湘西赶尸

내 안에도 그 종소리가 들린다!


자욱한 고기굽는 연기 사이로 선이 그어지던 그 밤을 기억한다. 화장품 무역회사의 물류센터 총괄 본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회식 자리마다 내 옆에는 항상 상무라는 이가 앉았다. 그는 나를 곁에 두고 한국의 이러저러한 시사며 정치, 유행들을 짐짓 던지곤 했다. 그러다 내가 조금이라도 낯설어하거나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기색을 보이면, 그는 기다렸다는 듯 특유의 농조 섞인 미소를 띠며 쐐기를 박았다.

“거봐요 본부장님, 우린 다르잖나요. 한국말을 아무리 잘한다고 한국인이 되는 건 아니지요.”

그 순간 시끌벅적하던 동료들의 웃음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공기가 흘렀고,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쥐고 있던 소주잔의 차가운 감촉만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공작기계 선반 옆에서 매캐한 절삭유 냄새와 쇳가루를 마시며 쇠를 깎던 15년 전의 밑바닥 일당 생활부터 시작해, 오직 실력과 끈기 하나로 총괄 본부장을 거쳐 일본 이커머스 회사의 풀필먼트 센터장과 이사의 자리까지 올라갔건만, 나는 그들에게 결코 동등한 내부자가 될 수 없었다. 능력을 증명할 때만 잠시 허락되는 경계선, 그 얄팍한 환대 너머에서 나를 밀어내던 배타적인 시선은 머리칼에 희끗희끗한 서리가 내린 지금도 매 순간 내가 선 땅을 위태롭게 흔든다.

이 소외감의 복판에서, 몇 해 전 아내와 함께 自驾游로 마주했던 중국 张家界의 깊은 협곡을 떠올린다. 타향에서 외롭게 객사한 이들의 시신을 대나무에 일렬로 매달아 僵尸처럼 걷게 해서라도 머나먼 고향 땅으로 데려왔다던 ‘湘西赶尸’의 풍습. 죽어 썩어가는 육신을 묶어가면서까지 그 험한 산길을 넘어 고향으로 가야만 했을까. 그것은 인간의 뼈속 깊이 새겨진 ‘落叶归根’의 본능이었다. 아무리 멀리 날아간 나뭇잎이라도 결국 떨어질 때는 나무뿌리를 향하듯 영혼만은 이방인의 땅을 떠돌지 않게 하겠다는 그 집념의 종소리가, 지금 내 안에서도 환청처럼 거칠게 요동친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대나무의 반동과 종소리에 묶여, 죽어서도 기어이 발걸음을 떼어야만 하는 영혼들의 부자연스러운 몸짓. 그 규칙적인 방울 소리를 따라 험한 협곡을 넘어가던 기이한 대열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시체가 되어서라도 기어이 고향 땅을 밟으려 했던 그 귀환의 본능이, 지금 내 안에도 똑같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3개의 고향이 있다. 핏줄의 뿌리가 시작된 길림성 왕청현. 두만강 줄기를 따라 뻗어 나간 그 거친 땅에서 나는 조선족 4세라는 이름으로 첫 숨을 쉬었다. 스물네 살 나이에 더 넓은 세상으로 가기 위해 짐을 쌌던 중국 천진은 내 두 번째 고향이다. 그곳에서 꼬박 20년을 살며 사랑하는 이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내 이름으로 된 집을 사고 사업을 일구며 인생의 가장 뜨거웠던 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인생의 폭풍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코로나 펜데믹 시기, 중풍으로 편찮으신 어머니를 곁에서 온전히 모시기 위해, 나는 한국에서 일구어낸 모든 성취와 이사의 자리를 미련 없이 내려놓았다. 공기 맑고 환경 좋은 중국 산동성 威海로 거처를 옮겨 한동안 어머니를 정성껏 보살폈지만, 결국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는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다시 돌아온 한국 땅,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막막함 속에서 나는 가슴 깊숙이 묻어두었던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오랜 무기를 다시 꺼내 들어야 했다. 다행히 젊은 시절 여러 가지 일을 배워둔 덕분에 한국에서는 꽤 쓸모 있는 일군으로 되어, 그렇게 다시 물류업을 병행하며 기술로 삶을 일구어낸 지 어느덧 2년째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타향에서, 나는 대한민국으로의 귀화와 중국으로의 귀향이라는 지독한 모순 앞에 서 있다. 이것은 단순히 지갑의 두께를 저울질하는 엑셀의 계산이 아니라, 내 삶의 시스템을 어떻게 마무리지을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 선택이다.

한국은 참 잔인하고도 고마운 곳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주거비와 물가가 비싸고 나를 영원히 겉도는 이방인으로 만들지만, 쉰여섯의 나이 든 개발자에게도 끊임없이 기술을 펼치고 일할 수 있는 역동성을 내어준다. 세상의 배척에 부딪혀 매 순간 삐걱거리면서도, 밤을 새워 코드를 수정하고 시스템을 다시 켜며 내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매일 스스로 증명해내는 멈추지 않는 ‘루프(Loop)’의 세계가 바로 이곳이다.

