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차마 꿈엔들…
이태 전에 중국당대문학작품선집에 수록된 산문 몇편을 번역한 적이 있다. 그중 <훌룬부이르의 메아리>라는 제목의 산문 한편이 기억난다. 훌룬부이르초원을 찾은 한 년로한 작가의 애수와 탄식이였다.
그 아름답고 넓디넓은 훌룬부이르 초원의 목초지들이 한족상인들의 차지가 되여가는 것을 작가는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곳 목민들의 아들들인 젊은이들은 모두 그 아름다운 초원을 떠나 가까운 도시에 진출했던 것이다.
"그들은 말 타는 것을 좋아했지만 외로운 방목생활을 즐기는 것은 아니였다. 그들은 몽골포와 젖차를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노랗게 머리를 염색하고 청바지를 입고 '마라탕'을 먹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들은 천편일률적인 도시의 월급쟁이로 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해 애쓰고 있었다."
저자는 그 젊은이들의 도시진출을 이렇게 안타까워하면서 이렇게 개탄한다.
"나는 그들이 다시 예전처럼 아버지에게서 투마간을 물려받아 선대와 같은 생활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타인의 손에 넘겨주는 순간 바로 전통과는 멀어지게 된다. 그렇게 쉽게 손에서 놓아버린 것이 바로 이 시대 가장 귀중한 보물이다. 자신의 생명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구체적으로 아는 것, 그것은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의무이다."
읽다보니 이런 한탄이 퍽 낯설지는 않았다. 우리말 신문에서, 잡지에서 이런 개탄의 목소리를 많이 들은 것 같다.
"외국, 대도시로의 진출로 인해 우리의 조선족 농촌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땅을 지켜야 합니다. 한치보기로 당장 눈앞에 리익만을 쫓으면 아니됩니다."
이런 구호를 외치는 이들 대부분은 조선족의 한국 진출을 '코리안드림'으로 정의하고 그로 인한 공동체의 해체를 안타까워마지 않는다.
안타깝기는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코리안 드림'으로 정의하는 것에는 조금 갸우뚱해진다. '드림', 꿈에는 랑만적인 색채가 있다. 환상이라는 것이 가미됐을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다.
그러나 본격적인 한국으로의 대이동이 이뤄진 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조선족 농촌의 사람들에게 다른 선택지가 많았던가? 그들에게 한국은 오색꿈이기만 했을가? 어쩔 수 없이 등떠밀려 오른 외국행은 아니였을가?

내 부모님은 작은 진 마을의 국영공장에 근무했다. 지난 세기 90년 초쯤, 국영공장은 파산을 맞았고 어머니 아버지는 정리실업 비슷하게 퇴직을 하고 말았다. 그때 이미 년세가 많으셨던 부모님들이라 한국행을 택하지는 않았지만, 아니 못했지만 그때 다 성장한 두 오빠가 일본에 가지 않았던들 나는 학업을 완수할 수 있었을가 하는 의혹이 강하게 들 때가 있다.

정리실업을 당한 부모님이 외국행이나, 대도시행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자식들을 공부시킬 수 있었을가?
옆마을에 사는 이모네는 그 마을에서도 큰 땅을 부치고 있었다. 이모나 이모부는 모두 마을에서 부녀주임, 대장 등 소소한 직을 맡고 계셨다. 내 또래의 딸 둘을 키우고 계셨는데 언니는 일년 내내 농사를 지어봤자 자기 대학 뒤바라지가 어려울 것을 알고는 고중을 졸업하고 자발적으로 일본류학을 택했다.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싶어 택한 류학행은 아니였다. 혼자서 학비도 벌 수 있고 가정에 보탬도 될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서 듣고는 그렇게 선택한 것이다.
노래를 잘하고 풍금도 제법 잘 쳤던 동생은 유아사범전문학교에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집안 사정을 생각하고는 전문학교 입학을 포기하였다. 두 딸 모두 국내에서 대학을 다녔더라면 이모네는 농사만 지어서 과연 뒤바라지를 할 수 있었을가?
한국행은 어떤 '드림'이 아니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리윤이 안나는 땅을 파고 파다 실망한 농민들이 할 수 없이 선택한 길이였을 것이다.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개인의 삶이 공동체를 위해 영위되진 않는다. 또 그러해서도 안된다. 인간에게는 공동체의 발전보다 당장 먹여살려야 할 가족의 세끼 밥이 더 절박하다. 그런 걱정을 안해본 사람의 이러쿵 저러쿵은 그저 공허할 뿐이다.

