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없음≠정직함, 위선과 정직 사이, 솔직과 무례 사이


거짓 없음≠정직함, 

위선과 정직 사이, 솔직과 무례 사이 

리은실

국내 모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후배가 있다. 어느 한 번 후배가 고민을 내비쳤다. 반급의 한 여학생이 국경 연휴가 끝나 학교에 가는 첫날 수업에 청가를 맡겠다고 했단다. 근데 그 청가 사유가 다소 의외였다. 

외지에서 친구가 놀러 오기로 해서 미리 상해 디즈니 공원 티켓을 구매했는데 그게 하필이면 개학 첫날이라는 것이었다. 이러면 안되는 걸 알지만 디즈니 공원 티켓 가격이 워낙에 비싸서 수업 때문에 못 가면 너무 유감스러울 것 같다고 그 여학생이 귀엽게 청가 사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그 나이를 지나왔고 학교 생활을 해봤다면 누구라도 이해 가능한 일이었다. 친구랑 꽤 오래 전부터 같이 놀러 갈 생각에 설렜을 거고 그 와중에 청가 맡아야 할 생각에 제딴에는 긴장했을 것이다. 후배는 마지못해 청가를 줬다고 한다. 그런데 마음이 석연치 않다고 했다. 

"나 같았으면 아파서 병원에 가겠다는 거짓말 같은 거로 청가를 맡았을 법도 한데 솔직하게 놀러 가겠다고 청가 사유를 말한 거면 착한 애 아니야? 뭘 고민하는 거니" 하고 후배에게 물었다. 

후배는 그 여학생의 청가 사유를 알게 된 다른 학생들이 너도 나도 놀러 가겠다고 청가를 내달라고 하면 난감할 것 같다고 했다. 또 교육자로서 뻔히 옳지 않은 일을 보면서 방관하는 것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이 일은 꽤 오래 내 맘속에 머물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 아이는 솔직했고 귀여웠다. 그러나 선생에게 풀기 힘든 숙제를 던져주었다. 

이 이야기를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지인에게 했다. 그 아이는 잘못한 게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석연치 못한 이 기분은 무엇일까 라고 했더니 지인이 말했다. “그 아이는 솔직함을 빌미로 자기의 고민을 상대에게 던졌다”고 했다. 그 말 역시 오래 내 안에 머물러 있었다. 

일전에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축구팀은 금메달을 따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남자 선수에 한해 한국에서는 군 면제 혜택을 준다고 한다. 한국 국민들과 선수들은 하나가 되어 기뻐하며 승리를 경축하였다.

문제는 경기가 끝난 이후의 인터뷰에서였다. 몇몇 선수들이 기쁨을 금치 못하고 만면에 웃음을 띤 채 “군대 안 갑니다.”라고 했다. 이는 논란을 일으켰다. 현재 병역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군인에 대한 조롱이라는 비판이 잇달았다. 일부러 조롱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제스처나 발언은 충분히 조롱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 선수는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난 그냥 솔직한 내 마음을 표현했을 뿐인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다만 태극기 마크를 달고 한 나라를 대표해 출전한 국가팀 선수가 공적인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또 이런 질문이 잇따를 것이다. “그러면 속으로는 기쁘면서 안 기쁜 척 해야 해요? 그건 위선이잖아요.”

썩 전에 손흥민 선수는 “군면제 받아서 기쁜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보다는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출전한 한 사람으로서 영광스럽다고”고 일축했다. 대중이 바라는 건 이런 모습이었다. 

군면제를 받은 것을 기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걸 뛰어넘는 가치를 생각할 줄 알고 거국적인 사명감으로 임해줬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우리는 아이를 교육할 때 성실할 것을 요구한다. “다른 건 돼도 거짓말은 절대 안돼.” 라고 하는데 어쩌면 ‘성실’의 의미를 ‘거짓 없음’으로 축소시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이는 은연 중 “거짓말이야말로 제일 나쁜 거구나. 그것만 아니라면 괜찮은 거구나.”라는 생각을 가질지도 모른다. 

‘성실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정성스럽고 참되다”이다. ‘정직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다”이다. 거짓없음을 넘어서 바르고 곧고 정성스러워야 하는 것이다. 애 교육에서 ‘거짓 없음’의 가치를 ‘성실함’으로 확대해 생각했던 게 아닌가 반성한다. 꾸밈이 없되 그것은 올바른 가치여야 하는 것이다. 

군 면제 받은 것을 기뻐하는 것은 솔직함이지만 그 개인의 가치보다 더 크고 높은 가치를 생각해보려는 노력이 성실함이나 정직함일 것이다. 

성실함이나 정직함의 시작은 ‘거짓 없음’이지만 그것으로 끝내서는 안될 것 같다. 

그렇다면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 그 여학생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성실’했을까? 스무살의 어린 여학생이 생기를 잃지도 않고 성실할 수도 있는 선택은 어떤 것이었을까? 

딱 잘라 옳고 그름을 나눌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그 여학생이 그 일로 “솔직하게 말만 하면 뭐든 되는 것"이라는 생각은 안 가졌기를 바라본다. 어떤 것이 부당한 것인지, 부당한 것을 요구할 때 ‘솔직 당당’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그 후의 시간들을 겪으며 그 귀여운 여학생이 깨달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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