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대 칭화대를 北京大 清华大로 번역해놓으면 어떤 느낌인가.
정부에서 "근거 없는 일방적제재"라고 비판했다면 중문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没有根据的单方面制裁로 에때울 것인가, 원문을 찾아보고 豪无事实依据 肆意实施单边制裁로 살릴 것인가.
왜 언어습관과 상식에 어긋나는 단어를 쓰고 왜 원문을 찾아보지 않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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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전략이 다르다.
정자와 란자의 크기가 처음부터 달랐던게 아니다. 누구는 본인 영양을 풍부하게 하는, 누구는 속도를 빨려 영양이 많은 이에게 달라붙는 전략을 택했다.
직장에서 누구는 실력을 차곡차곡 쌓고 누구는 빨대를 뾰족하게 간다.
환관으로 자리매김한 이에게 칼을 쓰는 법을 모른다고 나무람하는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의 핵심 경쟁력은 칼 휘두르기에 있지 않다.
마음이 없는 곳에 어찌 공을 들이랴.
원문을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번역일을 끝낼 수 있고 매끄럽지 않아도 생존과 발전에 지장이 없다. 시간과 기력은 핵심경쟁력에 써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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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은 업무 특성상 왕궁에 의존할수 밖에 없고 충성(하는 척) 할수 밖에 없다.
장군의 손에는 칼이 있다. 지금은 그 칼이 적을 향하고 있지만 언제 왕으로 향할지도 모른다.
왕은 둘 다 필요하다. 경계를 한다면 장군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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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이 왜 환관이 됐을가, 여기에 사로잡히면 괴롭다.
왜 원문을 찾아보지 않을가, 이런 질문은 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누가 괴롭고 누가 이런 질문을 할가?
그러니 생태계 위치나 시각에 따라 다르다.
세상은 다양하다. 좋고나쁨? 있지, 앞에 "누구에게"를 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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