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 (제6화: 중독) *클릭 가능 에서 나는 금당에 대한 장편의 논의를 펼친 바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해도,
금당의 노력은 늘 실패로 돌아왔다.
이러한 실패의 이유는 이성과 논리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 근본적으로 파헤쳐 본다면,
결국 가장 직면하기 어려운 그 과제 앞에 놓이게 된다.
그것은 바로 우리 각자만의 결핍 회로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사랑으로 충만할 때 느끼는 심신의 안정과 행복감은 “공허”의 틈을 채워준다.
하지만 불안정하거나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매일 맞닥뜨려야 하는 사회적 일상 속에서 우리는 늘 정신을 곤두세우며 수많은 의지들 가운데서 자신의 영혼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기를 쓴다. 그러한 우리를 충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집이다.
중국인에게 이러한 집에 대한 집착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만일 집을 마음의 안정을 허용한 유일한 곳이라고 여긴다면 그곳은 우리에게 단지 벽돌과 콘크리트로 쌓아 올린 건물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이 공간을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절대적 기간 동안, 사람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의 마음의 평정성을 유지하며 일과 집 사이의 밸런스를 맞추며 살아간다.
하지만“집”이 더 이상 그것의 순기능, 즉 안정감과 행복감을 불러오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불러 일으키는 장이 되었다면, 인간은 아무리 좋은 집에서 살고 몇 채의 집을 소유하더라도 “정서적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면할 수 없다.
여기서 “정서적 디아스포라”는 마음이 쉴 곳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인간의 조건과 상태를 말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금당의 결심처럼 이상주의적 신념으로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 결코 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금당일지는 영광스럽게도 실패로 돌아온다.
왜냐하면, 금당의 시도는 실패했지만 적어도 당에 대한 과도한 의존 욕구는 오히려 간접적으로 나의 결핍의 원천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집을 어떻게 짓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 마음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는가?
우리는 어떤 경우에 “정서적 디아스포라”의 불안정성을 경험하는가?
우리는 당(糖)과 같이 달콤한 위로로 포장된 대체품들을 끊을 수 있는가?
만일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금당에 성공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결핍을 인식의 도약으로 추월하는 ‘초인’이 되어 있을까?
아니면, 인간의 정서적 요동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괴인’이 되어 갈 건가?
문제의 방향이 빗나갔다.
무작정 ‘금당’에만 노력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안정될 수 있는 “터”(물리적이든 정서적이든)를 마련해 두는 과정에 답이 보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