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속의 개인,  개인의 숙명, 그리고 숙제는?

 —≪낙타의 꿈≫을추천하며

리은실

포레스트 검프(阿甘正传,Forrest Gump)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주인공 포레스트는 아이큐 75인데다 신체도 불편하다. 그러나 그에게는 누구보다 강인한 엄마가 있고 편견없이 그를 바라봐주는 녀자친구 제니가 있다. 영화는 포레스트의 인생을 고스란히 따라가는데 단순히 한 인물의 일대기만을 그리지는 않았다. 달리기밖에 할 줄 모르던 순박한 청년 포레스트의 삶과 함께, 랭전시대, 베트남 전쟁, JFK 암살 등 미국의 현대사가 그의 인생과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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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낙타의 꿈≫이라는 한 문화학교수의 자서전을 편집하면서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자서전은 그가 태여나기 전 조부모님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여 80고령에 오른 그의 현재시점까지 이어진다. 책에는 중국의 근현대사와, 우리 민족 근대의 수난사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그런 력사는 그 개인과 그의 가족의 이야기에 서로 스며들어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할아버지가 가솔을 거느리고 조선의 단천에서 화룡 양창동으로 건너와 힘겹게 농사짓고 자식들을 키우는 이야기는 그 가족의 개인적인 이야기이면서 또 보편적인 우리 조선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시기 고급지식인이였던 끼끗한 둘째삼촌은 신경(지금의 장춘)에서 중등전문학교를 다니고 조선 청진에 가서 중학교 교원으로 지내며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이어가다가 조선전쟁이 터지자 고향인 화룡으로 돌아오는 길에 미국군인을 만나 곤욕을 치른다. 그렇게 어렵사리 부모님 계시는 고향집 근처에 왔지만 피난민은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는 변강 파출소의 지시에 따라 조선 무산으로 돌아간다. 무산시에 도착한 지 한달도 안되여 둘째삼촌은 숙환으로 돌아간다.

셋째삼촌은 조선전쟁에 나갔다가 부상을 당하여 고향집 근처의 화룡시 병원으로 이송되여 치료를 받고 다시 전장에 나갔다가 목숨을 잃는다. 화룡시 병원에 이송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엿을 한가마 달여놓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들을 기다렸지만 아들은 지척에 집을 두고도 들리지 않고 그대로 다시 전쟁터로 달려나갔다가 영영 불귀의 객이 되여버린 것이다.
두 아들을 잃고 할아버지는 설만 되면 서럽게 서럽게 울며 원통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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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 시기 어느 한 가정의 비극이 아니다. 이는 우리 조선족 전체의 아픔이고 상처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외삼촌이 화룡 갑산 강가에서 금덩이를 줏는 바람에 째지게 가난하던 집안이 일떠서서 번듯한 집을 짓는 천방야담 같은 이야기도 있다.

저자인 김동훈 선생님은 내 대학시절의 스승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중국고전문학강독과를 가르쳤는데 이제 와서 솔직한 이야기를 한다면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이야기나 우스개로 이목을 사로잡으려 하지 않으셨다. 그저 묵묵히 고대 시가들을 열심히 해설해주셨다. 가끔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기도 했지만 그때 배웠던 시가들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지루함 속에 반짝이는 재미가 있었던가보다.

문여기인이라 했던가, 선생님은 꼭 마치 그 본인 같은 글을 쓰셨다. 눈 돌아가는 렵기적인 이야기나, 유쾌하고 발랄하여 이목을 사로잡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책은 천천히 사람을 사로잡았다가 종내 놓아주지 않는 마력을 지녔다.

선생님은 자신의 학창시절과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아바장족챵족자치주에 농촌공작대의 일원으로 갔던 일, 5.7간부학교에 하방하여 겪었던 일들을 소상히 적어놓았다.

조선족작가들의 회상기 가운데서 그의 글이 지닌 독특함이라면 북경에서 공부를 하고 한때 북경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그의 생활반경에는 중국 문학계, 사회학계의 주류인사들이 대거 포진되여있어 우리로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한때 중국 문단의 령수로 군림했던 문예리론가 주양의 비판대회에도 직접 가서 주양이 비판투쟁을 받는 것을 목도한다. 또 조수리의 열렬나 팬으로서 조수리의 고향에 가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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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빙심 작가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고 5.7간부학교에서 조우하기도 한다.

5.7간부학교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와있다. 유럽에서 류학도 한 엘리트인 H 녀교수는 비판투쟁의 세례에 조현병에 걸리고 만다. 그녀는 워낙 예쁜 용모에 촉망받는 재원이였지만 5.7간부학교로 와서 점점 이상증세를 보인다. 도마도에 가루비누를 치고는(설탕인 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는가 하면 좋은 일을 한다고 변소에서 구더기를 잡아내서 가져오기도 한다. 모든 게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멀쩡한 정신으로 버티기가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김동훈 선생님은 5.7간부학교에서 유명한 사회학자 비효통(费孝通)과 같이 취사반에서 료리를 하기도 한다. 비효통 교수는 문화대혁명 초기 반동학술권위로 비판투쟁을 받았었다.
김동훈 선생님은 비효통 교수를 가까이서 모시면서 그에게서 많은 외국견문을 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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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인생의 어느 시기든 본인이 겪은 모든 것을 소상히 기록하였다.

