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질반질한 구두를 신으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아무리 멋진 구두를 신어도 발에 피로가 쌓이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역시 운동화가 편하다. 내게 구두는 아무래두 일부러 찾아 신는 신발은 아니다. 양복을 입어야 할 일이 있을 때 그와 세트로 신어야 하는 물건일 뿐이다. 

그럼에도 '구두'라는 낱말 자체는 굉장히 친근하다. 어릴 때부터 동화 이야기, 탐정 소설, 티비 프로그램이나 여러 경로를 통해 자연스레 접해왔다. 구두기름, 구두방, 구두쟁이, 구두솔, 구두바닥, 가죽구두, 헌구두 등등 구두와 관련한 합성어도 많다. 심지어 구두쇠 할 때 구두도 같은 구두일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해 온 세월도 길다. 구두의 '구'가 '口' 같아 보이기도 하고 '두'가 '頭' 같아 보이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우리말일거라 보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근데 이게 웬걸. '구두'가 사실은 일본어에서 온 외래어였다. 신발을 뜻하는 일본어 낱말이 '靴' (くつ, kutsu)인데 이 발음을 '구두'라는 우리말 소리로 옮긴 것이다. 다만 현재 우리말의 서양식 신발 '구두'에 정확히 대응하는 일본말은 '革靴' (かわぐつ, kawa-gutsu), 즉 '가죽신발'이다. 근데 '가죽'이라는 부분은 떨어져 나간 그냥 '신발'을 뜻하는 부분만 떼어다가 '구두'가 된 점이 특이하다. 근대사에서 많은 서방 문물을 일본을 통해 간접 수입을 한 역사의 흔적이 묻어나는 낱말인 것이다. 아니였으면 일본 전통식 신발인 '조리'가 구두가 되었을 판이다. 

일본어 음절을 한글로 표기하는 전통방식과도 일치한다.
일본 카가와대학 소장 朝鮮版伊路波(1492)

서방에서 일본을 거쳐, 그나마 간략화되어 반도에 들어온 말이 '구두'인 것이다. 국경을 몇 개나 넘나들었는지 모른다. 더우기 재미난 것은, 어릴 적 연변소품에서 나온, '구두'와 관련된 에피소드이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는 게 신기하다. 외국인 매부(?)였던지 아내의 가짜결혼 상대였던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소품배우 채용 씨가 이 외국인을 맞이한다고 영어 인사를 배우는데 '굿 아푸터눈(Good afternoon)'을 벼락치기로 기억하려고 한 장면이 있었다. 거기서 손가락으로 자기 신체 부위들을 가리키며 '구두, 아프다, 눈' 이러면 바로 기억되지 않냐고 하던 대사가 잊혀지지 않는다. 

한 둘레를 돌아 우리말로 들어온 '구두'라는 말이 다시 영어로 둔갑해 나가는 해학. 그 시대 연변의 한국바람과 함께 탄생했던 일화이다. '구두'에 국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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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북에서 남으로, 서에서 동으로 돌다가 고전과 씨름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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