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들어가며

문학을 심리학의 영역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에 대해 혹자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는 문학이 예술의 영역이고 심리학은 과학의 영역이라고 한다면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의 영역에서 예술이 도구화 되는 한계를 지적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견해에 대해 필자 역시 타당하다고 생각하며 일정부분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방면에서 시도되는 문학분석과 해석이 오히려 문학의 발달을 가져올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심리학적 관점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는 작품 해석에 대한 열린 생각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뱀잡는여자」는 2019년 3월호 『도라지』잡지에 실린 후 이이서 『민족문학』5호에 실린 근래에 나온 작품으로 아직까지 그 어떠한 연구나 평론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작가인 전춘화도 80후 젊은 작가 중 한사람이고 현재까지 많은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가 아닌 관계로 그에 대한 연구논문이나 평론도 찾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뱀 잡는 여자」의 주제를 놓고 본다면 실제로 뱀을 잡아봤던 엄마의 이야기를 소설로 지었고 뱀을 잡는 장면들을 통하여 오로지 한 가족이라는 원인만으로 “위험요소1,2,3,4,5”를 위해 희생만 하던 엄마가 뱀을 잡기 시작하면서 느끼게 되는 “자아성철”과 여성으로서 해야만 하는 일과 부단히 반항을 하라고 꿈틀대고 있는 욕망의 상징적 대립 속에서 산생된 내분적 분렬을 그린 작품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주인공의 내적인 충돌과 내분적 분렬에 입각한 해석방식이 ‘의도의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작품 속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특히 소설「뱀 잡는 여자」는 많은 심리적 서술로 되어 있어 작품 속 많은 서술들을 통해 주인공의 심리적 측면으로 분석하는 데 적합한 작품이다.

본 논문은 소설「뱀잡는여자」의 인물을 칼구스타프융(C . G . Jung)의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작품의 주된 서술자인 엄마라는 인물이 페르조나에 경화되어 자신의 욕망을 무의식에 억압함으로써 “뱀을 잡아”야만 해방이 되는 뜻한 환상적 자아인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또한 환상적 그림자에 자신을 투사하여 억압된 욕망을 충족한 후 분리된 자아와 자기를 통해 무의식의 그림자를 의식화하여 자기실현(selbstverwirklichung)(개성화 individuation)을 이루는 과정에서, 인물이 보여주는 창조적인 면과 파괴적인 면이 어떠한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희생품적 여성 페르조나와 뱀

융은 ‘자아’와 ‘자기’를 구별하고 있다. ‘자아’(Ich, ego)는 의식할 수 있는 ‘나’로 의식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Selbst, self)는 의식과 무의식을 통튼 전부로 본래적인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무의식에는 전체로서 살 것을 요구하는 경향이 근원적으로 존재한다. 나 자신의 전체가 되고자 하는 것을 융은 ‘자기원형’ 이라고 한다. 자아는 외적 세계와 무의식의 내적 세계에 잘 적응해 전체로서의 삶을 지향하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체를 통괄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적인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자아가 없이는 이러한 인간 성숙이 불가능하다.

자아가 외적세계에 잘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양식을 페르조나(persona)라고한다. 페르조나는 사회적기능으로 대상과의 관계에 주목한다. 그래서 관계기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회적 적응을 위한 외적 인격으로 임시적이며 변화 가능하고 집단의 영향을 받는 특징이 있다. 페르조나는 주체적인 면보다는 주로 외부에 의해 “남성은 어떠한 일을 해야하고 여성은 어떠한 일을 해야하며 어린아이는 어떠한 모습으로 생활하여야 한다”라는 방식으로 규정된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주체는 이에 적응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하기 때문에 피로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은 다양한 페르조나를 가지고 있고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역할을 수행한다. 페르조나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역할이지만 자아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집단에 어울리는 페르조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이 필요하게 되는데 문제는 페르조나와 자신, 즉 자아를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동일시는 자아가 자신이 하고 있는 구실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집착하게 되고 이로 인해 내적인 정신세계와의 관계를 상실하게 된다.

