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위신(叶伟信) 감독이 연출하고 견자단(甄子丹)이 주연한 《엽문 4》는 2019년 12월 개봉한 시리즈의 완결편 액션 영화다. 극장에서 처음 마주한 뒤로, TV에서 재방송을 해줄 때마다 리모컨을 멈추고 몇 번이고 다시 보았다. 언젠가는 이 영화에 대해 가슴속에 고여 있는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야겠다고 벼르던 참에, 이제야 비로소 펜을 들어본다.
어릴 때부터 마음에 와닿는 영화 한 편을 만나면 대여섯 번씩 다시 돌려보는 버릇이 있었다. 학창 시절 공부 외에 유일하게 가슴 뛰던 취미 역시 무술 영화였다. 성룡(成龙)의 유연한 아크로바틱과 이연걸(李连杰)의 칼날 같은 정통 무술에 흠뻑 빠져, 방바닥 매트 위에서 뒹굴며 흉내를 내고 마당에 걸어둔 샌드백(沙袋)을 손등이 벌게지도록 두들기곤 했다. 세월이 흘러 토니 자(Tony Jaa)의 거친 무에타이와 견자단(甄子丹)의 《엽문》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무술 영화는 언제나 내 오랜 갈증을 풀어주는 통로였다.
그런데 완결편인 《엽문 4》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내 마음에 가장 묵직하게 남은 것은 단순한 타격의 쾌감만이 아니었다. 엽문(叶问)이 아들 엽정(叶正)에게 언성을 높이다가, 홀로 남은 방에서 뒤늦은 후회를 삼키던 쓸쓸한 뒷모습이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대결을 기대하고 앉았다가, 정작 세 가족의 서툰 사랑과 그 이면에 흐르는 삶의 철학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 영화는 적을 쓰러뜨리는 주먹의 액션 영화이기 전에, 소통의 부재로 엇갈린 부모 자식의 마음, 그리고 '주먹보다 닿기 어려운 마음의 거리'를 다룬 깊은 이야기였다.
엽문(叶问)과 엽정(叶正) — 아버지의 고집, 아들의 마음
영화는 엽문(叶问)이 두경부암(头颈癌) 말기 판정을 받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망 속에서, 설상가상으로 아들 엽정(叶正)은 학교에서 잦은 싸움질로 퇴학 처분을 당한다. 엽문(叶问)은 자신이 걸어온 무술의 길이 얼마나 고단하고 미래를 기약하기 힘든지를 뼈저리게 알기에, 아들만큼은 온전히 지식을 쌓아 안정된 길을 걷길 바랐다. 그래서 제자 이소룡(李小龙)의 초청을 계기로, 아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 자리를 알아보고자 했다.
하지만 아들이 진정 원한 것은 권투와 무술이었다. 아들을 위한다는 아버지의 완고한 고집과 자신의 꿈을 몰라주는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반발은 끝내 뺨을 때리는 파국으로 이어진다. 손찌검을 당하고 방으로 뛰쳐나간 아들의 닫힌 문 앞, 엽문(叶问)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홀로 서성인다. 방 안에서 홀로 담배를 태우며 욱신거리는 가슴과 뒤늦은 후회를 삼키던 그 고독한 아버지의 등은, 시대를 불문하고 자식에게 상처를 주고서야 제 못남을 탓하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었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이 너무 확고하면, 정작 아이가 겪는 불안과 눈물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온갖 차별과 갈등을 겪으며, 엽문(叶问)은 억지로 아이를 남의 땅에 밀어 넣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깨닫는다. 홍콩으로 돌아온 그는 비로소 완고한 고집을 내려놓고 아들의 꿈을 인정하며 직접 영춘권(咏春拳)을 가르치기로 한다. 그리고 목인장(木人桩) 앞에 서서 덤덤하게 말한다. "엽정, 카메라 켜두었니? 잘 찍어두어라."
탁, 탁, 타닥—. 적막한 도장에 울려 퍼지는 목인장의 둔탁한 타격음 너머로, 아들 엽정(叶正)은 조용히 캠코더 뷰파인더에 아버지의 모습을 담아낸다. 렌즈 너머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빛과, 온 힘을 다해 자신의 평생을 자식에게 남겨주려는 엽문(叶问)의 담담한 손끝. 주먹으로 천하를 호령했던 무술가가 마침내 주먹을 접고 건넨 온기가 아들의 마음에 가닿아 진정한 화해를 이룬 순간이었다.
만종화(万宗华)와 만약남(万若男) — 타향살이의 갑옷과 상처 입은 자식
미국 명문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필수적인 추천서를 얻고자, 엽문(叶问)은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의 중화총회관(中华总会馆)을 이끄는 만종화(万宗华) 회장을 찾아간다. 그러나 만종화(万宗华)는 서양인에게 무술을 전수하고 영문 무술 서적까지 낸 이소룡(李小龙)을 탐탁지 않게 여기며 홍문연(鸿门宴) 같은 서늘한 분위기 속에서 이소룡(李小龙)의 활동을 중단시키라는 조건을 내건다. 엽문(叶问)은 추천서가 절실했음에도 "중국 무술로 그들의 편견을 바꾸어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다.
