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相非相> 시리즈 중

부조리한 만찬: 맥락이 어긋난 접시 위에서

-김광영의 최신작 <實相非相>에 대한 평문

김광영의 사진은 애초에 음식사진이 아니다. 그럼에도 접시 중앙의 오브제와 양옆에 놓인 포크, 나이프의 익숙한 배열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하나의 식사 장면으로 이끈다. 그러나 그 익숙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접시 위를 점유한 것은 음식이 아니라 인형, 알람시계, 자전거, 장바구니, 심지어 뼈이기 때문이다. 결코 섭취할 수 없는 사물들임에도 우리는 왜 이 기이한 배치를 ‘식사 장면’으로 먼저 받아들일까. 김광영의 사진이 흥미로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프레임 안에서 우리는 대상의 본질보다, 그것을 둘러싼 ‘형식의 질서’를 먼저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實相非相> 시리즈 중

이 부조리한 만찬에서 접시는 단순한 그릇이 아니다. 문화적 의미에서 접시는 무엇이 음식이고 아닌지를 구분하는 장치이며, 식탁은 그 구분이 작동하는 질서의 공간이다. 우리는 이 인위적인 질서를 자연스러운 도덕처럼 받아들여 왔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공고한 믿음에 균열을 낸다. 인형이나 시계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사물 자체의 기괴함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이 ‘놓여서는 안 될 자리’를 침범함으로써, 우리가 맹신하던 질서를 배반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진이 교란하는 것은 사물의 물성이 아니라, 사물을 특정한 방식으로만 읽도록 만드는 시각적 관습이다.

어떤 대상이든 접시 위에 놓이는 순간, 그것은 잠정적으로 ‘소비되고 먹히는 것’으로 읽힌다. 물론 우리는 그것이 식용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이성이 작동하기도 전에, 시각은 이미 ‘식사의 형식’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뒤다. 바로 이러한 이해와 인식 사이의 짧은 지연, 미세한 틈이 사진에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實相非相> 시리즈 중

이러한 긴장 속에서 주목할 점은, 작가가 사물의 형태를 왜곡하는 방식 대신에, 맥락을 이동시키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 전치(displacement, 移位)만으로 사물이 맺고 있던 기존의 의미망은 해체되고 다른 의미의 장이 열린다. 접시 위의 시계는 더 이상 시간을 재지 않고, 인형은 장난감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것들이 특정한 메시지로 환원되는 것도 아니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사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의미화되는가’에 있다. 

나아가 사진 속 오브제들을 밀착해서 살펴보면, 그것들은 단순히 자리만 옮겨온 사물들이 아님을 발견할 수 있다. 인형은 포박된 상태이고, 시계는 붉은 얼룩을 뒤집어쓴 채 멈춰 있으며, 자전거는 더 이상 구를 수 없다. 장바구니는 실타래에 얽혀 기능을 상실했고, 뼈는 생명이 소멸한 뒤의 쓸쓸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마치 완전히 소비되었거나 소모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사물들은 '본연의 기능과 운동성을 상실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 지점에 이르러 접시는 음식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무력한 사물들의 상태를 폭로하는 무대로 변모한다.

<實相非相> 시리즈 중

우리는 왜 이토록 부조리한 장면을 식사 장면으로 읽으려 했을까. 롤랑 바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상식을 가장해 의심의 여지를 지워버리는 ‘신화(Myth)’의 작동 방식과 닮아있다. 접시와 식기라는 시각적 배열은 우리에게 거의 자연의 질서처럼 체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김광영의 작업은 이러한 익숙함을 역으로 이용한다. 식사의 구조를 완벽히 유지한 채 내용물만을 전복시킴으로써, 우리가 맹목적으로 따르던 문화적 규칙들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특히 실재했던 사물의 물리적 흔적을 기록하는 사진의 지표(index)적 속성은, 이 부조리한 연출을 단순한 허구가 아닌 눈앞에서 벌어진 해프닝으로 받아들이게 만들며 그 전복의 효과를 증폭시킨다.

