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오늘날은 인터넷이 잘 보급되어 있고 사람마다 모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시대이다.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우리는 뉴스를 체크하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물건을 사고팔고, 업무를 완성하고, 게임을 하고, 음악을 듣고, 음식을 배달 시키고, 건강을 체크하고, 투자를 하고, 짬짬이 주어지는 휴식시간에도 스마트폰을 보고… … 이렇게 많은 xx고들을 할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손바닥만한 스마트폰만 있으면 먹고 사는데 문제없을 정도이다. 따라서 사람과 사람사이, 나라와 나라사이는 물리적인 거리를 떠나서 많이 가까워졌다.

"가까운" 연결때문에 우리는 세계 여러곳에서 자신한테 필요한 정보들을 빨리 얻을수 있다. 그리고, 그래서일까? 과거에 비해 근래에 더 많은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도 살짝 받는다. 과거에도 비슷한 수의 재해가 일어났지만 우리한테 전달되기까지 시간이 걸렸을수도 있고, 전달되지 않았을수도 있고.

지금 나의 머리속에 떠오르는것들만 렬거해 보아도 너무 많다. 여기에 태풍, 폭설, 홍수까지 더하면 상상이 안간다.

화재
– 미국 서부에서 해마다 발생하는 산불
– 2019년, 브라질의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발생한 산불
– 2020년, 지금도 타고 있는 호주의 산불 (글을 발행한 오늘을 기준)

지진
– 2008년 汶川 大地震
– 2010년 칠레 지진
– 2016년 후쿠시마현 해역 지진

화산
– 2010년 아이슬란드 화산
– 2017년 인도네시아 발리 화산
– 2018년 하와이섬 화산

바이러스
– 2012년 메르스
– 2013년 에볼라
– 미국의 독감
– 그리고 지금의 코로나

이러한 재해의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당연하다. 지구와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 큰 타격을 준다. 또한 우리의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생존환경도 인류가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급격히 변화되고 있다. 이런 재난 뉴스를 읽을때면 우리는 먼저 참 안됐다는 생각을 할것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다른 주(洲)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면 "언젠가는 재난도 사라지고 모든 일상이 제자리에 돌아오기를…"하면서 기도를 해준다. 그리고 "우리도 혹시 있을지 모르는 재난에 미리 대비하자"라고 다짐할수도 있다. 사실 SNS때문에 가까워진 거리는, 이렇듯 멀기도 하다. 우리가 갑자기 현지에 가서 불을 끌것도 아니고, 바이러스가 감염된 곳에 들어가서 재난민들을 구할것도 아니고, 그냥 각자 살고 있는 먼 곳에서 기도를 해주면서 응원을 할뿐이다.

왜 이렇게 많은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것일까? UN을 포함한 세계의 "발달한" 나라들에서는 인류에 의한 자연환경의 파괴를 첫번째 이유로 꼽는다. 최근 스웨덴의 16살짜리 소녀 格蕾塔가 UN에서 한 "분노의 발언"은 많은 정치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다. 그냥 지구의 자원이랑 파괴하지 말고, 환경오염이랑 만들지 말고 지구를 보호하자는 내용이다. 근거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발전도상국에 있는 나라들의 지지는 받지 못했을 것이다.

출처: 인터넷 

여기에 로씨야 대통령 푸틴도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그녀를 성인한테 이용당한 무지의 소녀로 표현하면서 아래와 같은 평을 했었다. "그 누구도 그녀에게 '현대 세계는 복잡하고 다르다’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아프리카와 많은 아시아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만약 스웨덴과 같은 부유한 수준에서 생활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들은 마땅히 발전 도상국 나라들에 ‘왜 너희들은 계속하여 빈곤한 삶을 살아야 하고, 스웨던같은 수준에서 생활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줘야 한다."

원문:

普京批评16岁瑞典青年活动人士格蕾塔·通贝里,称她是被成年人利用的无知青年。他说:“没有人向她解释,现代世界是复杂且不同的,生活在非洲和很多亚洲国家的民众想要生活在与瑞典同等财富水平之中,那应该怎么做呢? 去向发展中国家解释一下,他们为什么应该继续生活在贫困中,而无法像瑞典一样。”

어떻게 설명할것인가? 

  • "음… 몇십년전에 우리가 공업화시기를 겪으면서 지구를 오염시켜도 되는 기준치를 이미 다 오염시켰어. 그러니 이젠 더 이상 오염시키면 위험해."
  • "음… 우리가 지난 몇십년동안 자동차를 타보니 공기오염만 초래할뿐 별로 이득이 없었어. 자전거를 타고 될수록이면 걷기를 바래. 지금의 우리처럼."
  • "음… 지구의 자원을 너무 사용했어.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고갈날거 같으니 사용을 멈추자."

