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좋다 한마디 했기로서니그게 그렇게 사무치는 죄이런가
—한영남의 시집 ≪추억은 거기 울바자처럼 서있었네≫의 출간에 부쳐
—한영남의 시집 ≪추억은 거기 울바자처럼 서있었네≫의 출간에 부쳐
대란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니라 살아내야 할 존재이다. “**의 시대”라고 하여 영웅을 칭송하기도 하지만 영웅 역시 그 시대 속의 인물인 것이다. 영웅이 못된 소인물일지라도 시대를...
—김경화의 장편소설 《눈부신 날들》의 출간에 부쳐
―전춘화의 소설집 『야버즈』를 중심으로
은희경의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읽고
“학자들은 서늘한 그늘 속에 시원하게 앉아 있다. 그들은 모든 일에 있어서 구경꾼이 되려고 하며, 태양이 내리쬐는 계단에 앉으려 하지 않는다.”
1. 프롤로그: 조금 쉬워졌으나 여전히 낯선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8장은 앞선 1-7장보다 쉽게 읽혔다. 앞부분을 거치며 니체 특유의 문체와 은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덕분인가 보다....
우리는 왜, 무엇을, 어떻게 읽고 쓰는가?
그대는 무엇에 환희를 느끼며, 어떤 열정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니체가 성경을 비판한다지만, 내가 읽기로는, 니체와 성경은 ‘몸’을 통해 삶이 구체적으로 실현된다는 점에서 교차한다. '몸'은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살아가는 통로이자, 삶의 출발점이기도 함을 새삼 깨닫는다.
니체의 일갈은 배후세계를 허물고 난 뒤의 허무를 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여기, 나의 삶을 긍정하라는 요청이다. 이 글을 읽는 그대는 어떠한가? 그대에게도 '지금, 여기'를 더...
그럼에도 나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덕이 정말 그렇게 조롱할 일인가?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가장 창조적인 실천이 아닐까? 나는 지금 니체와 논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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