이 대립 끝에 엽문(叶问)은 길거리에서 백인 학생 무리에게 쫓기며 집단 린치를 당하던 한 여학생을 구해주게 된다. 학교 치어리더 대장으로 뽑혔다는 이유만으로 인종차별적 질시와 함께 머리카락까지 잘리는 수모를 겪은 아이, 바로 만종화(万宗华)의 딸 만약남(万若男)이었다.
딸을 데리고 집에 들어선 순간, 만종화(万宗华)는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은 채 또 싸우고 다녔냐며 딸의 뺨을 때린다. 만약남(万若男)은 억울함에 눈물을 쏟아낸다. "아빠는 매번 참으라고만 하잖아요. 그럼 내가 무술을 배워서 어디에 써요?" 엽문(叶问)이 아이는 자신을 지킨 것뿐이라고 두둔하자, 만종화(万宗华)는 뼈아픈 한마디를 뱉는다. "엽 사부, 당신은 여기서 살아보지 않아서 모릅니다. 저들은 틈만 나면 우리를 쫓아내려 해요."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서러움과 굳은살의 무게를 알기에, 만종화(万宗华)의 완고함은 남일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인내라는 이름의 갑옷은 백인 사회의 차별로부터 딸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했고, 오히려 부녀 사이에 높은 벽만 쌓아 올렸다. 엽문(叶问)이 만종화(万宗华)에게 "차이나타운 밖으로 나가 그들과 직접 소통하고 세상을 바꾸려 해보았느냐"고 반문할 때, 이는 세상과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를 동시에 찌르는 묵직한 물음이었다.
앤드류 월터스(Andrew Walters)와 베키(Becky) — 파멸을 부르는 맹목, 그리고 일그러진 현실
엽문(叶问)과 만종화(万宗华)의 갈등이 '서툰 소통'에서 비롯된 아픔이라면, 이민국(INS) 고위 관료 앤드류 월터스(Andrew Walters)와 그의 딸 베키(Becky)의 관계는 '성찰 없는 맹목'이 낳은 파멸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베키(Becky)는 만약남(万若男)이 실력으로 치어리더 대장에 선발된 것을 시기해 남학생 무리를 이끌고 가 머리카락을 자르며 집단 폭력을 가했다. 그러다 저항하는 만약남(万若男)에게 가위로 제 얼굴에 상처를 내고 말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자신의 악행은 쏙 뺀 채 피해자 행세를 하며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이 집안의 진짜 비극은 부모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사실관계를 묻는 어른은 없었다. 어머니는 즉각 일터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복수를 종용했고, 아버지 앤드류 월터스(Andrew Walters) 역시 "정말 무슨 일이 있었니?"라는 단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는 공권력을 사유화해 중화총회관을 급습하고 만종화(万宗华)를 불법 구금하며 차이나타운 전체를 겁박한다. 딸의 그릇된 시기심이 부모의 맹목적인 비호와 결합하자 거대한 사회적 폭력으로 번진 것이다. 옳고 그름을 가르치지 않는 부모의 완력은 결국 자식을 괴물로 키울 뿐이다.
이 장면이 유독 뼛속 깊이 쓰라리게 와닿은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을 막론하고, 아이의 일방적인 말만 믿고 학교로 쳐들어가 교사에게 폭언과 주먹을 휘두르는 학부모들의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한국 사회 역시 악성 민원과 고소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젊은 교사가 생을 마감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바로잡아야 할 자리에 부모의 뒤틀린 완장이 들어차며 교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월터스(Andrew Walters)가 저지른 치명적인 오류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진실을 덮고 무조건 내 아이 편만 들어주는 비호는, 타인을 짓밟아도 된다고 부추기는 파멸의 공범이 되는 길일 뿐이다.
주먹의 승리를 넘어선 내면의 성찰
영화 후반부, 중추절 축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차이나타운 사람들을 짓밟은 미 해병대 총교관 바턴 게디스(Barton Geddes, 스콧 앳킨스 분)와의 대결은 단연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하지만 이 살벌한 승부는 단순히 주먹이 센 자를 가리는 싸움이 아니었다.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에 맞서 끝까지 굴복하지 않는 무술인의 결기를 증명하는 자리이자, 병든 몸을 이끌고 선 엽문(叶问)이 인생의 황혼에서 온 힘을 다해 치러낸 마지막 응전이었다.
