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어느날, 알라딘중고서점에 갔다가 아무튼시리즈라는 에세이집 책등들이 일렬로 눈에 들어왔다. 요즘 에세이집답게 모두 비슷한 깔끔함, 그 중에 유독 고전적인 책등이 눈에 들어와서 뽑아봤더니,
오 이토록 중국 90년대스러운 표지가.

이 책의 제목은 <아무튼 장국영>이었다.
샀다.
어쩐지 그날 내가 거기 간 것은 이걸 사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읽어보면 증명될 것 같아서.
난 장국영 팬은 아니다. 아니, 사실 그를 잘 모른다. 장국영의 특별함에 대해서는 알지만, 그정도로 좋아하는 것은 팬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좋아하기 쉬운 배우니까.
집에 두고 있다가 어느 적당한 날에 읽었다. 스스로를 노영미라고 칭하는 작가의 절절한 장국영앓이는 설득력이 있는 사랑이었다. 자기를 파괴하는 덕질이 아니라 자기를 성취하는, 흔한 말로 성덕의 길이라고나 할까.
작가의 현직은 중문과교수다. 교수가 됐다고 성덕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배우를 얼마나 촘촘하고 깊게 덕질을 했으면 거기까지 갔을가 싶다. 이정도면 정신적으로 장국영의 세계에 닿을수 있는 제일 가까운 자리가 아닌가. 그리고 거기서 더 갈수 있는데가 없어서 애닯다. 장국영은 이젠 이세상에 없으니까.
위에 말했던 노영미는 老荣迷 즉 장국영의 오랜팬을 칭한다. 그리고 신영미도 있다. 새로울 신. 장국영의 사후팬덤이다. 이 사후팬덤 현상으로 작가는 논문도 썼다.
이런 류의 사랑은 나같은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 <아무튼장국영>을 다 읽고나니, 나도 신영미가 될것 같았으나, 부족한 탐구정신으로 인해, 그저 타인의 덕질에 감동하는 독자로 머물렀다.
어떤 스타들을 덕질하는 일은 사뭇 위험하다. 장국영이 그렇고, 오늘 말하려는 마이클잭슨이 그렇다.
며칠 전 장안의 화제라는 영화 마이클을 적당히 늦은 저녁에 혼자 보고 왔다. 잘 아는 몇몇 노래들을 들으며 추억콘서트 비슷한 느낌으로 보려고 갔는데,
뜻밖의 경험을 했다. 아는 노래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영화는 잭슨파이브 시절부터 시작하여 그가 진정한 의미의 솔로로 서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나는 사실 마이클잭슨 팬도 아니다. 트레이드마크인 그의 춤도 많이 보지 못했다. 워낙 대스타라서 누구나 알만큼 미디어에 자주 나오니까, 아마 그저 남들 본것만큼 그의 무대가 내 눈에도 들어왔을 것이다.
나에게 그가 특별했다면, 단지 문화생활 자원이 부족하던 소싯적에 좋아하는 영어 언저리에서 기웃거리다가, 아마도 신화서점 일층이었을 거기 테이프 코너에서, 영어권 가수들 근처에서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기웃거리다가, 잡지인가 어디서 보았던 것 같은 마이클 잭슨이라는 가수의 Bad 테이프를 십원인가 주고 샀을 것이고, 그러나 집에 가서 들었을 때, 이미 주변에서 울려퍼지던, 너무 신세계였던 터보라든가 노이즈라든가 하는 가수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저세상 간지였던 그런 컬쳐쇼크 청각적쇼크, 즉 전방위로 놀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어떤 테이프를 사자마자 열번 넘게 들었고.

이것이 바로 나의 첫 마이클.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왔다.저기 위에 있는 중국어제목, 어째 나의 테이프엔 저런게 없었던 것 같았는데, 다 버리면서도 남긴 테이프들이 엄마집에 한박스는 되는 것 같은데 언제 집에 가서 찾아보면 저 한자의 유무부터 확인하고 싶다.
인터넷 검색도 없던 시절이라, 저 테이프를 들으면서도 나는 그가 백인인줄 알았다.
Bad를 수십번 듣고나서, 두번째 테이프를 샀다. Dangerous.

