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의 휴강 문자
아버지의 장례 기간 내가 영정사진보다 더 오래 들여다본 것은 학교 행정실에서 학생들에게 보낸 휴강공지 문자였다.
"OOO 부친상으로 인해, 9월 0일 수업은 휴강되었음을 안내드립니다.“
9월 5일 오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그날 오후, 학교 행정실은 학생들에게 첫 번째 휴강 공지를 발송했다. 이후 내 수업이 예정되어 있던 날짜와 과목명만 고친 똑같은 내용의 문자가 몇 번 더 도착했다.
그 무렵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에게는 아버지의 상실이었지만, 수강생들에게는 시간표의 한 칸이 비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잠시 난감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뜻밖의 휴강에 반가워했을 것이며, 누군가는 별생각 없이 화면을 넘겼을 것이다. 그 문자는 애초에 슬픔을 전달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 아니라 수업 일정의 변경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문자에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그것을 캡처해 두었다. 하나의 사건이 사람마다 완전히 다른 세계로 번역되어 도착한다는 사실을 화면은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은 언제나 한 개인이 홀로 마주해야 하는 사건이다. 타인의 죽음 곁에 머물 수는 있어도 그것을 온전히 나눌 수는 없다. 내가 온몸으로 겪는 아버지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작은 변수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애도작업이란 어쩌면 그 간극을 인정하는 과정일 수 있다.
캠퍼스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다른 교실에서는 수업이 이어졌고, 계절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가을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그날의 휴강 공지는 차갑지 않았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사건이 가지는 고독한 본질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2024년 가을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