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처음 이 말을 들었을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철학과 지성으로 무장한 성인답게 한번에 납득하고 적응하였을까? 그럼 나는 아직 도행이 부족한가보다.
귀국한지도 어느덧 일년이 넘었다. 이젠 웬만한것에는 대충 적응하며 살고있지만 아직까지 적응 안되는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대중교통을 이용할때 자행되는 몸수색이다. 마치 내가 범죄자라도 된냥 기분이 더럽다.
맨처음 귀국해서 고속철을 탔을때가 제일 충격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비행기를 탈때만 진행하는 몸수색을 국내에서는 고속철을 탈때도 하고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북경은 지하철을 탈 때도 짐검사를 한단다. (북경에 사시는 분들 팩트체크 바랍니다.)그것에 비하면 양반이다 싶었다. 스톡홀롬증후군이 이래서 생기나보다.
어떡하겠나?내가 이땅에 사는 이상 적응(순응이 더 적절하겠다.)하는수밖에. 애써 자기합리화를 시키는데 열차원들이 한술 더 뜬다. 텀블러에 뭐가 들었냐 묻는다.
'물이지 뭐겠어요? 뭐 다른게 있을수 있나요?'
(아..커피인지 묻는건가?)
나는 목소리와 표정에 황당한 기분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그러자 이번엔 열어서 한 모금 마셔보란다.
'예?한 모금 마시라구요?지금 이게..'
'혹시 석유를 넣었을까봐 그럽니다.'
'하~'
나는 실소가 터지고 말았다. 내가 테러리스트처럼 생겼나?
나는 텀블러를 열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됐나요?'
'네.됐습니다.'
내가 신경질적으로 내뱉은 질문에 열차원은 아주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꼭 내가 나쁜 사람 같다.
그리하여 그 기분 나쁜 몸수색도 끝내고 들어가려는데 열차원이 또 나를 불러세웠다. 이번엔 모자를 벗어보란다. 코로나시국이라 방역땜에 그러는줄 알고 아까 입구에서 체온 측정 했는데 또 하냐고 물으니 그게 아니라 내가 모자속에 칼을 숨겼을까봐 그러는거란다.
'엄마야…허허'
이젠 화낼 힘도 없다. 나는 주위를 빙 둘러봤다. 다들 아무런 불평불만없이 열차원들의 요구에 잘 따르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하긴 원래 혼자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비정상으로 몰리는 법이니까. 하지만 나는 얼마 안 지나 다른이들이 아무말 안하는 이유를 알았다. 싸워도 소용없으니까. 언젠가 열 받아서 몸수색을 하는 열차원과 실랑이를 벌였더니 그게 싫으면 타지 말란다. 다들 군말없이 받는 검사를 왜 너만 난리냐고.
이런 행태가 극에 달할때가 있다. 올림픽이나 '양회' 같은 국가적인 행사가 있는 기간이다. 그럴땐 아예 전 국민이 모두 잠정적 테러리스트가 된다.
오늘 출장이 잡혀서 부득이하게 고속철을 타야 됐었는데 하필 그게 북경까지 가는 열차였던것이다. 입장절차도 평소의 배로 늘었다. 원래 신분증만 스캔하면 들어갈수 있었던 대기실을 신분증 체크만 세번을 했다. 그리고 가방이나 트렁크는 아예 거꾸로 탈탈 털어서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까지 이잡듯이 뒤졌다. 열차원들은 지들도 미안한지 전에 없이 상냥한 태도로 승객들을 대했고 짐검사를 하는 이들의 얼굴은 미안함에 어쩔줄을 몰랐다. 그러면서 이런 검사가 올림픽이 끝날때까지 두세달은 계속될꺼라는 말도 덧붙였다.
짐검사를 마친 내 가방에는 '검사완료'라는 스티커가 떡하니 붙여졌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야 뗄수 있단다.
여러 복잡한 절차를 마치고 차가 오기를 기다리며 줄서있는데 이제 네댓살 쯤 돼보이는 여자아이가 랑랑한 목소리로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왜 저 사람들이 우리 가방을 열어봐?'
엄마는 아무일도 아니라는듯
'응~ 이제 곧 동계올림픽이 열리지 않니?'라고 대답 했다.
'동계올림픽?'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엄마를 올려다봤다.아이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고있으니 왠지 더 서글펴졌다.
엄마를 비롯한 어른들은 이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들이다.하지만 아직 저 아이는 왜 '동계올림픽=짐검사' 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새다. 이 아이는 커가면서 중국에서는 '동계올림픽=짐검사' 라는것을 받아들이고 적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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