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주도 여행 이틀째다. ‘여행’보다는 ‘휴가’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반 년 동안 최악의 순간들을 버텨낸 나 자신에게 숨 쉴 틈을 주고 싶어, 며칠 전 비행기표를 끊고 호텔을 예약했다.
조식은 호텔 뷔페로 미리 예약해 두었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테이블에 커피와 샐러드를 담아 와 식사 하려니 포크와 수저가 보이지 않았다. 규모가 크지 않은 호텔이라 그런지 식당 안에 직원이 보이지 않았다. 한국어로 두세 번 불렀더니 동남아계 젊은 여성 직원이 나타나 영어로 질문해 왔고, 한국어는 할 줄 모른다고 했다. 뜻밖의 상황에 머릿속이 순간 하얘졌다. ‘포크’라는 단어가 도통 생각나지 않아 몸짓으로 설명하자 상대방이 먼저 ‘fork’라고 말했다. 옆 테이블의 서양인 젊은 커플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며 지금 정말 낯선 곳에 와 있음을 실감했다. 가끔은 여행을 떠나 낯선 환경 속에 스스로를 내던져 잠든 머리를 깨워야 하는 것 같다.
호텔을 나가기 전, 어제 체크인할 때 친절하게 도와준 카운터 여직원에게 미니 봉투에 담은 중국산 목이버섯을 선물로 드렸다. 호텔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운행 시간표를 확인하니 버스가 아직 삼십 분 뒤에 도착한다고 떠서 택시를 잡았다. 작년 1월에 왔을 때 좋은 추억을 남긴 국수집 맞은편에 민속자연사박물관이 있었는데, 국수집은 아직 영업 시간이 아니라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시간을 때우려고 찾아간 민속자연사박물관은 정말 깜짝 선물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제주의 역사, 문화, 자연 환경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선전(深圳)에서 사계절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한국말로는 ‘참꽃나무’라고 불린다고 한다. 예전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대문에 금줄을 걸어 안전을 기원했다는 설명도 흥미로웠다. 어릴 적 우리가 놀았던 공기돌 놀이를 제주도에서도 ‘공기’라고 부르고, ‘콩주머니’도 있었는데 어린 시절 제기차기 때 쓰던 물건과 똑같았다. 제주도 밥상은 내가 좋아하는 해물과 나물 위주라 정말 인상 깊다. 그래서 제주도에 올 때마다 체중이 느는 건지도 모르겠다.


느긋하게 혼자 박물관을 한 바퀴 돌고 맞은편 국수집으로 향했지만, 왔다 갔다 두세 번 확인해도 찾던 가게가 보이지 않았다. 국수 거리 도로 공사 중인 작업자분들께 물어봐도 그런 국수집은 본 적 없다고 하셨다. 아쉬운 마음에 다른 국수집에 들어가 멸치국수를 먹었다. 맛은 훨씬 괜찮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서운했다. 제주도를 사랑하는 시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작년처럼 사케 한 잔 나눠 마시고 싶었는데. 한낮이라 그런지 국수 거리는 작년에 왔을 때보다 훨씬 한산하고 인적이 드물었다.

저녁무렵 호텔로 돌아왔더니 카운터 여직원이 귤칩 한 봉투를 건네며 맛보라고 했다. 목이버섯에 대한 답례라고 한다.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서 사 온 제주산 에일 맥주의 안주로 함께 먹었다. 맥주의 향과 쌉쌀한 맛, 귤칩의 새콤달콤한 맛이 잘 어울렸다.

저녁에는 근처 ‘본죽’에서 냉이소고기비빔밥을 먹고 거리 구경을 다녔다. 내일은 육지에서 내려오는 절친을 몇 년만에 만나 함께 여행을 계속한다. 너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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