소설「뱀잡는여자」의주인공인엄마도 “현실이 제일 독한 거다. 코앞에 있으니까, 모른 척할 수도, 피해갈 수도 없으니까.”라는 페르조나의 역할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딸이라는 원인만으로  술주정뱅이 외할아버지, 조선족령도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대학공부까지 하겠다고 덤벼드는 철없는 큰 외삼촌, 위험한 군사기지나 들락날락거리는 둘째 외삼촌, 겨우 열살 먹은 막내 외삼촌, 그리고 마흔다섯살 외할머니 배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책임자라를 숙명을 강요받는다.

그래서스물다섯살엄마는울었다. 동네처녀들은 하나, 둘씩 이제 시집을 가는데 이대로 처녀귀신이 될가 봐 섧디섧게 울었다. 엄나는 그 때까지 사람을 잘 몰랐다고 한다. 엄마를 그토록 섧디섧게 만드는 현실이란 결국 엄마를 둘러싸고 있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어찌할 바를 몰라 울고 울었다고 한다.

임신한 외할머니에 대한 배려 따윈없이주는대로 다 받아먹는 외할아버지와 그 외할아버지를 닮아갈 퀴같은 손으로 연거퍼 감자 두개를 량손으로 잡고 다먹은 다음에 빈 감자그릇을 보며 엄마에게 “금순아, 삶은 감자 더 있지?”하고 모른 척 물어보는 큰외삼촌의 틈새 사이에 시무록한 둘째 외삼촌과 억지로 울음을 참는 막내 외삼촌이 있었다. 마지막 남은 감자 한알을 큰외삼촌의  손에서 뺏아내 막내외삼촌의 밥그릇에 놓고 껍질을 발라 먹여주면서 손가락에 몯은 감자가루나 핥아봤던 엄마는 외할아버지와 큰외삼촌을 보면서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가 한숨이 나왔다. 생각을 할수록 답은 없고 서글펐다. 그렇게 따지니 외할머니는 왜 또 저 모양으로 사는지, 이 동네 촌장님은 왜 선하디 선한지, 사람이란 못남과 훌륭함을 타고 나는 것인지 하는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엄마는 이러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울음”으로 해소할 만큼 슬픔을 느끼지만 어떠한 방법도 없다고 고백을 한다. 딸로서의 명예로운 삶은 사회형태로 구성된 것이며 이는 사회문화적 의미가 만들어낸원천이다. 엄마는 이러한 사회적 관습에 익숙해지고 사회일원으로서페르조나를 잘 수행했던 것이다.

페르조나로 감추어진 엄마의 세속적 욕망은 부단히 증폭하는 분노와 인간이라는 본원에 대한 의문으로 표현되기 시작한다. 딸이라는 원인만으로 집안 여섯식구를 책임져야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남성에 대한 분노만이 아닌 같은 여성이면서도 나른히 운명만 받아들이는 “외할머니”에 대한 분노에서 드러나고 있고 왜 이러한 인간의 모습들은 태여날때부터 고정되어 있는지 의문을 던지면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이러한 표현 욕구를 억압하고 딸이라는 모습과 여자라는 모습으로 살기위해 사회적 질서 속으로 편입되는 필연적 선택을 한다. 즉 위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집안 여섯식구에 대한 책임이다. 집안 가장이었던 외할아버지도 아니고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도 아닌 딸이라는 이유로 부모에 효도하고 집안 남성들한테 복무하여야 한다는 사회화적 삶 속에서 살아간다. 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엄마 ‘자아’는 타자가 주체에게 보여주는 상호적관계에서 제한된 욕망을 바탕으로 존재한다. 집안 식구들은 오로지 딸이라는 이름 하의 엄마에 대해 그의 효도와 충성에 만족한다. 결국 엄마는 사회 안에서 제공하는 제한된 욕망에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선택한다.

그러나 페르조나에 지나치게 경화되어 있는 엄마의 삶은 근원적인 욕망으로부터 분리되고 소외되는 현상을 낳는다. 엄마는 의문들을 통해 가족들한테 “복무”를 하면서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결핍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스물다섯살까지 조용히 충만 하던 엄마가 자신의 욕망을 분출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해소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뱀잡이”이다. 그리고 “뱀잡이”에 대한 욕망 이외에 엄마에게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억압된 욕망은 반항 욕망이었다.

“뱀술을 마시면 쉽게 잠이 잘 드나봐요?”(엄마)

엄마가묻자랭수를들이키던뱀잡이최씨는손을내흔들며꼭그런것은아니라고했다.

