라고 소개했다.진위 확인차 한국에 있는 본사의 인사담당자한테 메일을 보냈지만 지사는 본사 소관이 아니라는 대답만 되돌아왔다.

앞으로 내앞에 펼쳐질 풍경이 그려지지 않았다.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데 설마 하는 생각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한데 뒤엉켜서 머리속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에이 그래도 대기업인데 설마’하는 생각에 미치자 그래도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주문한 음식은 10분도 채 안돼 금방 나왔다.패스트푸드의 유일한 장점이 바로 이거다,맛과는 별개로.

샌드위치와 콜라를 꾸역꾸역 입속으로 밀어넣고 한참동안 멍때리다 밖에 나오니 남자가 약속한 장소에 먼저 와있었다.

‘점심 드신거 영수증 챙기셨죠.나중에 비용처리 해드릴께요.’

‘네.’

‘앞으로 저를 소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현장에서는 다들 그렇게 불러요.’

‘그러죠.’

‘좀 있다 먼저 사무실로 가서 사장님을 만나뵙시다.현장에는 저녁때쯤 돼야 도착하게 될겁니다.’

‘네.’

오늘은 사장님과의 최종면접이 잡혀있는 날이다.면접장소로 가는 차안에서 소장은 창밖으로 보이는 호치민시내의 풍경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여기는 외국인들 거주구역입니다.주로 대만사람들이 많이 살죠.호화아파트나 별장이 밀집되여 있고 호치민에서 땅값이 제일 비싼 곳이기도 하구요.’

구역 이름도 들었던것 같은데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다만 큰 호수가에 위치해 있어 풍경이 아름답고 호치민시의 다른 구역에 비해 거리도 넓고 깔끔하고 잘 정돈된 느낌이였다.

차는 그중 한 아파트앞에 멈춰섰다.차에서 내릴때 얼핏 차 뒤좌석의 골프가방이 눈에 띄였다.직원이 사장을 모시러 간 사이 소장은 운전기사와 한국어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야,우리 사장님 집 또 바꾸셨네.저번꺼보다 더 좋네.씨발’

소장은 거침없이 사장의 뒤담화를 해댔다.

‘흐흐,이집 한달에 5000딸라다~’

기사가 다 들리게 소장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들으셨죠.나는 언제 이런데서 살아보나.’

나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창 영양가 없는 대화로 시간죽이기를 하고 있을때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국인 남자가 늘쩡늘쩡 우리쪽으로 걸어왔다.

‘사장님!’

아까 뒤담화 하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소장은 90도로 허리를 꺾었다.영낙없는 쫄병의 모습이였다.

‘안녕하세요.’

‘어,어서 오세요.사무실로 가자.’

그렇게 간단한 인사만 나눈뒤 우리 일행은 모두 차에 올라탔다.

20분쯤 달려 도착한 사무실은 생각보다 작았다.직원은 20살정도 돼보이는 베트남 여자애 몇명이 전부였다.

‘생각했던것보다 여리여리 하시네.견디기 힘드실텐데.’

자리에 앉자마자 사장은 나를 위아래로 쓱 훑어봤다.

‘네?글….’

‘잘 적응하실겁니다.’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소장이 내 대답을 가로막았다.

‘그럼 소장님 잘 따라 가시고.아무튼 잘 적응하시기 바라겠습니다.’

소장이 내민 결제서류에 사인하며 사장은 내게 눈길도 돌리지 않은채 서둘러 작별인사를 건넸다.

‘네.안녕히 계세요.’

차라리 이때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다.그러면 그뒤 벌어진 일들을 겪지 않았도 됐을지 모른다.

사무실을  나온 우리는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2시간의 비행을 거쳐 하틴성의 성도인 빈(荣市)에 도착했다.집을 나선지 꼭 38시간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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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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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음회 기다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실례가 안된다면 물어보고 싶은게 하나 있는데… 글 중에 쉼표나 마침표 뒤에 띄어쓰기 없이 붙여쓰는건 글쓴이가 의도적으로 그런 표기를 택한건가요? 개인적으로는 읽으면서 계속 신경이 쓰여서요.

      1. 중국조선족 표준으로는 “띄여쓰기”이고 한국표준으로는 “띄어쓰기”일겁니다. 조선족 매체 글보다 한국의 작품을 점점 더 많이 읽으면서 맞춤법 습관도 꽤 변했습니다 개인적으로.

      2. 쉼표 마침표 뒤의 스페이스는, 워드 파일에서 타자할 때도 아마 붙여쓰면 자동적으로 빨간줄이 쳐질겁니다. 적어도 컴퓨터는 붙여쓰면 동일한 단위로 인지하여 단락 나눌 때에랑 글자 간격이 벌어지곤 하는건 사실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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