인류력사상 세계 그 어느 나라, 민족이든 근대화에 들어서면서 경제발전의 흐름에 따라 공동체 사회 구조에서 리익사회구조로 전환이 된 것은 모두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비단 조선족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고향을 떠나 외국이나 대도시의 삶을 선택한 이들 중에는 물론 어떤 환상이나 꿈에 부풀어 무작정 고향을 떠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바로 서두에서 인용했던 글속의 몽골젊은이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누가 채찍을 버리고, 말잔등에서 내려와 청바지를 입고, 롹음악을 들으며 '마라탕'을 먹는 그들을 타매할 수 있는가?
더 좋은 삶을 향한 그 소박한 욕구를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도시의 유혹은 강렬하다. 초원을 사랑하고 말을 사랑하지만 그들에게 도시의 번화함은 강렬한 유혹일 것이다. 그 유혹에 꿈틀대는 젊은이의 욕망이 왜 문제시되어야 하는가? 누가? 무엇 때문에? 무슨 자대로?
이모들중에는 넷째 이모가 제일 처음으로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의 공부를 위해서 분연히 시골을 떠나 연길에 간 것이다. 그러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연길에서 넷째 이모네는 발을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연길 호적이 없는 아이들에게서 돈을 많이 거둬갔는데 그 호적을 해결하느라 또 없는 돈을 써야 했으니 이모네는 꽤 오래동안 자기 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세집살이를 해야 했다.
코구멍만한 세방 귀퉁이에 설치된 수도가에서 세수를 하고 물을 버리면 하수도로 물이 꿀렁꿀렁 흘러들어가는 소리가 한참 있다 주인집 쪽에서 들리곤 했다.
썩 후에 우리 집도 주방이 따로 달린 큰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였다. 상하수도 배관이 어떻게 설치된 것인지 주방 하수도로 구정물을 버리면 꿀렁꿀렁 물 내려가는 소리가 화장실 쪽에서 들리군 했다.
"우리 집도 시내 집처럼 그렇다 응? 그때 넷째네 집에두 이랬지 않았니." 그때 엄마가 눈을 반짝이면서 한 말이다.
엄마가 경험한 '시내 집'은 아마 이모네 집이 처음이였을 것이다. 그 코구멍만한 세집방의 꿀렁꿀렁 내려가는 하수도 물소리마저 엄마는 '시내 집 풍경'이라고 부러웠던 것일가?
이런 소박한 시골사람의 도시에 대한 동경이 왜 '한치보기'로 폄하되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더 나은 삶에 대한 동경, 또는 욕망은 살아있는 자의 기본 권리라고 해도 무방하다.
조선족사회의 해체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 역시 과정이지 않을가 싶다. 백여년 전에, 항아리만한 호박이 달린다는 북간도를 향해 남부녀대하여 국경을 넘던 우리 선조들처럼 지금의 이런 현상도 그러한 과정이지 않을가?
구체적인 땅을 떠나있어도 그들은 글로, 축구로 고향을 소환하고 서로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고 있다. 또 한국에서, 일본에서, 북경에서, 상해에서 조선족 단체들이 일떠서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떠나가는 자들에게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날 것이오", "그렇게 떠나면 이 땅은 어찌하란 말이오?" 하는 텅빈 감정적 호소보다는 그들의 떠날 수밖에 없는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이 먼저여야 하지 않나 싶다. 그 고민 우에서 다시 해결책에 대한 론의가 나오는 게 순서일 것이다.
보다 발전하고 부강해진 고향에서 우리 조선족이 다시 모여 공동체를 꾸려가고 오손도손 살아갈 날을 꿈꿔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기엔 우린 이미 너무 멀리 왔고 그것이 아름답기만 한 환상이라는 것을 안다 .
바야흐로 5G 시대이다. 초고속, 초저지연, 초련결이라는 특징으로 대표되는 5G 세상! 땅 하나에 매달리지 않아도 우리의 련결망은 촘촘하다. 가상의 공간에라도 우리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그안에서 공동체를 재구축한다면? 다시 그 속에서 우리가 나갈 길을 고민해 본다면 어떨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진 출처: cya0909, <량수진>.

한국에도 일본에도 농촌의 퐁경은 다 비슷하더라구요. 노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나 해야 할까. 조선족은 그저 도시에 진출하는 중의 한 선택지로 한국의 도시에 가서 일하는 것일 뿐인데… 아직도 인구이동이 자유롭지 않던 공인호구 농민호구 시절을 상정하고 얘기를 하는 것처럼 사람을 갸우뚱하게 만드는 목소리들은 서로 다시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재밌는 글 잘 읽었슴다.
공감이 되는 글입니다. 가끔 고향이 연변인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다들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만 가서 대체 뭘 할수 있는지 모르겠다네요 (특히 회사원 입장에서는 이게 큰 문제인것 같습니다). 나중에 인터넷이 훨씬 더 발전하고, 재택근무도 당연한 근무방식이라고 인식이 바뀌게 되면 더 많은 조선족들이 알아서 고향으로 가지 않을가 추측을 해봅니다.
저도 연변이 늘 그립지만 오랫동안 타지에 있어서 막상 돌아가게되면 오히려 소외감이 들더라구요. 그냥 어떤때는 자신이 살기 편하다고 생각되는 곳이 결국엔 진정한 나의 집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나의 후대도 내가 살던 곳을 떠나면서 그 곳을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고향은 정체된 곳이 아니라 유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돌고 돌다가 연변에 다시 돌아가는 후대도 있겠죠. 이곳이 우리 조상님께서 살던 곳이라고. 마치 우리가 한국이나 북한에 갈때 그렇게 말하듯이..
한번은 위챗 어느 계정에서, 한번은 여기 우리나무에서 읽었는데, 읽을때마다 엄청 공감하면서 읽었네요. 비슷한 시기에 학교다녀서 기억하는 하는것들도 비슷하여 더 많이 공감이 간듯 합니다. 그러다보니 “가상의 공간에 우리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좀더 디테일한 솔루션들을 더 들어보고 싶어졌습니다. 혹시 제2부를 기대해도 될까요? “그곳이 차마 가상의 공간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