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제3화)

살아 있으니 다행이다.


“언니의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학생들도 행운인 것 같아요.”

교육은 자만하는 순간 교화로 변질 될 위험에 놓이는 것 같다.

나는 수업에 능한 교사는 아니다. 

하지만 교사로서 또는 예술인으로서 나는 단 한가지를 고집한다.

그것은 바로 학생들을 아이가 아닌 어른, 즉 주체적인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나를 따르는 학생은 없어도 그것과 동일하게 나를 함부로 대하는 학생도 찾기 어렵다.

나의 수업에서 학생들은 자유롭다. 나의 수업을 방해만 하지 않은다면 학생들이 듣던 말던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도 그 자리에 앉아 봤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영리하다.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이라고 여긴다면 무조건 듣기 마련이다. 

나도 이러한 산만한 수업과정에서 수차례 감독관들의 의견과 관리에 대한 개선제안을 당부받는다. 핸드폰, 이어폰, 잠, 숙제, 게임, 딴짓들… 그들에게 이런 것들이 너무나도 잘 보이겠지만 나에겐 전혀 개의치 않은 행동들이다. 나는 내가봐도 너무나도 재미없는 중국판 <예술개론> 을 읊으면서 어떻게든 그 무료함의 빈틈을 타, 학생들의 산만한 리듬 속에서 예술에 대한 나의 이해를 잔잔하게 풀어놓는다. 

“따라서 디지털미디어 시대 창의력을 요구하는 산업들이 속출하죠. 만일 참신한 아이디어가 이러한 산업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면 그 창의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창의는 독자적인 사색으로도 출현 될 수도 있겠지만 지속적인 창의력의 산출은 일단, 자신만의 아티스틱한 체계를 세우는 것 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하려면 새로움 만 쫓아가는 것 보다 오히려 정 반대로 과거와 역사에 눈을 돌릴 줄 알아야 합니다.”

“창의력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추소 하는 과정에서 새로이 불러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날 문화적 깊이를 잃어가는 시대에 인문학적 교양, 예술적 소양을 다양한 영역의 고전들을 통해 길러야 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여러분들을 한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잠재적 자산이 되어줄 것입니다. 어쩌면 참신한 아이디어가 고갈났을 때, 우리의 창의력을 다시 살리는 열쇠가 여기에 숨어있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나 다를까, 머리를 푹 숙인 이 조용함이 나를 둘러싼다. 이들 중에 나의 뼈저린 외침을 귀담아 듣는 학생은 몇이나 될까? 눈은 뜨고 있고, 귀는 열려 있다. 숨도 쉬도 있겠지? 

살아 있으니 다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장장 16주 동안, 꿋꿋하게 그들의 무의식 속으로 돌진하여, 어쩌면 그들이 먼 훗날에 환기시킬 수도 있을지 모르는 나의 사유의 형식들을 은밀하게, 꾸준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차곡차곡 심어둔다.

 <지니: 침투>, AI협동작업, 2026
연재중(3/16)  

이 글을 공유하기: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