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것은 가라!

거친 숨결이 닿는 문장을 위하여!

리은실

주말의 늦은 밤 집 근처 영화관을 찾아서 본 <给阿嬷的情书>라는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우연이자 필연이었다. 인터넷에서 영화에 대한 찬양이 이어지고 있었고 한 주 먼저 영화를 보고 온 남편이 일주일 내내 그 영화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던 것이다. 별 생각 없이 갔던 심야 영화관에서 나는 고민 없이 그 영화를 선택했다. 

광동 차오싼의 토속적이고 아름다운 풍경과 다듬어지지 않은 여주인공들의 매력적인 모습 그리고 신파나 클리셰 없이 이어지는, 다소 지루한 전개가 소박한 맛이 풍겨서 좋았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전문배우가 아니라고 한다. 대학교 재학생,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여교원, 대학을 막 졸업한 취업대기 청년이 주인공을 맡았다고 한다. 그런 그들의 연기가 다소 부족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올해 개봉한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은 관객이 찾은 영화라고 한다. 1천 400만의 저예산 영화지만 개봉한 지 한 달이 채 안되어 흥행 수입  10억을 돌파했다고 한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영화관을 나서며 인터넷 창에 영화를 검색해봤더니 역시나 그렇듯 찬양 일색이었다. 사람 사이에 있을 법한 아름다운 정과 사랑 그리고 우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고 네티즌들이 입을 모으고 있었다.

과연 그 정도의 영화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따뜻한 풍토인정을 그려서라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대체 그 영화의 어떤 점이 그렇게 훌륭했냐고 묻자 그가 말했다.

“감독의 심미인식이 정상이고 논리관계가 정상이야.”

고작 ‘정상’에 그토록 후한 점수를 주고 그렇게 흥분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비정상’ 작품들을 봐왔단 말인가!

대학 때 소설창작론에서 배웠다. 좋은 소설에는 독자가 끝까지 흥미를 이어갈 만한 복선이 있어야 하고 말하려는 주제를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소도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껏 나는 그것을 좋은 소설이 갖추어야 할 마땅한 조건임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크게 보자면 영화 역시도 서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소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현념을 남길 수 있는 복선과 소도구 그리고 관중들의 감정을 끌어올릴 만한 극적인 전개… 그런 것이 좋은 영화에도 필수불가결의 요소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어딘가 달랐다. 전문배우가 아닌지라 그들의 연기는 조금 엉성한 데가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영화의 한 요소를 밋밋하게 보여준 것에도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결말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십 년 동안 서신으로만 오가던 두 여주인공의 만남이 그보다는 더 극적이고 눈물겨웠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의혹에 대해 넌지시 말했을 뿐인데 남편이 앙칼지게 맞받아쳤다. (전날 있었던 말싸움에서 진 것에 대한 보복이라 생각한다.)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요즘 장예모가 그 따위 영화를 찍는 거야.

—장예모가 왜? 뭐?

—관중들이 감동하고 울 만한 포인트를 알고는 대충 신파스럽게 얼버무리지. 공식처럼 그 기술을 모든 영화에 쓰고 자기 복제가 심하지. 당신처럼 그렇게 극적으로 표현해야 관중들이 좋아할 거라 제멋대로 생각하는 거지.

소설가는 아니지만 명색이 창작자로서 나는 충격 아닌 충격을 받고야 말았다. 

영화 관중과 소설 독자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완벽하고 현란한 서사적 기술보다 서툴망정 진심어린 서사를 원한 게 아닐까?

스스로의 기술에 자뻑하여 비슷한 것을 생산해내는 감독과 창작자들에 대중은 피로감을 느꼈을 법하다. 그러면서도 대중이 왜 외면하는지는 되짚어보지 않고 “짧고 쉬운 것만 찾는 이 시대 대중들의 부박함”을 탓하고 훈계하려는 이른바의 대감독, 대작가들에 대중은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클리셰를 깨는, 자뻑에 젖지 않고 조심스레 대중에 어필하려는 한 무명 감독의 소박한 진심에 열광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하나만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래도 완성도 면에서는 떨어지지 않나?

남편이 앞서보다 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당신은 초심을 잃었구나. 중요한 게 완성도가 아니야. 애초 10년 전에 당신이 글을 막 쓰기 시작할 때 썼던 글들이 바로 완성도는 떨어질지언정 진심이 가득한 글들이었어. 

본격적으로 수필을 쓰기 시작했을 때였을 것이다. 인터넷에 글 몇 편 싣고 네티즌들의 즉각적인 호평을 보며 조금 어깨가 올라가있을 무렵이었다. 