선생님은 본인도 서문에서 말씀하셨다싶이 사막을 걷는 낙타처럼 그저 묵묵히 자기가 해야 할 바를 찾아 하면서 살아오셨다. 문화대혁명의 세례에 비판투쟁도 받고 여러 간난곡절을 겪었지만 그는 부러지지 않고, 굽어들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굳세고 끈질기게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해나갔다.

금전의 유혹에도, 관직의 유혹에도 그는 초연했던 듯 싶다. 아니면 그가 하고저 하는 일은 문화를 전파하는 ‘낙타’였기에 돈, 관직 같은 것들이 그에게는 애초에 유혹이 아니였던 것일 수도 있겠다. 그는 꾸준히 글을 쓰고 꾸준히 연구를 하고 꾸준히 기록을 남겼다.

포레스트 검프(阿甘正传)의 주인공 포레스트는 75의 아이큐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 자기 인생에서의 승자이다. 그는 조금 부족한 지력때문에 사회적으로 외면을 받지만 비로소 그 부족함 때문에 그는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비관하지 않으며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고 오직 현재, 눈앞의 일을 게으름없이 해나간다. 걷잡을 수 없는 외로움, 막막함은 열심히 앞을 향해 뛰는 것으로 해소하며 그는 사랑해야 할 존재들을 더 깊이 사랑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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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주노아빠

이런 포레스트에 김동훈 교수님을 비교한다는 것은 외람된 일이지만 나는 어떤 부분들이 조금 닮았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자기가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부단히 탐색하고 그것을 향해 우직하게 뚜벅뚜벅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정직하게 걸어간다. 그리고 종내 가닿고 싶었던 종점에 닿는다. 어쩌면 진정한 성공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출판사에서 나는 자서전을 적지 않게 편집해왔다. 이런 책 하나를 펴내고 나면 나는 흡사 저자와 함께 긴 인생을 살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런 책들을 편집하면서 들었던 생각이라면 “시대를 이기는 개인은 없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노력이 없다면 인생의 의미는 희박해지는 것이다.

시대라는 것이, 나를 둘러싼 대환경이라는 것이 커다란 가마라면 개인은 그 안에서 마구 휘저어지는 생선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은 허무한 생각이 드는 때가 가끔 있다. 물론 인간이 가진 주체성, 능동성이라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연변은 요새 가게나 행정기관의 간판들을 대거 교체한다고 한다. 원래 우에 크게 적었던 조선글은 밑에 작게 표기하고 한어를 우에 표기한다고 한다. 그 위치가 바뀐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겠냐만은 이 행위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그동안 우리 사회 지성인들이 민족의 글과 말을 지키기 위해 들였던 노력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것 같아 허탈한 기분이 든다.

하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이 유난히 큰 제약을 받는 시기가 요즘이기도 하다.
사회의 어떤 부조리에 과감히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귀하다. 그러나 조용히 있는다고 해서 무기력해지지는 말아야 한다. 힘을 절약하여 우리가 조용히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소상히  시대를 기록하는 것이다.

거침없이 자반뒤집기를 하는 불가마 같은 대환경에서 개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그대로 굽혀질 수만은 없다.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런 환경에서도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존엄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시대란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니라 살아내야 할 존재이다. “**의 시대”라고 하여 영웅을 칭송하기도 하지만 영웅 역시 그 시대 속의 인물인 것이다. 영웅이 못된 소인물일지라도 시대를 최선을 다해 살아내면 그로서 족한 것이 아닐가 싶다. 현실의 불의에 앞장서 항거하는 인물이 되지 못했다 한들 자기 앞에 주어진 일을 착실히 해낸다면 그로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주어진 일이란 시대에 대한 자기 나름의 소상하고 정직한 기록이 아닐가 한다. 글로서, 땀방울로서… 기록의 힘은 어마무시한 것이다.

14억 인구의 각자 나름의 기록을 집대성하면 어마어마한 문화자산이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포레스트 검프 영화에서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사랑하는 녀자의 무덤 앞에서 이런 말을 한다.
“인생에 정해진 운명이 있는 걸가? 아니면 바람에 이리저리 실려가는 걸가? 아마도 둘다가 아닐가 생각해.”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격변의 중국의 근현대사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너무나 제한적이였을 것이다. 이 책의 귀한 점은 그런 격변에도 이리저리 등떠밀려 실려가려고만 하지 않고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찾아서 꿋꿋이 해내려 노력한 한 개인의 서사가 주는 담담한 감동이다. 때로는 거침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실어 떠가기도 하고 때로는 밀려가지 않으려 안깐힘으로 버텨내며 선생님은 80성상을 살아내셨고 그것을 소상히 기록하셨다.

시대 속의 개인, 그 개인의 숙명 그리고 숙제… 그것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계속 간직해두고 수시로 꺼내 열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이 그 질문에 대한 조금의 해답이 될 것임을 믿어의심치 않으며 정중히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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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대가 뭐라고 중국조선족이란 단어는 늘 가슴저미듯 애탄한지 모르겠습니다. 왜 꿈을 꾸는 것 조차 이렇게 조심스러워야 하는지, 왜서 흩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 분명한 것은 말하지 않아도, 말할 수 없어도 같은 방향을 봐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꿈안에 “너’가 있고 “너”의 꿈안에 내가 있다는것이 이 외로운 싸움이 덜 외로워지지 않을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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