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우리나무’ 독서모임에서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함께 읽으며 나눈 생각과 인상 깊었던 내용을 정리한 독후감이다.)
질리언 테트(Gillian Tett)의 <알고 있다는 착각>을 읽으며 가장 먼저 밑줄을 그은 문장은 “그건 당신의 세계관이지 모두의 세계관이 아니다”(p. 75)였다. 이 문장은 책 전체를 읽는 동안 여러 사례를 하나로 이어 주는 중심 문장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보고 경험한 세계를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면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그 생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아는 것이 제한적일 뿐 아니라, 내가 당연하다고 믿는 기준 자체도 특정한 사회와 문화가 만들어 낸 세계관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책에 소개된 사례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몇 가지를 중심으로 느낀 점을 정리해 보았다. 인류학 관련 책을 처음 접한 독자의 시선으로 서툴게나마 문화적 차이와 그 이면의 맥락을 살피며 인류학적 시선을 따라가고자 했다.
회의, 조직마다 같을 거라는 착각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조직마다 ‘회의’를 다르게 이해한다는 점이었다. 어떤 팀에서 회의는 리더가 실질적인 결정을 내리는 자리이다. 다른 팀에서는 정보를 교환하고 함께 생각을 발전시키는 과정 자체가 일이며, 또 다른 팀에서는 회의가 결정보다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모두가 ‘회의’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안에는 권력과 업무, 결정과 합의에 관한 서로 다른 문화적 전제가 담겨 있다. 이 사례를 읽으며 문화적 차이는 낯선 언어나 복장처럼 눈에 잘 띄는 모습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의미를 확인할 필요조차 없다고 여기는 말과 관행 속에 더 깊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아는 경우보다 서로 같다고 착각하는 경우에 오해가 더 커질 수도 있겠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인재상, 변하지 않을 거라는 착각
교육기관의 학생 모집 사례도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우수한 교육자원과 교사진을 내세우며 ‘문화적으로 자신감 있는 아이’를 길러 낸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는 학생 모집이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학교가 학생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자질을 어떻게 길러 줄 것인지를 중심으로 홍보 문구를 바꾸자 학생 모집도 원활해졌다. 이 사례는 교육의 기준이 이미 갖춘 우수성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하는 적응력으로 옮겨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기대하는 능력의 변화 역시 사람의 가치관이 환경과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불확실한 미래와 다양한 관계에 대비하기 위해 부모들이 ‘문화적으로 자신감 있는 아이’보다 회복력과 적응력을 갖춘 아이를 선호하게 되었다는 설명과 “적응력이 21세기의 능력이다”(p. 171)라는 말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무엇을 좋은 성품으로 여기고 어떤 능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고 판단하는지조차 시대와 사회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나는 당연하거나 바람직하다고 여겨 온 교육의 기준 역시 영원한 정답이 아니라, 현재의 불안과 기대가 반영된 선택일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도덕,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일 거라는 착각
도덕성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뉴욕에서 유엔 외교관들이 주차 위반을 해도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을 때, 일부 국가의 외교관들은 면책 특권이 있어도 규칙을 지킨 반면 다른 국가의 외교관들은 수많은 주차 위반 딱지를 받았다. 어떤 문화에서는 도덕을 상황과 무관하게 지켜야 할 보편적인 원칙으로 여기지만, 다른 문화에서는 관계와 상황에 따라 달리 판단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규칙을 지키지 않은 행동을 단순히 비도덕적이라고 평가하기 쉽다. 그러나 이 사례는 도덕적 판단의 방식마저 문화적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물론 문화적 차이를 이해한다는 것이 모든 행동을 옳다고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판단하기 전에 내가 사용하는 도덕적 기준도 특정한 문화에서 형성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방역, 과학적 지식만으로 충분할 거라는 착각
에볼라에 대응하는 과정은 타인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할 때 전문지식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서구의 의료 전문가들은 현지 주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명령을 집행하면 사람들이 방역 지침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환자를 가족이 돌보는 방식, 죽은 사람을 보내는 장례 의식, 정부와 외부기관에 대한 불신, 휴대전화를 가족과 이웃이 공유하는 생활방식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옳은 지침이라도 현지의 문화와 관계를 무시한 채 전달되자 사람들에게는 위협과 강제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마을 장로를 통해 정보를 전하고 현지의 장례문화와 가족관계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면서 대응은 비로소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이 사례를 통해 나는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지식이 사람들의 삶과 만나는 방식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어떤 문화든 자신들의 행동 역시 이상해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다른 문화를 ‘이상하다’고 말할 권리는 없다”고 한 말과 “‘정상’의 개념은 변한다”(p. 91)고 한 말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낯선 행동을 이상하다고 규정하기 전에, 나의 행동도 다른 사람에게는 낯설고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음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청소년의 휴대전화, 단순한 중독일 거라는 착각
청소년의 휴대전화 사용을 다룬 부분도 눈에 보이는 행동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하게 했다. 청소년이 휴대전화를 오래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흔히 중독이나 자제력 부족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책에서는 청소년들의 실제 생활이 부모와 학교, 학원 일정에 의해 지나치게 통제되면서 온라인 공간이 자유롭게 탐색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시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가 되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가상공간은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탐색하고 어슬렁거리고 친구나 지인들과 모이는”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p. 201).