이것도 인터넷 사진. 危险之旅라는 이 글자도 아주 생소하다. 이것도 나중에 집에 가면 체크대상.
아무튼 이 테이프를 사서 가사지를 펼쳤는데 두둥~, 흑인 마이클의 사진이 있었다. 분명 Bad에선 백옥같이 하얬는데. 인터넷검색도 안되던 지난 세기에 이정도의 혼란은 어디가서 답을 찾기가 어려운 혼란이었다. 인종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의문을 갖고 살아가던 중, 우리반에 전학생이 왔다. 별 관심이 없었는데 어느날 그도 마이클잭슨을 듣는다는 것을, 아니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이클은 백인인가 흑인인가, 물어봤다. 피부성형으로 백인이 되었다고 전학생이 말했다. 그때 이미 노이즈 노래중에 성형미인이라는 노래도 있었으니, 나도 성형수술이라는 말 쯤은 들어본 중3. 그러나 피부 성형이 가능한 일인가? 그정도의 생각만 했던듯. 그러나 성형은 알아도 백반증이라는 병명은 몰랐던 그런 중삼.
그때만 해도 옆자리친구가 아닌 남학생이랑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은 아니었던지라, 나는 전학생과 마이클에 대한 심층토론을 더 하지 않았던것 같다. 그리고 그 뒤로도 이 취향을 공유할만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의 테이프 두개를 사서 들은 일반 청자로 남았다. 물론 그 두 테이프를 백번은 들은 것 같다. Bad가 첫 마이클이고 제일 좋아하는 노래도 이 안에 있지만, 요즘 복습해보니Dangerous에도 명곡은 참 많았다.
그 뒤에는 찬란한 한국대중가요의 품에 안겼다. 좀 더 커서는 마이클잭슨에 관한 추문이 들렸고, 그래도 그의 음악이 싫어지거나 해본적은 없다.
마이클잭슨의 콘서트에서 실신하는 팬들을 본적 있다. 그럴 것 까진 없지 않은가? 그의 무대에 난입하여 그를 붙잡고 놔주지 않다가 끌려가는 여성팬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나니 조금 이해가 될것도 같다. 그러니까 아이였을때부터 그는 미국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가수였고, 그 아이가 가수로 자라는 과정을 미국 사람들은 지켜봤을 것이고, 그는 매번 자기를 뛰어넘는 새로운 음악과 무대를 보여줬고, 다소 여성스럽게 보이는 가녀린 체구와 미성의 목소리에 부드러운 말투도 마치 어떤 성별 없는 순수한 존재처럼 보호해주고 싶은 대상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 보호하고픈 대상이 무대에 서면 또 전례없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영화를 보고나서 삼일째 틈만 나면 마이클잭슨만 찾아보는 나의 뒷북이 어리둥절하여 자꾸 마이클잭슨팬덤의 원인을 찾아보려고 하는 중. 그러나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일은, 그 사람이 좋아진 이유를 줄줄이 대다가도, 결국엔 원인을 모르겠다고 힘없이 말하는 상태일 것이다.

내 생각에 제일 근사한 마이클의 의상은 The way you make me feel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이 아웃핏.

어떤 무대에서는 이렇게 광택나는 소재를 입기도 했다. 브리트니스피어스랑 올렸던 무대였던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 마이클을 연기한 배우는 그의 조카라고 한다. 마이클과 닮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러닝타임 두시간을 보다보니 그 얼굴에 스며들어 제법 애착이 가는 현상이.
영화 말미에야 드디어 아는 노래 Bad 공연이 나왔다. 그 공연의 모습이 마이클과 너무도 비슷하여 생전의 콘서트모습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이런 댓글을 보았다.
“여기선 확실히 마이클신이 내렸네”
“마이클 왈: 조카, 애썼다. 여기부턴 내가 할게.”
그런데 계속 보다보니까 마이클이 아니라는 단서가 확실해졌는데 그건 바로 그의 뒷모습.
늘 날렵했던 마이클의 바지핏이 아니었다.

Bad무대로 끝났으니, Michael 2 가 나올 것 같다. 그땐 추억콘서트가 가능하겠지만, 먼저 나온 이 영화가 내게 준 여운을 넘어설수 있을까. 이번에도 나는 결국 사후팬이 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 기록은 타인의 덕질에 대한 기록을 하는척 하며, 그의 노래를 좋아했던 나의 중삼시절에 제출하는 숙제같은 것.

음악은 진짜 특정 멜로디를 듣던 그 특정 시점으로 돌리는 힘이 있는 같슴다. 중삼 여행을 다녀오셨군요. 냄새도 구체적인 기억을 떠올리게 하지만 음악만큼은 아닌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