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기 4: 상상대면

덕기 4


  1. 덕기 1: 말하자면
  2. 덕기 2: 예솔이가 자라면
  3. 덕기 3: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4. 덕기 4: 상상대면
  5. 덕기 번외편: 타인의 덕질 (장국영, 마이클잭슨)

만난다는 것, 얼굴을 마주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같은 양의 반가움이나 그리움이 담겨 있지 않다면, 만났다고도 마주 보았다고도 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더 그리워하는 쪽은 그렇게라도 만나고 싶겠지만, 돌아서고 나면 그는 더 외로워질지도 모른다. 원래의 그리움마저 잃게 될지도. 

그럼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리움이 1인극일 때 그는 비굴하고도 당당하며 애처롭지만 여유롭다. 

글쎄 보통 그렇긴 한데,

덕질은 다르다. 

덕질하는 사람에게는 일방적이라는 그 위치가 보고싶음(그리움이라는 단어는 덕질과 매칭하면 어색하고 한번 보고 싶다가 의미적으로 더 맞는다고 생각)의 전제조건이고, 기꺼이 거하는 아랫목이다. 마주보는 일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아니 필요도 없으니 단지 한번 가까이에서 보고싶다는 것. 추앙하는 대상이 내 앞에서 움직이고, 나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로지 전지적 추종자시점을 갖고 싶다는 것.

그래서 종종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그런 연습 아닌 연습을 하다보면, 길에서 마주치면 단 한번에 알아볼 것 같은 가수, 작가 등 사람들이 몇명 있다. 나는 이것을 상상대면이라고 부른다. 뭐 어디 입밖에 내본적은 없으니 부른다기보다는 그냥 머릿속 생각. 

상상대면의 주인공을 예로 들라고 한다면, 어쨌든 권여선 작가님은 꼭 알아볼 것 같다. 오늘의 주인공이 이분은 아니지만, 그를 꼭 알아볼 것 같은 이유는 권작가님은 사진에 인색한 분이 아니라서. 인터넷만 검색하여도 다양한 연령대의 그분의 사진이 많다. 글만큼 멋쟁이인것 같고, 그래서 더 보고 싶고. 상상대면으로 치면 이미 만나서 말도 걸어본 분임. 

그런데 사진에 인색한 작가들이 더러 있다. 더러가 아니라 아주 많을 것이다. 아무튼 내가 글을 읽고나서 사람이 궁금하고, 보고 싶은 작가 중에 황정은 작가는 거의 대개 옆모습. 두꺼운 터틀넥을 턱까지 끌어올린 옆모습. 이런 분을 길에서 마주친들 무슨 수로 알아본단말인가. 길에 잘 나오지도 않을 것 같고. 상상대면 실패.

신형철작가는 당당히 1회 수강생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자의로 취소하였다. 이분도 웬지 길에서 보면 알아 볼 것 같지만 확신은 없다. 박완서 선생님은 보고 싶어도 이미 작고하셔서 상상대면만 가능하다. 그래서 이분은 이미 만난 분으로 치려고 한다. 

또 김애란 작가. 등단한지 20년 넘은 이분은 불과 나보다 한살 많음. 하도 젊어서 두각을 나타내고 글이 안정적이어서 자꾸 연배가 훨씬 많은 것 같은 착각을 한다. 이분을 보고 싶은 이유는 두번째로 읽은 그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때문이었다. 뇌구조가 매우 궁금한 사람. 요즘이야 젊은 작가상 수상집에 실린 소설들을 읽으면  MZ작가들 너도나도 멘탈이 탈지구급이라서 웬만해선 놀랍지도 않지만, “달려라 아비”는 80년생인 작가가 대부분 20대에 쓴 글들. 즉 21점01세기부터 몇 년사이에 쓴 글들. 그리고 그 글을 21점23세기에 뒤늦게 읽은 나는 대학 들어가자마자 가장 멋있어보인다는 바로 윗학번인 99학번 선배같은 이분이 매우 보고 싶어졌다. 작가가 꼭 말도 재밌게 한단법은 없지만, 이분은 웬지 실물등판하면 글 못지 않게 재밌을 것 같았단 말입니다. But, 사진이 별로 없다. 몇장 안되는 사진에는 얼굴을 잘 알 수 없는 각도의 사진들. 그래서 이분 역시 상상대면 실패. 

그러나 내적덕력이 쌓이면 성덕의 날은 오는 법. 그게 올해 여름. 서울도서전이 열리던 토요일 점심에 김애란 작가와 백수린 작가의 북토크가 있다는 소식을 입수. 빈말로 그러나 정말 같이 가주면 고마워할 심산으로, 남편과 동생에게 각각 동행을 요청하였으나, 오 그럴줄 알았지만 아무도 안간다네. 게다가 오후에 다함께 가야할 다른 곳도 있으니 오전엔 쉬고 싶은게 인지상정. 하루에 두탕 뛰겠다는 내가 덕이, 아니 덕력이 많은거지. 

조금 늦었지만 삼성역에서 코엑스 전시장 2층 맨 안쪽 책마당 행사장까지 앞만 보고 걸어 도착해보니 북토크는 시작한지 조금 지났지만 오, 상상대면이 아닌 실물영접. 

책의 앞날개에서 본 것과 비슷한 보브컷에, 세월이 흘러서 조금 더 부드러워진 모습으로. 올블랙의 차림으로. 예약독자들로 만석이 된 의자들 뒤에서 보게 되어 거리는 좀 있었지만, 말하고 움직이는 김애란작가를 보게 되었으니 어쨌든 그 전지적추종자시점이라는 것을 가진 셈. 목소리와 말투는 대부분의 한국여성들처럼 조근조근하였으나, 대화스타일이 유머와 재치가 있을 것이라는예상은 적중했다.

