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끝나고 나면 항상 비슷한 기분이 남는다. 무언가를 배웠다는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시간을 보냈다는 느낌도 아닌, 어딘가에 살짝 금이 간 것 같은 감각. 이번 주도 그랬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문장에서 멈췄다. 어떤 사람은 금융 이야기에서, 어떤 사람은 회의 문화에서, 어떤 사람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서. 같은 책을 읽었는데 이렇게 다른 곳에서 걸린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까. 책은 거울이 아니라 프리즘에 가깝다. 같은 빛이 들어가도 나오는 색이 다르다.
인상적이었던 건 아무도 책이 어렵다거나 재미없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약간 불편하다고 했다. 자기랑 맞지 않는거 같다고 했다. 편안한 독서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일에 가깝다. 불편한 독서는 내가 서 있는 땅을 흔드는 일이다. 이번 주 이 책은 꽤 여러 곳의 땅을 흔들었던 것 같다.
天外有天,人外有人. 누군가 그렇게 적었다. 하늘 밖에 하늘이 있고, 사람 밖에 사람이 있다는 말. 이어서 그는 썼다. 也许我在井底,我想知道外面的世界,我也好奇别人的世界观是什么? 우물 안에 있다는 걸 아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우물 안에만 있지 않다. 그 문장이 이번 주 모임 전체의 출발점처럼 느껴졌다.
심리학 이야기를 꺼낸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심리학 이론들이 사실은 서구의, 교육받은, 젊은 뇌를 연구한 결과물일 뿐이라는 지적.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중국에서도 애완동물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WEIRD 문화 (*)에서는 개인이 스스로 가족을 정의하고, 그 빈자리를 동물이 채운다고 책은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사회 발전의 필연인가, 문화의 이식인가. 질문은 답보다 오래 남는다.
금융 이야기가 나왔을 때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누군가는 금융 자료에 사람의 얼굴이 없다는 점을 짚었다. 발표 자료에 실제 사람의 이미지가 없다는 것, 그게 이상하다는 시각 자체가 신선하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돈은 현실의 문제인데, 금융의 언어는 어딘가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 법률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전문 용어들은 현실의 사건을 다루면서도 인간적이지 않다고.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적었다.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이해하지 않음으로써 돈을 번다면, 그 사람에게 그것을 이해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서사와 이야기에 현혹되기 쉬운 금융 시장이라는 말도 남겼다.
느린 돈에 대해 사람들은 무시하거나,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두려움을 표현한다는 대목도 누군가의 밑줄에 있었다. 빠른 돈은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지만 느린 돈 앞에서는 왜 그렇게 작아지는가. 그 비대칭이 흥미로웠다.
전문가의 역설을 꺼낸 사람도 있었다.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틀에 갇혀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는 지적. 정확하기 때문에 더 뼈아프다고 했다. 그 말이 맴돌았다. 우리는 무언가를 깊이 알수록 그 바깥을 보는 눈을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회의 이야기는 예상 밖이었다. 어떤 팀은 회의를 결정의 자리로 본다. 어떤 팀은 회의 자체가 일이다. 어떤 팀은 합의에 이르는 과정으로 본다. 같은 단어를 쓰면서 이렇게 다른 것을 상상하고 있었다는 것. 낯익기 때문에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래서 불협이 시작된다는 것. 문화 충돌은 국경 너머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매주 들어가는 회의실 안에도 있었다.
화성인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상상을 꺼낸 사람도 있었다. 낯익다는 이유로 간과하고 있는 것들, 의미망과 아비투스(Habitus)의 렌즈를 들이댄다면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을 비로소 보게 될까. 그 질문은 책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이미 각자의 안에 있었다.
그리고 가장 짧고 가장 예리했던 한 줄. "21세기에 무언가를 감추고 싶다면 제임스 본드처럼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다. 그냥 약어로 덮으면 된다." 웃음이 나왔지만 웃을 수만은 없었다. 언론도 문화적 편향에서 자유롭지 않고, 나 역시 나의 환경과 편향의 산물이라는 말도 그 옆에 있었다. 결국 우리가 보는 세계는, 우리가 보도록 훈련된 세계일지도 모른다.
암튼, 3주차가 기다려진다.
(*) Western (서구), Educated (교육받은), Industrialized (산업화된), Rich (부유한), Democratic (민주주의) — 이 다섯 단어의 앞글자를 딴 약어.
헨릭의 주장은, 심리학을 비롯한 많은 사회과학 연구들이 이 WEIRD 집단, 즉 서구의 교육받고 부유한 사람들을 주로 연구 대상으로 삼아 이론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마치 전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진리인 양 다뤄왔다는것. 실제로는 세계 인구의 극히 일부를 연구한 결과인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