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조금 쉬워졌으나 여전히 낯선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8장은 앞선 1-7장보다 쉽게 읽혔다. 앞부분을 거치며 니체 특유의 문체와 은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덕분인가 보다. 차라투스트라가 줄곧 인간의 변화와 성장, 자기 극복에 대해 거듭 ‘노래를 불렀’기에, 8장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악’, ‘영혼’, ‘높은 곳’과 같은 니체만의 낱말들은 곱씹어서 읽고 주해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내가 읽고 있는 것이 철학인지 문학인지 헷갈리기도 했지만, 니체라면 나처럼 경계를 짓는 것이 곧 타파해야 할 구태의연한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 장을 요약하자면,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악의 뿌리를 더 깊게 내려라”이다.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면 결국 “더 나은 내가 되려면, 내면의 어둠까지 정직하게 마주해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

2. 높은 곳 – 위버맨쉬로 가는 길

‘높은 곳’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사회적 성공을 떠올린다. 좋은 대학과 직장, 높은 연봉처럼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쓰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니체가 말하는 ‘높은 곳’은 전혀 다르다. 여기서 ‘높은 곳’은 자기 자신을 어제보다 한 뼘 더 키우는 깊은 내면의 탑, 즉 위버멘쉬(Übermensch)를 지향하는 끊임없는 자기 초월의 공간이다.

“나무가 높고 밝은 곳으로 뻗어 오르려 할수록, 그 뿌리는 더 힘차게 땅속으로, 저 아래로, 어둠 속으로, 깊은 곳으로, 악 속으로 뻗어나가지.”

즉,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제의 나를 넘어 내일의 나로 자라기 위해 내 안의 어둠까지 깊이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더 높이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 오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차라투스트라 곁의 젊은이의 넉두리가 길고 구구절절하다.

“높이 오르려고 한 이후로 나는 나 자신을 믿지 않게 되었고, 누구도 나를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높이 올라와 있으면, 나는 늘 혼자입니다.”

이처럼 내면의 성장과 자기 초월은 고독과 불안을 동반한다. 정상에 오를수록 외로움, 자기 의심이 깊어지는 것도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인 셈이다. 

3. 악 – 성장의 토양

8장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악’(惡)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덕적 ‘나쁨’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악’은 우리 마음 한 구석의 어둠, 외면하고 싶은 진실, 약점, 두려움 같은 것이다. 나무의 뿌리가 깊고 어두운 곳까지 내려가야 더 높이 자랄 수 있듯이, 우리도 성장하려면 내면의 어둠과 두려움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무가 높이 오를수록 뿌리는 더 힘차게 땅 속으로, 어둠 속으로, 깊은 곳으로, 악 속으로 뻗어나가지.”

이처럼 뿌리가 깊어야 나무가 우뚝 자라듯, 내가 더 높이 성장하려면 마음의 어둠(‘악’)도 회피하지 말고 직면해야 한다는 점을 니체는 강조한다. 다시 말해, 니체에게 ‘악’은 내가 진짜 변화와 성장을 시작하는 데 꼭 필요한 토양 같은 것이다.

4. 영혼 – 내가 만들어 가는 것

기독교에서 ‘영혼’(soul)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일부로서, 육체와는 구분되는 비물질적인 실체, 곧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내면의 중심을 뜻한다.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한 같이 그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에스겔 18:4)

즉, 주체의 영혼은 하나님께 귀속돼 있고, 인간은 이를 끝내 상실하지 않는다. 

그러나 8장에서 ‘영혼’은 기존 종교와 전혀 다르게 사용된다.  니체가 말하는 영혼은 고정되어 있거나 완성된 ‘무엇’이 아니라, 계속 바뀌고 새로워질 수 있는 ‘변화의 중심’, 또는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힘’에 가깝다.

“많은 영혼을 우리는 결코 알아차릴 수 없을걸세. 그 영혼들을 우리가 먼저 꾸며내지 않는다면 말일세.”

마치 아이가 그린 엄마 그림은 실제 엄마가 아니라, 아이의 시선과 마음이 반영된 결과이듯, ‘영혼’도 결국 우리가 투사한 관점이자 구성물일 수 있다. 

막내가 만 3세 8개월 때 처음으로 그린 엄마의 초상화와 엄마에 대한 묘사

위의 그림은 우리 막내가 만 3세 8개월 4일째 되던 날, 처음으로 엄마인 필자를 그려준 것이다. 나의 아이가 말하고 그린 것처럼 내가 저렇게 ‘볼도 빨갛고, 눈이 예뻤을’ 리가 없다. 고맙게도, 아이의 맑은 영혼이 엄마를 실제보다 한참이나 미화한 것이다. 6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엄마는 생기발랄해요. 그리고 좋아요. 가끔 날 (귀엽다고) 깨물기도 해요.”라고 말한다. 더는 예쁘다는 말은 안 한다. 전보다 좀 늙긴 했지만, 나는 예나제나 크게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다시 말해, 니체의 ‘영혼’은 답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자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변화하는 나만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5. 에필로그: 오르막을 오를 용기

어제, 에펠탑 2층(110m)까지 계단 670개를 오르는 동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으로 샤워를 한 느낌이었다. 내려올 때 열 살 막내는 “내려올 땐 쉽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이한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를 꼰대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도 아이들 앞에선 차라투스트라급으로 성급히 무엇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강할 때가 많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야. 좀 힘들다 싶을 땐 어쩌면 그건 너가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을 향해 가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어. 삶이 너무 쉽다 싶을 땐, 그건 어쩌면 발전이 없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니체의 8장은 바로 그대 지금 너무 쉽게 살고 있는 건 아닌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 불편하거나 힘든 게 전혀 없다면,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혹시 제자리이거나 혹은 뒷걸음질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내면의 변화는 늘 고독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말한다.

“그래도 내 사랑과 희망을 걸고 간청하니, 그대의 사랑과 희망을 버리지 말라!

그대 영혼 속에 있는 영웅들을 내던지지 말라! 그대의 최고 희망을 신성하게 간직하라!”

차라투스트라가 비꼬지 않고 이렇게 진심을 담아 응원하다니?! 이게 정녕 내가 알던 차라투스트라가 맞는가 싶다. 어쨌거나, 내게 큰 힘과 용기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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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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