그러나 정작 가슴을 치는 진짜 명장면은 요란한 격투가 끝난 뒤의 고요 속에서 찾아온다. 만종화(万宗华)는 미국을 떠나는 엽문(叶问)의 손에 그토록 간절했던 추천서를 쥐여주지만, 정작 엽문(叶问)의 마음속에서는 아들을 억지로 태평양 건너로 떠밀려던 조급함이 거짓말처럼 흩어져 있었다. 타향살이의 설움과 편견의 민낯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자식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유학 간판이나 낯선 도피처가 아니라 아이의 서툰 발걸음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아버지의 품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주먹으로 상대를 쓰러뜨렸을 때가 아니라, 자식을 향해 부리던 자신의 아집을 스스로 꺾었을 때 비로소 엽문(叶问)은 아들과의 두터운 벽을 허물 준비를 마친 셈이었다.
엔딩 크레디트 직전, 스크린에는 청년 시절의 패기 넘치던 몸짓부터 귀밑머리가 하얗게 센 노년에 이르기까지 엽문(叶问)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내에게는 한없이 다정했고 거친 세상 앞에서는 꼿꼿했던 그 수많은 주먹질의 끝에서, 마침내 힘을 빼고 자식 앞에 마주 선 한 늙은 아버지의 얼굴. 그것은 천하를 호령한 종사의 위용이 아니라, 자식에게 져줄 줄 아는 진짜 어른으로 거듭난 한 인간의 완성된 모습이었다.
— 나에게도 20대, 진로를 고민하며 방황하는 딸이 있다
나에게도 딸이 있다. 그래서 만약남(万若男)이 "아빠는 나를 이해한 적이 있니?"라고 물었을 때, 가슴 한구석이 덜컹 내려앉았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긴 세월 일과 삶의 무게를 핑계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아이 곁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했던 아버지였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 앉았을 때, 내 기억 속 아이는 여전히 내가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던 어린아이였지만, 눈앞의 딸은 이미 자신만의 뚜렷한 세계와 생각을 가진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있었다.
2002년생인 딸은 틱*의 모기업이자 중국 IT 대기업인 字节** 본사에서 1년간 외주 관리 사무직으로 일했다. 남들이 보기엔 부러워할 만한 번듯한 직장이었지만, 아이는 그 탄탄한 궤도를 제 발로 걸어 나왔다. 지금은 자신이 일하고 싶을 때 일하는 프리랜서 일용직을 택해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고민하며 긴 방황의 강을 건너고 있다. 남들은 안정된 대기업을 왜 그만두었냐며 성화였지만, 나와 아내는 딸의 선택을 무작정 다그치거나 꺾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딸의 불안과 고민을 마주 보며 함께 머리를 맞대고 긴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마음을 나눈 끝에, 딸아이는 마침내 내가 일하고 있는 한국으로 건너와 석사 유학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금 딸은 낮에는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내년 석사 진학의 필수 관문인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준비하고 있다. 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대학원의 문이 열리겠지만, 정작 한국에 있는 아빠의 마음은 벌써부터 저만치 앞서 달린다. 아이가 오면 가족 셋이 지내기에 지금 방이 너무 좁지는 않을지 더 큰 보금자리를 고민하고, 유학 생활 중 편의점이나 바텐더 같은 아르바이트라도 하려면 어떤 비자와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하는지 딸 대신 동분서주하며 알아보고 있다.
젊은 시절 무술 영화의 화려한 초식과 '강해지는 법'에 매료되어 살았던 내가, 이제 오십 줄에 접어들어 이 영화를 보며 오래도록 멈춰 선 까닭은 바로 그 부모와 자식 간의 서투른 간극 때문이었다. 아이를 위한다는 강박과 아이의 삶을 온전히 존중하는 사랑 사이, 부모라면 누구나 길을 잃기 쉬운 그 경계선 말이다.
자식 앞에 선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은 전설의 주먹도 완력도 아니다. '내 방식만이 옳다'는 고집을 내려놓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며, 그 방황의 길목에 말없이 든든한 디딤돌 하나 놓아주는 작은 온기만으로 충분하다. 진정한 아버지의 무술은 아이를 억누르는 주먹이 아니라, 아이의 닫힌 마음을 조심스레 열어젖히고 세상을 향해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 받쳐주는 손길이어야 한다. 만약남(万若男)에게 무술은 험한 세상을 버텨내는 법이었고, 엽정(叶正)에게 무술은 아버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는 언어였다.
승부의 먼지가 가라앉은 자리에 남은 것은 승자의 이름이 아니라, 서툴게 엇갈리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홀로 남은 방에서 불을 끄고 누우면 문득, 바다 건너 책상 앞에서 고단한 하루 끝에 홀로 단어장을 넘기고 있을 딸아이의 지친 어깨가 눈에 밟힌다. 더 넓은 세상으로 한 발 내딛기 위해 서투른 방황을 견뎌내고 있는 내 딸. 아빠의 서투름 때문에 멀어졌던 지난날의 시간들이 미안해서라도, 이제는 아이가 지쳐 기댈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다. 토픽 교재를 들여다보고 있을 딸아이의 간절한 노력을 온 마음으로 안아주며, 아이가 내게로 건너올 작은 다리를 오늘도 묵묵하고 정성스럽게 다듬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