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형님은 나에게 조카들을 돌보라고 부탁하고 직매점에 게가 들어왔다며 서둘러 나갔다. 형님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반나절이나 줄을 지어 기다렸는데 형님 앞에서 끝나 너무 아쉬웠는데 아는 사람을 만나 중국에서 온 시누를 먹이겠다고 사정사정해서 게 두마리를 얻왔다고 하셨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 밥상에 게 두마리가 올랐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게를 보았다. 온집식구가 모두 나를 먹으라고 권고했지만 "예, 예" 대답만 하고 혼자 먹을 수가 없었다. 사실 어떻게 먹는지도 몰랐다. 오빠는 손을 씻고 와서 큰 게발을 쭉 뽑아서 속살을 빼 내더니만 나에게 맛을 보라고 하면서 앞만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게장도 숟가락으로 이렇게 떠 먹는다고 가르쳐 주시고는 자신은 하나도 들지 않는 것이였다.
"오빠와 형님도 드세요" 하니 형님은 "우리야 이후에도 먹을 기회가 있지 않소. 빨리 먹소." 나는 게다리를 빼서 하나씩 조카들에게 주고 맛나게 먹었다. 계장도 맛있었다. 아니 그 보다 오빠와 형님의 진정이 더 감칠맛이였다. 나는 행복했었다. 행복속에서 며칠이 또 지났다. 오빠는 "너 언제 돌아갈 예정이냐?" 하고 물었다. 나는 오빠를 쳐다보면서 "국적수속을 하고 가면 좋겠는데……"
오빠는 "춘자야. 나 두 그러구 싶은데 지금은 량국 간의 형세가 아주 엄중해지고 있다. 물론 중조간의 거래는 옛적부터 영원히 결렬된 적은 없다. 긴장했다가도 풀어지고 때론 또 긴장해지고, 지리상으로 영원히 결열되지는 못하는 위치다. 이번에는 그저 돌아가고 다음번에 너희 아빠와 엄마를 함께 초청할테니 그때 우리 함께 살자!" 하시면서 어두운 낮빛이였다.
그때 천진란만하던 나는 오빠의 깊은 속내를 알아 챌리 만무했다. 그저 그렇게 되는줄만 알고 좋기만 하였다. 나는 한달 청가를 맡고 있었으니 요즘 떠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고 보니 학교 일도 궁금해 났다. 이젠 빨리 돌아가 학교 혁명을 해야지.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퇴근해서 집에 들면서 오빠는 선물박스를 웃으시며 손에 무엇인가 쥐고 나에게 손을 내밀면서 "이 안에 무엇이 있을까? 맞춰보렴." 아무리 살펴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오빠의 손을 잡아 펴보려고 했지만 높이 드는 바람에 그것도 실패하였다. 나는 막 매달렸다. 그러자 오빠는 종이각에 곱게 싸인 물건을 보여 주었다. 와! 그것은 녀자용 쏘련제 손목시계였다. 시계는 작고 테두리와 시계줄은 모두 금빛칠 도금이였다. 해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빛이 마치 금시계 같았고 아주 귀여워 보였다. 나는 눈이 황홀해졌다.
"동생에게 선물한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시기에 조선에서도 야매 시장에서 고가로 밖에 구입할 수 없는 시계였다. 야매시장이란 재일교포들 그리고 쏘련에 가서 일하고 돌아온 로동자들에게만 있었는데 그 가격은 엄청 비싸 엄두도 못내는 것이였다. "오빠, 이 귀중품을 어디서 구입했어요?" 나는 흥분해서 물었다.
오빠는 씩 웃으시며 "내가 오래전부터 직매점 아는 친구에게 부탁해 놓은 것이다. 그렇찮으면 어림도 없지." 하시고는 나의 손목에 걸어주시는 것이였다. 오빠는 빙그레 웃으시며 "그거야 참 너에게 잘 어울리는구나."하시면서 흐뭇해 하셨다. 나는 그날 저녁 너무도 흥분되어 오래도록 잠을 들지 못했다.
집으로 오는날이였다. 오빠는 나를 데리고 역전에 와서 표를 끊었다. 그리고는 대합실의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빠는 차표를 주면서 나에게 "춘자야, 너 학교에 돌아가서 절대 반란을 꾸리지 말아, 윤봉 동생도 그럴구, 내 말 꼭 명심해야 한다." 당부하시는 것이였다. 나는 "예" 하고 대답하였다. 개표시간이 되어 오빠도 함께 플랫트홈에 나오셨다. 남양행렬차가 서서히 역전에 들어섰다. 오빠는 어두운 낯빛으로 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한마디 말씀도 없이. 나는 렬차의 문층계에 발을 올려놓고 돌아와 보시며, "오빠 빨리 집에 가세요. 제가 또 오겠습니다."
오빠는 떠나는 기차에 손저으며 "춘자야, 춘자야!"하고 목메인 소리로 불렀다. 오빠는 달리는 렬차를 따라오면서"춘자야, 춘자야!"련속 외치는데 울음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멋도 모르고"오빠, 다시 올게요."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집에 돌아온 후 한달도 되지 않아 방송에서 중조관계가 완전히 결렬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나는 그제야 "오빠는 이럴줄을 언녕알고 있었구나. 이산가족을 만들지 않으려고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셨구나!" 나는 눈물이 자꾸 흘렀다. 눈치두 없구 그처럼 천진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때부터 나는 거의 20년동안 편지 거래도 못했다. 나는 매번 방송을 들을 때마다 헤여질 때의 오빠 그 모습이 떠올라 자꾸 눈물이 흘렀다.
수필 기록지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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