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와 천사

내 폰에 저장 되어 있는 정신나간 메모들...


내 폰에 저장 되어 있는 정신나간 메모들…

머신 러닝-연산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초지능적 수단이며 동시에 인류 및 우주 통계의 전면화를 이루기 위한 초석이다.

消除界限-梦,世俗和符号们的演绎。绕绪的城市、可控的城市是艺术家要捕捉的。艺术和现实互相影响合成。

断翼的天使

그들을 깨우지마라

차분한 슬픔-나를 견뎌내는 나

수 많은 철학자들은 자신의 시대를 초월하는, 인류의 시대 전반에 해당할 수 있는 보편철학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시대에서 그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철학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아무리 완성된 보편철학이라고 해도 그것은 그 시대의 보편철학인 것이다. 역사속에서 아무리 비슷한 시대적 레퍼토리가 있다고 해도 어느 한 시대의 보편철학이 모든 시대의 보편철학이 될 수가 없다. 수 많은 철학자들은 자신의 스승의 철학을 보완, 비평, 수정을 하면서 자신의 철학관을 확립시킨다. 그렇지만 종종이는 보완, 비평, 수정이 아니라 변화되고 있는 어느 시대적 상황의 시공간적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전자와 후자는 전부 자신에게 주어진 특정한 시공간적 단면에 부합하는 보편철학을 만들어 낸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역사적 경험(고전철학), 자연의 이치(보편법칙-과학), 예지적 사유(미래예측)는 그 단면 속에서 융합되어 도리어 그 단면을 형성하는 것일 수도 있다.(철학자는 이 세가지를 동시에 진행한다–고전을 딛고, 현재를 읽으며, 미래를 파악한다.) 따라서 어느 철학자의  보편철학이라는 한 단면은 이미 시간을 넘나들거나 뛰어 넘으며 동시에 공간을 변형시킨다.
이렇게 보면 세상만사 속에 아니하는 것이 없으며 영원히 옳은 것 또한 없다.
나는 잔다.

  ——————————-

"나는 잔다"를 보고 빵 터졌다. 이 메모를 쓸때 내가 너무 졸려서 뭐라고 썼는지도 모른채 의식의 흐름 따라 써내리다가 "什么玩意"(뭔소리야)하고 잤던 기억이 난다.

ㅎㅎㅎ

가끔씩 핸드폰에 적힌 메모를 체크할 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란다.

당연히 이러한 생각들은 내 머릿속에서 저절로 나왔을리가 없다. 뉴스나 유튜브 콘텐츠 또는 친구의 대화나 책에서 뭔가 바로 잡아둬야 될 것 만 같은 사유들이 촉발되면 이렇게 바로바로 메모하곤 한다.

다 쓰면 그 다듬어지지 않은 조각들이 너무 조야해서 "또 머이라구 써?" 하면서 그냥 내버려둔다.

이러한 습관은 미술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양성된 것 같다. 그 덕에 현재 글쓰기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차분한 슬픔-나를 견뎌내는 나" 이 메모는 <멜랑콜리>(우리나무에 올린 글)에 영감을 주었다.

오늘은 메모에 적힌 “断翼的天使”(날개가 부러진 천사) 이 주제가 조금 땡긴다.

친구가 나보고 명상을 하라고 권했다. 나는 명상이 무섭다고 말했다. 친구는 독일 중국학자 리하르트 빌헬름Hellmut Wilhelm이 번역한 책 <太乙金华宗旨>(태을금화종지, <황금꽃의 비밀>로 번역 되었으며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의 소개로 재조명되었다.)를 보내주면서 무서울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아직 이 책을 보지 않았다. 언젠가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보게될 것이다.

나는 명상을 초자아의 영역으로 이해하고 있다. 친구의 말로는 무념무상의 상태에 이르면 아주 충만하고 기분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의 사유는 멈춰 본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무념무상이 가능한지 여쭤보았다. 친구는 그냥 생각을 의도적으로 자아내지도 억압하지도 말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놔두라고 했다.

무념무상의 상태라…그리고 그 상태에서 오는 기쁨이라…

왠지 예전에 그림에 심취 했을 때 나의 손과 붓 그리고 안료와 캔버스가 일체로 되는 경험과 비슷한 것 같았다. 왜냐하면 비록 그림 그리기 전에는 나는 "이렇게 그릴꺼고 저렇게 그릴꺼고 이런 의미를 담을꺼야" 라는 수 많은 작업 방안을 세웠지만 막상 붓이 안료와 캔버스에 닿는 순간 그 수 많은 생각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그냥 붓을 따라(아님 손을따라? 아님 눈을 따라? 아님 색의 리드를 따라?) 그려내려가는 것이다.

그 때 나는 베이징 송좡(宋庄) 화가촌에 있는 작업실에서 매일 추워서 덜덜 떨었고, 밤과 낮이라는 개념도 없이 창작에 목메어서 어깨 통증과 坐骨神经痛에 시달렸지만 마음 만큼은 정말 충만하고 행복했었다. 이제야 나는 내가 한국에 오면서 자신을 断翼的天使라고 자칭 해온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은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향유해왔던 초자아와의 연결의 충만함, 어쩌면 친구가 명상에서 느꼈던 그러한 기쁨을 단절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당시 나는 누군가를 만나기만 하면 나의 날개가 베어졌다고, 팔도 사라지고 밧줄에 꽁꽁 묶인것 같다고 말했다. 당연히 헛소리 같은 말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6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또 다시 충만한 나로 돌아오고 있다. 그 여정 속에는 내가 소홀 했었던 지상의 경험들이 축적되고 있었다.  이것은 한 단계를 더 올라간(업그레이드) 그러한  '돌아옴'이다.

(우리)나무의 연륜 처럼 말이다.

이 글을 공유하기: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