이 내용을 읽으며 어떤 행동의 원인을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의지에서만 찾는 일이 얼마나 손쉬운 판단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청소년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모습만 보아서는 그 행동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화면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뿐 아니라, 화면 밖에서 무엇을 할 수 없게 되었는지도 함께 보아야 한다. 개인의 행동 뒤에 있는 사회적 환경을 살펴보는 것이 바로 인류학적 시선이라는 점이 구체적으로 와닿았다.
온라인 회의, 대면 업무를 완전히 대신할 거라는 착각
사무실과 대면 회의를 다룬 부분에서는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관계와 정보의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온라인에서도 정해진 안건을 논의하고 기술적인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책에 등장하는 엔지니어들은 온라인 회의에서는 주변 시야와 우연한 정보 교환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특히 “우연한 만남과 잡담이 일어날 복도가 없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다”(p. 272)라는 문장이 인상 깊었다. 조직은 회의 안건과 업무분장표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회의 전후의 짧은 대화, 복도에서의 만남, 식사 자리에서 나누는 이야기처럼 공식 기록에 남지 않는 관계와 정보도 조직을 움직이는 중요한 힘이 된다.
이를 통해 나는 사회를 이해하려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말하는 내용뿐 아니라, 너무 당연해서 말하지 않는 것과 공식적인 틀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느꼈다. 저자가 강조하는 ‘사회적 침묵에 귀 기울이기’도 바로 이러한 태도일 것이다. 침묵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아직 말로 드러나지 않은 관계와 규칙, 욕망과 불편이 숨어 있는 공간일 수 있다.
빅데이터, ‘왜’까지 설명할 거라는 착각
위의 사례에서 인류학자들은 문제를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현장에 들어가 사람들의 말과 행동, 관계와 생활방식을 살피며 난관의 원인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파헤쳤다. 회의와 교육, 방역, 휴대전화 사용, 온라인 업무를 둘러싼 문제도 개인의 태도나 능력만으로 설명되지 않았으며, 그 배경에는 서로 다른 문화적 전제와 보이지 않는 환경이 놓여 있었다.
책은 이러한 인류학적 시선이 데이터와 전문지식의 한계를 보완한다고 말한다. “빅데이터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말해준다. 하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말해주지 못한다”(p. 301)는 문장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숫자는 현상의 규모와 반복되는 경향을 보여 줄 수 있지만, 사람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선택에 어떤 문화적 의미와 관계가 작용했는지까지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상관관계가 곧 인과관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이터를 더 많이 확보하는 것만으로 사람과 사회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행동을 관찰하며, 수치에 드러나지 않는 감정과 관계, 암묵적인 규칙을 함께 살펴야 한다. 사례가 주는 깨달음뿐 아니라, 익숙한 해석을 의심하고 문제의 이면을 추적하는 인류학자들의 방식도 주의깊게 읽게 되었다. 나는 책이 말하는 ‘인류학적 지능’이 전문지식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지식이 놓치기 쉬운 맥락을 드러내고 현실 속 의미를 이해하도록 돕는 시선이라고 받아들였다.
나의 ‘렌즈’, 깨끗하다는 착각
그렇다면 인류학적 생각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저자는 인간이 생태적·사회적·문화적 환경의 산물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스러운 문화적 틀이 하나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삶과 마음에 관심을 기울이며 자신의 세계를 외부인의 렌즈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뿐 아니라 사회적 침묵과 일상의 의식, 상징, 암묵적인 교환 방식까지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다가온 것은 자신의 렌즈가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태도였다. 저자는 편향을 줄이기 위한 첫 단계로 “우리의 렌즈가 더럽다는 점을 인정한다”(p. 208)고 말한다. 자신의 편향을 인식하고 다양한 관점으로 이를 보완하되, 그 뒤에도 렌즈가 완전히 깨끗해졌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편견을 없앴다고 확신하는 순간 또 다른 편견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학적 시선은 판단을 포기하는 태도가 아니라, 판단에 앞서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질문하는 태도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낯선 문화와 타인을 이해할 때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은 뒤에는 내가 자연스럽고 정상적이라고 믿는 기준 자체도 특정한 환경과 문화가 만든 결과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같은 말에도 서로 다른 의미가 담기고, 눈에 보이는 행동 뒤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사회적 조건과 관계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알고 있다는 착각>이 보여 주는 인류학적 사고는 낯선 문화를 많이 아는 데 있지 않다. 익숙한 세계를 쉽게 안다고 여기지 않고, 자신의 판단에도 편향과 사각지대가 있음을 인정하는 데 있다. 앞으로는 눈앞의 현상만으로 상대를 판단하거나, 알지 못하는 부분을 익숙한 기준으로 성급하게 채우지 않으려 한다. 나에게 이해란 더 많은 답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하는 일이 아니라, 아직 알지 못하는 부분을 인정하고 보이지 않는 맥락과 말해지지 않은 침묵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알고 있다는 착각> 표지(영/한)
책 정보:
질리언 테트, <알고 있다는 착각>, 문희경 옮김, 서울: 어크로스, 2022.
책에 관한 저자 인터뷰 영상:
https://www.sbs.ox.ac.uk/oxford-answers/anthro-vision-how-anthropology-can-explain-business-and-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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