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에는 나의 4촌형제, 외사촌, 이모사촌, 고모사촌 형제들이 많기도 했다. 하루는 고모 4촌 인석 오빠가 찾아왔다. 아마 만봉 오빠가 전화했을 것 같다. 그 날은 두 오빠가 나를 데리고 청진 장마당에도 가고 공원에도 갔다. 시내 복판에는 고층건물들이 줄느런히 들어섰는데 거리에는 아주 어설펐다. 전쟁당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직 복구건설이 채 되지 않은것 같았다. 구멍이 뻥뻥 뚫린 장벽들도 보았고 전쟁시기 시체를 미처 처리 못해 한 구뎅이에 몇십명, 몇백명씩 묻어놓은 자리도 보았다. 나는 마음이 서글펐다. 만봉 오빠는 전쟁이 끝난 초기에는 남녀 비례가 1:10으로 되다가 지금은 1:6의 비례쯤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남자들이 거리에서 나서면 따르는 녀자들이 뒤에 줄을 선다고 롱담도 하였다. 인석 오빠는 장마당에서 역사탕이랑, 과자랑 사주면서 먹으라고 했다. 우리 세남매는 온 하루 웃고 떠들고 하면서 즐겁게 놀았다. 나는 "이곳은 우리가 사는 연변보다 장마당에 물건도 많고 먹거리도 더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토요일 저녁이였다. 만봉 오빠네 집에 중국에서 온 동생을 보겠다고 외사촌, 이모사촌, 고모사촌 언니들과 오빠들이 모였다. 낯설었지만 인차 친해졌다. 우리 형제들은 웃고 떠들고 하면서 밤중까지 놀았다. 마지막 갈라질 때 모두 자기집에 놀러 오라는 부탁이였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 인정이 많고 마음씨가 참착한 분들이였다. 

  만봉오빠는 아주 긴장하게 출근하셨다. 거의 다 직장에서 계셨고 1급 전쟁준비 태세인것 같았다. 내가 왔다고 집에 들어와 주무시게되면 권총은 베개밑에 놓고 속옷은 벗지도 못하고 주무시는 것이였다. 그러다가도 밤중에 호출이 되면 제 정신없이 뛰여가곤 하셨다. 오빠는 일요일도 별로 휴식 못하셨다. 직장에 정보망을 건립해 놓고 내려가 회보받고 임무를 주고 단속하기도 한단다. 그래서 내가 가서 있는 동안에는 정보원들이 오빠네 집에 찾아와서 회보하는것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간첩활동이 심해서 경각성을 높이고 있는것 같았다. "완전 인민전쟁을 벌이고 있구나!"나의 생각이였다. 

  일요일이면 오빠와 나는 말을 하면 끝이 없었다. 어떤 때는 사생활 이야기, 어떤 때는 전쟁이야기 그리고 대부분이 시사이야기, 정치안전 문제, 나는 까불어 대면서 정치적 관점에서 변론도 많이 했다. 정말 소통이 잘 되였다. 

  오빠는 될수록 시간을 쟁취하여 나와 함께 있으려고 노력했다. 하루는 오빠가 퇴근하여 집에와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식사가 끝나자 나와 오빠는 잡담이 오갔다. 오빠는 래일 행사는 재일동포들의 귀국선을 영접하러 가신다는 것이였다.

 "오빠, 나도 따라가면 안돼요?"하면서 달라붙었다. 

오빠는 "외부인원은 절대로 들어놓지 않는데 …"하시면서 반대의 태도를 표시했지. 

나는 "그건 오빠가 알선하면 되지 않아요? 오빠, 그렇게 해요. 응?"하고 웃음을 부렸다.

 오빠는 한참 생각하시다가 "그럼 래일 시험해 보자. 그런데 네가 눈치가 빠르고 지혜롭게 행동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대화는 이렇게 끝나고 잡담을 하기 시작했는데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많았던지 밤12시가넘어서야 자리에 누웠다. 

  매번 오빠가 집에 올 때면 재미 있는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옆에 동참했던 분들은 우리 형제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고 학습도 많이 했다면서 아쉬운 마음으로 갈라지곤 하였다.

