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거의 6살이 되어 가는 애한테 뭐라 했다. 인내심을 키우자고, 어떤 상황에서든 먼저 5초만 참고 진정한 뒤에 다시 타이르자고 마음을 먹어도 그게 잘 안 된다. 하여 또다시 "어른"이랍시고 애한테 으름장을 놓았다. "너 5분 뒤에 TV 끄지 않으면 아예 TV를 없앨 거야.", "너 5분 뒤에 게임 그만두지 않으면 아이패드를 락해 버릴 거야." 애는 아쉬운 대로 그만두고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한참 뒤에 이런 일들을 가지고 애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이럴때 아빠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돌아온 답은 'Nicely' 였다. 내가 으름장을 놓거나 조금만 소리를 높여도 무서운가 보다.

애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몇분 뒤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잘 논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하지만 나는 속이 내려가지 않아서 조금 지켜보곤 한다. 아, 조금 참을걸. 조금 더 놀게 놔둘걸. 애 말처럼 좀 더 상냥하게 타이를걸. 그러다 밤이 되어 자고 있는 애를 보면 내가 했던 말들이며 행동들이 다 후회되곤 한다. 다음엔 애 말처럼 Nicely 하게 말해보자, 하면서도 또 부딪치면 잘 안 된다.

이럴때마다 애는 엄청 쿨하게 넘어간다. 어른한테 무언가 할 말이 있는것 같기도 하면서, 자신은 애니까, 어리니까 하는수 없이 받아들이는 그런 느낌도 든다.

하여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나의 30살과 애의 30살이 만나서, 친구 대 친구로, 같은 나이로 속심말을 나누면 어떨까 하고. 나는 왜 이렇게 제한을 두는지, 너는 왜 제한이 없어도 될것 같은지. 그런 생각들을 주고받는 환상적인 시간들 말이다.

애를 너무 사랑하기에, 내가 앞서 산 시간만큼 뒤처져 만나는 게 아니라 공평하게 30살 대 30살, 혹은 40살 대 40살로 만나면 어떨지.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을것 같았다.

이런 생각들을 하던 차에, 지난달 애를 데리고 중국에 있는 어머니 집으로 갔다. 애한테는 친할머니 집이다. 먼 길에 5살짜리를 데리고 나선 이유는 딱 하나, 할머니랑 시간을 보내게 하려고. 애가 너무 빨리 자라서 1년만 못 봐도 몰라보게 크는 그런 단계와 시간들이다.

그러다 어느날 어머니 집에서 오래된 사진첩을 발견했다. 어머니도 그걸 꺼내 보여주면서, 옛날 사진들이라 버릴까 하다가 남겨두었다고 했다. 요즘처럼 폰으로 하루에도 몇백장씩 찍을수 있는 시대의 것이 아닌, 그렇게 귀한 사진들을 왜 버리냐고, 한번 보자고 했다.

와, 어릴때도 얼핏 본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하나씩 자세히 들여다본적은 없었다. 거기에는 어머니의 청춘이 있었고, 십대가 있었다. 순서는 뒤죽박죽이었다. 어떤건 색이 다 바래서 누런빛이고, 어떤건 귀퉁이가 접혀서 펴지지도 않았다. 뒷면에 볼펜으로 날짜를 적어놓은것도 있고,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아 어머니한테 이게 몇 살 때냐고 물어봐야 하는것도 있었다.

그중에 한장. 어머니가 열여덟살때 쯤, 친구와 둘이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왼쪽이 어머니고, 오른쪽은 그 시절 어머니의 딱친구였다고 한다. 머리에 흰수건을 두르고, 서로 어깨를 바짝 붙이고, 둘 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웃고 있는데, 내가 아는 그 표정이 아니었다. 나를 키우면서 짓던 표정, 나한테 잔소리하거나 걱정하던 표정, 그런게 아니라 그냥 열여덟 살짜리가 제일 친한 친구랑 사진관에 가서 제일 예쁘게 나오고 싶어 짓는 그런 표정이었다.

'내리사랑'이라고들 하지만, 애랑 같은 나이로 만나는 상상은 해봤어도 혼자 사는 어머니를 그렇게 생각해본적은 없었던것 같다.

