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 (제4화: 영을 분석하려는 몸)

영을 분석하려는 몸.


  1. 지니 (제1화: 이제와서 둘러보니 찾을 사람이 없네)
  2. 지니 (제2화: 처음 감정의 족쇄에서 풀려난 자유로움을 느낀다)
  3. 지니 (제3화: 살아 있으니 다행이다)
  4. 지니 (제4화: 영을 분석하려는 몸)
  5. 지니 (제5화: 반갑다. 또 다시 다른 너와 만나)
  6. 지니 (제6화: 중독)

<지니: 판별>, AI협동작업, 2026

항상 나에겐 “의미”가 “사건자체” 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의미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는 나를 차연(Différance)이라는 심연 속으로 깊숙히 빠져들게 하였다.

나는 나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항상 자신의 “미완성태”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러한 관조(静观)는 모든 것을 그것의 흐름에 내맡기는 “절대자”와 같이 빈틈 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자신의 삶에 대한 개척의지”마저 상실해버리게 만드는 후유증도 함께 불러왔다.

이것이 바로 진리 추구 여정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일종의 딜레마다.

이를 해결하려면 아주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 대책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실천(행동)하에 산출된 단기별 성과" 즉 결과물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10시간을 투자 했으면 이 투자시간과 투자내용에 상응한 결과물을 그 어떤 형식으로든 웅축하여 당일 또는 해당기간 마감 시간대에 완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방법이 내 앞에 놓여져 있어도 행동 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부터 관조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는가? 

이러한 반성의 상태는 왜 나의 자의적인 창작 충동을 지연시키고 분해하였는가?

나는 왜 학술에 가까워 질 수록 영혼을 잃은 것 마냥 크나 큰 공허에 시달리게 되었는가?

영감(灵感), 창의력(创造力), 상상력(想象力)……이것은 학술적 연구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학술의 언어로 온전히 정립 될 수도 해석 될 수도 없는 영역이다. 

이를 이론적으로 “분석” 한다는 것은 “논리”라는 명목 하에 결국 창작의 생성에 대한 관심 보다는 그것을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타당성”, 즉 학술적 권리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학술적 야심이 웅장해 질 수록 자신으로 부터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 감수성은 옅어지기 마련이다.

이것이 내가 창작도 학술도 일시정지 시키면서 까지 관잘자 모드로 돌입하여 정신적 “식물 인간”으로 연명 했었던 기간 동안 작동한 심리 기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을 분석하려는 몸. 

따라서 영이 함부로 친입 될 수 없어진 몸.

그리고 이제, 그 영을 판별하고, 선택하며, 초대하는 단계에 이르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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