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 올라 자리를 찾아 앉았다. 산설고 물설고 낯선 곳에서 밤차를 타고 가는 나의 마음은 흥분과 더불어 두려움과 걱정도 많았다. 청진역에 몇시에 도착할까? 또 도착하면 어떻게 오빠네 집을 찾아갈까? ……나는 말없이 차창 밖을 내다 보았다. 칠흑같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렬차안을 살펴보니 손님들은 조용히 눈을감고 걸상에 기대여 있었다. 오직 기차가 달리는 털커덕 털커덕 하는 소리만 들렸고 가담가담 기차가 뿡- 하는 기적소리만 들렸다.
회령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나는 나의 앞에 앉은 아저씨에게 물었다.
" 아저씨, 청진까지 가려면 아직 오래 걸리나요?"
"응, 그래 너 어디까지 가니?"
"청진까지요."
"마중나오는 사람이 있냐?"
"오빠는 제가 오는 줄도 모릅니다."
"그럼, 어떻게 하지? 밤 12시쯤 되어야 도착할텐데 … …"
나는 "청진역 안전부에 우리 고모 4촌 오빠가 출근하시는데 오늘 출근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근심어린 어조로말했다.
아저씨는 "너는 여기서 사는것 같지 않은데 어디서 왔니?"
나는 제꺽 "연길에서 왔습니다"
"오! 그렇구나, 나는 청진역에서 복무하고 있다. 염려말아, 내가 너를 데려다 줄테니……" 나는 금시 어두운 빛이 사라지고 밝은 미소가 어렸다.
그 아저씨는 중국에서 온 나에 대해 흥미를 가졌다. 우리는 옆에 있는 손님들의 수면에 방해를 줄까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조심스레 물음에 대답을 주었다. 우리는 금시에 친해져 졸리지도 않고 청진역에 도착했다. 그 아저씨는 나를 데리고 역전 안전부에 들어가 인석 오빠를 찾았다. 인석 오빠는 당직이 아니여서 계시지 않았다. 그 분은 한 안전원을 찾아서 나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시고 작별인사를 하고 갈라졌다. 나는 그 분이 눈물날지경으로 고마웠다.
한 안전원이 "여권을 보자."
나는 두손으로 공손히 드렸다.
"구만봉이와는 어떤 친척 관계냐?"
"사촌 오빠입니다."
"주소는?"
"청진시 신암구역 안전부입니다."
그 분은 전화를 걸었다. 마침 만봉오빠가 받는듯 하였다.
"너 거기서 기다려라. 한 30분 후이면 오실수 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그제야 휴~ 한숨을 내 쉬고 안정을 찾았다.
한참 후에 170cm 넘는 훤칠한 키에 군복을 입고 뚜리모자를 쓴 멋진 안전원이 나의 앞에 나타났다. 나는 너무 좋아 달려가 "오빠!"하고 소리쳤다. 오빠는 싱글벙글 웃으시며 나의 손을 잡고 그곳 안전원들과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문밖을 나섰다.
"우리 버스 타고가야 한다."
"멀어요?"
"아니."
오빠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두시가 거의 되였다. 오빠는 나를 찬찬히 쳐다보며 빙그레 웃고 있는 것이였다. "네가 해관을 통과할 때 남양 해관에서 전화가 왔다. 그들은 나에게 전후 과정을 얘기 하면서 무서운 동생왔으니 녀동생의 입단속 잘하고 그 두권의 책을 잘 보관하라고 부탁했다."
"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책이 진정 필요 했겠지만 도리앞에서 존엄을 지키려는 것 뿐이였습니다."
오빠는 "어디 보자." 그러자 나는 두 손으로 그 책을 공손히 드렸다. 오빠는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보시는 것이었다.
오빠네 집은 총면적으로 한 20㎡도 되지 않는 작은 마당이 있는 집이였다. 집안에 갖추어 놓은 건 없었지만 아주 깔끔하였다. 형님은 맨 남자아이 셋을 키우고 열 여덟살 되는 시동생을 아홉살때부터 자기가 책임지고 키웠다. 진짜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빠는 안전부 정치부 과장으로 있으면서 거의 대부분 시간을 안전부에서 보냈다. 오빠는 말수가 적은 편이였으나 입만 열면 청산류수 였고, 엄숙한 분이셨다. 그러나 인성이 맑아 넷째 아들인데도 어머니가 세상뜨자 아홉살인 막내 동생을 데려다 키워서 직장을 마련해주고 고운 색시를 소개하여 집까지 마련해 주신 분이다. 오빠는 인정이 많고 자기 친 녀동생이 없어 그랬는지 나를 무척 귀여워했고 사랑해 주었다.