한 잡지사로부터 원고 청탁이 왔다. 내게 무려 특집란을 설치해 줄 테니 글 세 편을 보내달라고 했다. 신바람이 나서 글 세 편을 써서 잡지사 메일로 보냈는데 한 주일쯤 뒤에 나는 퇴고를 당했다. 

정성어린 퇴고메일이었다. 좀 덜 정성이 들었더라면 상처를 덜 받았을까?

수필의 격과 틀을 갖추지 못한 글이라 실어줄 수 없으며 따라서 특집란도 없던 일로 하자는 내용이었다. 

술을 마시고 울분에 차서 두 손을 허공에 털며 내질렀던 그 날의 절규와 다짐이 생각난다. 

“수필이라며? 필 따라 쓴다며? 필 따라 쓰는 글에 무슨 격식이 있는 건데? 됐다 그래. 나는 그 따위 문학지들과 안 놀 거야. 나 혼자서라도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고 독자들과 만날 수 있어! 독자들만 좋아하면 돼!”

신인의 오기였고 패기였다. 나는 인터넷 계정에 글을 부지런히도 썼었다. 어느 부분을 좀더 세련되게 다듬고, 어떤 부분은 문학적 승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귀띔해 주는 기성작가들의 따뜻한 가르침도 받았다. 

“내 멋대로 쓸 거예요!” 

그즈음의 나는 세련되지도, 너그럽지도 못했지만 나만의 문학을 하겠다는 고집이 있었고, 내 소신 대로 나다운 글, 더 진심어린 글을 쓰겠다는 오기가 있었다. 

그러다 자칭 ‘아웃사이더’였던 나는 ‘주류’에 입성하게 되었다. 문학지들에서 글을 투고해 주십사 원고 청탁을 해왔고 무려 특집란도 설치하여 집중 조명을 해주겠다고 했다. 초심을 잃은 건 이때쯤이었을까? 

아직도 내가 전처럼 거친 오기와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느낌으로 글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느끼한 클리셰 범벅으로 변하면 안되었다. 이제 오기도 고집도 무뎌지고 나는 그저 편한 게 제일이라는 안일함과 타성에 젖어버렸다. 

아직도 저 영화에서의 클라이막스 부분의 부족함을, 그 여백마저 영화의 성공 요인이었다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장예모 식의 클리셰가 아니더라도 더 정교하게 판을 짤 공간은 있지 않았나 하는 유감을 떨칠 수가 없다. 

내 유감과는 상관이 없이 영화는 매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건 이른바 대감독에 대한 무언의 항의이고 가장 아픈 ‘욕’이라 생각한다. 자본과, 기술, 인맥 모든 것을 동원해 들이부었지만 대중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에 대해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는 경종이었을 것이다.  영화에 대한 리뷰들을 찾아보며 나는 이름 못할 막연함을 느낀다. 

드릅이나 민들레 같은 향이 짙은 나물을 좋아하는데 그것들을 맛있게 먹기 위해 나는 찍어먹을 초장을 열심히 만든다. 사과식초를 넣어보기도, 물엿을 넣어보기도 또 달걀 흰자를 따로 넣어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다 같이 맛있게 먹으려고 나는 아직도 초장 맛있게 만들기에 열심인데 그 무엇에도 찍지 않고 나물이 가진 그 향 자체를 즐기겠다며 그대로 먹는 사람들을 보는 기분이 이런 걸까? 내 수고와 상관없이 그들은 그저 달콤새콤 뻔한 맛의 초장이 싫다고 한다. 

아직도 나는 서사가 클라이막스로 치달을 때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하려면 어떤 극적인 장치가 필요한지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이제 대중은 그 따위 건 필요없다고 한다. 

이렇게 허무맹랑할 수가 없다. 사회는 변했고 대중도 변했다. 창작자도 변해야 한다. 그 앞서 변해야 하는데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세상에만 갇혀있었던 잘못이 크다. 

문화적 현상이라고 해도 좋고 영화 자체의 훌륭함 때문이라고 해도 좋다. 어쨌든 이런 저예산 영화가 승승장구하여 양질의 서사작품이 계속하여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내 세상을 박차고 나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글이란 반드시 이런 미래를 향한 전망과 자기에 대한 반성 그리고 다짐으로 끝나야 한다고 믿는 것 역시 내가 가진 틀이고 지금으로선 어찌 할 방법이 없는 ‘클리셰’이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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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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