“이 집 박씨처럼 뱀술만 마시면 얼굴이 벌개지면서 바로 곯아떨어지는 사람이 있긴 하지요.”

그때엄마는뱀잡이최씨에게앉은걸음으로가까이다가가며바투물었다.

“그럼 뱀술을 만들기 어렵습니까? 뱀을 잡기 어렵습니까?”

엄마는 그때 뱀잡이 최씨에게서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그것이 어떤 희망이였나면— 희망은 희망일 뿐 어떤 희망인지 중요한가? 앞이 컴컴한 어둠 속에 한줄기 빛이 보일 때 누가 감히 그 빛이 어떤 빛이냐고 묻냐고, 절밥한 사람은 아뒤를 재지 않고 무작정 그 빛을 보고 앞으로 기여 나가게 되여있는 것이니까.

이러한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것 역시 페르조나에 대한 지나친 몰두로 인해 반항욕망으로부터 분리되고 소외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소외는 자아형성이 초래하는 필연적결과이며 주체성을 획득하고 페르조나의 역할에 순응하여 사회환경하에 딸로 살기위해 필수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외할아버지”가 “뱀술”로 인해 무너지니, 엄마는 본능적으로 “뱀잡이”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 마저도 단지 그 무언가가 자신을 끌어들이는지도 모르는 “희망”에 대한 추구였다. 즉 마음 속 욕망은 불같이 타오른 행동이 아닌 절제된 삶을 통해서만이 이룰 수 있다고 보고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고 산 것이다.

이처럼 엄마는 집단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페르조나를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되었다. 그러나 전체로서의 자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행동 등이 집단 혹은 사회와 동화되어 맹목적으로 강요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시작부분에서 엄마는 평범히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사회적으로 완벽하게 동화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자아와 페르조나가 동일시되는 현상을 낳았고 인간으로서 외면한 근원적 욕망은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다가 “뱀잡이” 통해 발화된 것이다. 결국 무의식에서 “뱀잡이”라는 행동을 하는 자신의 그림자를 만들어 내어 내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외계로 투사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3.“뱀잡이” 반항적 욕망 발현을 위한  또 다른 자신의 그림자

지나치게 페르조나에 몰두하는 것은 주체를 구축시켜주기는 하지만 주체로 하여금 욕망으로부터 분리되도록 한다. 이때 무의식이 외부 세계로 투사되면 그 대상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게되는데 이를 “그림자”라고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무의식의 내용이 외부 세계로 나타나지 않고 주체 안에 머물러 자아의식을 점차 동화해 가는 것이다 . 이때 의식의 변화가 생겨자아가 신화적인 인물과 동일시하면서 스스로 초인적힘을 가지고있는 것처럼 느끼고 마치영웅이나 구세주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행동한다. 이런 현상을 자아 팽창 (Inflation)이라한다. 이와 같은 자아의 팽창은 의식성이 결여되어있는 것으로 자기실현을 방해하는 가장 큰요인이다.

인간에게는 근본적으로 전체를 지향하여 자기를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엄마 역시 이러한 자기실현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방해하는 자아 팽창의 여지를 막기 위하여 자신의 무의식을 투사할 수 있는 “뱀잡이”라는 외적 세계를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뱀잡이”를 하는 엄마는 어찌 보면 엄마의 ‘또다른 나’로 볼 수 있고 엄마의 내적인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다. 엄마의 해소되지 않은 욕망은 “뱀잡이”이라는 행동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한다.

딸이라는 이름만으로 무작정 가족에 복종하여야 하는 엄마는 “뱀잡이”라는 “녀자가 무슨 뱀잡이를 물어보나”라고 할 정도로 반대되는 행동을 통해 욕망의 해소가 되는 듯하지만 “독이 없는 뱀”을 잡으면서도 “최씨”를 따라다녀야 하고 그의 말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엄마는 어찌보면 계속 사회관계안에서 형성된 페르조나를 철저히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뱀잡이”연습을 하면서 너무 놀라 “3일동안 쓸어져 있기”도 하고 최씨가 매번 뱀술을 가져다 줄테니 “뱀잡이”이를 그만하라는 말에도 엄마의 내면에는 부단히 “뱀잡이”에 대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는 엄마의 내면에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시집을 가지 못하는 설음도 이미 가신”듯이 흥분된 욕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엄마는 외할머니의 배가 남산같이 불러와 새벽에 몰래 깨나 뒤뚱뒤뚱닭장에 가서 행여닭이 닭알을 낳았나 어둠속에 암탉의 품에 손을 넣어봐도 궁상맞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행여 외할아버지가 취할 때까지 도수 높은 술을 마시고는 모두 토해내면서 토사물 속에 뱀이 있나 보라고, 배속에 뱀이 새끼를 치는 것 같다고 헛소리를 쳐도 모르쇠를 했다.