결국 이 사진들이 우리에게 들이미는 것은 사물을 특정한 방식으로만 읽도록 강제하는 '문화 프레임의 권력'이다. 우리는 대상을 주체적인 눈으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와 문화가 촘촘하게 짜놓은 질서의 그물망 안에서 그것을 타성적으로 ‘읽고’ 있을 뿐이다. 김광영의 사진은 바로 그 완고한 질서가 은밀하게 작동하는 순간을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實相非相> 시리즈 중

실상 사진 속 오브제의 외형만 놓고 보면 변한 건 없다. 그릇으로서의 접시와 도구로서의 식기는 형태적 왜곡 없이 제 자리에 있다. 그러나 그 위를 점유한 비(非)음식적 존재와, 그것을 ‘식사’의 맥락으로 독해하려는 관객의 시선이 부딪치는 모순이야말로 이 작업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다. 

김광영의 사진은 이 모순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어긋난 틈을 오래도록 응시하게 만든다. 그 집요한 응시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접시 위의 기이한 사물들이 아니다. 그것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음식의 맥락으로 읽어내고 있었던, 바로 '우리 자신의 관습적인 시선'이다.    

                                                                                                                                  (2026. 6, 탄천 변에서)

사진작가 프로필: 

김광영(金光永, 1961.3 ~ 2026.6.29.) 

연변대학 미술학원 교수. 조선족 사진가이자 교육자. 연변대학교를 졸업한 뒤 우한대학교에서 영상예술을, 한국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학을 전공하여 사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국사진가협회 교육위원회 부비서장 및 연변사진가협회 부주석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사진작가협회, 한국광고사진가협회 명예회원으로 활동하며 한·중 사진문화 교류의 폭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76년부터 카메라로 연변 조선족의 삶과 시대를 기록해온 그는 2026년 6월 29일 별세하였다.

이 작품들은 고인이 투병 중 마지막으로 준비한 연작으로, 생전 평론가에게 평론을 의뢰하며 발표를 준비하던 미공개 작품이다. 고인은 평론문을 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별세했으며, 해당 평론과 함께 유작은  <해외동포신문>(2026년 7월 18일자)을 통해 처음 공개되었다.

원문출처 :  https://www.dongpo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59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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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형이 두번 나오는데, 모두 한복을 입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많은 같스꾸마. 접시에 담긴 자체가 이미 자유가 없음을 말하는데, 거기에다 더해서 포박되지 않으면 머리가 나떨어진 상태라, 뭔가 꼬집힘이 느껴지는 같스꾸마

  2. 잘 읽었습니다.
    밑줄 긋고 싶은 문구는
    “결국 이 사진들이 우리에게 들이미는 것은 사물을 특정한 방식으로만 읽도록 강제하는 ‘문화 프레임의 권력’이다. ”

    그리고 제가 이 사진 작품 시리즈를 보면서 주체할 수 없이 떠오른 몇겹의 느낌을 나누겠습니다.

    접시와 양 옆에 놓인 포크과 나이프, 식사라는 의식보다, 제 눈에는 칼질하는 도마와 그 위에 놓인 난도질 당한 사물로 보입니다.

    조선민족의 “식사”라면 밥그릇과 수저라는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이 작품들에서는 굳이 서양식 접시에 빨갛게 물든 포크와 나이프라는 도구를 사용한 것이 특이하게 다가옵니다.

    이 시리즈 사진 작품들은 서양의 식사 의식에 더 익숙한 관객과 평론가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한 것일가, 아니면 폭력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중식 도마와 칼 대신 그 수위를 낮추려고 선택한 도구일가, 라는 저의 궁금증을 이끌어냈습니다.

    좌우 양 손을 동시 사용해야 하는 포크와 나이프, 그 위에 놓인 사물들은 손발이 잘린 흰쥐, 담을 수 없는 카트, 멈춰선 시계, 뱡향잡이 앞대가 부러진 자전거, 머리가 잘린 인형, 안식하지 못한 뼈다귀 — 이 모든 “도마” 위의 사물들은 외력에 의해 “운동”이 중지되었습니다.

    중앙에 배치된 사물은 “운동” 불가한 상태로 전시되고, 외력은 포크와 나이프를 통해 힘을 과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멋진 사진 작품을 남겨주신 고 김광영 사진 작가님께 경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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