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못 간 이는 바다로 한을 푼다.

[우리나무 함께쓰기 · 26개의 키워드: 여권]


세계일주가 꿈이라고 외치던 A는 여권은 있지만 떠날 수가 없었다. 부유와 자유를 향유하지 못 한 것이 A의 탓이라면 탓일까. 지금의 A에게 여권에 도장 찍는 취미는 그저 한낱 몽환일 뿐이었다. 

A에게는 논문을 써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갈 수 없으니 더 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까.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떠날 수 없으니 어디론가 더 떠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런 집착들이 빳빳이 줏대를 세워 A를 바다로 이끌었다. 

여권에 도장 찍는 세계일주 대신, A는 바다를 도장깨기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논문을 쓰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A는 숨통이라도 붙들고 사는 사람처럼 바다를 찾았다.


처음 바다를 찾은 건 우연이었다. 

논문을 쓰다 말고 청승맞게 눈물이 났다. 읽어도 모르겠고, 써놓고 보면 더 모르겠고, 어제는 그럴듯했던 문장이 오늘 보면 남이 몰래 끼워놓은 문장 같았다. 자신의 무능함과 무지함을 견딜 수 없어서 A는 외투만 걸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하필 너울성 파도 주의보가 발령된 날, 무작정 바다를 향해 달렸다. 파도 소리가 무척이나 요란했다. 마음껏 울어도 되겠네. 이상하게 안심이 되어 A는 소란한 파도 앞에서 목놓아 울었다. A가 청승맞게 울면 파도는 더 큰 소리를 내며 ‘우구우구, 그랬어’ 하고 대꾸해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니 논문이 잘 써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집에는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다가 주는 첫 번째 선물, 마음의 평화. Peace.


첫 번째 심사를 마친 날, A의 손에는 고쳐야 할 것들이 잔뜩 들려 있었다. 심사위원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틀리지 않아서 더 괴로웠다.

“나 그냥 다 다시 써야 할 것 같은데?”

A가 얼이 빠져 있으니 남편이 말없이 바다에 데려다 주었다. 가는 동안 A는 심사위원이 뭐라고 했는지, 자신은 왜 그렇게 썼는지를 쉬지 않고 쏟아냈다. 남편은 그저 들어주었다. 바다에 도착했을 즈음에야 마음이 진정되었다.

A는 한참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심사평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그 몇 장의 수정사항 뒤에 숨어 있는, ‘이번에도 끝내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무서웠다. 남편에게 말하면서 엉킨 마음을 풀었고, 바다 앞에서야 자신의 마음을 알아챘다. 

고쳐야 할 것은 논문이었지만, A를 짓누르고 있던 것은 그보다 먼저 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Anxiety.


두 번째 심사를 앞둔 새벽, A는 지도교수님에게 메일을 썼다. 수정본을 기한 안에 드리지 못할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1차 심사 뒤 어떻게든 논문을 고쳐보려 했지만 부담감에 눌려 결국 한 글자도 손대지 못했다고 이실직고 했다.

"제가 2차 심사를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보잘것없는 학생이라 죄송합니다."

논문을 수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어느새 ‘나는 자격이 없다’가 되었고, 한 학기 늦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나는 보잘것없다’는 판정문이 되어 있었다.

몇 분 뒤 교수님께서 답장이 왔다.

“그럴 수도 있지. 그렇다고 ‘보잘 것 없는’ 건 아니고.”

짧았다. A가 밤새 자신을 깎아내리며 쓴 문장들을, 교수님은 두 줄로 멈춰 세웠다. 

심사는 한 학기 미루었다. 그날 혼자 또 바다를 찾았다. 도착해서도 한동안 차 안에 있었다. 파도가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유리창 너머로 파도를 보고 있노라니 조금은 숨이 쉬어졌다. 바다를 보고 있자니 자신이 하루 종일 붙들고 있던 ‘보잘것없음’이라는 말이 유난히 작아 보였다. 

포기했다는 사실도, 한 글자도 못 고쳤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다만 논문을 못 고쳤다고 해서, 자신을 통째로 못난이 취급을 하면 안 되었다. 그날 바다에 내려놓고 온 것은 실패가 아니라, 실패한 자신을 함부로 깎아내리던 마음이었다. Shame.


어느 날은 사람이 싫어서 바다를 찾았다. 정확히는 사람이 싫다기보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자신이 싫었다. 잘 지내냐는 질문에는 잘 지낸다고 해야 했고, 연구는 어떠냐는 질문에는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해야 했다. 별일 없느냐는 말에는 정말 별일이 없어야 할 것 같았다.

그날 A는 일부러 사람이 없는 바다를 찾아갔다. 겨울이었다. 해수욕장에는 파라솔도, 서핑보드도, 웃음소리도 없었다. 문 닫은 횟집 몇 곳과 모래 위를 굴러다니는 비닐봉지 하나가 전부였다. 혼자 있고 싶어서 왔는데, 막상 정말 혼자가 되니 조금 서러웠다.

A는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을 뜯어 먹으며 한참 바다를 바라봤다. 누군가 곁에 있어야만 견딜 수 있는 외로움도 있지만,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야 비로소 진정이 될 때도 있었다. 그날 A는 괜찮아지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냥 괜찮지 않은 채로 오래 앉아 있었다. 혼자여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Solitude.