라고 할것인가?

양쪽 모두 이해는 간다. 그리고 발달한 나라들이 지금 거액을 들여가면서 태양능 에네르기, 바람 에네르기, 전기차, 등을 개발하면서 기여를 하고 있다. 단지 발전도상의 나라들한테는 아직 사치일 뿐이다. 나는 푸틴의 "핵 사이다"같은 발언에 속이 시원했던적이 있다. 왜냐면 아직까지도 의식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지역에서, 발전하려고 열심히 공업화를 할수밖에 없는 지역의 사람들한테는 너무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이제와서 지구를 보호하기 위하여 자원의 사용을 금지하자는것은, 마치 미리 핵무기를 개발하여 보유하고 있는 나라에서 이제 더는 핵무기를 개발하지 말라고 하는 식인것만 같았다.

테슬라 전기자동차 회사가 2003년도에 설립되였다. 그리고 스웨던의 16살짜리 소녀 格蕾塔가 2003년에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날때부터 본 세상이랑 발전 도상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본 세상은 너무 달랐을 것이다. 공평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무슨일이나 먼저 중립을 지키면서 서로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 그룹의 사람들은 왜 이런 결정을 하려고 하는지, 피동에 놓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결정이 그들에게 어떤 후과를 가져다 주기에 반대하는지.

하지만 요즘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자연재해는 모든것을 떠나서 심사숙고 해볼만하다.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는 "설마 우리 세대까지 혹은 우리 자녀 세대까지 지구에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우리만 잘 살면 되지. 오늘 하루하루를 보람있게 잘 살면 되지." 

문제는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지이다. "나만 아니면 돼", "우리만 아니면 돼"가 언제까지 유효할지 최근에 일어나는 사태를 보면 장담하기 어렵다.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다보니 언제 “轮到你了!”가 될수 있을지 모른다.

2020년 초반, 특별한 수자조합, 그만큼 특별하게 새해의 멋진 계획을 세우고 힘차게 달리자고 서로 축복하는 시기이다. 바이러스만 아니였다면 말이다. 죽음과 죽음이라는 공포앞에서 모든게 다 사치가 되였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너무나도 보잘것 없는 존재이다. 타협할수도 없고 아직까지는 이길수도 없다. 그냥 "시간"이라는 지구가 自带한 치료제만이 답이라고 한다.

어쩌면 성공도 보잘것 없을수가 있다. 한때 나는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찾았다고 기뻐했던 적이 있었다. 바로 에머슨의 "무엇이 성공인가" 중의 글을 개조하여 내가 태어나고 자란 "연변"을 대입하여 간직하고 있었다.

출처: 인터넷
 

"연변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우리가 한때 연변에서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행복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였다. 

최근에는 남극의 빙하가 녹는다고 한다. 수면이 올라가면 가장 가까운 아르헨띠나부터 잠기겠지. 우리한테는 먼 곳의 이야기, 오랜 시간 후의 이야기이겠지.

그리고 때마침 한 대단한 남자가 인류를 화성에로 이주시킨다고 한다. 

다는 못 데려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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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범이

UX/UI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느끼는 생각과 경험들을 글로 적습니다. 때로는 주제를 벗어나는 글을 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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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읽었습니다. 환경보호가 더 이상은 이념차이만은 아닌 위급한 시점인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이미 환경보호를 위한 여러 시도들이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기도 한데 말 한대로 누군가를 공업화를 먼저 실현했고 누군가를 그 길을 따라 가려 하니… 자본주의 틀안에서의 공업화가 발전할수 있는 유일한 공식일까 라는 의문도 듭니다. 자원을 소모하고 환경을 파괴할수 밖에 없는 생산과 소비를 당연한것처럼 선전하는 이 틀에서 우리는 벗어날수 없을까…한동안은 개개인의 차원에선 미니멀리즘이 그 답이 아닐까 라는 터무니 없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결국에는 나라차원이든 개인의 차원이든 절제할수 없는 인간의 욕망때문이 아닐까…그 욕망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면 화성으로 가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범이님 글 읽고 정리 안된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적어봅니다…

  2. 세상의 모든 이치는 량면성과 입장차이, 유리성에 의거함을 다시한번 느낄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모든 노력과 시도는 그것을 더 조화롭게 융합해가고 아울러 개선할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가까워졌지만 더 멀어진 인간 내면 혹은 표면의 복잡성과 언제 轮到你了할지 모르는 연속적인 사건에 대처하는 각자의 이념의 이중성도 인터넷 세상이 낳은 산물이 아닐까. 화성에로의 이주가 어떤 시작이 되거나 어떤 전환점이 될지는 몰루지만 인간이란 생명체 또한 대자연과 타협할 시점인건 분명한 듯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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