형님은 나에게 "중국에 동생이 오니 오빠가 빈 틈을 타서 집으로 자주 들어 오네요. 해가 서산에 뜨겠소"하고 웃으시며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청진에 도착하자 몹시 피곤했던지 열이나고 목난지가 나서 밥도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말도 못하고 끙끙 혼자 앓고 있었다. 형님은 "식칼을 베개 밑에 깔고 자오." 아마 토방법인 모양이다. 그 방법도 소용 없었다. 이튿날에는 "간장을 입에 물고 있소." 그 방법도 안되였다.
사흘째날, 오빠는 안전부에 나갔다가 급히 돌아왔다. "춘자야, 안되겠다. 병원으로 가야겠다." 나는 겨우 일어나 준비를 하였다. 오빠는 옷을 입혀주고 신발을 신겨주고는 나를 둘쳐업고 안전부 병원에 갔다. 병원은 환자가 없고 조용하였다. 의사 선생님은 걸상에 앉으라 하고 "아!" 하라고 하였다.
나는 시키는대로 했다. 의사 선생님은 천천히 살펴보더니 내 목에 온도계 같은 유리 막대기로 입을 벌리라고 하고는 순식간에 콱 질르더니, 나는 숨이 넘어가는 것처럼 아팠고, 피 고름을 확 토했다. 얼마나 많은 피고름을 토했는지 모른다. 그러고 양치질 하라하고 약물을 주는 것이였다. 몇십번 양치질 했다. 나는 살아났다.
의사 선생님은 "구 동무 한시간만 늦어도 위험했습니다. 오빠는 그제야 '후- 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집에 돌아와서 오빠는 "나는 혼비백산 했다. 어쩌면 그렇게도 많은 피고름이 나오니? 인젠 푹 쉬면서 의사가 시키는 대로 양치질을 잘 해라" 이렇게 부탁하고는 부랴부랴 안전부로 나가시는 것이였다.
나는 "얼마나 사랑스러운 오빠인가! ……" 나는 이런 사랑을 처음 느껴 보았다. 오빠네 집은 위치가 엄청나게 좋았다. 평전이 아니고 둔덕에 다락집을 기초를 다지고 집을 지었는데 앞 마당에 나서면 온 청진시내가 한 눈에 안겨왔고 멀지 않은 곳에 넓고 푸른 바다가 한눈에 안겨왔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그때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다. 나는 낮이면 앞마당에 나와 앉아 멀리 보이는 바다를 보며 머리도 시원해지고 마음도 상쾌해지면서 몸이 점차 좋아졌다. 그래서 바다가로 가고 싶은 조급증이 생겨났다.
하루는 나 혼자서 마을 층계를 내려와 바다가 방향으로 걸었다. 한참 걸어 바다가에 도착하였다. 바다가 백사장으로 신을 벗어들고 모래에다 발자국을 남기면서 걸으니 그 또한 멋이였다. 글자도 써보고 그림도 그려보면서 ……순간 바닷물이 밀려드는 옛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바다물에 손을 씻고 두 손으로 한 웅큼의 물을 쥐어 마셨다. 너무도 짜서 저도 몰래토해버렸다. 그래도 입안은 계속 짜서 어쩔 방도가 없었다. 바보같이, 왜 혀로 감각을 체험해 볼 것이지…
지금도 생각하면 몰라도 너무 몰랐던 그 때가 웃음이 절로 난다. 그리고 또 맨발로 바다가 물에서 놀다가 물벼락을 맞아 옷이 몽땅 젖었다. 강변만 보고 자라온 내가 바다물의 밀물, 썰물을 알리가 만무했다. 나는 실천을 통해 새로운 학문(지식)을 알게 되었다. 나는 조개도 줍고 반질반질한 조약돌도 주으며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러다가 백사장에 앉아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먼 곳에서 쪽배 두척이 눈에 안겨왔다. 쪽배는 파도에 밀려 물 밑으로 쏙 들어갔다가 또 파도를 따라 솟아오르곤 하는것이였다. 나는 큰일 날것 같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그 쪽배들은 용케도 파도에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해안으로 전진하는 것이였다. 나는 너무도 신기했다. 참 저 사람들은 용감하고 재간도 많구나. 아주 감격적이였다.
그런데 쪽배 하나가 작업을 마치고 돌아와 그물을 털어 놓았다. 나는 살금살금 곁에 가보았는데 질겁해 뒤로 물러섰다. 뼈도 없는 큰 놈이 모래우에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면서 꿈틀거리는 것이였다. "큰 놈이 붙잡혔구나" 하면서 어부들은 싱글싱글 하는 것이였다. 나는 너무도 무서워 다시는 보지 못하고 집을 향해 줄행랑을 놓았다. 집에 돌아와 바다가에서 있은일을 말했더니 오빠와 형님, 조카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오빠는 '그것이 문어라는 고기다. 맛도 좋은 고기구" 형님은 "가을 배추 초절이는 바다물을 퍼다 하우, 그리고 두부할때도 그 바다물을 쓰구"라고 알려 주시는 것이였다.
춘자씨의 수필 기록지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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