다시 논문을 쓰기 시작한 후로 A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오래 버티는 일이었다. 힘든 건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애쓴 만큼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데 있었다. 문장 하나를 붙잡고 반나절을 보내도 결국 지우는 날이 있었고, 참고문헌 하나를 확인하려고 책 여러 권을 뒤졌지만 정작 논문에는 한 줄도 남지 않는 날도 있었다. 하루를 다 쓰고도 제자리인 것 같은 날이 반복되면, 사람은 지치는 것보다 먼저 자신의 속도를 의심하게 된다.

“오늘은 뭐 했어?”

남편이 물으면 A는 가끔 대답했다.

“세 줄.”

그 세 줄을 쓰느라 하루를 보냈다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쓰다가 영 풀리지 않는 날이면 A는 오일상 바다를 찾았다. 그날따라 물이 한참 빠져 있었다. 

“집 나간 바다.” A가 푸념했다.

“때 되면 들어오겠지.” 남편이 대꾸했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 A는 피식 웃었다. 재촉한다고 밀물이 서둘러 오는 것도 아니고, 애가 탄다고 바다가 제 속도를 바꾸는 것도 아니었다. 물이 빠져 있다고 해서 바다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잠시 멀어져 있을 뿐이었다.

A는 한동안 차오를 바다를 바라봤다. 논문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루 종일 붙들고 있어도 제자리인 날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쌓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한 문장이면 한 문장, 세 줄이면 세 줄, 눈에 띄지 않을 뿐,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초조해한다고 세 줄이 열 줄이 되지는 않았다. 오늘은 오늘의 몫을 쓰고, 내일은 다시 책상 앞에 앉으면 됐다. 로마도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았다. 논문이라고 별수 있을까. Patience.


논문을 고치다 보면 새벽을 맞이하기 일수다. 돌이켜보면 아침 해는 일찍 일어나서 본 날보다, 밤을 꼬박 새우고 본 날이 더 많았다. 창밖이 어슴푸레 밝아질 때까지 논문과 사투를 벌이다가, 끝내 잠들지 못한 날이면, A는 일출을 보러 떠났다. 이제 와 잠들기도 애매했고, 누워봤자 잠이 들기도 만무했다. 그렇다면 일출이라도 봐야지. 

A는 그대로 차를 몰고 혼자 가까운 바닷가를 찾았다. 그런데 하필 수평선 위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으면 괜히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잠시 뒤 구름 틈이 천천히 밝아졌다. 해는 끝내 뽕긋 솟아오르지 않았지만, 날은 이미 환해져 있었다. 꼭 눈앞에 동그랗게 떠올라야만 해가 뜬 것은 아니리라. 논문도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 매일 들여다 봐도 나아진 구석이 눈꼽만치도 없는 것 같지만, 처음보다는 꽤 멀리 와 있는 것처럼. 아직 구름에 가려져 있지만, 조금씩 밝아지고 있는 것마냥. 밤을 샌 것 치고는 제법 괜찮은 이치를 터득했다. Optimism.


재심을 받는 날,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완벽하게 대답한 것도 아니었고, 끝나고 나오면서 ‘왜 그 말을 그렇게 했지’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버텼다. 

얼마 뒤 지도교수님이 메일을 보내왔다. 몇 군데를 더 다듬으면 된다는 말과 함께, 이번에는 끝낼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고쳐야 할 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오래된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희망이 조금 보이기도 했다. 기쁨, 들뜸, 좋았다.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바다로 갈까 생각하다가 그냥 마음을 접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바다까지 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카페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에, 도로 사이로 바다가 빼꼼 보였다. 늘 일부러 찾아가는 곳이었는데 그날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곧 끝날 거라는 안도감에 숨통이 트였다. Relief.


논문을 최종 제출한 날, A는 으례 바다를 찾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늘 바다에 오면 무언가를 꺼내놓곤 했는데, 그날은 내려놓을 것이 없었다. 울분도, 불안도, 부끄러움도 없었다. 그저 끝났다는 사실 하나에 서서히 실감을 느꼈다.

A는 맨발 바람으로 바닷가를 신나게 뛰어다녔다. 약간 미친 것처럼 보였겠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정신줄을 놔야 하는 날도 있는 법이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미쳐 날뛰어야지.

예전에는 바다에 올 때마다 마음 한 켠에 조급함이 자리했다. 울고 나면 돌아가서 써야 했고, 달래고 나면 다시 버텨야 했다. 그런데 그날은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없었다. 얼마나 좋은가.

“다음엔 어디 갈까?” 남편이 넌지시 물었다.

A는 습관처럼 바다 이름 하나를 떠올리려다 멈췄다. 이번에는 이상하게 나라 이름이 먼저 떠올랐다.

“이제는 여권 들고 멀리 가자.”

돌아보니 바다가 A에게 특별한 말을 해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파도는 늘 파도였고, 바다는 늘 바다였다. 그 안에서 평화도, 불안도, 부끄러움도, 고독도, 인내도, 희망도, 안도도 찾아낸 것은 결국 A 자신이었다. 이제 바다가 건네 준 것은 위로가 아니었다. 더 이상 위로받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었다. Tranquility.


논문을 쓰고 바다를 찾는 사이 '여권PASSPORT'에도 나름 흔적을 남겼습니다. 읽어봐 주심에 온 마음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부서짐에도 빛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바다를 보며 배웠습니다. '우리나무'의 글쓴이와 독자의 모든 날들에도 그런 순간이 많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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