  이튿날이였다. 나는 잔뜩 흥분된 마음으로 오빠따라 바다가에 있는 영접실 청사로 향하였다. 청사둘레에는 울타리로 둘러 싸여있었고 출입문이 하나 있었는데 공작인원들이 권총을 찬 군대도 있고 사복한 안전원들이 있었다. 좀 무시무시한 분위기였다. 오빠는 문어구에서 "너는 나와 거리를 두고 좀 있다가 들어 오너라." 나지막한 소리로 말씀하셨다.

"예." 대답하고 나는 오빠가 2- 3m쯤 갔을 때 눈치를 살피 다가 틈을 타서 아닌보살하고 척척 걸어 들어갔다. 휴행증을 검사하던 문지기는 "동무, 동무 거기 서시오." 나는 섰다."여기는 통행증이 없이 들어 못가오." "저는 구만봉 동생인데 사정이 있어서 만나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는 빨리 빨리 걸어서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 문지기는 더는 막지 않았다. 청사는 2층으로 되었는데 아래층은 큰 강당과 같았다. 무대도 있고 귀빈석도 있었고 맨 아래에는 관중석이 있었다. 그 강당 앞에는 도청에서 나온 간부들이 있었고 많은 안전원들이 있었으며 고국에 돌아오는 재일동포들을 환영하는 연출대들도 있었다. 나는 뒤구석에 가만히 서 있다가 귀국선이 정박하는 곳에 따라 나섰다. 크나큰 기선이 서서히 정박하고 있었다. 

  선창에는 시제151차 재일동포 귀국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큰 프랑카드가 붙어 있었고 재일동포들은 멋있는 트렁크를 들고 줄을 지어 선창에서 서서히 내려오는 것이었다. 옷도 멋있게 입고 행동을 보니 모두 잘사는 사람들 같았다.

  청사 앞에서는 군중들이 량켠에 꽃을 들고 줄을 서서 열심히 흔들면서 재일동포들이 고국에 돌아오는 것을 열렬히 환영한다! 열렬히 환영한다! 군중들은 소리높이 외쳤다. 도청간부들은 직접나가 재일동포 대표들과 정식 악수도 하고 뜨거운 포옹도 하면서 눈물까지 흘리는 모양이었다. 주인과 손님들이 귀빈석에 착석한후 영접대회를 선포하였다. 먼저 타향에서 고생 많고 설음 많던 동포들을 열렬히 환영하며 고국에 돌아온 것에 대하여 충심으로 축하드린다고 연설했다. 회장은 자주 떠나갈듯한 우렁찬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음에는 재일동포 대표가 눈물을 흘리면서 성대히 맞아준 데 대하여 사의를 표시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진짜 감동되었다.

  다음에는 환영연출이 시작되였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추고 시도 잘 읊었다. 재일동포들은 거의 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우리 민족은 무엇 때문에 전세계 각 곳에 흩어져 살면서 부모 형제를 잃고 남의 나라에 가서 업수임을 당하고 압박받고 착취당하는 그런 민족으로 전락되였을가?" 나도 가슴이 아프고 슬펐다.

  환영식이 끝나자 나는 혼자 나와 바다가를 거닐었다. 써물 밀물도 구경하고 맨발 바람으로 백사장도 거닐고 파도의 물보라에 온 몸도 적시며 우울한 심정을 점차 가셔버렸다. 

  저녁에 오빠가 돌아왔다. 우리는 저녁을 맛나게 먹고 밤에 들어가 또 잡담을 서넛하였다. 오빠는 나에게 오늘 갔다온 감상을 여러나고 물으시였다. 나는 《감회가 깊습니다.》말하고 이어서 "오빠, 저도 재일동포들처럼 엄마, 아빠 고향에 돌아오면 안되나요?" 오빠는 "음- 될수 있지." 그때는 여권을 가지고 국적을 신청하면 가능한 시기였다.

"오빠, 저도 여기와 살게 해줘요"

"그래 너 어디서 살구싶으냐?"

"오빠 곁에서 혹은 편안하면 더 좋구요."

"그것두 가능하지. 둘째형이 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에 발령받으면 너 둘째형한테로 가면 되지… …"나는 그 말씀을 듣고 일이 다 된 것처럼 손뼉을 치며 좋아하였다.

수필 기록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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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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