어느날은 큰 외삼촌이 허구한 날 시험을 봐도 못 붙은 대학에 또 가겠다고 학비를 벌아달라고 하자 엄마는 큰 외삼촌의 뺨을 차지게 한대때렸다. 큰 외삼촌이 화가 꼭두까지 치밀어올라 펄펄 뛰자 엄마는 울바자에 걸아놨던 그물에서 누룩뱀을 꺼내 큰외삼촌의 앞에 툭 던졌다. 집안사람 모두가 저년 미쳤네, 꺄약 소리를 질렀다. (중략) 그 때 엄마는 태연한 척 입가에 웃음을 머금다가 문득, 정말 외할아버지 말처럼 두려움이 없이 단단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

인간의 본능과 욕망은 의식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윤리적인 가치관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의식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어둡고 부정적인 의식은 억압을 통해 무의식에저장된다. 엄마는 외할머니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과 “외삼천의 빰을 차지게 한대 때리고, 누룩뱀을 꺼내 큰외삼촌의 앞에 툭 던”지면서 자신의 의식속에서 받아들일 수 없었던, 무의식 속에 있는 “그림자”를 불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무의식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나’를 그림자라고 한다. 그림자는 ‘나의 어두운 측면이며 무의식 측면에 있는 나의 분신’이다. 또한 의식될 기회를 잃어 미분화된 채로남아 있어 원시적인 심리적 경향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다른 말로 하면 주체는 이를 미숙하고 열등하며 부도덕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자아, 즉 의식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이 자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에 있는 그림자를 의식화 하여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것이필요한데 대개 이러한 의식화는 외계에 대한 행동의 변화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엄마는 4남매 중 유일한 여자이고 남성들보다 더 많은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부단히 이러한 의무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적으로 “현실이 제일 독한 거다. 코앞에 있으니까, 모른 척할 수도, 피해갈 수도 없으니까.”(63 면) 속에 갇혀 갈등하고 있다. 반면 “념자가 무슨 뱀잡이”를 한다고 부정을 받는 행동은 한 가족의 딸이라는 사회적 의무와 상관없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할 수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주체가 자신의 그림자가 나타나게된 대상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그림자는 주체가 의식에서 받아들일 수 없어 무의식에 억압한 부정적이고 모순된 행동을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주체는 나타나게된 대상에 대해 놀라움과 같은 일상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없었던 태도를 보이는 것이 보편적이다.

엄마는 “뱀잡이”라는 행동을 통해 자신이 집에서 느낄 수 없었던 욕망의 분출을 느끼게 된다. 즉 가족, 사회 안에서 스스로가 수용하지 못하고 세상이 수용하지 못하여 무의식에 억압한 근원적 욕망을 “뱀잡이”라는 행동을 통해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반항적 욕망으로 나아간다. 과거에 “사람이란 못남과 훌륭함을 타고나는 것인지 하는 “질문을 가지고 있는 것에 머물러 엄마의 초자아는 무의식 속 욕망을 분출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작용하여 행동으로 옮겨지기 시작한다.

문제는 모든 욕망을 풀어줄 어떤 절대적인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상에 대한 환상만이 존재할 뿐 사실상 욕망에는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원인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나니 그 제야 엄마는 오히려 타인의 마음에 있는 두려움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뱀잡이를 할 때처럼 마음을 가라앉히고 장신을 집중해서 상대방을 보고 있으면 온갖 추태와 폭력으로 가족을 겁 주는 외할아버지의 내면에 있는 두려움도, 그 외할아버지를 떠날 념을 못하고 바보같이 붙어있는 외할머니의 불쌍한 관상 뒤에 처량하게 숨어있는 두려움도, 그리고 개 망나니같이 애써 감추려 했던 두려움을 엄마는 보아냈다고 했다. 그것들을 보아내니 가족들이 못나긴 못났지만 미워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처럼 엄마는 “뱀잡이”를 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기 시작하였지만 이러한 욕망의 분출을 이르켰던 대상인 “문제 1,2,3,4,5” 모두가 환상적인 욕망 분출의 원인이었다. 자신의 그림자의 욕망 분출로 인해 “두려움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엄마는 의식적으로 이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내면에 억압되어 있는 무의식을 의식화하여 진정한 자기실현을 유도하는 창조적 그림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던 엄마의 “뱀잡이”는 그 대상이 환상적인 욕망 분출의 원인으로 되자 “더 이상 미워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뱀잡이”도 더 이상 그 본체적인 의미를 잃기 시작하였다.