백수린 작가는 다른 수상작품집에 실린 글을 한 편만 읽어보았지만 좋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함께 반가웠고, 백합같은 모습에 매우 수줍음을 타면서도 할말은 잘 하는 분이셨다. 

한시간반동안 다리 아픈줄도 모르고 서서 들으면서 영상도 찍고 메모도 해둔 것을 아래에 조금 풀어보려고 함. 

질문이 무엇이었던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소설에 대한 김애란 작가의 사랑은 이제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닌 너덜너덜해지고 못생겨진 사랑의 모습으로 조금 바꼈지만 그대로 소중하다는 것. 

그리고 변하는 세상에 대처하는 법에 대한 질문이 나왔던 것 같다. 작가는 약 일년 전에 발표한 홈파티라는 단편소설을 언급하면서 답을 하였다. 홈파티에 보면, 가진 것이 없어서 오히려 더 비싼 것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싶어하는 가난하고 젊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비웃는 중산층중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 후기에 보면 극작과 출신인 김애란 작가가 소설가로 살면서 완성하지 못한 숙제처럼 느껴졌던 극작에 대한 대답처럼 썼다는 소설.) 그 소설을 쓰고나서 김애란 작가는 올해 독일에 갈 일이 생겼는데 그곳에서 독일교민들을 만났고, 교민 중 한분이 그 소설을 언급하면서 너무 공감하였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파독광부나 간호사로 독일에 자리잡은 1세대들은 몇십년 전에 선진국인 독일에서 겪었을 초라한 감정과, 지금의 풍요로움과 빈곤함이 공존하는 한국을 사는 젊은이가 겪는 감정, 변화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가끔 아주 큰 시차를 두고  이렇게 두개의 이야기가 서로 공감한다…고 했던 것 같다. (홈파티를 인상깊게 읽었던지라 그 소설이 나와서 매우 반갑. 콘서트에 가서 아는 노래가 나올 때와 같은 심정. 이럴 때 덕인은 스스로 대견스러워서 내적 쓰담쓰담.)

인공지능에 대한 질문이 나왔고, 작가는 자기의 소설에도 인공지능이 나오는 대목은 있다고 하면서 소설 “어디로 가시려나요”를 언급하였다. 그런 변화와 담쌓는 작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김애란 작가는 매우 인상적인 말을 하였다. “챗지피티의 가장 큰 무능은, 모른다는 말을 할줄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디로 가시려나요”는 단편소설집 “바깥은여름”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소설. 최근에 영화화 되기도 한 소설. 그러나 아직 소설의 여운을 깨기 싫어서 영화는 보지 않았다. 아는 소설 또 나왔고 재차 스스로 쓰담쓰담)

또 기억나는 하나의 질문은, 영상콘텐츠가 날로 발전하는 시대에서 문학이나 소설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 김애란 작가는 “어느날 어떤 영상을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1.5배속으로 보려고 하는 스스로를 발견하였는데, 소설은 1.5배속으로 보기가 어려운 컨텐츠다. 의지가 아닌 집중력이 도덕일 수 있고, 그런 문학의 형식이 내용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학은 그 사람이 말하고 싶어하는 속도대로 들어주고, 말하려는 양만큼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말이 나는 그날 들은 말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꼭 문학이 아니어도, 누군가의 말에 귀기울이는 진정한 듣기란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밑줄 쫙.

작가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부탁에, 김애란 작가는 정한나 작가의 소설의 한마디를 인용하련다고 하면서 “꿈에 도착하면 반드시 실망”한다고 하였다. 그러니 모든 것을 목표보다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좋은 것 같다고. 또한 글쓰기나 책읽기는 어려운 일을 겪을때 이해하는 언어를 가지는 거라고 생각하면 좋다고. 

끝으로 그는 최신작이 실린 음악소설집은 바로 옆에 있는 도서출판 프란츠 부스에서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는 홍보멘트 또한 잊지 않는 재치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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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하고 싶은 말:

상상대면을 현실대면으로 한번 이루고나니, 또 욕심이 나고 확신마저 생긴다. 곧 이분도 만나게 될거라는 확신. 그때도 덕기를 쓰겠다. 저는 정보력이 높은 편은 아니어서, 이분이 강연회를 한다거나 하는 걸 알게 되시는 분은 저에게 댓글로 알려주시면 성은이 망극하겠습니다. 

작가 권여선. 시속 원고지 1매의 속도로 소설을 쓰며, 일주일에 날짜를 정해서 술을 마신다(매일 마시지 않기 위하여). 작가에게 얼굴평가를 시전하면 안되는가? 그래도 홍콩배우 오천련을 몹시 닮았다고 생각한다. 

글로 보면, 김애란 작가의 글은 전속력으로 달리거나 웅크리고 있는 이미지를 주는 괴짜와 고수의 두 얼굴을 모두 갖고 있다면, 권여선 작가는 시종일관 느릿느릿 걷고 있는 모습이 상상된다. 아직 읽은 책이 몇권 안돼서, 작품으로 앞으로 더 알아갈 날들이 많은 것 같아서 좋다. 좋아하는 술 오래 길게 마실 수 있도록, 오래 계셔주시면서 좋은 작품을 많이 써주시길. 그리고 안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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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덕질의 기록, 가끔 하는 I형 취미생활입니다. 

오늘 이 글도 할 수 없이 자기계발 카테고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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