반면, 귀향을 꿈꾸는 중국은 나에게 더 이상 새로운 기회나 가슴 뛰는 일감을 허락하지 않는 냉정한 곳이다. 하지만 내 호적이 있는 그곳에는 젊은 날 땀 흘려 장만해 둔 내 집이 있고, 돌아가기만 하면 차곡차곡 쌓인 퇴직금과 현대화된 복지가 평온한 노후를 보장한다. 완벽하게 안전하고 따뜻하지만, 더 이상의 발걸음도 일상의 역동성도 내지 못한 채 이대로 조용히 삶의 프로세스를 끝맺는 종료(Exit)의 공간인 셈이다.

생존의 루프가 치열하게 도는 타향과 삶의 안식이 종료된 채 기다리는 고향 사이, 나는 여전히 어느 방향으로도 온전한 발을 떼지 못하고 있다. 주변 지인들이 하나둘 짐을 싸서 안전한 복지의 품으로 떠난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내 안의 뿌리는 이 거대한 조건문 사이에서 격렬하게 요동친다. 안식을 찾아 중국으로 향한다면 평생을 전문가로 살아온 내 가치의 무대가 영원히 셧다운 될 것이라는 공포가 남는다.

동시에 이 땅에 남기로 결심하고 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귀화’를 선택한다면, 나이가 많아도 온전한 한국인 신분으로서 훨씬 더 많은 일과 일감을 쥐고 기술을 펼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외국인 신분으로 살아가자면 나이의 한계와 신분의 벽에 부딪혀 기회가 메말라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류상의 국적을 바꾼다 한들 평생 ‘귀화한 조선족’이라는 또 다른 테두리 안에 갇힐 뿐, 상무가 그어버린 그 태생적 경계선 밖으로 온전히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여전히 내 발목을 잡는다. 물론 한국의 모든 이들이 상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쯤은 잘 안다. 대다수의 사람은 편견 없이 나를 대하고, 상무 같은 시선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 소수가 남긴 얄팍한 한마디가 내면에 일으킨 균열은 결코 작지 않기에, 실리적인 생존의 기회와 영혼의 완전한 귀속 사이에서 내 안의 시스템은 자꾸만 과부하를 일으킨다.

물리적인 장소로서의 고향은 이미 상실되었다. 내가 바라는 고향은 내 삶이 아무리 굴곡지고 거칠었을지언정 아무런 조건 없이 내 존재의 전부를 있는 그대로 품어 안아주는 절대적인 안식의 공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은 이제 왕청도 천진도 아니다. 나의 첫 숨이 시작된 그 거친 벌판도, 내 가장 뜨거웠던 젊은 날을 묻어둔 그 도시도 이미 내가 돌아갈 곳이 아니기에, 나는 수백 년 전 대나무에 묶인 채 험한 산길을 넘던 湘西의 영혼들과 다를 바 없는 처절한 경계인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湘西僵尸들은 차라리 행복했을지 모른다. 죽어서 썩어가는 육신일지언정 그들에게는 마침내 도달해 안식할 ‘돌아갈 곳’이 분명히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에게는 그 땅이 없다.

아직 내게도 답은 없다. 귀화와 귀향, 어느 한쪽을 섣불리 정의 내리지 못한 채 머릿속의 수많은 갈림길과 반복되는 물음 사이를 여전히 흔들리며 헤매고 있다.

다만 나는 오늘도 인천의 오피스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삐걱거리는 삶의 행간을 붙잡고 끊임없이 나만의 가치를 증명해내려 애쓴다. 내 영혼이 발붙일 구체적인 땅은 어디에도 허락되지 않았을지라도, 이 멈추지 않는 삶의 루프 속에서 밤을 새워 코드를 입력하는 행위 자체가, 어쩌면 내 실존의 고향을 매일 밤 스스로 써내려가는 눈물겨운 발걸음일지도 모른다.

돌아갈 곳이 약속된 僵尸들의 종소리를 환청처럼 들으며, 나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나는 과연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내 안의 뿌리는 지금, 어느 땅을 향해 숨을 쉬고 있는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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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중국 후난성(湖南省)을 가리키는 약칭 (동정호 洞庭湖의 남쪽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西(서): 서쪽, 서부

오늘날 행정 구역으로 보면, 湘西(상서)는 보통 다음 지역들을 포함합니다.
장가계(张家界): 설명이 필요없는 죽기전에 꼭 한번은 가 봐야 한다는 곳이으로 유명합니다.
봉황고성(凤凰古城): 상서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묘족(苗族)과 토가족(土家族) 문화의 중심지입니다.

(간): 쫓다, 재촉하다, 몰다 (여기선 시체를 부리듯 움직이게 한다는 의미).
(시): 시체, 주검.

湘西赶尸란 후난 서부 산간 지대에서 타지에서 죽은 동포의 시신을 고향으로 데려가기 위해 발달한, 신비화된 운구 풍습이자 직업을 의미하며, 그 이면에는 "죽어서라도 고향 뿌리로 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깔려 있습니다.

루프(Loop) : 프로그래밍 용어, 반복 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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