엄마는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먼저 꼬리를 밟고 있던 발을 침착하게풀었다. 그러자 살모사는 다시 스르르 숲으로 사라졌다. 그 날 이후로 엄마는 다시는 뱀잡이를 하지 않았다.

대신 엄마의 눈에는 사람의 마음에있는 뱀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는 독사가가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독이 없는 뱀이 있는 것이다, 슬프게도 엄마네 가족들, 그 무서운 외할아버지마저도 품고 있었던 것은 독사가 아니였다, 참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엄마는 그랬다.

그림자는 우리가 잃어버린 대상 중 가장 큰것을 상징화한다. 가족에서 자유와 평등한 관계를 상실한 엄마는 욕망을 드러내지 않은채 다시금 한 가족의 딸로 돌아간다. 엄마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지만 소멸된 두가지, 자유와 억압받아온 관계를 되찾기라도 한 듯한 “뱀잡이”의 환상적 그림자를 버린 것이다. 이것은 전체로서 ‘자기’의 본래적인 모습을 찾기위한 시도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4. 그림자 의식화를 통한 자기살해와 자기실현

자아와는 달리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을 통튼 것이며 ‘그 사람 자신’을 의미한다. 인간의 삶이 온전하기 위해서는 의식과 무의식 중 어느한 부분에만 몰두하는 삶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온전한 자기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를 융의 분석심리학에서는 자기실현(selbstverwirklichung)또는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한다. 융은 이러한 자기실현이 인간의 핵심적 과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욕구를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이러한 전체정신 즉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동력이 무의식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인간은어린시기에 무의식의 싹을 가지고 있는데 청소년시기와 성인시기를 거치면서 자아의식의강화와 발전에 주력하여 외적으로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인간이 의식에만 집착하게 되면 무의식은 대상기능을 발휘하여 의식에 포함되어 전체가 되려고 한다.

자기에 도달하여 자기실현을 이루기 위해서 무의식에서 가장 먼저 조우하는 것이 바로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의식과 무의식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무의식의 세계만을 추구하고 있는 내적세계에 비해 의식 하기가 수월하다. 이러한 의식은 주로 외계로 나타나게된 그림자를 통해서 알 수 있으며 이때 그것을 자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그림자를 창조적인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자아가 그림자의 존재를 깨닫고 의식의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그림자를 의식한다는 것은 인격의 전체를 구성하 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인 그림자를 분화시켜 창조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엄마는 자신을 위로하고 받아주는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아버지는 엄마가 그동안 집안에서 겪었던 설음을 다 리해하지는 못했지만 능력있는 해결사였다. 큰 외삼촌을 만났을 때 조선족령도가 될 수 없는 객관적 요소들을 례의를 갖추면서 조목조목 짚어줬다. 큰외삼촌은 의외로 너무 쉽게 아버지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공부를 포기했다.

뱀잠이로 예전처럼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 엄마는 그랬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을 때 느끼는 두려움과 가진 게 많다고 생각될 때 느끼는 두려움은 그 무게가 달랐어.”

“그래도 뱀잡이를 멈췄잖아요.”

“너를 임신하고 19주 쯤 되였을 때 처음으로 태동을 느꼈거든, 자궁에서 물방울이 터지는 듯한 미ㅣ한 움직임을 느꼈는데 그 때 결사코 지켜야 할 존재가 생겼다는 걸 알아버렸어. 그러니 또 신가하게도 세상에 두려운 게 없어지더라니까.”

