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깨여서 거울을 마주하고 입술에서 말라 비틀어진 껍질을 떼여냈다. 얇고 작은 껍질들이 떨어졌다. 나는 그 껍질들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입술의 섬세한 무늬가 새겨져있었다. 어떤 자음과 모음 같기도 했다. 나는 그 자음과 모음들을 열심히 붙여보며 음절자를 만들고 단어를 만들어본다. 도대체 어떤 말이 되고 싶었을가? 이미 죽어버린 언어들은 살아나지 못한다. 분명 자신의 소리와 온기와 빛갈을 가지고 있었을 언어들이 시체로 누워서 아무런 내용도 감정도 전달하지 않는다. 언어가 되지 못한 문자들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다가 바싹 말라서 날카로워진 가장자리를 만져준다. 껍질이 뜯긴 입술에서 피가 슴배여나왔다.어떤 말할 수 없는  리유가 있었을가? 왜 말라서 비틀어지고 죽어가야 했을가? 나는 이 아침 좀은 과장된 감상에 젖어들었다. 

   

          지각하고 판단하고 추리하고 결정하고 계획하고 조합하고 정리하고… 그 복잡한 과정들을 거치며 나오는 말들을 그 일련의 모든 과정들을 거침없이 빠르게 거쳐서 술술술 말을 하는 사람들의 신경생물체계를 부러워한다. 그 사람들은 입술도 모두 촉촉하고 싱싱했던 것 같다. 비록 과학적 검증이나 구체적 통계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지만 어떤 련관성이 있을 것 같다. 자주 말하는 과정에 그 입술의 근육은 강화되고 신경조직들은 발달되고 피흐름량도 늘어나서 입술은 더 탄력이 있고 윤이 나고 아름다워 졌을 것이다.

    

        세상은 온통 말로 차넘친다. 텔레비죤을 켜면 언제라도 준비된 말들이 파도로 덮쳐온다. 핸드폰을 열면 끊임없이 말의 소나기가 쏟아진다. 사람들을 만나면빠르게 닫혔다 열렸다하는 현란한 입술의 놀림에 현기증이 인다. 무더기로 쏟아지는 책들 또한 무성의 언어로 완벽한 진리라 주장하며 견고한 벽으로 일어선다. 그 말들 속에는 내가 쏟아놓은 소음도 어지간히 많다. 어쩌다 편안한 사람을 만나면 잔뜩 지껄이고 낄낄거리며 시끄러웠다. 내가 할 말도 그 말에 응대해줄 말도 있는 세계에 막연히 안도했고 행복에 들떴다.     

         그러나 대부분 시간은 언어들의 란무속에서 쩔쩔맸다. 너무 고상하고 너무 현명하고 너무 정교하고 너무 빠른 속도에 나는 가끔 주눅들고 숨막히고 아연해졌다. 미처 정리되지 못하고 여물지 못했던 내 어눌한 언어는 숨을 곳을 찾아 들거나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떻게 숨을 쉬여야 할지조차 몰랐다. 굳이 말을 생각해내려고 애쓸 때 쯤이면 이미 언어를 잃어버린다. 기를 쓰고 떠올려봐야 더더욱 할말은 비여가고 그런 자신을 발견하며 경멸하고 아예 말할 의욕을 상실한다.

         내가 가진 언어의 한계를 느끼며 정확하게 표현해낼 수 없는 무지를 부끄러워한다. 그런데 언어란 어쩌면 불충실한지도 모른다. 인간의 감정에 도저히 복종하지 않다보니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기만하기를 거듭한다. 단어 하나마다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각각의 단어는 새로운 단어를 련상시키고 그 단어들마다 수많은 정서와 생각들을 거느린다. 더 분명히 이야기하려고 할수록 그 단어들마다 제멋대로 불러들이는 경험과 감정들로 인해 흐려지고 엉겨붙고 뒤죽박죽이 된다. 단어들은 화자의 입밖으로 나오는 순간 공기중에서 풍화되고 변질되며 또 청자의 굳어진 성격과 정서의 영향하게 원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왜곡되여 받아들여진다. 평균적인 단어의 뜻 같은게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오산이다. 사람은 다 자기만의 생활과 습관과 정서와 성격 같은 것들을 지니기 마련이며 그렇게 습관되여버린 가슴과 머리는 엄연히 자기만의 언어를 가진 존재이다. 결국 자기만의 구체적인 뜻으로 리해할 뿐이다. 어쩌면 말을 하려는 것이 과분한 욕심이고 허영심인지도 모른다. 누가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것들의 복합적인 작용하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쉽게 말을 건네지 못하는 나는 감정적으로나 리성적으로나 미숙아로 남아서 이런 변명을 구구절절 늘여놓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내속의 언어들은 죽어간 적이 많다. 말할 수 없는 말들과 말하지 말아야 할 말들과 말하기 어려웠던 말들… 웬지 그것이 아프다. 한숨으로만 토해놓은 불안이나 분노나 좌절이나 아픔이나 슬픔이나 절규같은 것들은 얼마였으며 백치같은 희멀건 웃음이나 두줄기 눈물로만 흘러내린 기쁨이나 행복이나 감동이나 그리움이나 사랑같은 것은 얼마였을가.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수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을 버리고 죽일 필요는 없다. 거짓된 말들이 춤추는 곳이라 하여 아예 그 말을 무시하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다. 이 세상에 의해 받아들여지거나 리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의 수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말은 내 안의 감각에 따라 흘러야 했다. 나는 그 흐름에 나를 맡기고 참된 말의 세계를 만들어가야 했다. 

