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 방문 1

1966년 10월 2일, 도문 해관을 지나, 청진으로...


  1966년 10월 2일, 나는 책가방을 메고 도문해관에 들어섰다. 해관은 아주 조용하였다. 건너다니는 사람이 없고 지닌 물품이 없으니 몇분사이에 통과되였다. 나는 해관문을 나설 때“선생님, 여기에 모주석 어록과 문화혁명 16조가 있는데 ……혹시 인쇄물이 못 건너가는 경우도 있는가요?”

“일반 인쇄품은 문제가 없소.”

“네 알겠습니다.”

   나는 날듯이 기쁜 심정으로 남양다리를 건너 남양세관에 들어섰다. 남양세관도 아주 고요하였다. 세관 공작인원들은 어린나이에 이렇게 출국하니 좀 궁금한것을 알려고 나에 대해 아주 큰 흥미를 갖고 있는 여쭸다.

“도문에서는 꼬깔 모자를 씌우고 추정하는것 같은데 대체 어떤 사람을 투쟁하오?”

“모릅니다.”

“또 대자보는 어떤 내용을이요?”

“모릅니다. “

“그래 학생들이 공부도 하지않고 하지.”

“네.”

“그래 구만봉이와는 어떻게 되오?”

“저의 4촌 오빠입니다.”

“구동원은?”

“저의 둘째 4촌 오빠입니다.그들 두분은 친형제 입니다.”

“직접 청진 가겠소?”

“네.”

“그럼 이 책은 여기에 두고 가요.”

“몰수합니까?”

“아니, 돌아갈때 돌려 주겠소.”

“그건 안됩니다.”

“이 책은 두고가야하오.”하면서 아주 엄숙한 태도를 보였다. 나를 제압하려는 기세였다.

“왜서요?”

“인쇄품이라 안되오.”

“아닌데요. 중국해관에서 물어보고 왔습니다.”

“이건 절대로 가지고 갈수 없소.”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한참후에 태연스럽게 “그럼 중국대사관에 전화걸게 해 주세요.” 나에게도 반발심이 생겼다.

“전화해서 이 책이 건너가지 못한다는 원인을 확인해 주세요 ……”

“그렇지 않으면 몇날, 몇밤이라고 답을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맥없이 복도에 나와 걸상에 털속 주저 앉았다. 얼마만한 시간이 흘렀는데 한 보위원 동지가 나와서

“참 고집이 센데…… 내가 구만봉이와 동창생인데 잘 보관했다가 돌아올때 주겠소.”

“아닙니다. 이건 원칙적인 문제입니다.”

  나는 눈을 말똥거리며 빤히 쳐다보았다. 그 보위원 동지는 한참 서성거리다가 나에게 두권의 책을 돌려주면서 머리를 빙빙 돌리며 “통과”하시고는 손짓하는 것이였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고 해관 문을 나서,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매표구에 가서 청진행 밤 차표를 끊었다. 수필 기록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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