이와 같이 아버지는 엄마가 해결하지 못한, 욕망 분출의 원인이었던 문제를 해결한 인물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아버지를 향한 엄마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서 받는 국물처럼 뜨끈뜨근한 위로라 어찌할 바를 몰랐”을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자신 역시 “뱀잡이”는 더 이상 자신의 욕망 분출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러한 평가는 그동안 무시하고 냉대했던 가족에 대해 반항을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던 자신의 모습과 그러한 모습을 개변하려는 “뱀잡이”라는 욕망 분출을 고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뱀잡이”가 본인의 그림자, 즉 욕망 분출이 방식이라는 것을 의식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엄마는 아빠가 자신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슬금슬금 뱀잡이를 하는” 것을 알면 자신을 내칠가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결국 엄마는 더 중요한 그 무언가(임신)를 위해 “뱀잡이”를 하지 않는다.

융은 그림자가 갖는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을 말한다. 엄마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욕망이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에 반항적 욕망과 같은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행동(뱀잡이)을 하지 않고 결사코 지켜야 하는 욕망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자기를 실현한 사람은 세상에 이름을 떨치거나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융이 말하는 자기실현의 개념은 완벽한 삶이 아니라 온전한 삶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기의 본래적인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의식했다면 그 사람은 자기실현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엄마는 “뱀잡이”를 하는 그림자를 통해 본래적인 자기를 인식하고 또 욕망 분출 대상이  삶을 마감할 수 있었던 모두가 환상적인 욕망 분출의 원인으로 되자 “뱀잡이”를 하는 그림자의 위험성과 폭력성을 인삭하여 이를 개변하면서 진정한 자기실현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5.나가며

이상으로 소설「뱀잡는여자」를 융의 분석 심리학적관점으로 살펴보았다. 문학을 심리학적 이론으로 분석하는 것은 문학을 이해하는 다양성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무의식을 창조적인 기능으로 보는 융의 분석심리학적 관점은 문학의 창조적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뱀잡는 여자」를 단순히 한 여성의 억압받는 일생을 그린 작품으로만 분석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인 분석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모두 드러내고 살 수 없다. 이는 사회적 역할로서의 위치와 체면이라고 할 수 있는 페르조나로서의 삶이 있기 문이다. 페르조나는 인간이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외적 인격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고 페르조나에 경화되어 자아와 페르조나를 동일시 하게 되면 내적 세계와의 관계 기능을 상실하여 인간소외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소설「뱀잡는여자」속 엄마는 집단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페르조나를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전체로서의 자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행동 등이 집단 혹은 사회와 동화되어 맹목적으로 강요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시작부분에서 엄마는 평범히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사회적으로 완벽하게 동화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자아와 페르조나가 동일시되는 현상을 낳았고 인간으로서 외면한 근원적 욕망은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다가 “뱀잡이” 통해 발화된 것이다. 결국 무의식에서 “뱀잡이”라는 행동을 하는 자신의 그림자를 만들어 내어 내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외계로 투사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엄마는 “뱀잡이”라는 행동을 통해 자신이 집에서 느낄 수 없었던 욕망의 분출을 느끼게 된다. 즉 가족, 사회 안에서 스스로가 수용하지 못하고 세상이 수용하지 못하여 무의식에 억압한 근원적 욕망을 “뱀잡이”라는 행동을 통해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반항적 욕망으로 나아간다. 과거에 “사람이란 못남과 훌륭함을 타고나는 것인지 하는 “질문을 가지고 있는 것에 머물러 엄마의 초자아는 무의식 속 욕망을 분출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작용하여 행동으로 옮겨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는 엄마가 해결하지 못한, 욕망 분출의 원인이었던 문제를 해결한 인물로 나타난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아버지를 향한 엄마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서 받는 국물처럼 뜨끈뜨근한 위로라 어찌할 바를 몰랐”을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자신 역시 “뱀잡이”는 더 이상 자신의 욕망 분출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러한 평가는 그동안 무시하고 냉대했던 가족에 대해 반항을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던 자신의 모습과 그러한 모습을 개변하려는 “뱀잡이”라는 욕망 분출을 고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뱀잡이”가 본인의 그림자, 즉 욕망 분출이 방식이라는 것을 의식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엄마는 아빠가 자신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슬금슬금 뱀잡이를 하는” 것을 알면 자신을 내칠가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결국 엄마는 더 중요한 그 무언가(임신)를 위해 “뱀잡이”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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