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넘은 벽과 아직 넘지 못한 벽

쓰다 보니 갑자기 고민상담소


지금 보면 참 사소한 것들이 어릴적의 나에게는 큰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일단 활발하면서도 낯을 심하게 가렸다. 

전혀 기억이 없는 애기때부터 낯선 사람이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사람이 포기하고 집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큰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고 엄마가 얘기해주셨다. 

기나긴 시간동안 친척들 앞에서 억지로 해야 하는 재롱잔치, 아니 새해인사 몇마디를 하는 것 조차 너무 싫었고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대학교 입학 전까지만 해도 작디작은 교실 강단에 서서 뭔가 말을 해야 한다면 얼굴부터 화끈거리고 입이 잘 열리지 않았다. 

분명히 내 존재감이 부각이 되는 분위기 그 자체는 전혀 거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게 편했던 것 같다) 정작 앞에 나서서 뭔가 연설? 발표? 이러루한걸 해야 한다면 얘기가 전혀 달라졌던 것 같다. 

비슷한 이유로 노래나 춤도 거부해왔었다. 노래는 혼자 흥얼거리는 것도 자꾸 눈치가 보여 정말 조용히 속삭이다 시피 했던 것 같고, 춤은 간혹 거울 앞에서 포즈를 잡고 느낌대로 슬슬 움직여보다가도 기대와 너무 차이가 나는 “흉측한” 모양새를 보면서 괴로워했던 기억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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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성격은 못 고친다지만 다행히 사회생활을 하면서 얼굴이 많이 두꺼워졌다. 

어릴적 자신감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상당히 예민한 유리 같은 재질이었다면, 부서지고 깨지고를 반복하다가 지금은 강화유리에 들어가는 성분이 많이 섞여졌는지 아님 그냥 다이아몬드로 갈아탔는지 멘탈이 많이 단단해졌다. 

웬만한 미팅은 낯선 사람들이든 아니든, 그 대상이 임원급이든 신입사원이든 상관 없이 무난하게 잘 해나가는 편이고,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물이 나와도 자기합리화를 슬쩍 섞어서 일단 内耗자체를 많이 줄여갔다. 

몇년 전부터는 집에서 슬슬 흥얼거려지고 몸이 움직여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아예 집이 동물원이 된 듯이 꽥꽥 소리 높여 별 이상한 노래를 다 하고, 개그우먼 저리 가라 하는 몸개그도 스스럼없이 하게 됐다. 집에서 갑툭튀 跑酷를 좋아하는 뚱냥이 정도로 상상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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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와중에 아직 넘지 못한 높은 벽 하나가 있다. 

이유를 모르겠고, 너무 어렵고, 그냥 싫다. 그건 바로, 녹음 된 내 목소리를 듣는 것.

위챗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위챗 공능이 음성문자 주고 받기 공능이다. 물론 받는 건 내가 시간을 짜내 이어폰을 끼고 듣기만 하면 되는데 보내는 건 심지어 가족한테도 거의 안 하려고 한다. 나 자신이 일단 이 공능을 안 쓰려고 하다 보니 아주 간혹 동료가 긴 음성문자를 보내오면 자연스레 클릭 없이 音频转文字로 글로 읽고 타자로 답장했다. 

물론 그 벽을 넘으려고 노력을 아예 안 한건 아니다. 우리 팀에 입사한 지 얼마 안되어 팀 제품 영상에 영어로 더빙을 해야 되는데 하필이면 내가 선택되어 정말 힘들게 그 과정을 겪였다. 이제 좀 나아졌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내 목소리가 녹음된 그 영상은 내가 마감작업을 끝낸 뒤 단 번도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이 없다. 궁지에 몰려 억지로 한, 그것도 영어로 된 녹음이라 내가 벽을 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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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온라인 오프라인 미팅 다 부담 없이 잘 하면서도 왜 내 목소리가 녹음되는 건 이렇게 싫을까? 너무 이해가 안되어 상상까지 해봤다. 사람들에게 음성문자를 보내는 것 vs 사람들 앞에서 비키니를 입는 것… 비록 요즘 몸에 살이 많이 붙었지만 비키니를 입는 게 편할 것 같다고 바로 판단이 내려진다. 

언젠가는 나도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고 (되려고 노력을 할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을 공개하든 안 공개하든 이 과정에서 목소리를 녹음하고 반복하여 재생하면서 편집해야 하는 건 절대 피할 수 없는 과정이겠는데, 현재로선 막막하기만 하다. 

지금의 내 부정적인 느낌을 싹쓸이해버릴 이유가 언젠가는 나타나겠지. 그게 언제가 되든 병아리 알 밖에서 가해진 충격이 아니라 알 안에서 뿜어지는 에너지였으면 좋겠다. 

쓰다 보니 갑자기 고민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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