         그 언어들이 왜 말해지지 못했을가? 내게도 소중한 기억이 있고 정서가 있고 그것들로 만들어지는 언어가 있었다. 그러나 그 말들은 늘 령리하고 신중한 머리에 의해 그 자음과 모음이 바뀌고 조절되고 다시 배렬되며 엉뚱한 말이 되여 튕겨나왔다. 합리주의와 변명과 거짓에 의해 새롭고 낯선 언어들이 되였다. 그것이 공기중에 흩어졌다가 다시 공허하게 내 가슴에 닿아올 쯤이면 그 섬찍함에 전률했다. 그때마다 허무와 자기혐오때문에 가슴에서 육질화되여 태여나야 할 말들이 하나둘씩 메말라가고 죽어갔을 것이다. 

          태여나서 처음 말을 배우기 시작해서부터 배워온 아름다운 단어들을 떠올려본다. 엄마, 아빠, 밥, 하늘, 땅, 꽃, 나무, 해살, 바람, 고운, 맑은, 밝은, 투명한, 순수한, 보고 싶다, 성실하다, 설레이다, 기다리다, 평화롭다, 희망하다 …이토록 가슴을 울리는 말들이였었구나 깨닫는다. 무심한 듯하고 단순한 말 한마디에도 큰 사랑이나 감동이 묻어날 수 있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서 떠도는 언어는 저들끼리 마음대로 조작되여 폭력적이다. 누군가의 생을 아무렇게나 휴지처럼 구겨버리거나 찢기도 하고 무심히 벌레를 찍어버린 삽날처럼 상처를 주기도 하고 위험부위에 박힌 탄알처럼 육신에 박혀서 평생동안 지긋지긋한 아픔이 되기도 한다. 언어는 흔히 리해가 되고 소통이 되고 사랑이 되기보다는 배제가 되고 단절이 되고 파괴가 된다. 그래서 세상은 언어로 치렬하게 싸워가며 언어에 의해 무참히 쓰러져간다. 어찌 언어들이 스스로 그리 병들고 타락되였을가. 다 그 언어를 만들어내고 그 언어를 부려가는 리기적인 인간들의 간교하고 랭혹한 마음탓일 것이다. 그 살벌한 환경에서 자신을 지켜가야 하는 인간 역시 살아가기가 힘들다. 

         언제부터인가 맑고 밝고 고운 언어나 정직하고 진실된 언어는 사어가 되여갔다. 그래서 아침마다 나는 그 말해지지 못한 말들의 비애를 느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살려내고 싶은 언어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시들어가고 죽어가고 있는 언어와 만나고 싶다. 나의 언어를 발견해내고 살려내며 나의 언어의 길을  따라가고 싶다. 그 언어들은 아직 순결한 피가 더러 남아있는 내 심장속에서 숨쉬고 있을 것이다. 아직 덜 얼룩진 내 눈동자속에서 빛나고 있을 것이다.  아직 덜 차거운 내가 누군가를 껴안았던 팔과 손안에 있을 것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불러내여 나의 체온으로 보듬어안고 따뜻한 눈물로 적시고 싶다. 

        전혀 가공되지 않은 야생의 언어의 숲에서 작고 여리고 반짝이는 나의 말들을 찾아내고 내 몸을 실어 말하고 싶다. 침묵을 금이라고 하더라도 하고 싶은 말이나 해야 할 말은 해야 되잖을가? 조금 더듬거리더라도 별로 의미나 가치가 없더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것이 내게는 소중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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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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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시들어가고 죽어가고 있는 언어와 만나고 싶다. 나의 언어를 발견해내고 살려내며 나의 언어의 길을 따라가고 싶다.’ 작가님 글을 마지막까지 읽고나니 몸이 반쯤 물에 잠긴 기분이 듭니다. 스스로 이름할 수 없는 몽롱한 여운이 맴도는 것 같아요. 이런 글이 진정 수필이군요. 저도 내 안의 감각의 흐름에 나를 맡기고 참된 말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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