같은 두사람이 목도리를 두르고 찍은 사진도 한장 있었다. 이건 웃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는 사진인데, 그 눈빛이 오래 남았다. 무언가 결심한것 같기도 하고, 조금 긴장한것 같기도 하고. 열여덟이면 뭔가를 결심하기 딱 좋은 나이다. 어머니는 현재 한국에 있는 그 친구와 오늘도 통화하고 있었다.

애는 옆에서 같이 보다가 이 사람 누구야, 저 사람 누구야 계속 물었다. 어머니가 하나하나 설명해주는데, 이 사람은 큰이모, 이 사람은 어릴적 친구, 이제는 연락도 안 되는…. 그러다 어머니 젊었을때 사진 앞에서 애가 "할머니야?" 하고 물었다. 어머니가 "응, 할머니 젊었을때" 하니까 애가 한참 들여다보다가 "looks different" (닮지 않았다) 라고 했다.

그 말에 어머니도 나도 웃었다.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애 눈에 할머니는 원래부터 할머니였던거지, 이 사진속 열여덟 살짜리 여자애가 몇십년 뒤에 자기 할머니가 될거라는걸 상상이나 하겠나. 그런데 나도 비슷했던 것같다. 어머니는 나한테 항상 어머니였지, 그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궁금해한적이 별로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 그 사진이 떠올랐다. 애를 키우면서 알게 되는건, 정작 애에 대한 것보다 내가 어머니한테 어떤 아들이었는지인 것 같다. 내가 애한테 으름장을 놓고 나서 후회하는 밤마다, 어머니도 나를 키우면서 이런 밤들이 있었겠구나 싶다. 내가 기억도 못하는 어느 밤에, 어머니도 나를 재워놓고 오늘 한 말들을 후회했을지 모른다. 애를 키워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는 말이, 이런 식으로 뒤늦게 도착하는 거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 열여덟 살짜리 어머니한테 묻고 싶은것들이 생겼다. 그때 무슨 꿈이 있었는지, 뭐가 되고 싶었는지, 나를 낳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의 어머니한테 물어봐도 대답이야 해주시겠지. 하지만 그건 이 나이가 된 어머니가 옛날을 돌아보며 하는 말이지, 그때 그 순간의 진짜 마음은 아닐 것 같았다. 사진관 조명 아래서 친구와 어깨를 붙이고 웃고 있는 그 애한테 직접 묻고 싶었다.

나의 30살과 애의 30살이 만나는 상상은 그렇게 많이 해봤으면서, 나의 열여덟과 어머니의 열여덟이 만나는 상상은 왜 한번도 안 해봤을까.

아마도 앞은 내가 만들어갈 시간이고 뒤는 이미 다 지나간 시간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의 시간은 나를 뒷바라지하는데 다 쓰인걸로, 그걸로 다 설명되는걸로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누런 종이 위에는 나랑 아무 상관없는 어머니가, 나를 낳기 한참 전부터 이미 존재하던 어머니가 웃고 있었다. 친구랑 함께.

요즘은 폰으로 찍으면 하루에도 몇백장이고 남는다. 그중 잘 나온 몇장만 건지고 나머지는 클라우드 어딘가에 묻힌다. 다시 꺼내 볼 일도 별로 없다. 그런데 그 낡은 사진첩은 몇십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버릴까 하다가 남겨뒀다는 그 사진들이 지금 아들과 손자 앞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다는게 신기했다. 사진이 귀했던 시절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한장 한장을 아꼈던, 그래서 함부로 못 버린 그런 무게 같은게 있었다.

애가 자고 있는 밤에 다시 생각한다. 내가 지금 찍어대는 사진들 중에 몇십년 뒤에 애가 다시 꺼내볼 만한게 얼마나 될까. 몇장은 잘 정리해서 어딘가에 보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애가 자기 자식을 데리고, 아빠였던 나의 젊은 시절을 보면서 "안 닮았어" 하고 웃을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그때 그 애한테,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조금은 전해졌으면 좋겠다. 잔소리하는 아빠 말고, 으름장 놓는 어른 말고.

30살의 나와 30살의 애는 끝내 만날수 없을 것이다. 열여덟의 나와 열여덟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다만 누런 종이 몇장이 그 자리를 대신 지키고 있는것 같다. 말은 못 해도, 표정 하나로 연결되는 그런것들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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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범이

UX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느끼는 생각과 경험을 글로 적습니다. 때로는 주제를 벗어나는 글을 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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