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먼지 쌓인 책장을 보며 그 시절의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그토록 원망했던 24시간을 너는 제대로 쓰고 있는가.
한때 나는 하루가 24시간이라는 사실을 원망한 적이 있다. 일이 많아서도, 돈을 벌어야 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한 권을 읽고 있으면 그 책의 각주가 또 다른 책으로 나를 데려갔고, 그 책은 다시 다른 낯선 저자를 내 앞에 불러왔다. 한 문장을 이해했다싶으면 그것을 비껴가는 또 다른 사상가가 나타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서관 서가 사이를 지나는 일은 지식을 쌓는 일이라기보다, 내가 얼마나 무지한 존재인지를 매일 확인하는 엄숙한 의식과도 같았다. 지식의 바다 앞에서 그 시절의 나는 늘 조급했다.
그때부터 나의 하루는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는 늘 책을 펼쳤고 학교식당에서는 밥보다 문장을 먼저 삼켰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모르는 역을 지나고 있었고, 국을 떠먹다가, 밥을 씹다가도 각주를 따라가곤 했다. 밥과 반찬은 식어있었고, 사람들이 떠난 텅빈 식당에서, 빈 식판 앞에서 한 문장을 붙잡고 있었다. 독서는 책상 위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걷는 동안에도, 밥을 먹는 동안에도, 꿈을 꾸는 동안에도 내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새벽이 밝아오는 것이 아쉬웠던 적도, 책을 덮지 못한채 책상에 엎드려 잠든 날도 많았다. 어떤 날은 아침에 거울을 보면 볼에는 타액과 함께 프린트의 잉크 같은 것이 희미하게 배여있었는데, 그것은 활자 잉크라기보다 텍스트와 함께 한 시간이 내 얼굴에 남긴 훈장같았다. 그 자국을 지우기가 아까워 한참 거울 앞에 서있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나는 시계보다는 거의 문단으로 시간을 쟀다. 그리고 장(章)으로 하루를 계산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루의 시작은 어젯밤 덮었던 페이지에서 다시 시작되었고, 다음 장을 넘기지 못한 아쉬움 속에서 하루는 마무리 되곤 했다.
낯선 나라에서 시작했던 아르바이트도 사실 오래가지 못했다. 두 차례의 아르바이트를 끝으로 더는 나가지 않았다. 돈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었고, 그때 내게 더 부족한 것은 시간이었다. 나는 돈을 덜 갖는 삶을 택했고, 대신 사유의 깊이를 채우는 삶을 택했다. 지금도 그건 내가 잘한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때 그시절 알바를 했다하더라도 그 돈은 진작 사라졌겠지만, 그 시간에 읽었던 책들은 지금도 내 안에 살아남아서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겉으로는 박사지만 사유의 빈약함이 드러나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치곤 했다. 그런 그들을 볼 때마다 되뇌었다.
'가짜로는 남지 말자. 진짜는 못되더라도.'
사람들은 종종 예술론이나 미학을 여유롭게 작품을 감상하는 학문쯤으로 생각했다. 나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세계는 결코 느긋하지 않다. 하나의 이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과 역사, 미학과 기술이 함께 따라붙었고, 하나의 개념을 말하기 위해 여러 층위와 시대를 오가야 했다. 작은 세계 하나를 임시로 세우는 일과 다름 없다고 생각됐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 연결은 늘어나고, 더 촘촘한 사유의 밀도가 요구되었다. 그때의 독서는 그래서 직선이 아니라 끝없이 서로서로 얽혀가는 그물 같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지식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전해지는 유산이라고 믿고 있다. 언젠가 누군가와 지식을 나누게 될 때 내가 보지 못한 세계는 결국 그 사람에게도 전해줄 수 없는 세계가 되니깐말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나 자신만을 위해 읽는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언젠가 가족이든 친구든, 혹은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에게라도 이로운 영향이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읽었다.
사람들은 삶의 어떤 구간을 사랑으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여행으로 기억한다.
나는 텅 빈 학교식당의 풍경으로 기억한다.
지나쳐버린 지하철역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얼굴에 찍혀있던 잉크로 기억한다.
새벽에 나를 잠에서 깨우던 한 문장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 나는 가난했고, 나의 하루는 언제나 짧았다.
그리고 나는 하루가 24시간뿐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원망했다.
(끝)
PS: 1년전에 쓴 '아다먹끼가 쓴 아다먹끼'란 글을 마무리하면서 서울에서의 생활은 추후 쓰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 글은 그에 대한 답변이자, 나의 뜨거웠던 시절이 오늘의 안일한 나를 향해 던지는 준엄한 질책이다.
전글: "아다먹끼가 쓴 아다먹끼" https://wulinamu.com/wlnm/41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