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지금, 여기, 나’, 그리고 ‘몸’

3장에서 니체는 ‘배후세계’―죽음 이후의 세상이나 추상적 진리―를 강하게 비판한다. 그는 인간이 초월적 세계에 집착하며 현실을 경시하는 태도를 “망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금, 여기, 나’의 삶을 살라고 촉구한다.

4장은 이 철학의 구체적 실현은 바로 우리의 ‘몸’을 통해서라고 주장한다. 니체는 “몸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가장 정직한 언어”라는 관점이다. 

2. 니체의 신체관: “몸은 큰 이성”

서양 철학과 종교는 오랫동안 인간을 정신과 신체로 나누고, 영혼은 고귀한 반면에, 육체는 죄와 욕망의 근원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니체는 그런 이분법을 비판한다.

“나는 전적으로 몸이며,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영혼은 몸에 속한 무엇을 표현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니체에게 몸이란 단순한 육체가 아니다. 인간의 정신과 자아, 가치 창조의 뿌리이며 본질로 보고 있다.

“감각과 정신은 도구이자 장난감이다.”

이 말은 도구이자 장난감감각과 정신의 주인인 ‘몸’이 감각, 정신을 잘 조율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니체에게 몸은 충동뿐만 아니라 욕망, 고통, 기쁨이 교차하는 삶의 무대이며, 몸을 긍정하는 일이 곧 삶을 긍정하는 일이다.

3. 기독교는 몸을 부정하는가?

니체가 비판하는 전통의 대표격인 기독교 전통에는 플라톤주의와 중세 금욕주의 등 신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흐름이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몸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긍정적 해석도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몸’을 가진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감탄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 역시 육신(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사도 바울은 “너희 몸은 성령의 전(殿)”이라고 말하며, 『아가서』는 육체적 사랑을 아주 노골적으로 아름답게 노래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건강과 웰빙을 신앙의 중요한 가치로 강조한다. 몸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몸은 단지 욕망의 장이 아니라, 사랑, 신앙과 삶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4. 몸의 언어 ― 신체 언어(body language)

니체는 몸이 전부라고 하는데, 언어학의 관점에서도 몸은 메시지를 주고 받는 통로이다. 우리는 흔히 언어를 매체에 따라, 음성 언어와 신체 언어로 나누고, 전자, 즉 말을 의사소통의 중심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몸짓과 표정, 눈빛과 신체 접촉, 즉 비언어적 표현 또는 신체 언어는 보다 본연적이다. 말로는 “나 화 안 났어.”라고 거짓을 뱉을 수 있지만, 표정이나 씩씩대는 숨소리는 이미 화가 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 60~90%가 비언어적 요소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언어학 개론 수업에서 여전히 음성 언어가 보다 정확하고 보다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그런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다.

코로나 시기, 만 7세였던 막내는 온 가족이 감염되어 다른 방에서 격리 생활을 하면서 새벽마다 잠에서 깨어 대성통곡을 하며 울부짖었다.

“엄마, 꼭 안고 싶어요.”

나는 문을 사이에 둔 채 2미터 간격을 유지하면서, 우리는 너와 함께하고 있고 사랑한다며 기도하고 달랬다. 그러나 아이의 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때, 진정한 위로는 말이 아니라 살을 맞대는 신체 언어에서 비롯됨을 절감했다.

“오히려 건강한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이것이야말로 좀 더 정직하고 좀 더 순수한 소리다.”(3장에서)

우리의 몸은 고통만을 담는 그릇은 아니다. 따뜻한 포옹, 웃으며 나누는 눈빛, 저녁 조깅의 개운함처럼, 우리의 몸은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모두 품는다.

5. 에필로그: 몸과 정신의 조율이 필요한 때

몸이 원하는 대로만 사는 것도, 반대로 몸을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것도 건강하지 않다. 때로는 정신이 말 고삐를 당기듯 몸을 다스려야 하지만, 정당한 신체적 욕망을 죄책감 없이 누리는 일도 삶의 일부이다.

“그대의 자아는 그대의 ‘나’와 그 ‘나’의 자랑스러운 도약을 비웃는다.”

지난 학기, 매주 4일씩 매일 왕복 500km를 통근하며 “아이들한테 내가 필요하니까.”라는 정신으로 버텼고 몸을 혹사했다. 다행히 몸이 따라 줬지만, 4장을 읽으면서 내 몸의 소리에 귀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큰언니가 이 세상을 떠났지만 언니의 영이 우리와 함께라는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다. 하지만, 언니의 몸의 부재는 두 조카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이 땅에서는 극복되지 않는 상실이다. 몸은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살아가는 통로이자, 삶의 출발점(origin)이기도 함을 새삼 깨닫는다.

마무리하자면, 니체와 성경은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읽기로는, 니체와 성경은 ‘몸’을 통해 삶이 구체적으로 실현된다는 점에서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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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프리드리히 니체 저, 백승용 역(202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사색의 숲
프리드리히 니체 저, 이진우 역(2020),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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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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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두 몇장까지 있나요?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어왔는데, 점점 울림이 있네요. 몸을 받아서 복을 받았고 몸에 갇혀서 고통받기도 해왔습니다. 여전히 어떤 그리움은 신체적 거리 또는 영원한 이별을 수반하기에 사무치고, 또 어떤 그리움은 몸을 뛰어넘기도 함에 다행이고요. “마음은 자유로워 어디든 갈수 있”고, 영혼은 더욱 그 비밀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 글의 의도에 상관없이 독자가 자기가 느끼는바를 댓글로 썼으니 이것도 후기구조주의적인 읽기인가요?

    1. 모두 78장입니다. ㅋㅋ 그런데 다음주부터는 또 바쁠 예정이라 몇 장까지 이런 열정으로 독후감을 쓸지는 모르겠어요. ^^;;
      “마음은 자유로워 어디든 갈 수 있고, 영혼은 더욱 그 비밀이 크다” 공감해요.
      어떻게 읽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인 것 같아요. 댓글 진심으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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